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 452. 스승의 그림자(3)
* * *
197번째.
시에테의 그림자가 그은 일섬이 은현의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리까지를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냈다.
“…….”
이제는 비명이나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전신을 칼로 난자당하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그 고통에 이빨을 까득 깨물며 참아내고 은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다.
‘내가 카운터를 날리면 거리를 벌렸다가 곧바로 오른쪽 어깨를 베고 들어온다.’
‘다음에는 반드시.’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치켜뜨는 은현은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시에테의 그림자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자신을 죽이자마자 마무리로 검을 회수하는 그 동작의 한순간까지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은현이 죽은 숫자는 총 197번으로 곧 200번에 달하는 경악스러운 숫자다.
고통으로 인해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정신을 꽉 부여잡고 시에테의 그림자가 사용한 기술과 공격 패턴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은 우선시했다.
‘다시 한번.’
정확히 잰 타이밍으로 5초라는 시간이 흐른 뒤.
은현은 또 한 번 시에테의 그림자와 교전을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선공이다.’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은현에게 주어진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자신이 공격하는지, 방어하는지.
그 두 갈래로 나누어진 선택지의 이후, 연속되는 무수히 많은 공격 패턴들의 연속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아 무수히 뻗어 나간 뿌리와도 같다.
카아앙!
굉음과 충격의 여파로 공기가 떨리면서, 계속해서 은현과 시에테의 공격이 서로 충돌했다.
‘카운터가 온다.’
[시에테 검성술]
[매화참선(?花??)]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오는 매서운 카운터의 일격.
하지만 은현은 이 타이밍에 시에테의 그림자가 자신의 품에 파고들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카운터에 몇 번이고 심장과 목을 꿰뚫리고 목숨을 잃었다.
죽음을 통해서 쌓아 올린 그 경험은 이제는 은현에게 시에테의 검술에 대한 ‘동작의 이해’를 가져다주었고 기술을 간파하여 대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약 5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초반에 비해, 교전의 지속시간은 현격히 늘어났다.
그것은 은현이 시에테의 기술들을 모두 이해하고 파악하여, 대응해나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은현은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카아앙!
은현은 곧바로 검을 회수하여, 심장을 관통하기 위해 찔러 들어오는 매서운 일격 쳐냈다.
그림자의 검은 칼날이 은현의 ‘패링’으로인해 허공으로 튕겨 나가면서 시에테의 그림자가 일순 무방비의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그 순간을 은현은 놓치지 않았다.
[시에테 검성술]
[매화참선(?花??)]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기술의 재현이었지만, 이번에는 공수의 주체가 다르다.
몇 번이고 당했던 기술을 시에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선보였던 것처럼, 몇 번의 죽음을 통해서 학습을 반복한 은현은 같은 타이밍에 시에테의 기술을 똑같이 재현해냈다.
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자부했었던 은현은 자신의 카운터 기술이 먹힐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카아앙!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시에테의 그림자는 간단하게 은현의 카운터 공격을 막아냈다.
자신에게도 가능했던 이 대응이, 시에테의 무위가 그대로 재현된 그녀의 그림자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은현은 전혀 낙담하거나 짜증을 느끼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 패턴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도 없다.
[시에테 검성술]
[환상검무(????)]
숨을 제대로 쉴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 붙여오는 맹공의 연속은 동작의 연결이 매우 깨끗하고 한없이 유려한 곡선을 자랑했다.
초반의 약 10번은 이 연속의 검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려나간 경험도 허다했다.
하지만 그 참담한 죽음의 연속 속에서, 은현은 자신을 압도하고 있는 그 기술을 재현했다.
[시에테 검성술]
[환상검무(????)]
카아앙!
은현은 그림자의 그 맹공의 연속을 모조리 파훼하며 대응해나갔다.
은현과 시에테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잔상들이 서로 부딪치며 굉음을 연발한다.
‘더 빠르게.’
똑같은 기술의 발동이라도, 더 빠른 쪽이, 더 정교한 완성도를 보이는 쪽이 우세를 점하는 싸움에서, 스승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은현은 사고의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여신의 권능으로 발현된 ‘사고 가속’의 사용을 금지당해 머릿속은 이미 무수히 많은 양의 정보를 수용하고 처리하는 것으로 벅차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은현은 자신이 선보인 기술의 부족함을 느꼈다.
‘더 정확하게.’
일체된 동작의 연속으로, 스승이 보여준 검무처럼 유려하고 정교하게.
조급해하지 않고 기술의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나갔다.
‘대단해.’
자신의 성장을 체감하고, 시에테의 기술은 재현하면 할수록, 은현은 감탄했다.
점점 앞으로 걸어 나갈 때마다,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을 터인 시에테의 뒷모습을 쫓아가면 갈수록, 그녀가 이룩한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속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품으며, 이 감정을 자신의 기술 속에 담아내어 펼쳤다.
비록 자신과 교전을 펼치고 있는 존재가, 자신의 과거 속에 존재하는 잔재로 재현된 환상일지라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두 기술이 충돌하는 연속 속에서 먼저 기술이 깨져버린 것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졌던 은현 쪽이었다.
서걱
검격이 서로 충돌하면 충돌할수록, 공격의 연속 동장에서 완성도의 차이가 벌어져 버린 은현의 검이 그림자의 검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튕겨졌다.
매섭게 자신의 팔을 자르고, 그대로 심장과 함께 상체를 절단시키는 그림자의 공격으로 은현은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했다.
‘…아쉽다.’
이번 트라이에서 은현은 정말로 오랜만에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품었다.
정말로 끈질기게 끝의 끝까지 따라붙었던 이번 트라이는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결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라는 감정을 품기도 했다.
정말로 기대를 했던 한순간이 무너져내리자 강렬한 탈력감이 몸과 마음을 덮쳐왔다.
“젠…장.”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은현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꾹 참아왔던 감정의 둑이 갑작스레 무너져, 수백 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미치기 일보 직전의 정신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자신은 틀림없이 한걸음, 한걸음 성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성장하면 할수록 자신과 시에테의 잔재 사이의 격차를 더욱 실감하게 되고 있었다.
은현은 자신의 검술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내가 정말로 시에테의 뒤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을 품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저 경지에 발을 들이밀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애써 외면해왔던 그 사실들이 은현을 덮쳐와 그의 정신을 괴롭혔다.
“크으….”
절단되어 가슴팍 위로만 남은 은현의 상체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금껏 꾹 참아왔던 수백 번의 죽음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과하여 그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나는…안 되는 걸까….”
이렇게 노력을 하고, 이렇게 죽음을 반복하면서도, 자신과 시에테 사이의 격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여신의 사도가 되어, 부여받은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순수한 인간의 기술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싸움이 시작되자, 은현이라는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정말 싫다….”
재능이 없었던 범인의 한계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깰 수 없다는 현실의 쓴맛을 다시 한번 맛보며 은현은 198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천천히 숨이 끊어져 가면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던 은현은 처음으로 주마등이라는 것을 회상했다.
◆ ◆ ◆
카아앙!
“크윽!”
은현의 검이 시에테의 검과 충돌하면서 위로 튕겨 나갔다.
막대한 충격으로 인해 은현이 검을 놓쳐버리자, 은현의 검이 허공 위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시에테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은현의 체력을 가늠하고는 더는 훈련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아직…더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몸 상태나 제대로 관리하고 그런 소리를 해라.”
시에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은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한계의 한계까지 몰아 붙여져 탈진하기 직전은 은현을 상대로 더 훈련을 이어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네.”
고개를 떨구며 마당에 박혀 있는 검을 회수하러 발걸음을 옮기는 은현의 뒷모습을 보며, 시에테는 생각에 잠겼다.
‘재능은 없는데….’
은현은 검에 대해 이렇다 할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서 체술을 배우기는 했다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검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아주 느렸다.
제자를 들여 키워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누군가와 비교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은현의 성장 속도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느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깝구나.’
시에테는 속으로 탄식했다.
재능은 없지만, 스스로 어떠한 목표를 위해서 자기 단련을 멈추지 않는 저 집념과 광기는 진짜였다.
저토록 강하게 본인의 성장과 강력한 무(?)를 추구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은현의 몸과 재능은 은현의 몸을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축복받지 못한 자신의 재능을 원망하지도 않으며 꿋꿋하게 훈련에 임한다.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움의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시선으로, 시에테는 은현의 모습을 관찰했다.
이윽고 은현과 집으로 들어가 몸을 씻고, 은현이 차려놓은 저녁을 먹으면서 시에테는 은현과 훈련이나 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굳이 나의 검을 완벽히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은현은 시에테의 조언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와 나는 조건부터가 다르지. 그것은 경험이나 수준의 차이부터, 성별이나 신체적인 차이까지 많은 게 다르다.”
“…네.”
은현은 시에테의 설명을 들으며 진지한 얼굴로 곧이곧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검술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나의 검을 견본으로 보되, 나의 모습을 통해서 너에게 알맞고 적합한 너만의 검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다.”
시에테는 은현에게 애써 자신의 검술을 계승시키는 훈련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보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완벽한 검술의 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자를 들여 자신이 이룩해낸 경지와 검술, 이것에 담긴 내력과 역사를 계승시키고 후세에 전하는 것 등의 욕심은 시에테에게는 없었다.
“너의 목표는 나를 따라잡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그거야…. 스승님이 저에게 검을 가르쳐주고 계시니까요.”
정말로 과분한 생각이었지만, 은현은 언젠가 그녀의 발끝에라도 미칠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그 노력과 마음가짐은 정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는 기특하지만, 시에테의 관점에서 그 생각은 옳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검이라는 것은, 무(?)라는 것은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연마하는 것이 아니지.”
은현에게는 꼭 복수하고 싶은 악마라는 명확한 대상이 존재하며 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검을 연마하고 있지만, 시에테에게 있어 검술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연마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검술은 나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검술이라는 것의 끝에 존재하는 그 경지를 보기 위해서, 검술의 완성을 추구한다.
“그럼 저는….”
“네 생각과 그 목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 그것이 네가 성장하고 싶어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면, 그것 또한 올바르다. 하지만….”
시에테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은현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전했다.
“성장하고 싶다면, 네 목표는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부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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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계….”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어째서 과거 스승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는지는, 은현 본인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떠올린 시에테의 조언은 은현의 머릿속에 어떠한 ‘목표’라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은현은 무의식적으로 제한당하지 않았던 자신의 권능인 ‘역사를 재현하는 신의 열쇠’를 사용했다.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
생각을 마친 은현은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역사를 재현하는 신의 열쇠]
[소환, 검성 은현]
소환시키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아닌, 미래의 역사.
은현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에테와 같은 경지에 있을, 미래의 기억을 찾아내어 자신의 육체 속에 강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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