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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477화 (460/730)

〈 477화 〉 477. 기싸움

* * *

콰아앙!

천지가 뒤집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굉음과 진동이 던전 주택의 지하의 훈련장을 뒤흔들었다.

에린은 은현이 보여준 투창의 위력에 어깨를 들썩이며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자신과 은현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 투창을 자신이 맞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신은 막아낼 수 있을까?

‘절대로 못 해. 닿는 순간 사라져 버릴 거야. 절대로 맞기 싫어!’

그런 결론에 순식간에 도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쩌저적

지하 훈련장에 상시로 유지되고 있는 일리아나의 결계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부의 충격을 흡수하고 훈련의 여파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설계된 여덟 자릿수라는 고위 마법사의 마법이 단 한 번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와, 와아….”

에린은 그저 입을 벌리며 금이 간 결계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전력을 낸다고 하더라도 부술 수 없는 일리아나의 결계에 손상을 입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또 하나가 있었다.

“어때?”

은현의 질문은 에린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무기이자 자아를 가지고 있는 파트너에게 한 질문이다.

[나쁘지 않네. 버틸만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가뿐해.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데?]

완벽한 신격을 갖추게 되면서 자신의 권능인 열쇠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 은현은 브류나크의 말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전보다 더욱 높은 성능을 갖추게 된 열쇠로 소환된 브류나크는 자신의 창대에 은현의 신력을 대량으로 주입받아도 이전처럼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은현의 열쇠로 재현된 브류나크는 더욱 많은 힘을 주입받아서 커다란 위력을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래 무기라는 것은 성장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소재로 가공되어 특별한 성능을 갖추었을 뿐, 설령 신창이라고 불리는 브류나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의 손에서 창술을 휘둘러지는 도구로써 그 근본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명백히 성장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브류나크는 기쁨을 느꼈다.

[오히려 더 강하게 해도 괜찮은데.]

주인이자 파트너인 은현이라면, 더 높은 곳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그건 조금 곤란해.”

하지만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건 일리아나가 만든 결계거든.”

저 결계가 완전히 깨져버린다면 당연히 일리아나가 알아차릴 터.

자존심이 강한 그녀가 브류나크를 이용하여 자신의 결계를 깨부숴버렸다면 분명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것이 틀림없다.

[…그렇겠네. 하지 말자.]

가뜩이나 부활한 것을 순수하게 기뻐할 틈도 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던 브류나크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이고 빨랐다.

지금 브류나크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자신을 사용하는 주인이자 파트너인 은현도 아니고, 과거 자신을 소멸시켰던 아스타로스도 아니다.

[괜찮겠지? 나 좀 살려주라. 잘 좀 말씀드려.]

“그래.”

바로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목숨을 구걸하듯 빌어오는 파트너의 태도에 은현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내와 파트너 사이에서 완전히 정립된 서열에 대해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와…. 창이 말을 하네…?”

에린은 무기와 대화를 나누는 애인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꼈다.

말을 하는 창이라니, 살면서 듣도 보도 못했다.

무기를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고, 모험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 시간이 그렇게 긴 것은 아니었지만, 저것이 정상인지에 대한 의문을 누군가가 제기한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확답을 할 수 있다.

[뭘 봐.]

“…응?”

에린은 느닷없이 자신을 지목하는 브류나크의 목소리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말하는 창, 처음 봐?]

“뭐, 뭐…?”

에린은 당황했다.

까칠하기 짝이 없는 무기의 말투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까부터 저건 누구냐?]

“내 아내.”

[…….]

은현에게 다수의 아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바.

브류나크는 곧바로 에린이 품고 있는 기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신수라고?’

어떻게 인간이 신수의 힘을 품으면서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가 있을까.

에린이 지금까지 성장해온 경위를 모르는 브류나크로서는 굉장히 신기한 돌연변이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일리아나도 그렇고, 어떻게 된 게 은현의 아내 중에는 정상적인 여자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브류나크가 에린을 관찰하듯이, 에린 또한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브류나크를 바라보았다.

“무슨…. 무기가 이렇게 싸가지가…?”

[흥, 뭐. 어쩔 건데. 내가 싸가지 없는데 뭐 보태준 거 있어?]

하지만 신수라는 인외의 신비로운 힘을 품고 있어도, 외견만으로 보이는 에린의 무력은 아직 그렇게 대단치 못했다.

인간 중에서는 꽤 높은 수준이지만, 신창이라고 불리는 브류나크가 만나보았던 이들 중에서는 아직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수준이면 뭐, 강하게 나가도 해볼 만하지.’

안 그래도 일리아나에게 비굴하게 빌빌 기었던 것을 생각하면, 신창으로서 구겨진 자신의 자존심을 다시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이…!”

브류나크에게 모욕을 받은 에린이 얼굴을 붉히며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한판 해보게?]

사람도 아니고, 겨우 무기에게 이런 노골적인 도발과 무시를 받아본 경험은 은현에게서 검술을 배운 이후로 처음이었다.

구미호조차도 그녀의 후예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개무시하지는 않는다.

이윽고 창의 주인인 은현에게 하소연했다.

“현아! 저 창! 너무 건방져!”

“하하….”

은현은 난감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파트너와 아내의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들 것 인가는 매우 난감한 문제다.

일리아나야 자신의 무력을 보여줌으로써 은현을 사이에 두고 브류나크와 자신 사이의 서열을 아주 간단히 정리해버렸지만, 에린의 경우엔 그것을 하기엔 아직 힘이 부족하다.

에린이 가지고 있는 신수의 힘은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는 없는 아주 특별한 힘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에린의 수준은 아직 갓난아기에 불과하다.

[응. 니 얼굴.]

“뭐, 뭐…?”

에린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신박한 막말에 어이를 상실했다.

[니 얼굴 개 빻음.]

“이게 진짜!”

“자자, 그만 싸우고. 브류나크 고생했어. 다음에 다시 부를게.”

[흥. 그러던가.]

“어딜 도망가!”

은현이 둘의 다툼을 중재하고 브류나크를 역소환시키자, 에린이 역정을 냈다.

“다시! 다시 불러!”

“그만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안 돼! 이대로 돌아가면 내가 진 것 같잖아! 절대 그럴 수 없어!”

사람도 아닌 무기와 무슨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에린의 기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상대가 의기양양하게 도망을 친 것 같아 아주 언짢았다.

은현은 씩씩거리는 에린을 달래며 위층 거실로 올라갔다.

“무슨 일 있었나요?”

주방 일을 하고 있던 릴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잔뜩 토라진 에린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냥…. 일이 좀 있었지.”

“그런가요?”

릴리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주려는 은현의 노력에도 도저히 화를 풀지 않으려는 에린의 반응을 관찰했다.

정말 좋아하는 은현이 달래주고 있음에도 에린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건 정말로 은현이 정말로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자, 이따 맛있는 거나 먹자.”

“흥! 몰라!”

에린이 고개를 홱 돌리며 자신의 말에 대꾸하지 않자,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저녁은 특별히 부탁할게.”

“알겠어요.”

릴리도 애석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몸보신에 좋은, 특히나 임산부에게 좋은 고급 식재료를 대량으로 사둔 덕분인지, 최근의 식사 테이블은 아주 풍족하고 고급스러웠다.

“일리아나는?”

“방에 계세요.”

“알았어.”

은현은 곧바로 일리아나에게로 향했다.

“일리아나. 들어가도 될까?”

“들어와.”

문 앞에서 노크하고 방 안으로 들어간 은현은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있던 일리아나를 보았다.

책을 읽을 때만 사용하는 안경을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리 매우 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은현은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보고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 서적이 아닌, 동화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다른 의외의 모습이다.

“동화책?”

“그냥 한 번 읽어 봤어.”

일리아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살면서 동화책이라는 것을 읽어볼까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갑자기 왜?”

“나중에 아기한테 읽어줄 동화가 하나도 없으면 좀 그렇잖아.”

“아.”

여덟 자릿수의 고위 마법사이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예정인 여자의 사고방식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은현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었다.

일리아나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복부를 쓰다듬은 은현에게 물었다.

“아들일까? 딸일까?”

“글쎄.”

그것은 은현으로서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아주 행복한 고민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일리아나는 은현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은현이 저녁 시간도 아닌 이른 시간대에 자신을 찾아오는 것은 어떠한 용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본론으로 넘어가게 되자, 은현은 살짝 얼굴을 굳히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보고 일리아나도 살짝 낌새를 눈치챘다.

“일리아나. 페르닌에 있는 네 집. 혹시 결계에 이상은 없었어?”

“…흠?”

은현의 질문은 매우 뜬금없었다.

이 던전 안으로 이사를 해오면서 이전의 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반영구에 가까운 상태로 아직 결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전에 은현과 엘레노아가 페르니아스 왕궁에서 열린 연회에 참여한 이후 하룻밤을 묵었던 것처럼 아주 가끔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리아나는 거의 잊고 있었던 예전 집 결계의 상태를 물어오는 은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글쎄…. 이상한 건 느끼지 못했는데.”

누군가가 결계를 손상시키고 억지로 진입했다면 일리아나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건 왜 물어?”

“그게 예전에….”

은현은 이전에 연회에 참석했던 날 엘레노아와 함께 하룻밤 묵었을 때, 누군가가 그 집에 침입했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내 집에서?”

이야기를 들은 일리아나의 미간이 좁혀졌다.

더 이상한 것은 그냥 침입해서 무언가를 훔쳐 가거나 수작질을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한동안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뭐야. 그게? 괴담?”

이야기를 들은 일리아나의 입장에서는 그냥 괴상한 이야기였다.

“네가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면….”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생각은 어때?”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정체는 물론, 침입한 의도나 목적 등 은현으로서도 이해할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것투성이였다.

“니가 그런데 나라고 생각이 떠오를까. 흐음.”

일리아나는 잠시간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몰라. 너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이제는 당분간 태교나 하면서 시간 보낼래.”

“그래.”

일리아나의 입에서 태교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세상을 살아보니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은현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결계의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까 지하 훈련장의 결계. 잠깐 균열이 생겼던데 무슨 일이 있었어?”

일리아나는 자신의 예전 집에 들어온 침입자에 대한 정체와 목적은 도저히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로 화제를 돌렸다.

“아, 그게 사실은….”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지하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에린과 브류나크 사이에 있었던 해프닝을 설명했다.

“흐응…. 그 건방진 창이 말이지?”

일리아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흥미를 보인 부분은 브류나크가 아닌, 토라진 에린에 대해서다.

“아가가 토라지다니. 이건 네가 잘못했어.”

“…그렇긴 하지. 에린의 화를 풀어줄 방법이 없을까?”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

무슨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혀로 입술을 핥는 일리아나의 미소가 매우 요염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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