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3화 〉 473. 존재해서는 안 될 것(3)
* * *
에린의 ‘감정 왜곡’으로 인해 모든 정보를 캐낸 은현은 에린과 함께 영지를 나왔다.
곧바로 레토나를 소환하여 탑승한 뒤, 포장되지 않은 도로 위를 질주하여 목적지를 향했다.
덜컹거리는 거친 운전으로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네슬라 마피아의 잔당이 숨어있는 은신처다.
그 위치는 수도 페르닌에서 멀찍한 곳에 떨어진 지방 영지의 한적한 건물.
쇠락의 사태를 경험한 지금처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마련된 여러 은신처 중 둥지를 트고 있는 한 곳을 향하며 은현은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덜컹!
돌부리에 바퀴가 걸려 차체가 높이 튀어 오르고 다시 바닥을 달리며 거칠게 뒤흔들리는 차체의 내부는 몹시 어지러웠지만, 보통의 마차보다 좋은 소재들로 만들어진 이 자동차는 그저 어지러울 뿐 아프다는 감상과는 멀었다.
“…….”
에린은 덜컹거리는 레토나의 조수석에 앉아서, 옆자리의 운전석에 앉아 운전중인 은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현아.”
“어.”
“화났어?”
“응?”
뜬금없는 에린의 질문에 은현이 운전의 속도를 늦추고 옆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그냥….”
막상 자신에게 답해주는 것을 보면 화가 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은현은 항상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평소와는 명백히 달랐다.
화가 난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기분이 좋거나 무난한 것도 아니다.
에린은 신수의 능력으로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은 능했지만, 상위의 존재나 마찬가지인 ‘반신(半?)’인 은현의 감정만큼은 읽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몸을 섞고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는데 그 미묘한 태도의 변화를 에린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화난 건 아닌데…. 굉장히 띠껍다는 느낌?’
은현은 이 상황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있었다.
지금 찾아가고 있는 네슬라라는 마피아와 은현 사이에는 무슨 접점이라도 있었던 걸까.
에린은 그것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떠한 접점이 있었고 그것이 악연이라면, 은현이 그 마피아가 쇠락하기 이전에 진즉에 없애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은현은 대체 무엇에 저렇게 띠꺼워하고 있는 걸까.
그의 눈치를 찔끔찔끔 보고 있던 에린은 알 수 없었다.
“그냥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야.”
힐끔힐끔 옆을 보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에린의 시선을 느끼고 은현이 답했다.
“안 좋은 기억?”
“아주 옛날 일이지.”
은현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윽고 지방 영지의 검문소가 가까워지자, 은현은 레토나를 역 소환시키고 도보를 이용하여 지방 영지의 입구에 도달했다.
“드, 들어가십시오!”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휘장을 제시해주자, 경비는 너무나도 쉽게 은현과 에린을 내부로 들여보내 주었다.
이런 쪽에서 고위 귀족 집안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너무나도 편한 일이다.
“이쪽이야.”
앞장을 서서 은현을 안내하는 에린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의 예민한 신수의 감각은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만났던 비트와 도지에게서 났던 아주 미약한 악취를 정확히 포착해내고 있었다.
그 냄새가 가장 짙고 많이 모여 있는 한 장소로 은현을 안내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허름하지만, 꽤 큰 규모의 건물 앞에 도달했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건달을 발견했다.
“이번에 내가 그 여자를 말이야….”
“미X 놈. 킥킥.”
추레한 옷차림과 경박한 태도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확인했지만,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대화의 내용까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낄낄거리며 말을 주고받는 두 건달의 어투나 냄새, 태도, 그들의 감정 등은 비트와 도지라는 남자와 비슷했다.
오히려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인 척 연기를 하는 비트와 도지가 더욱 점잖은 사람의 연기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저기야.”
에린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위치에서 그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을 네슬라 마피아의 근거지로 확정지었다.
“어떻게 할 거야?”
“…….”
은현은 에린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이 영지에 들어선 순간부터 사전 조사를 통해 이 마피아와 영지 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후에 계획을 짜는 것이 은현의 스타일이다.
에린도 그런 은현의 스타일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예상했지만, 은현은 그러지 않았다.
“글쎄. 어떻게 할까?”
“…응?”
오히려 자신에게 의견을 구해오는 은현의 말에 에린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질문했다.
씨익 웃고 있는 은현의 표정은 가끔가다가 자신을 시험할 때 보여주는 얼굴이다.
“…….”
‘오늘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따라줄 테니.’
라는 은현의 표정을 읽은 에린은 생각에 잠겼다.
이 상황에서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은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하고 적절한 행동과 방침 등을 정한다.
‘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전에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고민.
하지만 자신에게 은현처럼 많은 사전 준비와 밑 작업을 통해서 상대방을 옭아매는 방식의 행동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아. 나 쓰고 싶은 게 있는데.”
“그래.”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친 에린이 명령을 내렸다.
◆ ◆ ◆
“젠장. 이것들 왜 이렇게 오지 않는 거야?”
아르미타스령으로 보냈던 부하 둘이 계속 기다리고 있던 소식을 가져오지 않자, ‘네슬라 마피아’의 보스, ‘펠론 마스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드디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기존의 보스를 비롯한 자신보다 높은 서열의 간부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펠론 자신이 이 마피아의 보스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던 야심이 가득한 남자였다.
1년 전 아르티아의 추적으로 마피아 조직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닥쳐왔을 때, 믿을 수 있는 부하들을 데리고 조직의 자금 전부를 쓸어 담아 도망친 펠론은 페르니아스 왕국 곳곳에 있었던 네슬라의 잔존 세력을 소집하여 다시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었다.
겨우 가지고 도망쳐 나온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쇠락과 함께 혼란을 겪고 있는 마피아의 내부 조직을 규합하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마약 사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가장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큰 수익을 벌어들였던 페르닌은 현재 아르티아의 추적으로 들어갈 수 없고, 이외의 지방 영지에서는 나름 쏠쏠한 수익을 벌어들이고는 있었지만, 큰돈을 만지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펠론이 눈독을 들였던 것이 바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던 아르미타스령이다.
시설은 물론, 복지도 좋다는 소문이 입을 타고 각 영지와 수도로 퍼지면서, 인구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며 성장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펠론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원래 좋은 일만 가득한 곳에는 너도나도 몰려들어 파리가 꼬이기 마련이다.
펠론은 자신이 맞이할 제2의 전성기의 시작으로 아르미타스 령을 골랐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영주가 누구인지, 그 뒤에 누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보다, 그곳의 영민들을 대상으로 마약 사업을 벌여 큰돈을 만질 생각밖에 하지 못하여 욕심이 앞섰다.
“젠장…. 설마 시작부터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은….”
마약을 유통할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지스 상회였지만, 그 상회의 회장인 지스는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시작부터 이쪽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처음에는 커다란 이익을 손에 쥐여주면서, 지스 상회에 납품하는 상품 속에 마약을 섞어 유통할 생각이었다.
아르미타스령 내부에 도는 물류의 70%를 책임지는 지스 상회까지 자연스레 공범으로 엮어내기만 한다면, 더 큰 돈을 만질 수가 있다.
그 지스 상회를 엮어내기 위한 시작 단계부터 틀어지고 있는 것에 펠론은 짜증을 느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곳을 꾀어내는 것도 생각을….”
뒤늦게라도 아르미타스령을 집어삼킬 계략을 꾸미려 했을 때.
콰아앙!
갑작스레 큰 충격과 함께 소음이 건물의 내부를 덮쳤다.
“뭐…. 뭐야…!”
땅을 울리는 강렬한 충격에 펠론이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 충격은 자신의 아래쪽.
건물 아래층에서 전해져온 충격이다.
황급히 방에서 나와 아래층을 향하려던 순간, 동시에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부하와 맞닥뜨렸다.
“무슨 일이야!”
“보스! 그, 그것이…! 지금 웬 미친 여자 하나가 나타나서 건물을 다 때려 부수고 있습니다!”
“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되묻는 텔론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 보였다.
◆ ◆ ◆
부릉! 부르르릉!
“…뭔 소리야. 이거?”
“낸들 알겠냐? 뭔데?”
공기의 떨림을 타고 전해져오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는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마피아 은신처 건물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건달의 이목을 끌었다.
두 건달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 보는 탈 것 위에 타고 있는 남청색 머리카락 여성의 모습이다.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이륜구동의 바이크는 이 대륙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다른 문명의 산물.
“뭐, 뭐야. 저게…?”
바이크 위에 타고 있는 남청색 머리카락의 여성, 에린보다도, 그녀가 타고 있는 바이크의 비주얼이 너무나도 압도적이라, 두 건달은 당혹스러웠다.
부릉! 부르르릉!
핸들을 틀 때마다 벌벌 떨리던 바이크의 안에서, 마력을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엔진의 소리가 거칠게 울부짖었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에린의 바이크가 마피아 은신처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이, 이런 미친…!”
“뭐야. 저 미친 년은!”
빠른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오는 바이크에 두 건달이 경악했다.
차라리 맨몸으로 돌진을 해온다면 그냥 막기만 하면 될 터.
하지만 저렇게 미친 속도로 질주해오는 바이크와 충돌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은 두 건달의 이성에도 상식으로 박혀있었다.
몸으로 막는 것보다 차라리 피하는 것이 낫다고 머릿속의 이성이 경고한다.
“이런 X발!”
건달들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몸을 피하자, 건물 입구까지 완전히 개통된 일방통행이 완성되었다.
콰앙!
나무로 된 문을 깨부수고 건물의 내부로 진입하자, 거친 엔진 소리를 포효하듯 내지르는 바이크의 등장에 깜짝 놀란 다수의 건달이 입구를 응시했다.
“뭐야! 저건!”
단숨에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에린은 담담하게 건달들을 한차례 훑어보았다.
“아저씨들. 죄송한데요.”
“……?”
바이크를 들이받으며 당당하게 내부로 진입한 에린은 사나운 건달들의 시선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건달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항복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권해오는 권유.
당당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온 단 한 명의 침입자 여성은 마치 자신들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 태도가 너무나도 당연해서 건달들의 속을 긁어놓기 시작한다.
“이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저게 돌았나!”
항복은커녕 전의를 더욱 불태우는 건달들의 태도에 에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에린도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에린이 세운 작전은 아주 간단하다.
‘정면돌파’
작전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저 무지성에 가까운 단순무식의 결정체 그 자체.
에린에게는 은현처럼 많은 생각과 사전 준비 등을 통해서 정밀한 작전을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작전을 짜는데 필요한 시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에린에게 선택지는 처음부터 이것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