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1화 〉 491. 여우의 과거(2)
* * *
크르릉!
머리를 물어뜯기 위해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는 사나운 마수와 대치한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해내고, 그 위를 스쳐 지나가는 마수의 복부를 검으로 베어내어 숨통을 끊어냈다.
간발의 차이로 돌진이 허공을 가로질러나갔고, 바로 아래쪽에서 휘둘러진 검격에 정통으로 베어진 복부는 피 분수를 뿜어내며 내장을 쏟아냈다.
검을 휘둘렀던 남자, 오르타스는 자신의 옷에 피가 튀지 않도록 곧장 몸을 빼내곤 허공에 검을 휘둘러 칼날에 달라붙은 마수의 피를 흩어냈다.
“후우.”
오르타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하늘을 응시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최근 들어 마수의 출몰 빈도는 더욱 늘어났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불안증세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라에서는 대규모의 인원을 병사로 육성하고 전선에 배치하여 영토를 지키고 마수의 토벌에 힘을 기울이며 다양한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오르타스는 왕국군 정찰대 소속으로, 주된 임무는 영토로 접근해오는 마수들의 탐색과 경계다.
그는 정찰대의 임무로 상부에 보고하고, 현재 급증하는 마수들의 숫자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을 찾기 위해 고대 문헌 속에 기록된 특별한 유적에 대해 독자적인 조사를 하고 있었다.
“악마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 인간과 함께 싸웠던 신수라….”
그 신수가 남긴 무언가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마수에게 대항할 수 있는 돌파구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 어린 추측이었지만 기대를 걸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머릿속으로 문헌 속에 기술된 신수의 이야기를 읊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가는 동안 조우한 마수들은 왕국군 정찰대 내부에서도 에이스로 소문난 오르타스의 실력으로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
큰 무리가 없는 며칠이 걸리는 장거리의 여행 속에서 오르타스는 마침내 어떠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건…?”
접근을 차단하는 특수한 결계의 존재를 느낀 오르타스가 얼굴을 굳혔다.
멍하니 다시 허공을 응시하며 허공에 생긴 미세한 일그러짐을 찾아내었다.
“…찾았다.”
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르타스는 자신이 찾던 유적이 바로 눈앞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무언가를 덧씌운 듯이 생겨난 아주 미세한 일그러짐은, 일반인에게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작은 균열이다.
하지만 유적에 대한 많은 문헌을 조사하고 정찰대 속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하는 탐색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르타스는 이 작은 균열을 눈치챌 수 있었다.
“…….”
오르타스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파지직!
“큭!?”
그 균열에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마자, 마치 접근을 거부하려는 듯이 스파크가 일어나 오르타스의 손을 튕겨냈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떨림을 느낀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것은 공포나 두려움에서 나오는 떨림이 아닌, 신체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덜덜 떨리는 자신의 팔을 응시한 오르타스는 더욱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과거 악마와 마수들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졌던 신수가 존재했었다는 고대 유적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오르타스는 곧장 주먹을 꽉 쥐며 몸의 떨림을 억지로 없애버리고, 체내의 마력을 방출시켜 전신을 보호했다.
그리곤 다시 결계의 경계선인 미세한 균열로 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또다시 거친 스파크를 튀기며 접근을 거부했지만, 전신을 마력으로 둘러 저항력을 높인 오르타스는 결계의 간섭을 최대한 밀어내며 내부로 진입했다.
마침내 내부로 진입하자 완전히 뒤바뀐 환경에 오르타스는 멈칫했다.
투명한 장막을 뚫고 들어온 내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건물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기가…. ‘사당’이라는 곳인가?”
신을 모시는 신전과 비슷한 용도로 과거에 사용되었다던 문헌을 떠올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건물의 내부로 들어섰다.
“…신기하군.”
목재로 건축된 기둥과 천장에 쌓인 기와지붕은, 왕국 안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과거의 특별한 양식들이다.
오랜 시간 동안 관리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맞았지만, 그 때문인지 더욱 신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사당의 내부를 탐험하던 차, 오르타스는 안쪽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특별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감지했다.
“설마….”
오르타스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오래된 유적이 아닌, 신수가 남긴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두 눈을 빛내며 사당의 가장 안쪽을 향했다.
“아…!”
시야에 들어온 어떠한 존재를 보며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가장 안쪽의 제단의 위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는 그 존재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풍성한 은백색으로 어우러진 아홉 꼬리 속에 파묻혀서 잠을 청하고 있는 존재는 여우귀가 달린 수인 여성이었다.
오르타스의 가슴 속에 가장 먼저 피어오른 감정은 ‘아름답다.’였다.
아홉 꼬리가 달린 수인 여성은 사당에 누가 들어왔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곱게 닫혀 있는 그녀의 두 눈썹이, 오뚝한 콧날, 매끄러운 입술이 마치 예술의 극을 표현한 듯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서 오르타스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 갔다.
“…….”
멍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구미호와의 거리를 좁힐 때, 인기척을 느낀 구미호의 두 눈이 스르륵 떠졌다.
“…누구냐.”
평범한 인간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구미호는 아주 작은 소리와 낯선 냄새에 반응하여 자신의 단잠을 깨운 이를 노려보았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던 오르타스는 자신을 응시한 구미호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으며 발걸음을 멈췄다.
“누구냐고 물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이곳은 구미호가 만들어낸 결계로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고 있는 그녀만의 특별한 공간이다.
누군가가 이곳에 침입해온 적은 처음 있는 일일뿐더러, 그 존재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것도 굉장히 구미호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내가 약해졌다지만, 설마 인간에게 결계가 뚫렸다고?’
악마와의 싸움 이후 막대한 힘을 소모하여, 힘을 회복하기 위해 긴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었다지만, 자신이 친 결계는 겨우 인간 따위에게 뚫릴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결계에 가까이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손이 불타버려 영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인간은 그 결계를 뚫고 자신의 앞에 서 있다.
‘도대체 어떻게?’
경계의 기색이 가득한 구미호의 눈초리를 받고 있던 오르타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오르타스야.”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을 텐데.”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장벽을 그냥 뚫고 들어왔어.”
오르타스는 자신이 어떻게 이 결계 안으로 들어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마력을 방출하여 자신의 전신을 뒤덮었다.
굉장히 두꺼운 양질의 마력이 가득한 오르타스의 몸 내부를 확인하고 구미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심경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짜증보다, 당황에 가까웠다.
‘저게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기운인가?’
머릿속에 남아있는 인간들이 품고 있는 기운들과는 그 기운의 질부터 다르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던 구미호는 모든 인간이 눈앞에 보이는 인간처럼 막대한 마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 아니면 눈앞의 인간이 매우 특별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자신을 오르타스라고 소개한 남자의 순수한 재능은 매우 특별했다.
막대한 기운을 품고 있고, 그 기운을 사용하는 감각이나 응용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탐색을 마친 구미호는 스르륵 상체를 일으키고는 오르타스와 두 눈을 마주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로를 응시하는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르타스 쪽이다.
“너에게 부탁이 있어.”
“부탁?”
“지금 바깥은 매우 혼란해.”
오르타스는 간략하게 바깥의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곳곳에서 마수들이 생겨나면서 왕국을 위협하고 있다.
왕국 쪽에서도 병사들의 육성을 진행하여 방비를 갖추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수들의 공세를 감당해내기엔 매우 힘든 상황.
“그래서 과거에 악마라는 강대한 존재들에게 대적했을 정도로 강력했다는 네 힘을 빌리고 싶어.”
“…….”
설명을 들은 구미호는 물끄러미 오르타스를 응시했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 들일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하여 오르타스의 감정을 읽어 들였다.
기나긴 잠에 빠지기 전에도 존재했던, 누구나가 구미호를 보고 품었던 ‘아름답다.’, ‘매혹적이다.’라는 감정들.
특별한 것은 오르타스가 남성으로서의 그 본능을 철저하게 억누르고 어떠한 감정들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왕국에 소속되어 있는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는 군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
외부로 흘러넘치는 자신의 요력에 저항하며 마수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그 사명감을 앞세우는 오르타스의 감정에 구미호는 흥미를 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앞에 두고 매력에 홀딱 빠지지 않는 인간 남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오르타스라는 남자는 그 본능에 저항하고 자신의 사명을 우선시하고 있다.
‘신기한 놈이군.’
아무런 대답이나 반응도 보이지 않자, 오르타스가 구미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다시 한번 정중히 물었다.
“나를, 아니…. 왕국을 위해서 도와줄 수는 없을까?”
구미호는 단잠을 청하고 있던 제단 위에서 내려와 오르타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약간 자신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는 오르타스를 올려다본 구미호는 재차 물어본 그의 권유에 답했다.
“못 해줄 것도 없지.”
“그럼….”
“단, 조건이 있다.”
“…뭐지?”
“네가 품고 있는 기운의 일부. 내가 가져도 되겠지?”
구미호는 손을 뻗어 오르타스의 목을 움켜쥐고는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구미호 고유 능력]
[에너지 드레인]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기운, 마력을 빨아들이고 갈취하여 자신의 것으로 일삼는 이 능력은, 당하는 입장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칫 잘못하면 생기를 모조리 빨려 말라죽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하면서도 불합리한 능력이다.
구미호는 지금 오르타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왕국을 위해, 왕국의 백성들을 위해서, 너는 너의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천천히 체내의 마력을 갈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오르타스는 구미호의 행동과 말을 이해했다.
그리곤 두려움과 공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전혀 망설임이 없는 깨끗한 얼굴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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