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01화 (484/730)

〈 501화 〉 501. 신수 대전(2)

* * *

크르르륵!

세로로 갈라져 절단되어버린 앞발에서 느껴진 격통에 요호가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은현이 점프하여 요호의 목덜미를 또 한 번 베어냈다.

갈라진 목덜미로부터, 피가 아닌 푸른색의 마력이 흘러나왔고 땅에서 올라온 신수의 마력이 다시 요호의 전신을 감싸며 상처를 재생시킨다.

요호과 교전을 펼치면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은현이었다.

전신에 뇌광을 두른 제라드가 전광석화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뇌광을 쏘아 보내며 요호를 교란하고, 미처 끌지 못한 어그로를 담당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강렬한 검기를 날리며 요호에게 데미지를 주고 있는 리오드에게 공격이 가지 않도록 적절하게 백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호가 세 사람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며 강력한 공격을 담당하고 있는 리오드를 처리하려던 찰나, 리오드와 은현은 의사소통도 없이 자연스레 서로의 역할을 교환했다.

리오드가 앞에서 요호의 공격을 대처하고, 그사이에 생긴 빈틈을 노려 은현이 요호의 목덜미를 베었다.

“세상에….”

아르티아의 기사들 사이에서 호위를 받고 있던 왕족 중, 유리아는 요호와 세 남자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 광경에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싸움은 도저히 평범한 인간들이 벌일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아르티아의 단원들 모두가 그러했다.

“이게…. 영웅….”

악마에게 넘어갔던 제국 황제를 물리치고,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던 전쟁을 끝낸 이들의 무력 일부를 보고, 들으며, 피부로 느끼면서 체감하고 있다.

“차원이 달라….”

누군가는 그저 경악했고, 누군가는 동경을 품었으며, 누군가는 경의와 자랑스러움을 표하고 있다.

그렇게 요호가 세 사람과 치열한 교전을 펼치면서,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유적의 입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엘레노아가 곧바로 알렉스와 유리아에게 다가왔다.

“왕녀님. 오라버니.”

알렉스는 엘레노아의 부름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은 얼굴로 결심하는 두 남매의 얼굴이 자신을 향하자, 유리아는 자연스레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을 억지로 얼버무리려 했지만,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아 떨린 목소리로 두 남매에게 물었다.

“내가…해야 할 게 있는 건가요?”

“맞습니다. 왕녀님. 그 사람은…. 오직 왕녀님만이 이걸 할 수 있을 것이라 했어요.”

엘레노아는 유리아에게 은현의 계획을 전했다.

“제가…?”

“네.”

엘레노아는 슬며시 몸을 돌려, 요호가 비켜서면서 드러난 유적의 입구를 응시했다.

이 섬 위에 만들어진 오르비스 유적은 대외적으로는 역대 왕족들의 시신이 안장된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몇백 년 전, 오르타스가 여우 구슬을 직접 봉인시켜둔 장소.

다시 유리아에게로 고개를 돌린 엘레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저 사람도 말했다시피, 현재 몇 번이고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 손상을 받으면서도, 저 거대한 여우의 손상을 회복시키는 것은 이 땅에 가득한 밀도 높은 마력입니다. 그리고 이 힘의 원천은….”

유리아와 알렉스가 본능적으로 어디를 암시하며 하는 말인지를 깨달았다.

“저…유적에서…?”

“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엘레노아의 반응에, 유리아는 불길한 상상을 머릿속에 떠올려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나보고 저 유적 안으로 들어가서, 그 유적 속에 있는 여우 구슬을 파괴하라는 건가요?”

“맞아요.”

“…….”

당당하게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엘레노아의 태도에 유리아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할 말을 잃었다.

“저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기나 해요? 왕가의 핏줄을 잇지 않은 사람이 저곳을 지나간다면, 설치된 결계의 장치가 작동하여 전신이 불태워져서 뼛조각조차 남지 않아요.”

저 결계는 오르타스의 핏속에 존재하는 극히 희미한 신수의 마력에 반응하는 반영구적으로 가동하는 결계로서, 결계를 통과하는 정식 루트를 거치지 않고 무단으로 침입하는 모든 이들을 일제히 배제하는 살벌한 장치가 채워져 있다.

즉 그것은 저 유적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왕족의 피를 이은 이들밖에 들어가지 못하며, 단 한 명의 호위도 대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은 왕세자가 저 유적을 통과하여 왕족으로서 가진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의식이었다.

과거로부터 선대 국왕의 육체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현 왕세자의 육체로 몇 번이고 강탈하여 영생을 살아온 오르타스만이 지금껏 저 유적 내부를 들락거릴 수 있었으니, 지금껏 비밀을 들키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납득이 간다.

그런데 엘레노아는 무엇이 존재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그 유적 내부로 들어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난…못해요.”

유리아는 두려움으로 인해 떨리는 양팔을 감싸 안으며 억지로 진정시켰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의 몸을 보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왔던 만큼,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였던 전생과는 달리, 이번 생은 무난하고 행복하게,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작은 소망.

사지로 스스로 뛰어들 만한 기개도, 의협심도 없었던 유리아는 엘레노아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나오리라는 것은 엘레노아는 물론, 은현 또한 예상했던바.

“아뇨. 왕녀님. 왕녀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엘레노아는 미소지으며 유리아의 말을 부정했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은현과 엘레노아는 겁쟁이에 불과한 유리아를 뭐가 있을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 혼자 보낼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용납지 않는 남성 또한 있었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왕녀님.”

알렉스가 양팔을 끌어안고 있는 유리아의 한쪽 손을 맞잡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알렉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든, 왕녀님께 힘이 되어드리겠다고.”

“아….”

유리아는 작게 탄식했다.

이 상황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웅크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언제나 힘들 때, 두려울 때 자신의 뒤를 바쳐주며 지지해주었던 것은 알렉스다.

올곧은 그의 말과 행동, 표정에 순간 유리아의 얼굴이 화끈해져 시선을 피했다.

“…왕녀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깐만, 잠깐만 마음의 진정을 좀 하고…!”

지금까지 유리아의 심리는 몹시 불안정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어머나?”

영문을 모르겠는 알렉스와 유리아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엘레노아가 눈치챘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했던 유리아가 가슴의 술렁임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다시 엘레노아를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제 호위로 함께 해준다고 쳐도…. 저 유적 안에는 왕가의 피를 이은 왕족들 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조건은 바뀌지 않아요.”

“그 전제는 조금 틀렸습니다.”

엘레노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유리아의 말에 답했다.

그 조건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아직 파고들 여지가 존재했다.

“저 결계가 거부하는 것은 왕족의 피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 전원이죠.”

“그러니까 왕족들만이….”

“아뇨. 먼 선조에, 저희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외가도 왕가의 왕녀 신분이었던 선조분과 연을 맺어 그 피를 연하게나마 잇고 있습니다.”

“아…!”

유리아는 엘레노아가 언급한 예외적인 경우를 듣고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왕가의 핏줄이 알렉스와 엘레노아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면 저 결계를 통과하는 것 또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그건 추측에 불과해요.”

그 가설만을 믿고 알렉스를 유적의 입구로 들여보내기에 유리아는 망설여졌다.

하지만 자신의 오라비를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소로 보내는데, 엘레노아가 무언가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여 조용히 엘레노아의 말을 기다렸다.

“저 결계는 왕족 이외의 피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 핏속에 섞여 있는 특별한 마력을 통해 통과와 차단을 결정합니다.”

그 특별한 마력이라는 것은 여우 구슬을 강탈하면서 체내에 품게 된 신수의 마력을 뜻한다.

즉, 오르타스의 후손들은 모두 미약하게나마 이 신수의 마력을 품고 있으며 왕세자들의 몸을 강탈했던 오르타스가 저 유적을 통과하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저와 오라버니는 이미 저 결계를 통과할 수 있다는 확인 작업도 거쳤습니다.”

구미호가 제공한 신수의 힘을 기반으로 유적의 결계와 비슷한 결계를 재현했고, 그 결계 안에 엘레노아와 알렉스의 피를 담은 병을 넣어 결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통해서 알렉스는 이번 원정에 기꺼이 참여한 것이다.

유리아를 오르비스 유적 내부로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서.

“제가 함께하여 유적 안으로 진입해서 왕녀님과 오라버니를 보조해드리고 싶기는 하지만….”

요호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세 사람의 전반적인 서포트를 하는 결계를 유지 중인 엘레노아는 유적의 내부로 진입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도 알렉스의 동행 의사는 환영할만한 이야기.

“그리고 저 사람이 굳이 왕녀님을 지목한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왕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죠.”

엘레노아는 쓰게 웃으며 멀찍이서 헬레나 후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뒤에 숨어있는 에반 왕자를 보았다.

움찔 떨며 몸을 숨기는 에반의 행동에 엘레노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유적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이는 유리아와 에반 단 둘 뿐.

아직 15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저곳으로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우 구슬을 파괴할 수 있는 전투력은 전혀 없다시피 하다.

정말로 애석하게도, 유리아만이 가능한 상황.

“아, 진짜!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유리아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승낙의 의사를 밝혔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머니와 남동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에반. 다녀올게요.”

“…어쩔 수 없겠지.”

헬레나 후비는 차마 딸의 결심을 말리지 못했다.

멘탈이 무너진 디아네 왕비와 헬레나 후비는 왕가의 사람이었지만, 사실상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것은 아닌 외가의 사람.

엘레노아와 알렉스의 설명을 듣고,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열쇠를 자기 딸이 쥐고 있다는데, 어떻게 허락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심지어 설득을 해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신뢰 관계로 맺어져 에반 왕자를 지지해왔던 공작 가문이다.

“부디….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너라. 그거면 족해.”

헬레나 후비가 치맛자락을 쥐고 있던 어린 둘째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강하게 강조했다.

이 어린것에게 벌써 누나를 잃게 만드는 쓰라린 경험을 해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비마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고 알렉스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왕녀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겠습니다.”

“…부탁해요.”

“누, 누님….”

한껏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도,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에반이 헬레나 후비의 치마 뒤에서 고개를 내밀어 유리아를 불렀다.

이 상황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어린 왕자는 자신의 누나가 위험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안 가면 안 되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유리아는 아직 누나와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10살짜리 어린 왕자를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누나 갔다 올게. 얌전히 어머니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할 수 있지?”

“네, 네….”

도대체 언제쯤이면 저 연약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왕족의 일원으로서의 늠름한 모습을 보여줄지 걱정이 되었지만, 유리아에게 에반은 아직 귀여운 남동생이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엘레노아. 그거 알아요? 당신, 날이 갈수록 그 남자를 닮아가요.”

자신에게 자유로운 양자택일 선택권을 부여하듯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에는 한쪽의 선택을 하도록 몰아가고 압박하는 그 화술은 은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으니까요.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하는 거 아닌데….”

유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가 더욱 열이 받았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은현은 끊임없이 유리아를 몰아세운다.

그것은 일국의 왕녀로서 책임을 지게 만들려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지구인의 출신이라는 점으로 엮인 잘못된 인연에 대한 책임인가.

어느 쪽이든 유리아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무겁다.

짝!

“하면 되잖아. 하면.”

유리아는 두근거렸던 가슴을 얼버무리고 긴장을 없애기 위해 양손으로 자신의 양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확실히 해야 한다.

“알렉스. 나 진짜로 지켜줄 거죠?”

“물론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가요!”

있는 힘껏 파수꾼이었던 요호가 사라진 유적의 입구를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한 두 남녀의 모습이 은현의 시야 내에 들어와 그의 입꼬리를 미소짓게 했다.

아우우우!

입구를 향해 달려가는 두 남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요호 또한 마찬가지.

본래의 파수꾼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입구를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은현과 리오드가 따라붙어, 질주하는 요호의 양쪽 앞발을 각자가 하나씩 깔끔하게 베어냈다.

마치 그릇이 깨져버리자, 그릇 속에 담겨 있던 물이 사방으로 흘러내려 흩어져 내리듯, 절단된 앞발들이 형체를 잃고 푸른색의 마력으로 되돌아갔다.

크르르!

요호의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소리를 들으며 리오드가 뒤늦게 유적 입구를 지나쳐 내부로 진입하는 유리아와 알렉스를 발견하고 은현에게 물었다.

“일단 네 행동을 보고 맞추기는 했지만…. 저걸로 된 건가?”

“저거면 된 거야.”

은현은 슬며시 고개를 올려다 에린과 구미호가 있을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부디 원하는 결말을 이뤄낼 수 있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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