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98화 (481/730)

〈 498화 〉 498. 유적의 수호수(2)

* * *

아우우우!

하늘을 향하여 포효를 내지르는 거대한 여우의 울음소리는 몹시 고고하면서도 우아한 음색을 흘렸다.

그저 거대한 짐승의 성대에서 울린 목소리에 불과할진대, 아주 잠깐의 찰나에 그 미성에 홀려 ‘아름답다.’라는 감상을 많은 기사들이 품었을 정도.

하지만 그들은 이내 신음했다.

“크으…윽!?”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울음소리는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음파에 불과했지만, 그 소리를 타고 흩뿌려지는 신수의 마력이 순식간에 주위를 장악한다.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받아 패닉에 빠진 기사들은 옥죄어오는 가슴으로 인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본능적으로 경계의 태세를 취하여 뽑았던 검을 쥐고 있는 기사들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이것은 두려움보다, 커다란 무언가가 하늘 위에서 짓누르고, 바닥에서 자신의 몸을 잡아당기는 듯한 압박에 대한 경악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저 저항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이 압박감으로 인해 기사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한 백은색의 요호와 자신들의 격차를 실감했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며 대기를 장악한 신수의 마력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일 때, 왕족들과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을 에워싸고 있던 푸른 갑옷의 병사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모두 오르타스가 소환시킨, 그에게 종속된 백귀들.

오르타스가 구미호와 함께 사라지면서 잠잠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던 백귀들이 천천히 페르니아스 왕족과 그들을 호위하고 있는 아르티아의 기사들을 향해 걸어가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허…윽…!”

이 밀도 높은 마력의 압박은 아무리 선천적으로 마력에 대한 보유량이 높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와 평범한 인간에게는 독이나 마찬가지다.

데미안 왕자를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절망에 빠져있는 디아네 왕비와 헬레나 후비, 에반 왕자가 일제히 제대로 된 호흡을 하지 못하여 허덕이고 있을 때,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그나마 견디고 있던 유리아가 이를 갈며 외쳤다.

“알렉스! 검을 뽑으세요!”

“분부…대로…!”

하지만 알렉스 또한 다른 기사들만큼, 또는 조금 더 나을 뿐, 이 압박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유리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패닉에 빠져 은현 쪽을 응시했다.

“어…?”

이윽고 이상함을 느꼈다.

이 섬 위에 있는 모든 인원이 기사들처럼 저항조차 못 해보고 주위를 장악한 마력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전원이 이 힘에 짓눌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오직 극소수의 몇몇만이 서서 거대한 여우를 응시하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인 은현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엘레노아. 시작해.”

“네.”

갑갑함을 느끼고 있던 것인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엘레노아가 은현의 말에 자신의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았다.

신성력을 해방시켜 자신이 모시는 베스타 여신에게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어. 저의 소중한 사람이 아끼는 분들이 다치지 않도록, 보듬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베스타의 축복]

[홀리 생츄어리(Holy Sanctuary)]

전신을 찌그러뜨릴 것만 같았던 강력한 압박감이 사라지고, 전신을 가득 채우는 활력은 다른 의미로 기사들과 왕족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반면 엘레노아와 함께 흡혈귀 소탕 작전에 참여했던 몇몇 아르티아 기사들은 그녀의 신성력을 몸소 체감한 바가 있었지만, 그런데도 아르티아 기사단 전체를 커버하고도 남는 광역의 신성 결계는 경이롭다.

“리오드.”

은현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리오드의 이름을 불렀다.

굳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리오드는 묻지 않고서도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았다.”

묻고 싶은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매우 많았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리오드는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단 전원! 페르니아스 왕가를 보호하고 맡은 바의 소명을 다하라!”

성역화의 결계 속에서 신체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진 아르티아의 기사들은 기사단장의 명령에 우렁차게 답했다.

“…명을 따릅니다!”

기사단원들은 일제히 리오드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을 위협하오는 푸른 갑옷의 백귀들과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카아앙!

한순간에 시작된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리오드가 은현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상황도…. 너는 예상한 건가?”

“예상은 했지만, 저런 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애초에 은현은 이 오르비스 섬에 와본 것도 처음이다.

구미호를 배신하여 강탈한 여우 구슬을 봉인시키고, 거기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자신만이 독점하기 위해 오르비스 섬을 만들었다.

그리고 육체를 바꿀 때마다 체내에 신수의 기운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 지금까지 자신이 사용했던 왕족들의 그릇을 안장하고 장례를 치르는 전통과 절차를 만들었고, 티르니스 백작 가문에 이곳에 도달하기 위한 항해술을 익히도록 유도했던 치밀하기까지 한 공작을 펼쳤는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여우 구슬을 지키기 위한 방비 정도는 만들어두었을 게 뻔하잖아.”

“…….”

“너한테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건 미안해. 하지만….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왕가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은 너에게 이 계획을 상담할 수는 없었어.”

이것은 은현의 입장에서는 구미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리오드의 입장에서는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너는 이 호위 임무를 나와 아르티아 기사단이 맡도록 사전에 미리 공작을 해두었지. 어째서냐.”

“…….”

은현은 반투명했던 거대한 여우가 점점 실체를 갖춰나가는 그 광경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명분이 필요했으니까.”

“명분?”

“이 나라를 건국한 오르타스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를 처단하는 것이 나와 신수님이 맺은 약속이야.”

구미호는 그것을 대가로 왕국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만큼은 참아주었다.

은현은 자신의 계획을 그에게 알릴 수 없었음에도 디아네 왕비에게 사주하여 왕국 최고의 기사를 호위대로서 동행하도록 유도한 이유는 단 하나.

“너와 이 원정에 참여한 아르티아 기사단은 모두 오르타스의 만행을 보고, 들었고, 지금도 겪고 있지.”

백귀들이 행동을 개시하여 왕족들과 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뜻은, 오르타스는 자신의 비밀을 모조리 알아버린 이 오르비스 섬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은현이라도, 차기 국왕이 될 일국의 왕세자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당하게 그를 처단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 장소와 이 타이밍을 노렸다.

이 원정 속에서 아르티아 기사단의 임무는 왕족들의 보호지만, 그와 동시에 은현이 바라는 것은 오르타스의 만행에 대한 목격자이며, 증언자이고, 심판자이기도 하다.

정당하게 오르타스를 죽일 수 있는 명분과 상황이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저 거대한 여우를 토벌하는 건 다름 아닌 너여야만 해.”

은현이나 제라드는 안 된다.

왕국 최고의 기사라는 명예를 거머쥐고 왕국 내부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과 수사 권한을 가지고 있는 리오드가 나서야만, 이 명분은 더욱 강해진다.

“너는…이번에도 상황만을 만들고 나서지 않는 건가?”

리오드는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은현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대외적으로 움직이기를 꺼리고, 정체를 숨기며 자신들의 뒤에서 활동해왔던 은현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하지만 은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했다.

“무슨 소리야. 나 요즘 엄청나게 나대고 있는데.”

일리아나와 공식적인 부부 관계가 되었던 동시에, 공작 가문의 사위가 된 지금은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영주인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보다 더 건드리기 두려운 상대가 은현이다.

최근 들어 한창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리오드는 뒤늦게 깨달았다.

“…….”

“너는 너의 단원들이 이 정도 위기는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내 행동은 너에게 상담하지도 않고 너의 기사단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야.”

여기까지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정작 해결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니 이건 너무 무책임하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시키지 않아. 그걸 위해서 이번에는 내 아내들도 데려왔어.”

애초에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엘레노아와 에린을 데려오지도 않았다.

은현이 이 위험한 곳에 두 아내를 데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싸움에서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확실히…달라졌군.”

리오드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한 번 사망하기 전, 20년 전이었던 과거의 은현과는 매우 다르다.

이제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고 앞에 나서서 그들을 이끄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친구의 모습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에 기묘한 감정을 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왕족들을 지키면서 백귀들을 상대해나가고 있는 자신들의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엘레노아가 막대한 신성력을 퍼부으며 전개한 성역화의 결계의 내부에서 평소보다 배나 되는 전력을 발휘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몹시 든든했다.

이 정도라면, 저 여우를 상대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이 보인다.

“걱정 마십쇼. 형님! 이번엔 저도 있지 않습니까!”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두들기며 분위기를 전환하는 제라드의 말에 리오드는 살짝 인상을 썼다.

“몸은 괜찮나?”

“하하! 현이 형님 덕분에 아주 팔팔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힘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번 믿어 보십쇼!”

“…….”

제라드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 경박한 분위기로 아무리 자신감 있게 말해도,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위험하다 싶으면 뒤로 빠져있어라.”

“아, 글쎄. 저 이제 진짜로 예전보다 강해졌다니까요!? 누가 저걸 먼저 잡는지 내기하시겠습니까!?”

“좋아. 금화 세 닢을 걸지.”

“그 말 무르기 없기입니다.”

“…너네는 애냐?”

나이가 마흔이 가까이 되면서도, 아직도 누가 더 강한지를 두고 경쟁을 하는 두 친구를 보며 은현은 실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엘레노아와 에린을 보며 물었다.

“엘레노아. 결계의 지속시간은?”

“당신이 일을 마칠 때까지. 얼마든지요.”

미소지으며 당당하게 선언하는 엘레노아의 자신감이 몹시 눈이 부셨다.

“흐음. 그럼….”

이윽고 옆으로 시선을 옮기자, 무언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에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어…. 현아.”

“걱정되면 찾으러 가도 돼.”

“어…. 정말…?”

에린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다는 사실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문했다.

잔뜩 격노하는 구미호의 폭주가 마음에 걸렸던 에린의 마음을 헤아리고 엘레노아 또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에린. 나는 괜찮아. 왕녀님이나 오라버니와 함께 있으면 되니까.”

신체 능력을 배로 증폭시켜주는 이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엘레노아는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에게도 왕족만큼이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중요 인물이다.

굳이 에린의 호위를 받지 않아도, 엘레노아는 자신의 몸을 지킬 자신이 있었다.

“가, 감사해요! 엘레노아님! 그리고 현아! 그럼 나는 미호한테 가볼게!”

“빨리 끝내고 올게.”

“다치지 마세요.”

곧바로 구미호의 기운을 추적하여 이동하기 시작한 에린의 뒷모습을 보고, 은현은 엘레노아의 배웅을 받으며 먼저 앞서 걷고 있는 제라드와 리오드 쪽에 합류했다.

“대열은 어떻게 하지?”

“예전의 평소대로, 너와 내가 좌우. 그리고 제라드가 교란.”

“알겠습니다!”

짧은 지시에 불과했지만, 오랜 시간 합을 맞춰왔던 경험 때문인지 두 사람은 은현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오히려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팀을 이루게 되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아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아주 오래전, 20대 시절의 그때를 떠올린 세 사람은 실체화를 마친 거대한 덩치와 아홉 꼬리를 가진 여우와 대치했다.

가장 먼저 선공을 취하여 싸움을 개시한 것은 제라드다.

[제라드 속성 비기]

[뇌신화(雪?化)]

파지직!

체내에 요동치고 있던 기린의 마력을 해방하여, 노란빛의 뇌전으로 감싼 제라드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거대한 몸집을 가진 요호의 가슴을 관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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