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88화 (471/730)

〈 488화 〉 488. 수문영지 티르니스(2)

* * *

저택의 대문 앞에 도착하자, 이 저택의 주인이자 영지의 관리인인 영주.

티르니스 백작이 문 앞으로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알데브 티르니스 백작이 왕비마마를 뵙습니다.”

“수고가 많아요. 티르니스 백작.”

현재 국왕의 정실로서, 왕족 내부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디아네 왕비가 대표로 티르니스 백작의 인사를 받았다.

“이번 국왕 폐하의 서거 소식은 정말로….”

이후에 이어진 대화는 귀족 사회 간에 이루어지는 형식적인 대화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티르니스 백작의 애도를 받아들이자, 티르니스 백작은 미리 준비해둔 저택의 내부로 왕족들과 기사들을 안내했다.

이미 왕가로부터 서신을 통해 국왕의 서거와 함께 왕가가 이곳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달받은 티르니스 백작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쳐두었다.

자신의 대에서 처음 맞이하는 이 국왕의 장례식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다름 아닌 티르니스 백작 가문의 역할이다.

디아네 왕비를 선두로 데미안 왕자와 헬레나 후비를 비롯한 유리아와 에반의 주위를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이 호위하는 형태로 뒤따라 걸어 들어갔다.

호위에 가담하지 않고 남겨진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과 은현 일행은 영지의 내부에서 운영되고 있는 호텔에 숙박하기로 사전에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은현을 포함한 세 사람은 사전에 예정되었던 호텔로 곧바로 향했다.

“현아. 우리 이제는 뭐해?”

호텔 안으로 들어와 짐을 모두 풀자마자, 에린이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은현에게 물었다.

바다라는 것을 처음 본 에린은 아까 전 눈에 보였던 장황한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고 싶어 하는 눈치.

그 얼굴을 보고 엘레노아도 미소지으며 은현에게 제안했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니까,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요?”

“뭐, 그렇긴 하지.”

놀러 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여유 있게 남아있는데 이것을 활용하지 않는 것도 좀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번 원정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에린의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저렇게 눈을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래. 구경하러 가자.”

“고마워! 정말 좋아해!”

에린은 기쁜 듯이 점프하여 은현의 품에 안기고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어리광을 부리는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현과 엘레노아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곧바로 호텔을 나와 세 사람이 향한 곳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시장이다.

그것도 평범한 노점의 시장이 아닌, 어업을 통해서 잡아들인 다양한 해산물들이 가득한 수산 시장.

“와아….”

에린은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이윽고 바다향의 짠 내가 에린의 코를 자극했다.

“으….”

코를 막으며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에린은 남들보다 오감이 예민한 만큼 처음 맡아보는 바다의 냄새를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어려운 듯 보인다.

“괜찮니?”

“괘, 괜찮아요…. 처음 맡아보는 거라…. 그래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에요. 적응만 하면….”

에린은 무심코 막아버렸던 코를 풀고는 조심스레 바다의 향기를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적응하려 애를 썼다.

“후우….”

심호흡하고 숨을 크게 들이쉴수록 더 강한 향이 몸 안으로 밀려 들어왔지만, 처음의 강렬했던 짠 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시체의 썩은 내도 맡아 보았는걸. 이 정도쯤이야….’

모험가 일을 하면서 다양한 악취를 경험해보았던 에린은 겨우 이 정도에 굴할 정도로 마음이 약하지 않았다.

“가요! 엘레노아님! 현아!”

에린은 금세 다시 처음의 활기를 되찾으며 은현과 엘레노아의 중앙에서 각자의 한쪽 팔을 끌어당겨 이끌었다.

“그래.”

“천천히 걸어야지.”

가족 중에서 가장 막내에 해당하는 에린의 밝은 모습을 본 은현과 엘레노아는 작게 웃음꽃을 피우며 에린과 함께 시장 안을 구경했다.

“와아…. 처음 보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

수산 시장의 노점들에 진열된 다양한 해산물들을 본 에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에린이 보거나 먹어보았던 어패류들은 모두 산속의 계곡 등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작은 크기의 물고기들이 전부다.

거대한 통 속에 담겨있는, 사람의 팔보다 더 커 보이는 큰 물고기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들이 즐비한 광경은 이것을 처음 보는 에린에게는 신기할 만하다.

“물고기들이 왜 이렇게 많지?”

“그야 이 해안에서 잡히는 것들을 곧바로 판매하니까.”

바다와 인접한 영지만이 갖출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다.

“티르니스는 다른 영지들과는 달리 농업보다 어업과 무역을 통해서 경영해나가는,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에서도 특별한 영지야.”

소금기가 가득한 이 영지의 땅은 농업을 하기에는 불안정하다.

그러므로 티르니스령은 인근의 영지로부터 적정한 가격으로 곡물을 수입하고, 그 대신 어업으로 잡아들인 해산물을 판매하거나, 수문을 통해 입국해온 상선들에게서 통행세를 걷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다.

“신선하고 다양한 생선들을 곧바로 요리하여 먹을 수 있다는 건 이 영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지.”

“…페르닌이나 아르미타스 령에서는 못 먹어?”

“그야. 생선이니까.”

생선은 다른 식재료들보다 상대적으로 부패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

티르니스령에서 페르닌이나 아르미타스령까지의 거리는 마차로 계속 달려도 대략 2주일 정도의 거리가 소요된다.

2, 3일이 지나면 곧바로 부패가 진행되는 해산물들을 곳곳으로 운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존재한다.

‘냉동 보존을 유지하는 운송 기술을 개발한다면…. 언제 한 번 생각해볼까.’

은현은 그렇게 머릿속으로 다른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며 두 아내를 데리고 수산 시장 내부를 걸었다.

“저, 저게 뭐야!?”

에린이 어떤 수산 노점에서 판매하는 한 생물을 보고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은현의 뒤에 숨어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그 생물이 담겨있는 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무슨 다리가 저렇게 많아…?”

갈색의 피부와 여덟 개의 다리가 촉수처럼 구불거리며 통 안에서 여기저기 움직이는 모습은 굉장히 기괴하다.

“큭큭…. 아가씨. 수도에서 왔나?”

에린의 반응을 보고, 노점 주인이 끌끌하며 웃었다.

“그, 그런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문어를 처음 보는 반응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게다가…굉장히 이쁘장하게 생긴 게 이곳의 아가씨들하고도 또 뭔가 다르고. 수도에서 온 귀족이거나, 모험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

에린 같은 반응을 보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노점 주인은 그거 에린이 귀엽다는 듯 웃고 있을 뿐이었다.

“흐흐. 문어를 보고 그렇게 놀라다니. 아주 재밌는 얼굴이었어.”

아름다운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며 남자의 뒤에 숨는 광경을 가까이서 직관한 노점 주인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문어?”

에린은 처음 듣는 단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의 이름이야.”

등의 옷을 꽉 붙잡고 있던 에린의 손을 떼어놓고 무릎을 굽힌 은현이 통에 담겨있는 문어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했다.

“만져봐도 되나요?”

“그럼 얼마든지. 사주면 더 좋고.”

흔쾌히 떨어지는 주인의 말에 은현은 거침없이 문어의 머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색깔 좋네요. 크기도 크고, 힘도 세고.”

“흐음? 볼 줄 아나?”

망설임 없이 문어의 머리를 붙잡아 들어 올리는 은현의 담담한 태도에 노점 주인이 흥미를 보였다.

“조금은요.”

“혀, 현아! 팔! 팔이…!”

점액질로 가득하여 구불거리는 문어의 다리들이 위로 올라와 은현의 팔을 휘감아버리자 에린이 은현의 옷을 잡아당기며 호들갑을 떨었다.

“떨어져! 이 나쁜 놈!”

“괜찮아. 원래 이러니까.”

“하하하!”

경악하며 문어에게 소리를 치면서도, 차마 만지지 못하고 입으로만 성을 내는 에린의 반응에 노점 주인이 폭소를 터뜨렸다.

“후후.”

가만히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엘레노아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꾹 참았다.

주위의 시장 사람들도 그런 에린의 행동이 귀여웠는지 웃음꽃이 피었다.

“우, 웃지 말아요!”

어째서 자신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에린이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외쳤지만, 그런 그녀의 얼버무림은 주위를 더욱 즐겁게 할 뿐이다.

재미있는 해프닝을 만들어버린 탓에 더욱 시끌벅적해진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은현이 웃음을 지으며 노점 주인에게 물었다.

“얼마죠?”

“은화 1닢.”

“꽤 비싸네요.”

“그래도 이런 건 어디서 못 구한다고.”

확실히 은현의 눈에도 자신의 팔을 휘감고 있는 문어는 질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은화 1닢은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페르닌의 군대에서 복무중인 젊은 남성의 1개월 급여가 약 은화 2닢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눈앞의 문어가 얼마나 비싼지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다.

아마도 은현이나 엘레노아, 에린이 수도에서 왔다는 것이나 비교적 고급스러운 옷감을 사용한 의복을 착용한 행색으로 일부러 값을 높게 부른 것일 터.

은현은 씨익 웃으며 노점 주인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서비스 좀 주시죠.”

“…그러지.”

귓가에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에 노점 주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가 줄 테니 너무 과하게 등을 처먹지 말라는 은현의 경고를 노점 주인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뒤의 두 여성은 가족인가?”

“아내들입니다.”

“호오. 젊은 나이에 능력도 좋군.”

노점 주인은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는 듯이 감탄했다.

일반 영민들에게는 몰라도, 고귀한 신분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정실에 이은 첩을 여러 명 들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오히려 귀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정중하게 존댓말을 취해오는 쪽이 기묘했다.

게다가 정실과 첩의 관계로 보이는 두 여성의 관계가 매우 친숙하다는 점까지 매우 기묘하다.

“속이려 했던 건 사과하지.”

노점 주인은 곧바로 사과했다.

이런 상대에게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이나 마찬가지.

“괜찮습니다.”

“사과의 뜻으로 이것도 싸게 넘기지.”

노점 주인이 꺼낸 것은 문어가 들어있던 것과 같은 또 하나의 통이다.

“이건…?”

“보면 아네. 아마 문어를 알고 있다면, 이것도 알고 있겠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통을 덮고 있던 뚜껑을 개봉하자, 세 사람이 안에 가득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히익!?”

새까맣고 기다란 무언가가 꾸불거리며 통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물이 바깥으로 튀었다.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상체를 가까이 내밀었던 에린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하.”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에린의 반응을 확인한 노점 주인이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게 뭔가요?”

역시나 해산물에 대해 그다지 밝지 않은 엘레노아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노점 주인에게 물었지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은현이다.

“…장어라고 해.”

“장어?”

“역시 형씨는 알고 있군. 이 장어라는 물고기는 이 티르니스령의 해안에서 자주 잡히는 특산품이지. 특히나 남자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가 좋거든.”

“인기가 좋다고요? 어째서죠?”

“흐흐.”

노점 주인은 엘레노아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실실 웃었다.

곧이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은현의 얼굴을 확인했다.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짓는 은현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정력에 아주 좋거든.”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노점 주인의 대답에 에린이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것만 먹으면 기운이 없는 남정네들도 넘쳐나는 활력을 주체못해서 침대 위에서는 사나운 짐승이 되어버리거든.”

“…아.”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은 에린이 얼굴을 붉히고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어때? 밤에 아내들을 상대하려면 이것 정도는 먹어줘야 하지 않겠어?”

“…….”

은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답하지 않았다.

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한 소비를 하는 것이 그다지 성격에 맞지 않는 만큼, 이 바가지를 씌운 가격에 장어를 사서 먹고 싶은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다.

“아뇨. 그냥 문어만….”

“이거 한 마리 말고도 더 있나요?”

“음? 어, 그, 그렇지?”

물끄러미 장어를 응시하고 있던 엘레노아가 은현의 대답을 가로막고 질문을 하자 노점 주인은 당황했다.

“전부 주세요.”

“…뭣이?”

“전부 주세요. 여기 돈이요.”

엘레노아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품에서 미리 바꿔둔 은화가 다발로 들어간 주머니를 꺼내어 노점 주인에게 건넸다.

족히 장어 50마리는 사고도 남을 수 있는 거금을 손에 쥔 노점 주인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엘레노아. 이거 오늘 내로 다 먹을 수 있어?”

“아뇨. 오늘 먹을 생각은 없어요. 저희는 이것들 집에 가지고 갈 수도 있잖아요.”

게이트를 이용하여 아무리 먼 장거리라도 단숨에 뛰어넘어 던전 주택으로 복귀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존재하는 이상 대량의 냉동 보관도 굉장히 용이하다.

“…장어가 그렇게 먹고 싶어?”

“네? 아뇨. 모두 당신에게 먹일 건데요?”

“…….”

당당한 엘레노아의 태도에 도리어 당황한 것은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노점 주인이다.

“워, 워매….”

노점 주인은 화끈하게 본인의 의사를 밝히는 엘레노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뭔 귀족 처자가 저렇게 빠꾸가 없다냐.”

노점 주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고귀하고 품격을 따지는 귀족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단번에 부서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잔돈은 필요 없어요. 빨리 포장해주세요.”

“아, 알겠수다!”

사치의 끝판왕과도 같은 쿨한 대사를 내뱉으면서 재촉해오자, 노점 주인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장어들을 포장해나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