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02화 (485/730)

〈 502화 〉 502. 신수 대전(3)

* * *

카아앙!

철과 철이 부딪치는 살벌한 금속음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수십 번을 반복하여 울려 퍼진다.

단 몇 초 만에 수십 번의 연격을 주고받은 에린과 오르타스가 서로 거리를 벌렸다.

“으….”

오르타스의 검과 부딪치면서 생겨난 막대한 충격의 여파가 뒤늦게 밀려와 에린의 손이 벌벌 떨렸다.

에린은 팔에 힘을 꽉 주어 떨림을 억지로 멈추게 하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무리하지 마라. 억지로 참고 있는 게 다 보이니까.”

“뭐? 내가? 하…. 저, 전혀 아닌데?”

속마음을 들킨 듯하여 순간 흠칫거린 에린이 답했지만, 이미 다 들켜버린 그녀의 허세는 통하지 않았다.

“포기해라. 그리고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렇게만 한다면 너는 한 나라의 왕비가 될 수 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권유를 하는 오르타스의 말에 에린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권유를 받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만 같다.

“아 글쎄. 너는 내 타입이 전혀 아니라고!”

“너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나라에는, 나에게는 네가 필요할 뿐이지.”

오르타스는 에린의 이야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아니, 듣고 있지 않다기보다, 그녀의 의사를 전혀 고려할 생각이 없다는 표현이 옳다.

그에게 있어 에린은 그저 자신의 핏속에 있는 신수의 기운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완벽한 육체를 낳기 위한 씨받이로서의 가치밖에 지니고 있지 않으며, 거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고, 자신의 몸을 안겠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마음은 아직도 자신의 뒤에서 몸을 회복시키고 있는 구미호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자신에게 이런 저급한 권유를 해오는 오르타스의 행동에 에린은 경멸의 마음을 품었다.

‘적어도…현이는 이렇지 않아.’

에린도 은현과 자신 사이의 관계가 애정으로부터 시작된 감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시작은 일방적인 자신의 짝사랑이었으며, 은현에게는 이미 일리아나라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여성이 연인으로서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씩 자각하면서도 애써 얼버무리고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에 대해 솔직해지기 시작하여 희망을 품었던 것은 두 번째 아내로 엘레노아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자신이 아닌 릴리가 세 번째가 되었던 것은 조금 서운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적극적이지 못한 것에서 나온 결과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고, 은현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주었다.

지금 에린이 이렇게 과거완 달리 행복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은현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은현은 말했었지만, 그와 오르타스는 달라도 너무나도 다르다.

생각을 마치고, 경멸의 눈빛을 쏘아 보낸 에린은 다시 레이피어를 꽉 쥐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시끄러워.”

그리곤 다시 오르타스에게 돌진하여 레이피어를 휘두른다.

“쓸데없는 짓을….”

오르타스가 무의미한 발버둥을 치는 에린을 보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전력에서 차이가 나더라도, 몇 번이고 상처를 회복시키고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오르타스를 처치하는 것은 매우 불리하다.

철저하게 급소만을 지키며 싸움에 임하고 있는 그는 일격필살의 기술로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히는 성향의 에린과 상성이 매우 좋지 않았다.

아직 힘을 온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했다지만, 구미호가 오르타스를 끝내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

카아앙!

다시 돌진하여 가속도가 붙은 자신의 찌르기를 오르타스가 간단히 튕겨내자, 에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짜증나지만…. 강해.’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에린은 오르타스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같은 신수의 힘을 사용하는 이로써, 신체의 능력은 호각.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의 숙련도 자체가, 수준이 틀리다.

“움직임이 너무 단조롭고 직선적이군.”

“……!”

오르타스의 지적에 에린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것은 이미 여러 번 은현이나 자신에게 싸움을 가르친 많은 이들이 했었던 지적.

하지만 이것만큼은 스스로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고쳐나가고 조급해하지 말라는 은현의 위로를 받았었던 내용이다.

그래도….

‘빠르다.’

너무 빠르다고 오르타스는 생각했다.

에린의 세검술은 굉장히 빠르고 날카롭게 급소를 찔러와 상대방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격필살의 검술.

직선적이고 단조로운 공격은 그녀가 검을 잡은 시기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아주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검을 잡은 시기가 이제 막 2년.

그런데 이 정도의 수준이라니 놀라울 정도다.

‘가지고 싶구나.’

오르타스는 에린의 재능을 알아보고 두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검사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에린이라면,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한 아이를 낳아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는다.

“으….”

그 시선을 느낀 에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신수의 힘을 가지기 이전부터 타인의 시선을 민감하게 받아들였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이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저 시선도 시선이지만, 에린의 기분을 더 상하게 했던 것은 오르타스와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무력의 격차다.

‘그게 뭐 어쨌다고.’

하지만 그 격차를 느끼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에린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오르타스만큼이나, 그보다 더한 강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넘지 못하는 이들은 산처럼 많이 있다.

그중 가장 높은 벽을 쌓고 에린이 뛰어넘어 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은현이다.

‘현이…만큼 강하지는 않아.’

모든 것의 기준을 자신을 교육한 은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에린의 나쁜 습관 중 하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효과로 작용했다.

‘할 수 있어.’

에린은 자신의 왼쪽 복부를 노리고 들어오는 오르타스의 검을 쳐내고, 곧바로 반격을 노렸다.

매섭게 목을 찌르기 위해 내질러오는 레이피어의 존재를 느끼고, 오르타스는 미간을 좁히며 에린의 레이피어를 쳐냈다.

‘더 빨라졌어?’

그렇게 느낀 것은 오르타스의 착각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검격을 나누면 나눌수록, 에린의 동작은 미세하게 빨라져 갔으며 동시에 검속 또한 빨라져 갔다.

처음 오르타스에게 질주해오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했던 질풍사를 사용했을 때와 같다.

조금씩 그 감각을 몸에 익히고, 자신의 세검술에 적용해가며 싸우고 있는 에린의 두 눈에 담겨 있는 투지는 동년 대의 성인 여성이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 정도는 현이나 리오드님. 제라드님에 비하면 먹다 남은 빵 쪼가리보다도 못해!”

에린의 주위는 언제나 강자들 뿐이었다.

은현이나 리오드, 제라드나 심지어 일리아나까지.

많은 강자에게서 싸우는 법을 배워왔던 에린은 약자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에린은 약자로서 강자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더 빨리.’

에린은 이 순간에도, 점점 성장해가고 있다.

“…쯧.”

오르타스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에 인상을 찌푸렸고, 혀를 찼다.

에린은 언젠가 자신의 아이를 밸 소중한 몸.

가능하면 상처 없이 제압하여 그녀를 손에 넣고 싶었는데, 조금씩 그녀의 수준은 봐줘 가면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녹록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에린의 뒤에는 계속해서 몸을 회복중인 구미호가 기다리고 있다.

본래의 목적인 구미호를 제압해야만 하는 오르타스로서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1초라도 빨리 에린을 정리하고 싶었다.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내서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할까.”

어차피 팔다리 한쪽을 잃는다고 해서 아이를 낳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오르타스의 말을 듣고, 에린이 더욱 기겁하며 분노했다.

“뭐라는 거야! 이 쓰레기가!”

카아앙!

갈수록 빨라지는 에린의 세검술을 모조리 대처하면서 생겨난 아주 작은 빈틈을 오르타스가 노리려 했을 때.

우우웅

“……!?”

오르타스가 순간 멈칫하며 검을 휘두르던 동작을 멈췄다.

에린은 미세하게 생겨난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두 눈을 빛내며 그대로 오르타스의 목을 관통하기 위해 레이피어를 내질렀지만.

카아앙!

곧바로 경직에서 풀려난 오르타스는 재빨리 멈췄던 검을 내리치며 에린의 레이피어를 튕겨냈다.

“아…!”

어째서인지는 몰랐지만, 아주 잠깐 생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것에 에린의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크…!”

이내 마음과 표정을 가다듬고, 오르타스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미처 그것까지는 막아내지 못했던 오르타스가 허공을 날며 바닥에 부딪치면서 뒹굴었고 곧바로 자세를 취하여 몸을 일으켰지만, 그는 곧바로 에린을 공격해오지 않았다.

“…어째서.”

“……?”

한창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오르타스의 태도에서 몹시 이상함을 느낀 에린은 레이피어를 쥐고 경계의 태세를 취하며 긴장했다.

“이건…? 설마!?”

뒤늦게 에린의 뒤에서 무언가를 깨달은듯한 구미호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에린의 귓가에 들려왔다.

신경이 쓰였던 에린이 오르타스에게서 경계의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뒤에 있는 구미호에게 물었다.

“왜!? 뭔데!?”

“하, 하하…. 하하하!”

이내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구미호의 태도가 몹시 신경이 쓰이면서도,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에린은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무엇이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린 구미호와는 정반대로, 굳어져 가는 오르타스의 얼굴을 보고, 에린은 자신 쪽에게 무언가 유리한 상황이 터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놈이…. 내 구슬 깼구나!”

“이럴 수가…?”

오르타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섬의 지면으로부터 신수의 마력이 흘러나와 자신의 육체에 공급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에게 무한한 마력을 공급해주고 있던 여우 구슬이 깨져버렸다.

여우 구슬이 봉인되어있는 유적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결계로 인해, 왕가의 피를 잇지 않은 자는 내부로 진입할 수가 없다.

게다가 수호수(???), 요호가 파수꾼으로서 입구를 지키고 있어 그 유적에조차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을 터.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러니까 말했을 텐데.”

“…….”

조금이나마 몸을 회복시킨 구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는 것을 본 오르타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와 내가 이곳에 따로 떨어져 있게 된 시점부터, 네 패배는 정해져 있었다고.”

말도 안 된다고, 헛소리라고 치부했던 허무맹랑한 그 예언의 말이 현실로 실현되자 굳어있던 오르타스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윽고 유적으로부터 터져 나온 강력한 마력의 파장이 점점 주위를 확산시켜 섬 전체를 뒤덮었다.

여우 구슬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신수의 마력이 가둬두었던 그릇이 깨져버리자 폭발적인 기세로 돌풍을 일으켜 셋을 덮쳤다.

“꺄악!?”

강력한 돌풍에 휩쓸린 에린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지 않도록 레이피어를 땅에 꽂아 몸을 지탱했다.

“미숙한 것! 정신 차려라! 이 마력을 모조리 흡수해!”

“아, 알았어!”

[구미호 고유능력]

[에너지 드레인]

하늘 위로 손을 뻗은 구미호가 주인을 잃은 신수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하기 시작하자, 에린 또한 구미호를 따라 섬 전체로 확산하여 날뛰는 신수의 마력을 흡수했다.

“이런…!”

상황이 크게 잘못 돌아갔음을 느낀 오르타스 또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급하게 신수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상황을 수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구미호가 조금씩 400년 전에 강탈당했던 힘 일부를 회복해나가기 시작한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