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71화 (454/730)

〈 471화 〉 471. 존재해서는 안 될 것(1)

* * *

은현이 조제한 포션들을 판매하는 작은 잡화점으로 시작해서, 지스는 차근차근 가게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몇 번이나 건물을 옮기고 개축하여,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면서 지금은 그의 아래에 딸린 식구들만 몇십 명이 될 정도다.

몇 개월 만에 이 정도로 가게를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은 좋은 포션이라는 상품을 지속해서 공급해주고 자금을 지원해주는 등 은현의 조력도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좋은 상품을 보는 안목과 사람들을 응대하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본래부터 지스가 가지고 있던 장사수완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이런 재능을 사기를 치면서 갈고 닦았다는 것이 매우 애석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은현의 반강제적인 의사로 아르미타스 영지와 모험가에 이익 일부를 환원하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갱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포션만을 취급하던 지스의 작은 잡화점은 이내 마수들의 소재들을 매입하고 연금술사들이나 대장장이들에게 판매하거나, 일반 영민들에게 판매하는 식료품,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완구까지.

취급하는 상품들을 새로 채용하는 직원이나 점점 키워나가는 상회의 규모와 함께 늘려나갔다.

지금의 지스 상회는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내부에 돌아가는 모든 물류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혈관 속에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과도 같은 중요한 중심부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 지스의 상회를 찾아오는 사건의 시작점은 약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갑습니다. 상회장님. 저는 코인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비트. 그리고 이쪽은 도지라고 합니다.”

이름부터 수상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의 방문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이번에 저희 쪽에서 이 상회와 계약을 맺고 지속적인 거래를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코인 상단에서 온 비트와 도지라는 두 상인은 지스에게 물건의 납품에 대한 계약을 제안했다.

“저희 쪽에서 납품하고 싶은 것은 신선한 식자재들과 질 좋은 포션들입니다.”

비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들어둔 리스트들을 지스에게 건넸다.

리스트에는 납품하고자 하는 상품들의 명칭과 단가들이 적혀져 있었다.

“…….”

하나같이 통상의 시세들보다 약 30% 싼 가격으로 제시되어 있다.

질 좋은 상품들을 통상의 가격보다 싸게, 대량으로 납품을 하겠다는 것은 상회의 입장에서는 그 차익만큼 큰 마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이익으로 연결된다.

“죄송합니다만 이 계약을 받아들이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스는 코인 상단 쪽에서 제시한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았던 비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뜻밖의 대답이었다.

지스의 거절에 눈썹을 꿈틀거렸던 비트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이유를 물었다.

“…….”

지스는 입을 꾹 다물며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이만 돌아가주셨으면 합니다.”

정중한 부탁의 어조였지만, 이것은 ‘더는 당신들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라는 의사표시와 같았다.

그 의사를 들은 비트와 도지는 살짝 짜증을 느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어째서 받아들이지 않으셨나요?”

코인 상단의 두 사람이 방을 나가자, 비서가 지스에게 어째서 계약을 수락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리스트에 적힌 상품들을 납품하고 그것들을 판매하기만 한다면 큰 마진을 남기며 이익을 올릴 수 있는데, 구태여 그것을 거절하겠다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서의 물음에 코인 상단 쪽에서 제시해온 고민을 곱씹으며 표정을 풀지 않고 있던 지스가 답했다.

“…우리가 너무 이득을 보잖아.”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요?”

“너무 좋아서 문제지.”

지스의 마음에 걸렸던 점은 자신들 쪽의 이익이 너무 높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건비나 운송비를 포함한 원가를 제외하면 코인 상단 쪽에서 남는 이익은 풀칠을 하기도 벅찬 수준으로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

그것은 직접적인 금전적인 손해가 없을 뿐이지, 이익이 없다시피 한 거래는 인건비를 포함한 다양한 것을 하늘에 버리는 손해나 마찬가지다.

“거래라는 건 말이지.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것이 존재 할 때 성립하는 거야.”

한쪽이 압도적인 이익을 본다면, 반대의 한 쪽은 당연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제로섬의 구조는 어느 곳에서나 통하기 마련인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이익이 가지 않는 거래는 거래라고 할 수 없다.

이쪽이 모르고 있을 뿐, 상대 쪽은 제대로 된 이익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설정하고 거기에 따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즉 코인 상단 측의 목적은 대량의 상품들을 손해에 가까운 헐값에 매각에 매각하면서, 자신들의 상회를 통해 어떠한 이익을 보려 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경우는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쪽을 노리고 오는 게 정석인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지스로서도 제대로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꺼림칙함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한 것은 그간 사기꾼으로서 활동해왔던 경험과 눈치가 자신의 이성에 강하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 경험과 눈치는 지스가 자신의 상회를 이렇게까지 거대한 규모로 키워내는 훌륭한 장사 수완의 밑거름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구린내가 너무 풍겼단 말이지….”

“…….”

표현이 살짝 이상한 것만 빼면, 지스의 말은 비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지스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렇게까지 상회에 높은 이익을 손에 쥐어주면서 자신들에게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꺼림칙하게 느껴질 만하다.

“그 코인 상단이라는 곳. 우리 상회랑 작은 거라도 거래한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 ◆ ◆

“그래서…. 이게 지금까지 코인 상단과 저희 쪽에서 엮여있었던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지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피곤한 인상이 얼굴에 가득 묻어나왔던 이유는 이 코인 상단과의 실랑이 때문인 듯했다.

“…흐음.”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은현은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지스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나가면서 후회할 거라는 경고의 말도 내뱉었던 거 같은데. 상회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건 있나?”

“이건…그냥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최근에 저희 쪽과 거래를 끊고 싶다는 상단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몇 군데나?”

“지난주에 세 군데. 그리고 오늘 한 군데에서 연락을 해왔죠.”

“…절묘하네.”

“예. 절묘하죠.”

“뭐가 절묘한데?”

은현의 옆자리에서 조용히 지스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에린이 은현에게 물었다.

“타이밍이.”

“타이밍?”

“느닷없이 이 상회와 거래를 끊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온 상단이 있다는 게.”

그것도 한둘이 아니고 총 네 곳이다.

동시다발적으로 그런 의사를 내비친 상단이 있다는 걸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절묘하다.

“…그럼 현이는 지금 거래를 끊겠다고 말을 해온 상단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일부러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거야?”

본래 상인이라는 것은 거래를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직업이다.

지속적인 거래를 통해서 꾸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지스 상회와의 거래를 갑자기 철회할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것도 한 번 서명한 계약서를 위반하고 위약금을 물어주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이유는 금전적인 손해보다 더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아. 아마도…. 그 코인…상단이라는 곳에서 다른 상단에 압력을 넣은 거겠지.”

‘코인’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은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지스 상회와의 거래를 끊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네 목숨줄을 끊어주겠다.’

같은 위협을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다수의 상단이 그 위협을 받았다면 지금의 상황도 납득이 간다.

“피해는?”

“크지는 않지만, 솔직히 신경이 거슬리기는 하죠.”

위약금도 받았기는 했지만, 장기적인 이익을 놓친 셈이니 미약하게나마 손해를 보았다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었다.

“이야기 잘 들었어. 에린. 가자.”

“응.”

은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에린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가십니까? 그…마님께 드릴 보양식과 약재의 리스트는….”

“그건 선별해둬. 나중에 한꺼번에 구매할 테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예?”

은현의 대꾸에 지스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서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상회다.

틀림없이 자신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리라 생각했던 지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은현의 말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너는 상인이야. 상인으로서 네가 한 대처는 훌륭했고 나무랄 데가 없었어. 하지만 이 이후에 벌어질 문제의 해결은 맡겨둬.”

기특하게도 훌륭한 대처를 해준 지스를 위해서, 이 정도는 해줄 용의가 충분했다.

“그리고 엘레노아에게 말해서 아르미타스의 기사들 몇몇을 호위로 붙여줄게.”

지스는 이미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물류를 책임지는 상회의 회장이며 중요인물 중 한 사람이다.

개인적인 친분을 통한 사적인 명령이었지만, 그 명령을 내리기 위한 명분과 지위는 충분했다.

“가, 감사합니다!”

은현이 직접 움직여 조처를 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든든한지, 지스의 피로한 얼굴이 반색하며 밝아졌다.

“그럼 일리아나한테 줄 리스트와 상품이나 선별해둬.”

“알겠습니다! 고생하십쇼! 나으리!”

에린과 함께 상회 건물을 나온 은현은 곧바로 에린을 불렀다.

“에린. 아까 그 코인 상단의 두 명. 찾을 수 있겠어?”

“응. 냄새는 대강 기억해.”

에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맡았던 두 남성의 체취는 살짝 쓴 향이 나는 악취가 났다.

급하게 몸단장을 하고 옷을 보기 좋게 가꿔 입었다지만, 사람의 몸에 밴 체취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그…. 왜 있잖아. 깡패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가 나던데….”

기본적으로 몸에 베어 있는 그런 냄새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은현은 의아해하는 에린의 말을 들으며 미소지었다.

“그거면 충분해.”

“어떻게 하려고?”

“일단은 찾아야지.”

목적 같은 건 아직 모른다.

하지만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이 확실한 이상, 그 목적과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단의 뒤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 우리끼리 가?”

“뭐 일도 한가한데 우리끼리 해결하지. 뭐.”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에린은 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현의 사고를 읽은 베르단디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은현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코인이라는 것이 뭐길래, 아이는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냐?]

“…있어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게.”

은현은 베르단디의 물음에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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