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0화 〉 490. 여우의 과거(1)
* * *
콰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질량을 가지고 있는 ‘천벌’이 공기를 가르고 현 국왕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크윽!?”
관을 짊어지고 있던 병사들이 어깨에 전해지는 막대한 충격에 놀라 순간 쓰러졌고, 위력을 버티지 못한 관은 허무하게 분쇄됐다.
“무슨…!?”
가장 앞에서 역대 왕들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는 유적지를 응시하고 있던 디아네 왕비와 일부 인사들이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라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진 병사들과 파손된 관.
그리고 그 관 속에 있던, 몇 개월간 부패가 진행되었던 현 국왕, 안드레아 페르니아스의 시신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머리가 아예 분쇄되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상태로 전락한 국왕의 시신을 확인하고, 디아네 왕비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노호성을 터뜨리며 이번 원정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아르티아의 기사단장, 리오드를 보며 따져 물었지만, 리오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태도에 더욱 분개한 디아네 왕비는 주먹을 꽉 쥐고는 떨었다.
“올리비온 공작!”
디아네 왕비가 격렬하게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남편이었던 남자의 시신을 훼손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와 국왕 사이에는 애정이라는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국왕과 왕비로서, 왕족의 핏줄을 남기고 대를 이어나가고 자신의 가문과 왕국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얽힌 비즈니스적인 성향이 강했다.
안드레아는 필요했기 때문에 자손은 남기기 위해 디아네를 안았고, 디아네 왕비는 그렇게 데미안을 낳았다.
두 사람 사이에, 국왕과 왕비 사이에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디아네 왕비가 안드레아의 시신이 훼손된 것에 분개하고 있는 것은 정 때문이 아니라, 왕족을 호위하는 아르티아의 기사단장으로서 리오드가 호위 대상인 왕족들을 그 어떠한 위협으로부터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분개하고 있다.
왕족의 호위 대상 속에는, 이미 사망한 왕족의 시신 또한 온전한 상태로 호위하는 것을 의미하며, 국왕의 시신을 훼손시킨 이 행동은 왕가의 권위에 도전해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불경한 행동이다.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리오드가 보고 있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긴 디아네 왕비는 허공에서 활강하고 있는 은현의 모습을 발견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바닥에 착지한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뒤늦게 어떻게 된 사태인지를 이해했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무지막지한 투창을 날려 관을 파괴하고, 국왕의 시신을 훼손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은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
병사와 기사들이 일제히 부서진 관을 짓밟고 있는 은현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느닷없이 선제공격을 감행한 이후의 여파는 매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르티아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은현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무장을 점검하고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꽉 쥔 상태로 리오드의 눈치를 보았다.
그들 모두가 지금, 이 순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저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은 모두 은현의 실력을 알고 있다.
이미 친구로 알려진 리오드와의 대련을 관전함으로써 그 실력을 모두 두 눈에 새겼고, 왕국 내부의 비리 귀족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던 아르티아 기사단의 과감한 활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만큼 은현의 영향력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이미 이성과 몸, 본능이 ‘나는 저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고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리오드가 어떠한 결단을 내린다면, 그것이 불합리한 명령이라 할지라도 수행하기 위해 검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설명해라.”
약 5초의 정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리오드가 은현에게 물었다.
리오드의 물음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째서 국왕의 시신을 훼손시켰나.
어째서 지금, 이 타이밍에 이 장소를 노린 건가.
어째서 자신에게 미리 상담을 해주지 않았던 걸까.
어떠한 목적과 동기가 있든 리오드는 은현이 절대로 악행을 저지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과 선택들은 언제나 이유가 존재했고, 자신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설령 자신이 수호하는 왕가에 칼을 들이미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필요한 일이라면 리스크가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은현을 도울 용의는 충분히 존재했다.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자신이 적절한 상황과 타이밍을 만들어 주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먼저 일을 감행한 은현에 대해 리오드는 복잡한 심경을 품었다.
그것은 서운함에 가깝다.
그래서 얼굴을 굳히고 낮은 목소리로 은현에게 따졌다.
“…미안. 하지만 이 문제는 너에게 상담할 수 없었어.”
리오드의 그 심경을 읽은 은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관을 관통하여 바닥에 박혀 있는 브류나크를 뽑았다.
왕가의 인물을 공격해야만 하는 이 계획을, 왕가를 수호하는 기사단장에게 미리 허락을 구하는 것은 은현으로서도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차라리 리오드를 공범으로 포섭하지 않고, 이렇게 독단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나중에 더 그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적을 것이라 생각한 은현의 씁쓸한 배려였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었거든.”
“필요한 일?”
은현의 말에 발끈한 것은 디아네 왕비다.
“왕족의 시신을 훼손시키는 게…. 왕가에 칼을 들이민다는 게? 그게 지금 필요한 일이라는 건가요?!”
왕족의 일원으로서 그 분노는 매우 당연하다.
이것은 자신들의 나라의 위신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사안이며, 이 상황에서 왕가의 검이나 다름없는 기사단이 즉결처형을 내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모욕적인 공격을 받았음에도 검을 뽑지 않고 은현을 응시하고 있는 리오드의 행동 자체가 더욱 왕가를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행동이나 마찬가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적으로 돌리는 건 왕가가 아닙니다. 오직 이 관 속에 들어있는 시신에만 볼 일이 있어서요.”
“그게 도대체 무슨….”
“제 지인 중에 지금 왕가에 큰 원한을 가진 분이 한 분 계셔서요.”
은현은 브류나크를 어깨에 걸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분과 타협을 본 겁니다. 이 왕족 전체보다, 원한을 품은 특정의 개인에게 한풀이를 해 드리기로.”
“…그래서 그 대상이 지금 국왕 폐하였다는 건가요?”
“그렇죠.”
“…하.”
디아네 왕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을 하는 은현의 태도에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자가 누구인가요?”
안드레아에게 원한을 품은 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어떤 거물이기에, 이 나라의 중심이나 다름이 없는 왕가를 공격할 수가 있을까.
페르니아스 왕가를 직접 건드린다는 것은, 페르니아스 왕국 전체를 건드린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아르티아 기사단을 비롯한 왕국의 대규모 병력을 모두 상대한다는 것과도 통하니,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대담한 짓을 벌일 이유가 없다.
“있습니다. 그런 분이.”
“…….”
미소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늘어놓는 은현의 태도에 디아네 왕비는 짜증을 느꼈다.
‘저 사람 대체 무슨 짓을…!’
조금이라도 무언가, 아주 작은 계기라도 생긴다면 바로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
조마조마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유리아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심장이 쪼그라들 것만 같았다.
은현의 비범함은 물론, 특별한 비밀을 알고 있기에,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어느 쪽이 이기던 그 여파에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엘레노아와 에린이 곧장 달려와 은현의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를 보호하기 위한 진형으로 굳은 표정을 보이는 것이, 그녀들 또한 사전에 은현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듯 보였다.
은현과 엘레노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기사들, 왕족들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에린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레이피어를 언제든지 뽑을 수 있도록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에린. 괜찮아.”
“…알았어.”
하지만 그런 에린의 경계 태세도 은현이 말하자 금세 풀어졌다.
이 상황에서 언제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경계를 풀다니, 평소였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어리석은 행동 그 자체지만, 그녀의 경계를 푼 것은 은현의 말이었다.
“올리비온 공작…!”
리오드와 아르티아의 기사들에게 호통을 치며 다시 명령을 내리려 한 순간, 은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왕비님. 왕비님께선 저와 해주셨던 약속을 지켜주셨죠.”
“…….”
은현의 말에 그에게 쏠려 있던 모든 기사들과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디아네 왕비에게로 향했다.
은현과 디아네 왕비 사이에 어떠한 모종의 협력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왕국 내부에서도 리오드나 유리아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
“당신…. 처음부터 이곳에 오는 게 목적이었군요?”
“맞습니다.”
은현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만약 국왕이 서거하게 된다면, 유리아를 통해 비밀리에 밀서를 보내어 자신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고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이 왕가의 묘섬에 올 수 있도록 사전에 디아네 왕비와 밀약도 맺어두었었다.
“아.”
유리아는 작게 탄식했다.
어째서 디아네 왕비가 은현에게 밀서를 보내면서까지 이 원정에 은현에게 참여를 부탁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부터 주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디아네 왕비가 은현에게 이곳에 동행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 아니라, 은현이 이곳에 동행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한 것이다.
그 행동의 결과가 바로 현 국왕의 시신을 훼손시키기는 지금의 사태로 이어졌으니, 디아네 왕비로서는 배신감에 치솟아 올라 분개할 만도 하다.
은현은 그렇게 치솟아 오르는 디아네 왕비의 감정을 모조리 받아들이며 계속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저도 이곳에서 사실대로 모든 것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을?”
“제가 왜 현 국왕, 안드레아 페르니아스의 시신을 훼손시키는 무례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제가 이렇게 해주길 바랐던 그분이 누구인지.”
그 말을 끝으로 은현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베르단디님.’
[허락한다.]
마음속으로 허락을 구하자, 그의 여신은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다.
딱
은현은 그렇게 베르단디의 허락을 받아 여신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은현 고유 능력]
[환상 세계의 구현]
손가락을 튕기자, 세계가 일변하기 시작한다.
싸늘한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어두운 배경이 아닌, 밝은 대낮의 풍경으로 마치 수채화의 물감을 병 속에 풀어 넣듯이 변화하기 시작한 풍경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현실과도 같아서, 위화감이 가득했다.
“이건….”
디아네 왕비는 순식간에 변화하는 현실에 얼굴을 굳혔다.
이전 공개 재판 때, 사람들의 목소리를 재현했던 것과는 또 수준이 틀리다.
지금 존재하는 현실에 간섭하고 개변하는 이 능력은 마법으로도 재현할 수 없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가까웠다.
은현의 이 능력을 처음 겪어보는 주위의 사람들도 일제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성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와아…. 이게 뭐야?”
그것은 은현의 ‘환상 세계의 구현’을 처음 겪어보는 에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은현을 제외하면 이전에 겪어본 적이 있었던 리오드와 엘레노아 뿐이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일제히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뭐 믿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지만.”
은현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간을 사랑했으나, 배신을 당했던 한 영험한 존재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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