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72화 (455/730)

〈 472화 〉 472. 존재해서는 안 될 것(2)

* * *

꽤 많은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먼저 나간 코인 상단의 두 사람을 찾는 것은 에린의 예상대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젠장. 어쩌지? 설마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쯧….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나.”

도지의 말을 받으며 비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덥석 물어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기 마련인데, 지스의 경우에는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건지 처음부터 자신들의 계약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직 사기꾼이라는 과거와 그의 눈치와 장사수완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두 사람의 실수였다.

“저 상단만 엮어내면, 이 영지를 편하게 먹고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닌데….”

“야. 어쩌냐?”

“일단은…형님에게 다시 보고를 드려야겠지.”

비트의 말을 들은 도지의 인상이 크게 구겨졌다.

“X발. 또 오지게 처맞겠네.”

한 번도 아니고, 2개월을 가까이 끈질긴 설득으로 지스의 상회를 찾아왔지만, 성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자신의 상사에게 대차게 깨질 것을 예상하니, 기분이 거지 같을 수밖에 없다.

“일단은…돌아가자고.”

“그 얘기.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

“…흡!?”

멀찍이서 들려온 한 남자의 목소리에 비트가 몸을 움찔 떨며 숨을 삼켰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홱 돌려 자신들에게 말을 건 남자의 모습을 찾았다.

이윽고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와 남청색 머리카락을 가진 어여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고 몸을 굳혔다.

“너희는 아까…?”

도지의 시야에 들어온 두 남녀의 얼굴은 아까 지스 상회의 회장실 앞 복도에서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도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의 파악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비트는 순간적으로 자신들이 어떠한 상황에 부닥쳐있는지를 금방 깨달았다.

“젠장…! 야! 도망…!”

“에린. 제압해.”

“응.”

곧바로 위기를 직감하고 도주의 판단을 내리기까지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은현의 명령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에린 쪽이 더 빨랐다.

은현의 뒤에 있던 에린이 어느샌가 앞으로 튀어나와 재빠른 움직임으로 엉거주춤하고 있는 도지에게 돌진했다.

“흡!?”

순식간에 자신의 앞으로 튀어나온 에린의 움직임에 도지가 숨을 삼켰다.

퍼억!

앞으로 돌진하면서 힘이 실린 주먹이 그대로 도지의 얼굴을 가격하면서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고개가 옆으로 세차게 꺾여나갔다.

눈가가 핑 돌 정도로 강력한 충격에 순간 정신을 잃은 도지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에린은 그에 이어서 주저앉은 도지의 발목을 사정없이 구두로 짓밟았다.

콰직!

“크아아악!”

고통으로 버무려진 도지의 비명이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골목 속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꽤 잔인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지만, 이것은 상대가 도주를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감정을 읽어 들임으로써 상대가 전혀 봐줄 필요가 없는 악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기도 했다.

“이런 젠….”

“도망을 쳐도 되지만, 추천하지는 않아.”

“……!”

무감정하기까지 한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는 동료인 도지를 버리고 혼자라도 도망치려는 비트의 몸을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저 말뿐인데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비트의 두 다리는 마치 무거운 족쇄가 채워진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은현이 한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어차피 도망쳐봐야 금방 잡힐 게 뻔하다.

오히려 도주의 우려를 위해서 자신의 동료인 도지처럼 발목을 부러지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항복하라는 경고의 의미와 가까웠다.

비트는 자신의 머리와 이성보다, 자신의 몸이 은현의 그 경고를 먼저 이해를 해버린 것이다.

“…….”

마치 밀랍인형이라도 된 것 마냥, 딱딱하게 굳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비트의 몸은 어떠한 강제력이라도 받은 것만 같았다.

“현아. 이 사람 어떻게 해?”

에린이 자신에 의해 발목이 부러져 비명을 내지르던 도지의 목덜미를 붙잡고 은현 쪽으로 질질 끌고갔다.

“‘암시’를 걸어둬. 도망치지 못하게.”

“응.”

‘…암시?’

구미호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에린의 전반적인 재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트는 은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천히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자신의 뒤에서 걸어와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데, 딱딱하게 굳은 비트의 몸은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윽고 은현이 비트의 등 뒤에 팔을 뻗으면 도달할 거리까지 좁혀졌을 때.

퍼억!

“크윽!”

다리를 걷어차인 비트의 몸이 순간 허공으로 떠오르며 바닥에 추락했다.

바닥과 부딪친 등의 충격으로 굳어 있던 몸이 풀린 비트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은현이 바닥에 드러누운 비트의 가슴을 다시 한번 발로 짓밟았다.

“무슨 목적으로 이 영지에 들어왔고, 뭘 꾸미고 있는지 이야기 해주실까?”

“하! 내가…말할 것 같…끄으윽!”

가슴의 명치 부분을 짓밟고 있는 은현의 다리에 힘이 실리며 명치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거칠게 밟자 비트가 신음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비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비트에게서 현재 아르미타스 공작령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은현은 그것에 인상을 쓰거나 짜증을 내는 식으로 답답함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신체에 고문을 주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경우의 수는 이미 은현도 생각해둔 상태였기에 답답함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에린.”

“응.”

발목이 부러진 도지가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암시를 걸고 있던 에린이 은현의 부름에 할 일을 마치고 곧바로 걸어왔다.

은현의 시선을 따라 에린도 시선을 내려 비트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 사람한테도 걸어?”

“어. 뭘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

“알았어.”

무엇을 걸라는 것인지, 무슨 수단으로 자신에게서 정보를 캐내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비트는 순간 동요했다.

하지만 그 의문과 혼란을 해소해줄 틈도 없이, 몸을 숙인 에린이 비트와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며 시선을 겹쳤다.

[호족요술(????)]

[감정왜곡]

아름답고 부드러운 남청색 머리카락이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려 기분 좋은 향기가 비트의 코끝을 간질였다.

이윽고 비트는 자신과 마주한 에린의 맑은 눈동자 속에 맴도는 분홍빛의 기운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몸 안을 침범하여 마음을 잠식해오는 이상야릇한 감정.

마음속에 존재했던 두려움이나 혼란, 동요의 감정들이 모조리 지워지는 비트는 조금씩 저항하고 있던 마음과 태도가 꺾여나가고 있었다.

구미호의 밑에서 단련했던 수행의 성과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에린의 성장을 보며 은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새삼 생각했는데, 진짜로 대단하네.’

타인의 감정을 조작할 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무섭고 위험한 능력이다.

만약 자신이 에린을 발견하지 못했고 자신의 아래에서 키워지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면, 에린이 자신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자신만의 힘으로 이 힘을 제대로 길들여가기 시작했다면 정말로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은현의 연인이자 아내로서, 은현에게 이쁨받기 위해 그 능력을 충실히 사용하고 있다지만.

자신이 제대로 고삐를 쥐지 않고 성장한 에린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은현도 살짝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흐, 흐흐….”

감정왜곡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정신을 잠식당한 비트는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침을 흘리며 실없이 웃고 있었다.

“…대단하네.”

큰 노력도 없이, 사람의 이성을 이 정도로 망가뜨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어? 정말? 나 대단해?”

비트의 이성을 완전히 잠식해낸 에린이 뒤에서 들려온 은현의 칭찬에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뒤로 홱 돌렸다.

“……. 응. 대단해. 그동안 많이 노력했구나.”

“히히. 응. 나 정말로 열심히 했어.”

자신의 노력과 성장을 칭찬받았기 때문일까.

에린은 풀어준 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은현의 손길을 즐겼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자신의 능력이 은현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에린에게 있어 그만큼 뿌듯한 일이었다.

에린을 칭찬했던 은현은 이성을 잠식당한 비트를 짓밟고 있던 발에 힘을 풀고 걷어냈다.

그를 짓밟고 있던 은현의 발이 사라졌음에도, 비트는 실실 웃음을 지으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비트를 보며 은현이 말을 걸었다.

“네 이름은?”

“비트….”

“나이는?”

“스물아홉….”

강경하게 저항의 의사를 내비치고 있던 아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경계가 허물어진 비트의 모습은 완벽하게 정신을 잠식당한 상태가 맞았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은현은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아르미타스령에 들어왔지?”

“그건….”

에린에 의해서 정신적인 무장이 완벽하게 해제된 비트는 천천히 자신들의 목적을 입에 담았다.

비트와 도지는 코인 상단을 운영한다는 가짜 신분을 위장한 건달이었다.

그들의 진짜 정체는 ‘네슬라’라는 마피아 조직의 조직원이다.

최근까지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인 페르닌의 어두운 장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이 네슬라라는 마피아 조직은 약 1년 전, 어떠한 계기로 아주 큰 쇠락을 겪어야만 했다.

“에린. 기억 안 나? 작년에 페르닌에서 마약 사건으로 연루돼서 너와 맞닥뜨렸던 그 조직.”

“아.”

에린은 기억을 떠올리고 작게 입을 벌렸다.

오랫동안 제라드가 쫓고 있던 흑마법사와 결탁하여, 페르니아스 왕국 귀족의 자제들 몇몇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었던 사건은 왕국의 수치나 다름이 없었던 사건들이다.

그 사건의 핵심은 마약을 직접 제조하여 유포시켰던 흑마법사와 그를 호위하던 사냥개들이 주범이었지만.

그의 아래에서 직접 귀족 자제들에게 마약을 유포시켰던 범죄조직이 바로 ‘네슬라’라는 마피아다.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

딱히 관심도 없었기에 그 범죄조직의 이름도 전혀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하지만 마약을 직접 유포시켰던 실행범들이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의 수사로 붙잡혔다는 소식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직 그 조직이 살아있는 거야?”

“다 잡아내지는 못했으니까.”

리오드의 말로는 ‘네슬라’라는 마피아의 보스를 포함하여 구성원의 약 70%는 모조리 체포할 수 있었지만, 이외의 인원은 놓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이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최고 전력으로 칭송받고는 있었지만, 약 300명의 한정된 전력으로 몇천이 넘는 범죄조직의 전원을 소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페르닌에서 도망쳐온 그 30%의 네슬라 잔존세력이 다시 힘을 키우며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곳이야?”

다시 활동하기 위해 고른 장소가 페르닌이 아니라, 아르미타스령인 것일까.

“그곳에는 리오드가 있잖아.”

“…아.”

조직이 붕괴할 정도로 커다란 위협을 안겨준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의 존재는 큰 피해를 입은 네슬라에게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터.

“그리고 상대적으로 고른 영지 중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장소를 고른 거겠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엄청난 인구가 몰려드는 장소.

게다가 급하게 기사들과 병사들을 육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인구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인력들은 성장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아직 벅차다.

마약 사업을 주로 하는 네슬라의 입장에서는 아직 완벽하지 못한 치안의 빈틈을 파고만 든다면 이 영지의 영민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 대량의 이득을 볼 수 있는 노른자가 가득한 땅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기분 나빠.”

에린은 은현의 설명에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 이하의 존재로 보며 돈을 쥐어 짜낼 수 있는 가축과도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다.

“꽤 얕보인 것 같네.”

은현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르미타스령의 치안이 아직 제대로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곳의 수준을, 그리고 이 영지의 뒤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식으로 건드릴 리가 없다.

캐낼 수 있는 정보를 모조리 캐낸 은현은 곧바로 몸을 돌려 골목길을 나왔다.

“가자. 어디를, 누구를 건드린 건지 가르쳐 줘야지.”

“응.”

두 사람은 행동을 개시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