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9화 〉 499. 유적의 수호수(3)
* * *
콰아앙!
대기를 찢는 거친 뇌전의 섬광이 하늘로 떠올라 거대한 요호와 충돌했다.
천둥이 내리치는 것만 같은 강렬한 소음이 바람을 타고 주위로 퍼져나가 공기가 떨린다.
강렬한 섬광 그 자체였던 제라드가 요호의 목을 관통하고는 그대로 요호의 뒤쪽 바닥에 착지하여 자신이 상처입힌 목 부위를 올려다보았다.
연기처럼 일그러진 요호의 목 부위가 다시 신수의 기운이 어우러져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제라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쳇.”
타격은 확실히 있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기운의 집합체로 형성된 몸뚱이라고는 하지만, 명백히 질량을 가지고 실체화하고 있는 거대한 요호의 육체는 틀림없이 제라드의 섬광에 데미지를 입었다.
하지만 신수 기린의 마력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뇌전조차도, 요호의 급소를 관통하여 일격에 처리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그 무엇보다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동료였지만, 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레이넌의 피부와 살점을 찢어발기고 치명상을 입혔던 과거보다는 위력이 줄었다지만, 제라드로서는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다.
자신은 확실히 성장했다.
그래도 상위의 존재에게는 자신의 공격이 치명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동경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 떠올렸다.
“미호님의 진짜 전력은 얼마나 되실까….”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하는 구미호가 여우의 모습으로 변신한다면 이러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현재 유적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이 거대한 요호는 오르타스가 유적 안에 봉인시켜둔 여우 구슬로부터 힘을 공급받아 움직이는 수호수(???)이다.
즉 지금은 강탈당했지만, 본래 여우 구슬의 주인이었던 구미호의 본 모습을 본떠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자연스레 그녀가 전성기 때 가지고 있었던 힘을 추측해볼 수가 있었다.
구미호를 동경하며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는 제라드에게 있어 이 요호는 그녀의 뒤가 아닌 옆을 나란히 걷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다.
리오드에게 있어, 은현에게 있어서도 이 요호를 처치하는 것은 각자 큰 의미가 존재했지만, 그것은 제라드 또한 마찬가지.
“이제 시작이야.”
겨우 한번 공격이 막혔다고 아쉬워할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크르릉!
요호는 으르렁거리며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면서 뒤를 돌아 자신의 목덜미를 공격한 제라드를 응시했다.
분노에 찬 맹수의 시선을 직시한 제라드는 다시 한번 기린의 마력을 전개하여 전신에 뇌광을 둘렀다.
파지직!
‘더 출력을 올릴 수 있어.’
구미호에게서 신수의 힘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에서 낼 수 있는 출력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제라드는 자신의 몸 상태를 가늠했다.
처음 기린의 내단을 삼켰을 때처럼 힘을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무지막지한 부작용의 패널티를 감수해야만 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안정적으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기린의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제라드는 지금 엘레노아의 결계로 인해 몸의 내구성이 더욱 올라간 상태로 본인의 한계보다 좀 더 출력을 올릴 수가 있다.
한계를 조금 더 넘어서 강력한 금색의 뇌전을 뿜어내며 요호의 마력에 대항하던 도중, 두 기운이 충돌하여 다시 대기가 떨리고 있을 때,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의 공격이 요호를 덮쳤다.
[올리비온 검술]
[태산 가르기]
막대한 마력이 응집된 리오드의 검기가 하늘을 가르며 요호의 뒤를 덮쳐왔다.
콰아아앙!
털가죽을 찢고 살가죽을 헤집어놓으며 난자하는 마력의 돌풍이 덮쳐와, 요호가 하늘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크르륵!
앞과 뒤에서 퍼부어대는 강렬한 공격에 분노한 요호가 거칠게 앞발을 휘둘러 땅을 두들겼다.
상처 입은 몸은 여우 구슬 속의 마력으로 인해 다시 회복되고, 남은 것은 고통을 안겨준 인간들에게 품고 있던 분노뿐이다.
아우우우!
또다시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던 요호의 주위로 푸른색의 마력들이 응집되어 생겨난 불꽃들이 하늘 위를 두둥실 떠다녔다.
에린이나 구미호가 자주 쓰는 요술 중 하나인 여우불이었지만, 에린이 사용하던 것과는 그 개수도 크기도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도 합 스물이 넘는 다수의 여우불들이 일제히 앞과 뒤에 있던 리오드와 제라드를 향해 날아갔다.
“흥.”
고열을 뿜어내며 주위의 공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수십 개의 푸른 불꽃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음에도, 제라드는 당황하기는커녕 코웃음을 쳤다.
순식간에 빛처럼 움직여 요호의 목을 베었던 속력을 낼 수 있는 자신에게는 이 불꽃들은 너무 느리다.
파지직!
인간을 초월하는 속도로 움직여 아예 여우불의 공격 범위 안에서 벗어나면서, 제라드는 은현과 리오드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형님들 쪽은…. 뭐 알아서 하시겠지.’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라드는 피식 웃으며 요호에게로 시선을 옮겨 다시 집중했다.
제라드가 몸을 빼며 여우불을 피해낼 때, 은현과 리오드 쪽도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여우불을 보며 움직였다.
발을 움직여 리오드보다 앞에 선 은현이 품에서 보석 하나를 꺼내어 하늘 위로 던졌다.
[엘리시아 보석 증폭술]
[9월의 탄생석, 사파이어]
사파이어 보석의 능력은 마력을 이용하여 발현시킨 공격에 대한 저항능력을 올려주는 것.
그리고 이 보석의 증폭을 받아들이는 매개체는 은현이 가지고 있는 수단 중에서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방패다.
[신의 무구]
[아이기스]
은현과 리오드의 주위를 감싸는 반투명한 장막이 신력이라는 상위의 힘을 두르며 접근해오는 푸른색의 여우불들을 모조리 차단했다.
목표물에 다가가기는커녕 상위의 기운인 신력에 의해 요호의 여우불은 너무도 허무하게 바스러졌다.
은현은 흘끗 뒤를 돌아봐 리오드의 상태를 살폈다.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이미 자세를 잡고 두 번째 일격을 준비 중인 그의 모습을 보고 은현은 작게 웃었다.
여우불의 위협을 바로 앞에서 직면하고도 이 자리를 피하기는커녕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먼저 앞에 있던 은현이 공격을 막아줄 것이라고 전적으로 신뢰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신뢰가 제법 기뻤다.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이내 베르단디가 은현에게 의문을 표했다.
그것은 은현에게 불만이라는 감정을 품고 있다기보다, 어째서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궁금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어째서 아이는 직접 저것을 처리하지 않는 것이냐? 이제 아이 정도라면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충분히 저것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심지어 그 말하는 창도 사용하지 않고 있지 않으냐.]
베르단디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는 어째서 ‘반신(半?)으로써의 힘을 발휘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불완전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완전한 신격을 갖추게 된 은현은 강했지만, 그는 지금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럴 것이었으면 신격을 갖추기 위해 시련을 받았던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은가.
그때 은현이 수백 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정신이 무너질 뻔했던 고생을 생각하면 너무도 아까웠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을 느낀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여신의 물음에 답했다.
‘아까도 제 친구에게 설명했듯이, 이 싸움은 제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확실히 은현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면 이 사건 자체는 굉장히 쉽게 마무리가 된다.
그에게는 그것을 실현케 할 수 있는 무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상황을 종결시킨다면, 그 이후의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더 귀찮다.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사위가 되었다지만, 페르니아스 왕국에 있어 은현은 굉장히 계륵과도 같은 존재다.
자신이 가지기에는 너무 버겁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 넘기기에는 또 아까운 존재.
은현은 딱 이 상태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것은 두려워서 견제하고 싶어도,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이 두려워서 제대로 된 견제하지 못하고 있어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
만약 이 상황에서 자신의 힘이 더 드러났다가는 더 귀찮은 일이 꼬일 게 뻔하다.
페르니아스 왕국의 내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치적인 분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은현은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활약할 주인공의 역할로 리오드를 선택했다.
[아이는 항상 생각이 너무 많구나.]
작게 한숨을 내쉬는 베르단디의 아쉬워하는 목소리에 은현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납득은 하지만, 고생하여 얻어냈고, 주어진 것을 굳이 쓰지 않으며 아끼는 여신의 마음씨는 마치 고생한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과도 같았다.
‘아니에요. 베르단디님. 저는 지금 충실합니다. 그리고…브류나크를 쓰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과는 전혀 별개의 이유가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에린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게 뻔하거든요.’
[…….]
이전에 한 차례 브류나크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았던 에린은 은현이 브류나크를 다시 소환하는 순간만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파트너와 아내의 사이에서 둘의 싸움을 중재해야 하는 은현에게는 이것 또한 매우 골치 아픈 문제이다.
오히려 왕국의 정치적인 문제보다, 이쪽이 더 귀찮았다.
마음 같아서는 에린의 편을 들어주면서 브류나크의 언행을 단단히 고쳐놓고 싶었지만, 이미 적응이 되어버렸기도 하고, 400년 전에 아스타로스를 소멸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멸을 각오했던 파트너에게 모진 말을 하기도 좀 그랬다.
‘얘도 심성이 나쁜 애는 아닌데….’
워낙 자기주장이 확고하고 성깔이 있는 무기이다 보니, 에린과 브류나크의 사이에 낀 은현은 골치가 아팠다.
[아이는 참…. 너무 생각이 많구나….]
아까와도 똑같은 말이었지만, 이번 베르단디의 얼굴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아니라, 한심한 아들을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주도록 하마.]
‘예?’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하려던 찰나, 베르단디는 은현의 물음에 답하지도 않고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신계로 올라간 것일 터.
“…아니. 지금은 집중해야지.”
도대체 베르단디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몹시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눈앞의 요호를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우우우!
베르단디와 대화를 나누었던 아주 짧은 순간, 요호가 자신의 여우불을 모조리 소멸시켜버린 반투명한 장벽의 아이기스를 직접 깨부수기 위해 움직였다.
쿵!
한번 땅을 찰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위로 들어 올려진 요호의 앞발이 있는 힘껏 아이기스와 부딪쳤다.
쿠웅!
하지만 신격을 갖추게 된 은현의 아이기스가 아무리 신수의 모습을 구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물리적인 충격을 못 버텨낼 리가 없다.
쿠웅!
은현의 아이기스는 무시무시한 질량을 가진 요호의 발길질을 두 번, 세 번 견뎌내며 단단한 방어력을 선보였다.
[제라드 속성비기]
[뇌광(雪光)의 이빨]
리오드의 공격으로 어그로가 끌린 요호의 뒤에서, 주위를 가득 채우는 뇌광으로 응집된 제라드의 단검이 요호의 뒷다리를 파고든다.
리오드의 검기에 의해서 찢겨져버려, 재생되었던 다리가 이번엔 다시 제라드의 단검으로 인해 살갗이 찢어졌다.
이번엔 베는 것이 아니라, 요호의 살 속에 단검의 칼날을 더욱 깊숙이 박아넣었고, 칼날에 응집되어 있던 뇌광을 해방시켰다.
파지지직!
해방된 기린의 뇌전이 그대로 요호의 전신으로 퍼지며 몸속 내부를 모조리 헤집어 놓으면서 요호의 몸이 일시적으로 경직되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요호가 완전한 감전 상태에 빠졌을 때.
[시에테 검성술]
[매화참선(?花??)]
아이기스를 해제한 은현이 검을 휘둘러 요호의 양쪽 다리를 깔끔하게 베어냈다.
설령 이렇다 하더라도 다시 재생할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이걸로 충분하지.”
애초부터 은현의 목적은 요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재생하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잠깐의 순간 요호의 움직임을 봉할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 다음 순간, 왕국 최고의 기사가 자신의 마력을 담은 최강의 검기를 완성시키고 있었으니.
그것은 이전 고대 마수였던 노스페라드의 숨통을 끊어놓았던, 리오드가 완성시킨 검술의 극의다.
[올리비온 검술]
[흑점절명참(????)]
준비를 마친 리오드가 두 번째 일격을 요호에게 날렸다.
하늘 위에 떠오른 태양에게도 닿을 법한 거대한 검기의 폭풍이 감전 상태에 빠져 두 다리를 잃은 요호를 향해 직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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