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4화 〉 494. 재회의 순간(1)
* * *
타인의 영혼에 육체를 정착시키는 것.
그것은 마법으로도 재현할 수가 없는 아주 특별한 상위의 영역이다.
인간의 정기와 영을 다루면서 부릴 수 있게 된 백귀들이 바로 구미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초월한 능력.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하면서 구미호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오르타스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힘을 더욱 잘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떠올린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바로 자신의 영혼을 조작하여 다른 육체로 전이시키는 것.
한 차례 구미호의 마력을 받아들인 전적이 있었던 오르타스는 내성이 생겨나 신수의 힘을 체내에 저장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회복되었던 몸과 달리 육체의 수명이 극도로 짧아지는 모순적인 부작용이 발생했다.
강력한 신수의 힘을 온전히 품고 있는 여우 구슬은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는 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피를 이어 신수의 힘에 조금이나마 내성을 가진 자식의 육체에 자신의 혼을 정착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
“모든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야….”
이 신수의 힘은 강력하면서도 스스로를 망치는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믿었고 자신의 마음을 내주어 연모했던 존재를 배신하여 힘을 손에 넣은 오르타스는 조금씩 이성이 망가져 갔다.
스스로 가장 소중했던 것을 포기한 결과는 그의 이성을 망가뜨렸고 그 대신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자신의 나라를 강대국으로 성장시켰다.
두 번째는 바로 여우 구슬을 빼앗겨 죽음에 이른 그녀의 유해를 이용하는 일이다.
그릇이 되었던 여우 구슬이 없다고는 하지만, 사망한 구미호의 유해에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기운을 활용하기 위해 그녀의 유해를 땅속에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음으로써 신수의 기운을 먹고 자란 나무가 왕국의 국민을 선천적으로 강한 마력을 보유하는 강력한 인간으로 키워냈다.
이것이 아이테르라는 왕립 학교의 중앙에 심어진 ‘소원의 나무’ 또는 ‘페르니아스의 신목’이라는 나무의 정체다.
신수가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죽어서까지 자신의 유해가 인간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는 역사서의 문헌과는 전혀 다르다.
그 진실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비참했으며, 이기적이다.
인간을 믿었던 신수의 최후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암울한 이야기였다.
“…….”
무거운 정적만이 내려 앉아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은현의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얼굴로 일제히 한쪽을 응시했다.
“아니…. 그럴…. 그럴 리가….”
아직도 은현의 폭로를 부정하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디아네 왕비.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에서 굳은 얼굴로 은현을 쳐다보고 있는 데미안 왕자의 반응을 살피면서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어떻게….”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은현에게서 자신의 말이 틀렸냐는 질문을 받은 데미안 왕자다.
“어떻게 알았지?”
“아, 아아…!”
데미안 왕자의 말을 들은 디아네 왕비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은현의 폭로에도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폭로가 진실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뒤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아들의 몸을 빼앗은 무언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쎄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은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피식 흘리며 데미안 왕자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다.
“…….”
데미안 왕자, 오르타스는 인상을 굳히며 침묵을 지켰다.
애초부터 그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디아네 왕비를 제치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 오르타스가 중심에 서서 은현과 대치했다.
“그래서? 너는 뭘 하고 싶은 거지?”
자신의 전 육체였던 안드레아 페르니아스의 시신을 훼손시키고 왕가에 칼을 들이밀었다.
은현이 아무리 대영웅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대영웅의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공작 가문의 사위라고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일은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개인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까지 모조리 즉결 처형에 처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사안.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경중을 은현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
틀림없이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이런 일을 벌였을 터.
하지만 은현은 오르타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전혀 동요하지 않네.”
오히려 왕족에게 대하는 경의의 표현인 존대조차 빼어버리는 당당함을 시작으로 은현과 오르타스 사이에 싸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모두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긴장했다.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은현의 앞쪽에 위치하여 그를 보호하듯 엘레노아와 함께 경계의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에린이다.
“괜찮아.”
언제라도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을 수 있도록 손잡이를 꽉 쥐고 있던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응.”
살짝이나마 경계의 기색을 풀며 손에 쥐고 있던 힘을 느슨하게 풀기는 했지만, 에린은 자신들 앞에 대치한 오르타스에 대한 경계만큼은 풀지 않았다.
그녀의 내부에 자신과 동일한 성질의 기운을 품고 있음을 알아본 오르타스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마치 말을 잘 듣는 충견과도 같군.”
“흥! 나한테 말 걸지 마!”
에린은 코웃음을 치며 오르타스의 말을 맞받아쳤다.
구미호에 대한 사정을 들은 에린은 그녀를 배신한 오르타스를 쓰레기를 쳐다보듯 멸시했다.
그 내면은 오르타스일지언정, 그의 외관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1왕자라는 직위를 가진 데미안에 저지른 에린의 무례에 주위의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오르타스는 그런 에린의 무례한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을 보이며 다시 은현에게로 고개를 돌려 그의 물음에 답했다.
“언젠가는 밝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르타스는 담담히 자기 생각을 밝혔다.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르타스는 오랜 시간을 통해서 배웠으며 그 비밀을 더욱 진실처럼 보이기 위하여 많은 사전 공작을 펼쳐두었다.
구미호을 배신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구미호가 죽어서까지 인간을 위해 헌신했던 이야기로 조작한 것처럼.
하지만 그런데도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만약 밝혀진다면, 그것을 까발리는 건 다름 아닌 너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오르타스는 어떻게 은현이 자신과 구미호의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은현이 개입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은현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것은 은현 또한 마찬가지.
사실 둘은 자신들을 둘러싼 배경과 성향 자체는 완전히 틀렸지만, 불멸자의 특성을 타고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불완전하냐, 완전하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몇백 년의 시간을 영생으로 살아온 두 남자의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 긴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은현과 오르타스가 서로를 건드리거나 간섭하지 않았던 것은 서로의 목표와 이해가 공통적으로 맞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르타스는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지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은현은 다른 지역에서 메디아와의 싸움을 한참이나 이어나갔으며 이후로도 악마들의 침략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서로의 역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행동을 이어나갔던 두 사람은 비슷한 특성을 지닌 서로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오르타스가 혹시라도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는 상황이 오리라 직감했던 것은 20년 전, 제국과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대전쟁에서 리오드 일행이 활약했던 것에 은현이 비밀리에 움직였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묻겠다. 어떻게 나와 미호의 이야기를 알아냈지? 그리고 네 목적은 뭐냐.”
우우웅.
세 번은 묻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아, 오르타스가 자신의 마력을 방출시켰다.
대기가 진동할 정도로 밀도 높은 마력의 흐름을 느낀 주위의 사람들이 움찔 몸을 떨며 동요했다.
“으….”
심지어 동일한 성질의 기운을 품고 있는 에린마저도 작게 신음을 내뱉으며 긴장을 하게 만들 정도다.
노력하고있다고는 하지만, 신수로서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에린은 오르타스만큼의 막대한 출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목적이라….”
은현은 오르타스가 입에 담은 단어를 다시 한 번 읊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면의 오르타스를 응시하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너를 치기 위해서라면. 답이 될까?”
“……!”
은현의 대답에 숨을 삼키며 놀란 것은 오르타스가 아닌,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숨을 삼키며 대화를 듣고 있던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이다.
그 말은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은 물론, 왕가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리오드의 얼굴을 보았다.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페르니아스의 왕족을 수호해야 하는 아르티아 기사단은 페르니아스의 적이 되겠다는 은현의 선언을 들은 이상 그를 배제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네가…나를?”
오르타스는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비웃음이다.
“무슨 수로?”
현재 이 섬, 오르비스에 있는 사람 중 은현과 엘레노아, 에린과 제라드를 제외하면 모두가 페르니아스 왕국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리오드가 그의 친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규율과 작위 그리고 왕과 신하의 관계로 묶여있는 이상 리오드 또한 페르니아스의 사람.
반면 은현 쪽의 전력이라고 해봐야 함께 동행하게 된 엘레노아와 에린, 제라드가 전부다.
게다가 오르타스에게는 아르티아 기사단 외에도, 인외의 전력이 또 한 가지 존재했다.
[호족요술(????)]
[백귀야행(???行)]
섬의 지면으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는 푸른색의 불꽃들이 일렁이며, 질량을 가진 형체를 하나둘씩 갖추기 시작한다.
“이건…!”
이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에린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기술과 너무나도 똑같았으니까.
심지어 오르타스가 소환해낸 백귀들의 숫자는 자신이 소환해낼 수 있는 숫자를 아득히 초월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에게 요술을 가르친 구미호조차도 백귀들을 최대 아홉까지 밖에 부리지 못하는데, 눈앞에 형체를 갖춰나가는 푸른 갑옷을 착용한 귀신들의 숫자는 몇십, 몇백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넷이서. 나의 백귀들을 맞설 수 있을까?”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은현은 웃으며 오르타스에게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너를 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뭐라고?”
“아무리 나라도, 페르니아스의 왕족을 직접 치는 건 많이 부담스럽거든. 그건…. 여러 사람에게도 못 할 짓이라.”
은현이 구미호의 소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페르니아스 왕국을 치고 왕족들을 일제히 절멸시킨다면, 그것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여러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는 모종의 협력관계를 구축한 유리아 왕녀나, 친구인 리오드, 그리도 엘레노아의 집안인 공작 가문에도.
그래서 은현은 이 자리에서 이 상황을 마련한 것이다.
“왕국이 아니라, 오르타스 페르니아스라는 개인을 치기 위해서, 너를 쳐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분을 이곳에 모셔와야만 했지.”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오르타스는 은현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어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너는 과거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아냈냐고 나한테 물었었지. 그거야 간단하지. 본인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그게 무슨….”
인상을 찡그리는 오르타스의 반응을 뒤로하고 은현이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무언가를 전하려 했을 때.
우우웅
제라드의 품속에서 막대한 기운이 요동을 치며 외부로 방출되었다.
“이, 이런…!”
제라드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하는 품 안의 무언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의 품속에 있는 무언가는 더욱 거칠게 날뛰며 자신을 밖으로 내보낼 것을 표출했다.
“저 기운은….”
오르타스는 제라드의 품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끼며 점점 얼굴을 굳혔다.
절대로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신수의 기운을 알아본 오르타스가 처음으로 당황하는 보일 때.
제라드의 품속에서 요동치던 그 기운은 순식간에 아홉 꼬리가 달린 수인 여성의 형체를 갖춰나갔다.
“미, 미호님! 아직 현이 형님이 나오시라고 하지도 않으셨는데!”
자신의 몸집보다도 거대한 아홉 꼬리가 거칠게 흔들리며 구미호의 감정을 격하게 표현한다.
더는 참지 못하고 실체화를 한 구미호는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원수를 노려보았다.
“오르타스으으으!”
대기가 쩌렁쩌렁 울리는 거친 노호성에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 모두가 주춤하고 있던 찰나, 이 상황을 전혀 예견하지 못하고 전신을 경직시킨 오르타스의 아주 짧은 빈틈을 구미호가 돌진하여 파고들었다.
갑작스럽게 급변한 상황 속에서, 모두가 당황하고 주춤하고 멈칫거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은현이 난감한 웃음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성질도 급하시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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