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65화 (448/730)

〈 465화 〉 465. 소영주의 결단(1)

* * *

사건의 시발점은 약 2개월 전.

“영주님도 어서 도망을 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렌디르 왕국의 수도가 있는 방향으로부터 티즈의 소영지를 방문한 한 상인의 조언이 시작이었다.

티즈의 영지는 외부에서 방문한 손님들이 머무를 수 있는 마땅한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인이나 모험가를 비롯한 손님들이 영지를 방문한다면 일정의 금액을 받고 초라하지만 그나마 나은 건물인 자신의 저택의 손님방을 내주는 식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티즈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상인도 항상 물건을 운반하면서 이 길을 자주 거쳐 가는 단골 같은 이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티즈에게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오?”

“후우….”

티즈는 상인의 조언에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상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수도에서 들은 소식으로는 왕국의 정세가 매우 좋지 못합니다.”

무릇 상인이란 정보를 빠르게 파악해야 이득을 취할 수 있기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 직업 중 하나.

항상 렌디르 왕국의 정세를 살피고 있던 상인은 렌디르 왕국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왕국 소속의 지방 영지들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것에는 어떠한 전조도 없이 너무나도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내란의 불씨는 점점 주위로 확산되어갔고 많은 인명피해를 낳는 결과가 되었다.

뒤늦게 왕국에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비롯한 대규모의 병력을 풀어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 대응은 이미 늦었다.

“죽은 사람들이 언데드가 되어 나타난 겁니다.”

“…….”

언데드라는 존재의 언급에 티즈도 얼굴을 굳혔다.

티즈는 언데드라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고 경험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이미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죽었음에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시체들.

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의 살점을 파먹기 위해 움직이는 시체들은 언데드라는 존재 중에서 가장 흔한 구울을 가리키는 묘사다.

“왕국 내부에서…언데드가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소리오?”

“그렇습니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티즈의 물음에 긍정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이 이 영지를 버리고 도망을 쳐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수도에는 에레니아 신성국에서 파견된 신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있지 않소.”

티즈가 섣부르게 결정을 내리기엔 이르다고 판단한 근거는 바로 언데드들의 천적이나 다름이 없는 베스타 신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렌디르 왕국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인은 티즈의 반박에도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것은 상인 또한 알고 있는 사실.

“…설마.”

“영주님의 짐작이 맞습니다. 렌디르 왕국 지부의 베스타 신전은 아마도….”

말끝을 흐리며 제대로 답하지는 못했지만, 상인의 어조와 표정, 태도에서 티즈는 이미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도대체…. 도대체 어째서…?”

왕국의 소속은 아니지만, 에레니아 신성국에서 파견된 신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 또한 매우 강력한 전력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정치적, 외교적으로 엮여있는 최중요 인력인 것만큼 렌디르 왕국 측에서도 그들을 최고 전력으로 호위할 것이 틀림이 없을 터다.

그런 베스타 신전의 전력을 도대체 누가 전멸을 시켰단 말인가.

“그가…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상인은 꼭 쥐고 있는 두 주먹에 힘을 실으며 티즈의 물음에 답했다.

“20년 전의 전쟁에서 제국과 연합군의 싸움을 종결시킨 여섯 영웅 중 한 사람이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 나라에서 귀족의 작위를 하사받았던 남자입니다.”

“…아.”

티즈는 작게 탄식했다.

레이넌 발트펠트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곧바로 이해했다.

“어째서 갑자기 그가…?”

그에 대한 소문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소영지에도 전해져 티즈의 귀에도 닿았었다.

평민의 신분으로 대륙을 평화로 이끈 업적을 인정받아 영웅으로 칭송받고, 끝에는 렌디르 왕국의 국왕으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하사받았던 레이넌의 종적은 어느새인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는 물론, 그의 가족과 그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 나라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렸던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왕국은 변함없는 일상을 맞이했다.

세간에서는 레이넌과 그 일가족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수히 많은 추측을 낳았지만, 아무도 그 추측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들도 레이넌과 그의 일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지워질까 봐.

머릿속 상상을 확신으로 만들어주는 근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레이넌이 약 15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상인의 이야기에 티즈는 침음했다.

“으음….”

정말로 그가 움직였다면, 렌디르 왕국 지부의 베스타 신전이 전멸했다는 것도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도 왕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 내란은…. 정말로 큰 혼란을 초래할 겁니다.”

티즈가 알고 있는 한으로도, 상인에게서 들은 이 이야기는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사건이다.

“영주님께서도 빨리 결단을 내리셔야겠지요.”

보잘것없는 작은 땅덩이에 불과한 이 영지는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는 취한다고 해서 전혀 매리트가 없는 곳이었지만, 이 영지 또한 렌디르 왕국의 영토에 속해 있는 땅.

혼란에 휩쓸릴 여지는 충분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티즈는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자신이 이 영지를 버리고 피난이라는 선택지를 고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지는 영주인 자신과 영민들의 노력으로 작물을 키워내어 삶을 이어나가는 특색 없는 영지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재산을 모두 가지고 피난을 선택한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티즈는 그 선택지를 고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영지에 속해 있는 영민들을 버릴 수가 없소. 그들은…내 가족이나 다름이 없소.”

차마 영민들을 버리고 혼자만 피난을 떠난다는 선택은 도저히 고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민들 모두를 설득하여 이 영지를 버리고 다 같이 피난한다는 선택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쥐꼬리만 한 재산으로 약 천 명이 넘는 영민들 모두를 먹여 살리며 피난을 이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영지는 티즈와 영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식량을 제공해주는 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우는 감옥이기도 했다.

“…그렇군요.”

상인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인가의 왕래를 통해서 티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해주기는 했지만, 그의 결정에 그저 안타깝다는 표정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갑작스레 산적들이 출몰하여 티즈의 소영지를 습격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나 다름이 없었다.

영지를 경비하는 인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규모의 영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보잘것없었다.

수도 적고, 착용한 장비의 질도 떨어지며, 경비 인원 개개인의 실력도 떨어진다.

“꺄아악!”

“살려줘! 살려줘!”

“영주니임!”

사람들의 비명과 활활 불타오르는 영지의 건물들.

너무나도 갑작스레, 전조도 없는 불행이 자신의 영지를 덮쳐온 것에 티즈는 당혹을 느낄 새도 없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영민들의 안전.

얼마 만에 잡아보는 것인지 모를 검을 들어 직접 경비병들을 지휘하여 산적들과 대항을 하던 와중 갑작스레 항전을 벌이던 산적의 머리가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건….”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했다기엔 너무나도 깔끔하고 빠른 일격으로 상대를 처리한 이 실력에 티즈는 행동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검은색의 옷과 복면으로 전신을 감추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는 검을 꽉 쥐었다.

“으, 아아악!”

“커헉!”

영지를 약탈하려던 산적들이 하나둘씩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산적들을 단 일격에 몰살시킨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혹시라도 자신을 공격해온다면, 영민을 공격한다면 자신의 실력으로 저 남자를 막을 수가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전력의 차이를 실감하여 두려움에 쥐고 있던 검을 떨고 있을 때.

갑작스레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검은색 복면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얼굴을 공개했다.

“……!”

티즈는 살짝 놀라며 검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복면을 벗고 스스로 얼굴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은 적어도 자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표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렌디르 왕국의 벨라스령의 영주, 티즈 벨라스 남작이 맞나?”

“…그렇소.”

“나는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흑랑단이라는 정보 길드의 마스터. 루난이다.”

“페르니아스…? 어째서 먼 타국에서 나를…?”

티즈는 당황했다.

평생을 가까이 이 영지에서 나가본 적이 없었던 자신이 먼 곳에 위치한 강대국의 누군가와 연결점이 있을 리가 없다.

“이걸 보여주면 알 거라고 하던데.”

“…아!”

루난이 품에 손을 집어넣어 꺼낸 물건을 확인한 티즈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이전에 릴리와 함께 자신의 영지를 방문했던 은현이 가지고 있던 휘장이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밝은 광채를 뿜어내는 금색의 휘장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

이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그가 릴리와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지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혹시라도 은현의 일행을 죽이고 빼앗을 가능성도 생각해보았지만, 자신과 은현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보잘것없는 타국의 먼 소영지를 찾아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차라리 은현이 직접 그 휘장을 건네고, 자신을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생각하는 쪽이 아귀가 훨씬 맞아떨어진다.

생각을 마친 티즈는 조용히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며 경계를 풀었다.

“이 영지를…. 나를…찾아온 것이 무엇이오?”

“너를, 그리고 너희 영지에 속한 영민들을 모두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내려온 하나의 구원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몇천 명의 사람들 전체를 구하는 구원.

“너에게 제안을 하도록 하지.”

“……?”

“이 영지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이 영지를 버리고 페르니아스 왕국의 아르미타스 공작령으로 피난할 것인지. 결정해라.”

티즈는 머릿속으로 루난의 제안에 대해 고민했다.

이미 영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상태다.

영지 내부의 건물들 일부는 이미 파괴되었고, 오랜 정성을 들여 키운 작물들은 화재로 이미 불타버려 그동안 공들인 시간이 허사로 돌아가 버렸다.

이곳에 있어도 자신을 비롯한 영민들이 조금씩 굶주림에 지쳐 아사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지만 이전에도 고민했던 것처럼, 천 명이 넘는 대규모의 인원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원을 통솔하는 역량이나 식량의 지원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하기 마련.

“참고로 피난을 하면서 필요한 식량을 비롯한 금전적인 지원은 모두 이쪽에서 대도록 하지.”

루난의 그 제안을 듣자마자, 티즈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것이 정말이오…?”

“이미 그걸 위한 재정적인 지원도 충분히 받은 상태로 왔다.”

이곳에서 페르니아스 왕국 영토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빨라도 족히 1~2개월은 넘게 걸릴 것이다.

그런 장기간 동안 필요한 재정적인 지원은 틀림없이 막대한 금액이 필요할 것이 틀림없다.

티즈는 완전히 자신들의 상황을 맞추어주며 전면적인 케어를 진행하겠다는 루난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제안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그 녀석은 너를 은인라고 했다. 그래서 너를 포함한 너의 영민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지.”

“…….”

티즈는 할 말을 잃었다.

릴리의 어머니를 보살펴주고, 임종을 지켜주었던 은혜를 언젠가 반드시 갚겠다는 은현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자신에 해주었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커다랗게 되돌려주는 은혜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넘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알겠소. 당신을 믿겠소. 부디…저와 영민들을 잘 부탁드리겠소.”

하지만 티즈는 그 제안을 거절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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