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55화 (438/730)

〈 455화 〉 455. 제자의 시련(1)

* * *

메디아에 의해 영혼을 구속당하고, 데스나이트로서 망령의 존재로 혹사당했던 시에테는 은현과의 교전 이후 영혼의 구속이 풀려 제대로 명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시에테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었다.

사령술사에게 영혼을 종속당하여 죽어서도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농락을 당해야 했던 그 경험은, 시에테에게 있어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끔찍한 경험 속에서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점은.

‘널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자신이 마지막까지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제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남들이 열 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때, 한 걸음밖에 내딛지 못했던 둔한 제자는 자신이 죽은 이후로도 계속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제대로 성장한 제자의 모습을 확인한 시에테는 안도했다.

재능은 정말로 없었지만,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노력으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제자의 모습은 정말로 눈이 부셨다.

그렇기에 데스나이트로 전락해버린 망령의 몸으로 시에테는 은현과 검을 겨루었다.

조금이라도, 제자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도록.

시에테는 그렇게 만족스럽게 은현의 검에 의해서 소멸할 수 있었다.

은현에게 구원을 받아 시에테의 영혼이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명계(??)’였다.

망자들의 혼이 떠돌아 머무르는 장소이며, 생전의 과업에 대한 평가를 받아 형벌이나 다음 생의 축복을 부여받는 등의 판결을 부여받는 장소.

시에테는 애초부터 자신이 지옥 같은 형벌에 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예상대로 끔찍한 형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시에테의 받은 혜택은 매우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순수한 덕을 쌓은 선인(?人)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혼의 윤회를 거쳐 환생하게 됩니다.]

명계의 관리를 맡은 남신, 플루토를 대신해서 시에테의 형벌을 직접 결정한 것은 프로세르피나였다.

프로세르피나가 시에테에게 부여한 판결은 다른 인간들과 같은 영혼의 윤회를 거친 환생이 아니었다.

[그대에게 선택권을 드리도록 하죠.]

강제적인 지옥행인지, 환생을 부여하는 천국행인지의 판결을 결정하는 관리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판결을 기다리는 개인에 대한 존중의 의사를 표시하는 이 상황은 시에테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신계와 명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다.

[환생의 판결을 부여받아 윤회하게 된다면, 그대는 생전의 기억을 잃게 되고, 인간으로서 다시 한번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제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선택권은 하나입니다. 이 환생의 판결을 받아들일지 말지 입니다.]

일반적으로 명계에 도달한 인간의 영혼에게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옥행과 천국행을 결정하는 것은 명계의 관리자들이자, 왕과 여왕인 플루토와 프로세르피나의 고유 권한이며, 이 판결은 절대적인 강제력을 자랑한다.

그만큼 시에테에게 예정된 판결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제안을 들은 시에테는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특혜가 주어지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일단 머릿속에 생겨난 의문에 관해 물었다.

[무엇인가요.]

“어째서 저에게 이런 특혜를 주시는 겁니까?”

당연히 그 질문이 들어올 줄 알고 있었던 프로세르피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대의 공로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공로입니까?”

시에테는 이해할 수 없는 여신의 답변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 프로세르피나가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 말을 이었다.

[먼저, 첫 번째, 그대는 400년 전, 생전에 상위의 악마들을 처리하며 하계에서 많은 인간을 구하고 덕을 쌓았습니다.]

“…….”

시에테는 굳이 여신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접근하여 싸움을 걸었던 악마들을 죽였던 것은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본인이 적극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구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대로 두었다면 많은 인간을 학살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였던 악마들을 처치한 것만으로도 그 공로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죽어서도 명계로 오지 못하고 악한 초월자의 간섭으로 인해, 그대의 영혼이 겪어야 했던 그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한 위로와 보상 때문이죠.]

죽은 자신의 영혼이 악마에게 넘어가, 최종적으로 메디아에게 귀속 당하여 데스나이트로 만들어진 그녀의 신세는 참담했다.

그저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죽음 이후에도 비참한 경험과 고통 속에서 영혼을 혹사당했던 그녀에게 프로세르피나가 보내오는 작은 배려였다.

“…그렇군요.”

시에테는 이해할 수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보다, 생후의 시간이 더욱 길었고, 그 시간 속에서 경험했던 것들은 정말로 지옥에 온 것만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고통을 위로해주는 여신의 작은 배려에 정말로 고마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또 있습니까?”

당연하다는 듯 프로세르피나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키워낸 제자가 아주 큰 공로를 쌓고 있기 때문이죠. 그대가 죽은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

시에테는 얼굴을 굳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제자는 단 한 명밖에 없다.

곧바로 은현의 얼굴을 떠올리고 프로세르피나에게 물었다.

“그 녀석이…말입니까?”

[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시에테의 얼굴을 보며, 프로세르피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대는 그대의 제자에 대한 ‘비밀’을 모르고 계셨나요?]

“…정확히는 몰랐습니다.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은현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시에테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신의 사도라거나, 여신의 권능 같은 개념은 설명을 해줘도 믿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말로 굳이 설명해주지 않았음에도, ‘시간 가속’이나 ‘사고 가속’을 사용하여 훈련에 적용하면서 경험을 쌓아나가거나, 성장에 대해 광적인 집착과 사명감을 보이는 은현의 모습으로 추측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뭘…?”

[지금도 하계에서 많은 일을 해주고 있죠. 그리고 저희 신계에서도 앞으로도 주목하고 있는 인간이기도 하고요.]

“…….”

자신이 가르쳤던 그 제자가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스승인 시에테에게는 아주 기쁜 소식이지만, 그것으로 혜택을 본다는 것은 조금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건 그 녀석이 쌓은 공입니다. 제가 인정받을 공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의 제자에게는 따로 그 공로를 인정하여 보상했습니다.]

이미 프로세르피나는 남편인 플루토와의 상의 끝에 코르누코피아라는 신의 무구를 은현에게 하사했다.

[이것은 막대한 업적은 세운, 그대가 키워낸 제자의 시작점을 만들어 낸, 그대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렇기에 시에테에게 프로세르피나는 이례적으로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

시에테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자신을 칭찬하는 것보다, 자신이 키워낸 제자에 대해 아낌없는 상찬을 쏟아붓는 여신의 말은 시에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마음속 무언가가 가득히 벅차오르는 그 느낌은 생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근지러운 감정이다.

마치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엄청 많은 칭찬을 받았을 때 부모가 느끼는 기분과도 같다.

시에테는 그 복잡한 감정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는 시선을 피했다.

[후후.]

그녀의 나름대로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그 행동에 프로세르피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시에테는 어떻게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프로세르피나에게 물었다.

“그 천국행이라는 판결을 거부한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대의 영혼이 명계에 남아 잔류하게 되겠죠.]

“…….”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던 시에테는 조용히 프로세르피나의 추가적인 말을 기다렸다.

[그대의 소원은 검술을 단련하여 그 끝을 보고 싶은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제안하는 겁니다.]

“아.”

시에테는 작게 탄식했다.

자신의 소원에, 기억을 잃고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프로세르피나는 자신에게 환생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환생을 포기하고 명계에 잔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프로세르피나가 한 제안의 의미를 깨달았다.

“명계에서…검을 수련할 수 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

시에테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영혼은 이곳에서 기억을 잃지도 않고 평생을 검을 연마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검의 끝을 추구하여 검술의 완성을 바라보는 것이 꿈인 시에테에게 있어, 프로세르피나의 제안은 정말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제안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시에테는 프로세르피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가늠할 수 없는, 독립된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는 명계에 잔류하여, 한층 더 높은 수준을 향해 바라보며 수련을 이어나가던 도중.

프로세르피나가 또 한 번 시에테를 소환했다.

[조만간 그대의 제자가 시련을 받게 됩니다. 그대에게도 도움을 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시에테는 프로세르피나의 부탁을 당연히 승낙했다.

자신에게 기억을 잃고 인간으로 환생시키지 않고, 계속 검을 연마할 기회를 부여해준 프로세르피나에게는 은혜를 느끼고 있었으며, 자신을 데스나이트라는 저주와 같은 사령술의 종속에서 해방해준 은현에게도 같은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시련 속에서, 그대는 과거의 잔재로 이루어진 환상으로서 취급이 될 겁니다.]

전신은 그림자가 뒤덮이고, 시에테의 손에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칼날이 쥐어졌다.

‘…제정신이 아니군.’

시에테는 시련의 내용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은현에게 부여된 시련의 클리어 조건은 시에테 자신을 뛰어넘는 것.

하지만 이 시련이 특별한 점은 아무리 죽음을 반복하더라도, 은현이 시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 번을, 백번을 죽더라도 은현이 이 시련을 이어나가기를 원한다면, 시련은 끝나지 않는다.

이 시련 속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죽음을 반복해야만 하는 은현이었지만, 자신의 유일한 제자를 몇십 번이고 죽여야 하는 시에테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설…마….”

시에테는 맞은 편에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몸을 굳히고 있는 은현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어떻게 그의 목을 그을 수가 있을까.

은현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림자로 뒤덮여 환영의 행세를 하는 시에테의 모습을 확인하고 멍한 표정을 짓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세 번째 시련이라는 게…. 젠장….”

시에테는 곧바로 은현에게 돌진했다.

“…크윽!?”

은현은 당황하며 몸을 뒤로 빼고 급하게 창을 휘둘러 시에테에게 대항했지만, 시에테는 그 당황한 공격에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시에테 검성술]

[매화참선(?花??)]

허무하게 창대를 쥐고 있던 자신의 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한 은현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젠…장!”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기를 시도하는 은현에게 집요하게 따라붙고, 은현의 왼쪽 가슴에 칼날을 박아넣었다.

“크…윽!”

시에테가 검을 뽑고 뒤로 물러서자, 은현의 몸이 힘이 탁 풀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천천히 목숨이 끊어져 죽음을 맞이한 시간이 약 5초가 지났을 때.

“흐읍!?”

바닥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던 은현이 숨을 들이켜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파악한 은현은 이 시련의 클리어 조건을 깨달은 듯 얼굴을 굳혔다.

굳어 있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은현이 중얼거렸다.

“…좋습니다. 그 도발 넘어 가드리죠.”

시에테는 그것이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 시련을 은현에게 부과한 어떠한 신에게 한 말이었을 터.

상황의 파악을 마치고 전의를 불태우는 은현을 보고, 시에테는 생각했다.

‘차라리 빨리 포기해라.’

은현의 실력은 데스나이트가 되어 그와 맞닥뜨렸을 때 잘 알았다.

성장하기는 했지만, 망령의 기사로 종속되어 있던 그때와는 또 조건이 틀리다.

은현은 아직 자신을 이길 수 있을 정도까지는 성장하지 못했다.

시에테는 차라리 스스로 이 시련을 포기해주기를 바랬다.

자신의 유일한 제자를 죽이는 이 경험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는 최악의 기분이다.

차라리 은현이 시에테와 본인의 격차를 자각해주고,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이 시련을 포기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은현은 포기라는 그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시에테는 순간 이 시련에 임하는 은현의 얼굴을 보고, 작게 몸을 떨었다.

‘…웃어?’

은현은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시련을 기회라고 생각이라도 하듯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