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6화 〉 456. 제자의 시련(2)
* * *
서걱!
‘…어째서?’
시에테는 의문을 품었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심장을 꿰뚫려도 자신을 대적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죽음을 맞이하고 약 5초의 시간이 흐른 뒤, 잘려나간 팔다리가 다시 이전의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은현이 칼날을 바닥에 박아넣어 몸을 지지하면서 일으킨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어째서 다시 일어나는 거냐.’
몇 번을 죽어도, 은현은 굴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만약 시에테의 전신이 그림자로 뒤덮여 있지 않았다면, 은현은 시에테의 일그러진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후…으.”
작게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자신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는 은현의 공격에 시에테는 다시 그의 기술을 맞받아치며 다시 한번 은현의 목숨을 빼앗았다.
서걱
공격을 피해내고, 그 품에 파고들어 가슴을 베어낸다.
살점을 파고들어 뼈를 가르고 깨끗이 잘려나가는 제자의 상체를 확인한 시에테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사람을 상처입히고 죽여, 목숨을 빼앗는 일에 대해서는 시에테도 딱히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키워낸 단 하나뿐인 유일한 제자를 몇십 번이고 죽이는 것이 제정신으로 가능할 리가 없었다.
시에테는 그래서 일부러 전력을 다해 은현을 몇 번이고 죽였다.
자신과 스승 사이의 확실한 전력의 차이를 깨닫고,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시련을 포기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더욱 혹독하게 은현을 대했다.
하지만 은현은 스승과 자신 사이의 그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를 실감하고도 계속 일어났다.
‘잘못 생각했구나.’
시에테는 뒤늦게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으….”
아직이라면서 다시 몸을 일으키며 검을 꽉 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현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뒤늦게 생전의 자신에게 검을 배웠던 20살 때의 은현을 떠올렸다.
손바닥의 물집이 다 터지면서도 검을 놓지 않았던, 똑같은 동작을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반복하면서도 전혀 불만이나 싫증을 한 번도 내지 않으며 꿋꿋하게 단련을 이어나갔던 제자의 모습.
무슨 일이 있어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다시 일어나는 남자가 은현이다.
‘이놈은 절대로 포기할 놈이 아니었지.’
시에테가 간과하지 못했던 것은 은현을 평범한 인간들과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심장을 관통당하고, 목이 베어지는 고통을 수십 번이고 겪는 것에 버틸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온몸을 난자당하는 그 고통에 제정신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당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시에테는 은현이 그 고통에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더는 시련을 이어나가지 못하겠다고 포기하도록 강하게 압박했다.
이 미친 시련을 끝냄으로써, 그것이 은현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에테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방금 그 공격에서는….”
무의식중으로 중얼거리는 은현의 목소리가 새까만 그림자로 뒤덮인 시에테에게도 정확히 들려왔다.
포기하기는커녕 자신의 행동과 기술을 분석하고 정답에 가까운 행동을 찾으며, 어떻게 하면 스승인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심하는 은현의 모습에 질린다는 생각까지 품었다.
은현은 지금, 이 순간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승의 기술을 재현하는 잔재와 직면하게 되면서 검을 겨루고, 자신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회.
그 과정이 몇십 번이나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제정신이 아닌 수법이라는 것이나, 그림자로 뒤덮인 시에테의 인영이 사실은 시에테 본인이었다는 것을 간과하지 못했다는 점이 정말로 최악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시에테가 간과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 시련에 임하는 존재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은현이었다는 것이다.
카아앙!
생각을 마친 은현이 다시 돌진하여 손에 꽉 쥐고 있던 검을 시에테에게 휘둘러왔다.
‘달라졌다.’
속도나 힘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이 아니다.
동작의 흐름이 더욱 깔끔해지고 유려해졌다.
그것은 시에테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스승이었던 자신의 기술을 재현해내기 위한 은현의 나름의 해답이었다.
매서운 검격을 맞받아치며, 시에테는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현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에테는 몇 번이고 제자를 죽여야 하는 최악의 기분을 꾹 참아내며, 은현의 마음에 보답하는 것으로.
현재 은현의 수준으로는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몇십 번의 죽음을 반복하면서, 그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네 놈이 직성이 풀릴 때까지. 한번 해봐라.’
설령 죽음을 반복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저 고집을 누가 꺾을 수가 있을까.
의사소통 따위는 전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스승과 제자의 사이에서 포기를 선택한 것은 스승 쪽이다.
제자를 죽여야 하는 기분의 더러움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시에테는 그보다 더욱 우선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끝까지 어울려주마.’
이 시련에 임하고 있는 은현의 검술이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
그것을 위해서 시에테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계속해서 은현을 상대하며 압도하는 역할이었다.
진즉에 횟수를 세는 것조차 포기했지만, 그 횟수가 세자릿수를 초과했다는 것은 시에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시에테는 은현과의 교전을 멈추지 않았다.
은현이 포기하지 않는 한, 시에테 또한 끝까지 어울려주리라 스스로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현의 기술과 감각이 죽음을 거듭할 때마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여 날카로워지던 차.
‘……!’
자신의 연격을 예상한 은현이 모조리 쳐내며 대응하는 은현의 움직임에 시에테는 알 수 없은 위압감을 느꼈다.
훌륭하게 자신의 공격을 대처하기 시작한 그 모습에 고민을 품는다.
‘져줘야 하나?’
틀림없이 은현은 성장했고, 더 이 미친 짓을 반복했다가는 은현의 정신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시에테로서도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패배를 유도했다고 해서, 은현이 이 시련을 클리어한 것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이것은 신격을 갖추기 위한 은현의 시련이며, 이 시련을 부과한 상대는 자신에게 은혜를 입힌 신들의 위에 있는 도데카테온의 왕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신이다.
어쭙잖은 꼼수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한 시에테는 확실히 결정짓기 위해서 은현을 봐주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날카로움을 겸비한 검격의 연속으로 끈질기에 시에테의 검에 따라 붙어왔던 은현은 또 한 번 시에테의 검에 검을 쥐고 있던 팔과 상반신이 통째로 베어졌다.
절단되어 허무하게 바닥으로 툭 떨어진 상체의 주인인 은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그 중얼거림을 들은 시에테는 행동을 멈추며 은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느낀 고통으로부터 꾹 참아냈던 정신이 마침내 무너져가는 얼굴을 보고, 시에테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시련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짓은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죽어버린 과거의 잔재로 이루어진 환영의 행세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여기서 포기해라. 일어나지 마.’
그것은 점점 피폐해져 가는 은현의 정신을 걱정한 시에테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 시련을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은현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영혼으로 명계에 잔류할 수 있게 된 권리를 획득한 자신은 지금처럼 시련의 형태를 빌린 상황을 마련하여 은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재 몇몇 다수의 신이 은현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의를 품고 있다는 근거에서 나온 반쯤 담겨 있는 확신이었다.
굳이 이 시련이 아니더라도, 은현의 성장은 앞으로도 이 신계에서 자신이 도와줄 기회가 충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 이 미친 시련을 끝내고, 피폐해진 정신에 휴식을 취하라고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은현은 그런 시에테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내 한계….”
검으로 절단되어 상체만이 남은 은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쿨…럭!”
피를 토하면서도 그의 눈은 흐릿해지기는커녕 어떠한 해답을 찾았다는 듯 몸을 뒤척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몸이 원상태로 돌아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은현의 모습에, 시에테는 예상했다는 듯 자신의 검을 꽉 쥐었다.
‘미련한 녀석.’
정신이 무너질 뻔하면서도 꿋꿋하게 몸을 일으키며 다시 시련에 임하려는 은현의 행동은 굉장히 미련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제자의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죽음을 거듭할수록 성장을 하고 있으며 그 횟수가 수백을 넘어갔다는 것은 은현이 가지고 있는 불굴의 정신력은 시에테도 존경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이다.
이윽고 은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 딱 199번째인가….”
그 중얼거림을 들은 시에테는 살짝 마음이 불편해졌다.
‘미X 놈이 그걸 다 세고 있었구나.’
그것은 자신이 은현을 죽인 횟수였다.
“200번을 채울 수는 없지.”
‘…….’
미소지으며 중얼거리는 은현의 얼굴이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흐려진 동공의 초점은 당장이라도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는데, 지금의 은현은 왠지 모르게 생기가 돌았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위화감으로 가득했지만, 검을 쥐고 자세를 잡는 은현의 행동에 맞추어, 시에테 또한 자세를 잡았다.
카아앙!
이윽고 두 자루의 검이 충돌함과 동시에, 시에테는 달라진 은현의 변화에 살짝 몸을 떨었다.
‘이건….’
지금까지의 은현이 아니다.
외관은 틀림없이 자신의 제자가 맞았지만, 그가 선보인 검술은 지금까지와는 숙련과 완성도 자체가 틀렸다.
마치 지금이 아닌 미래의 은현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와 검을 겨루고 있는 것만 같은 위화감.
단 한 번의 검격을 주고 받았을 뿐인데도, 그 차이는 현격히 드러났다.
시에테는 은현의 몸속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확신을 품었다.
카아앙!
이윽고 자신의 연격을 막아내는 은현의 움직임을 깨부수기 위해, 더욱 빠르게, 더욱 날카롭게 공격을 퍼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 확신을 빠르게 뒤로 밀어내며 시에테의 가슴을 가득히 채우기 시작하는 감정은 검사로서의 호승심이다.
회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공격을 모조리 쳐내고 급소를 노리는 반격을 하고, 검과 검이 수십 번을 부딪치며 충격의 여파를 만들어내는 기술의 향연이 계속 이어졌다.
몇초에 불과한 시간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급작스레 향상된 은현의 검술에 시에테는 마음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즐겁다.’
생전, 인간들 사이에서는 자신에게 검으로 대적할 수 있는 실력자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수준을 더욱 높일 수 있는 호적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에테의 입장에서는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 안타까운 사실.
은현이 어떠한 수단으로 검술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는지, 그가 자신의 제자라는 것 등,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더, 더 나와 검을.’
검을 맞부딪치고,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전력을 다하는 자신의 무(?)를 부딪칠 수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쁜 순간이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자신과 검술을 부딪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제자가 아닌, 자신의 호적수였다.
시에테는 갑작스레 성장한 은현의 검술에 어떠한 빛을 발견했다.
‘너는 찾아냈구나.’
검술의 완성이라는 그 끝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냈으리라.
시에테는 생각했다.
‘나도. 나에게도. 그 경지를 보여봐라. 그리고….’
자신도 그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인간의 두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잔상을 남기며 서로 교환하는 무수한 검격을 주고받던 도중, 시에테와 은현은 동시에 뒤로 몸을 빼며 서로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이윽고 자세와 정신을 가다듬으며 모든 힘을 검에 집중시켰다.
서로가 쌓아왔던 노력과 시간, 정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오의가 부딪친다.
두 검이 맞부딪치면서 승리한 것은 은현이다.
그림자로 뒤덮여 있던 시에테의 칼날이 은현의 검에 맞부딪치면서 두동강이 나며 부러진 칼날이 하늘을 날았다.
높게 날아오른 시에테의 검날이 포물선을 그리며 새하얀 바닥에 박히자.
쩌저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공간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시련을 은현이 통과를 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또한 결과적으로는 이 순간 은현이 시에테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유피테르가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난 건….”
주변의 상황을 인식한 은현이 많은 감정이 교차하며 작게 탄식하면서 중얼거리던 차.
“성장했구나.”
“……!”
시련이 종료됨과 동시에, 뒤덮여 있던 그림자가 해방되어 은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시에테가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는 다시는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아주 그리운 스승의 목소리에 어깨를 떨었던 은현은 시련에 임하면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동요를 흔들리는 눈동자로 표현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지으며, 은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스…승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