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69화 (452/730)

〈 469화 〉 469. 생애 첫 선물(1)

* * *

구미호는 은현과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제라드와 에린의 훈련을 중단시켰다.

은현이 이 시간대에 사당을 찾아오는 경우는 훈련을 종료하고 에린에게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

“현아아!”

사당에 찾아온 은현을 발견한 에린이 자리를 박차고 반색하며 은현에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쯧.”

그것을 보고 혀를 찬 것은 구미호다.

구미호에게는 훈련을 이어나가던 와중, 저렇게 헤실헤실 풀어지며 은현에게 엉겨 붙는 에린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린에게 혹독하게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녀의 응석을 계속해서 받아주며 키운 결과가 이것이다.

은현의 교육 방식 또한 어떠한 형태에 정답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연인이라지만 자신의 후예인 에린이 남자에게 엉겨 붙어 응석을 부리고 있는 모습은 신수라는 존재의 위엄을 떨어뜨리며 구미호의 눈에 아니꼬울 뿐이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며, 내부의 마력을 가다듬는 훈련을 했을 뿐인데 에린의 옷은 땀으로 젖어있어 몸에 착 달라붙어 한창 성숙한 몸매의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본래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제라드가 함께 수행을 받는 상황.

은현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에린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헤헤. 현이의 냄새다.”

어깨에 걸쳐진 은현의 겉옷을 끌어당겨 코를 묻은 에린이 실실 웃으며 그 냄새를 즐겼다.

“형님. 오셨습니까?”

뒤늦게 은현을 발견한 제라드도 자리에서 일어나 은현의 방문에 인사를 전했다.

“그래. 신수님의 훈련은 어때?”

“…아주 좋습니다.”

제라드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몸을 움직여보며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솔직히…이 정도로 괜찮아 질 줄은….”

몸 안에서 날뛰며 육체를 좀 먹고 있던 기린의 마력을 조금씩 제어할 수 있게 되자마자, 제라드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제라드의 몸을 치료하면서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를 알고 있었던 은현이 보기에도 정말로 놀라운 발전이다.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재능은…쯧. …있다고.”

구미호는 한 차례 말을 끊으며 혀를 차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제라드의 앞에서 그의 칭찬을 하는 것이 정말로 싫었던지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반면 그 칭찬을 들은 제라드는 피로로 가득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가요!? 저는 재능이 있는 건가요!? 미호님!?”

“건방지게 친한 척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에린에게 물든 탓인지, 제라드는 초면부터 에린을 따라 구미호를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흐음.”

은현은 제라드와 구미호가 보여주고 있는 시트콤 같은 광경을 보며 둘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챘다.

제라드가 구미호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은 릴리에게서 들었지만, 직접 본 이 광경은 조금 미묘하다.

제라드의 일방적인 공세에 짜증을 내며 철벽을 치고는 있지만, 평소 거추장스러운 것은 치워버리는 성향이 강했던 태도와는 달리 살짝 소극적이다.

구미호의 마음속 복잡 미묘한 심경을 읽을 수가 없는 은현으로서는 여기까지만 파악하는 것이 한계.

“가서 밥이나 먹고, 내일 다시 오도록 해라!”

구미호는 제라드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라드. 고생했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자.”

“…아니요.”

은현의 권유에 제라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조금 더 수행하고 싶습니다.”

“더?”

“네.”

구미호에게 칭찬을 받아 잇몸을 만개하던 제라드는 어느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제라드는 이미 기린의 마력을 제어하는 법을 점점 숙달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공교롭게도 신수의 힘을 다루는 이 부분에서는 에린보다 제라드의 성취가 더욱 빠르고 뛰어났다.

지금 쉬게 된다면 이 감각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았던 제라드는 아예 시작하면서부터 신수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은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에게 말해서 이곳으로 저녁을 전해주도록 이야기해둘게. 허기가 지면 나중에 챙겨 먹어.”

“하하, 감사합니다. 형님!”

제라드의 인사를 뒤로하고, 은현과 에린은 곧바로 사당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

함께 길을 걷는 동안 에린은 은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해?”

“그냥….”

은현의 질문에도 에린은 살짝 뚱한 표정을 지으며 모호한 대꾸로 답했다.

“제라드한테 추월당한 것 같아서 복잡해?”

“…….”

에린은 다시 묻는 은현의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지만, 은현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이 살짝 떨리며 힘이 들어가는 것이 정곡을 찔린 듯 보였다.

시기상으로는 에린이 신수의 힘을 발현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시간은 약 2년이 지났다.

제라드는 그런 에린이 쌓아온 2년이라는 노력의 시간을 단 몇 시간 만에 추월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성과지만, 추월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에린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강하게 성장했으며 그들이 느껴보았을 박탈감을 지금 에린은 제라드를 통해서 느껴보고 있다.

“현아. 어쩌면 나는…. 재능 없는 걸까?”

에린이 그런 생각에 도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에린. 너는 정말 특별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특별하다는 게 아니야.”

“…응.”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자신보다도 더욱 특별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은현이 그렇고, 일리아나가 그러하며, 엘레노아나 릴리 또한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아주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에린은 지금까지 정말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제라드도 20년 전부터 자신을 갈고닦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어.”

제라드가 예전부터 갈고닦아왔던 마력의 운용방법, 본능, 감각 등은 지금 제라드가 신수의 힘을 다루는데 아주 큰 어드벤티지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20년의 세월 속에서 쌓인 제라드의 노력이다.

출발지점은 같을지라도, 사람의 다리가 길고 짧은 것의 차이에 따라서 목표지점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에린과 제라드는 쌓아온 시간의 차이가 확연히 틀리다.

“나는 에린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응. 그렇네.”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드가 아무리 경박하고 눈에 꽂힌 여자에게 적극적인 구애의 행동을 펼치는 기막힌 행동을 보임에도 그가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근본이 굉장히 올곧기 때문이다.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위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을까.

아마도 구미호도 그런 제라드의 본질을 알아보고 있으므로, 그의 구애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매몰차게 치워버릴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내가 한 노력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제라드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괜찮아. 지금 알았으니까. 게다가 기특하네.”

제라드에게 금방 추월당할 것 같은 것을 직감하고, 그의 재능에 질투하기는커녕 자신의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고민하는 에린의 심정은 매우 기특하다.

“나 기특해? 헤헤.”

고민을 해소한 에린은 은현의 손길을 즐기며 미소지었다.

집에 당도하여 거실로 올라온 은현과 에린은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를 발견했다.

“다녀왔습니다!”

기운찬 목소리로 자신의 귀가 사실을 알린 에린을 보며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왔니?”

“어서 씻고 와.”

“알겠습니다! 금방 씻고 올게요!”

그렇게 곧바로 욕실로 향하는 에린과 달리, 은현은 주방에서 손을 씻고 곧바로 테이블에 앉았다.

이윽고 거실의 분위기가 매우 밝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릴리의 기분도 매우 들뜬 듯 보였고, 준비하고 있는 요리의 가짓수도 평소보다 굉장히 다양하다.

“오늘 무슨 날이야?”

“음. 날이긴 하지.”

“후후.”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 일리아나나,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엘레노아도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어떤 좋은 소식이라도 접한 것일까.

은현은 일리아나의 옆에 놓인 상자를 발견했다.

“선물?”

정성스럽게 잘 포장된 상자를 발견하자마자, 일리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물 상자를 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은현의 바로 옆으로 다가와, 은현의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 두었다.

“나한테 주는 거야?”

“너한테는 아니야.”

“그럼?”

자신에게 주는 선물도 아닌데, 어째서 자신의 앞에 이 선물 상자를 두는 것일까.

느닷없는 아내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리아나의 얼굴이 어서 자신이 이 선물 상자를 개봉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얼굴이라는 것은 곧바로 눈치챘다.

“열어보라고?”

“응.”

일리아나는 대답이 떨어지자, 은현은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몰라 조심스레 상자의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이건…. 신발?”

그것도 자신이 신는 평범한 신발이 아니다.

일리아나를 비롯한 아내들이 신을 법한 신발도 아니었다.

아주 작은, 어린아이가 신을 법한 아담한 신발이다.

사용된 소재나 겉면에 정성스레 수놓아진 꽃무니의 아기용 신발을 상자 속에서 발견한 은현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리아나는 이 아기 신발을 도대체 누구에게 선물하려는 것일까.

세 아내가 들떠있는 듯한, 갑작스레 찾아온 경사를 축하하려는 분위기.

무엇을 축하하려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으로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때, 은현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일리아나. 너 설마…?”

“맞아.”

일리아나는 기쁨으로 가득한 미소지으며 은현의 추측을 긍정했다.

조용히 상체를 숙여, 은현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의 귓가에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나 이번 주에 생리인데. 생리가 안 오더라?”

“…….”

“엘레노아를 통해서 소개받은 실력 있는 의사한테서 확인도 받았어.”

사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은현에게 확인을 받는 것이 제일 확실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로 하고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에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 축하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지 꾹 참고 있었던 일리아나의 마음을 은현은 모른다.

“축하해. 너 이제 애 아빠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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