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8화 〉 448. 부여 받은 시련(4)
* * *
[일단은 물어보겠는데. 제대로 된 방법은 있는 거지?]
일단 허락을 하긴 했지만, 은현에 대한 브류나크의 불신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나 또 그 X나 아픈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아스타로스를 공격할 때마다, 그 소멸의 겁화에 불태워져 창대가 소멸했던 경험은 부활한지 얼마 되지 않은 브류나크의 입장에서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전신이 불태워지는 격통은 인간의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기’라도 느낄 수가 있다.
날이 부러지고, 자신의 몸이나 다름이 없는 창대가 으스러지는 그 격통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고통이다.
스스로의 목숨보다, 적의 처단을 우선하여 그 선택을 내리긴 했지만, 브류나크는 그 고통을 다시 한번 겪고 싶지는 않았다.
“당연히 생각해둔 방법이 있지. 나만 믿어.”
[저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굉장히 짜증 나는데….]
적어도 400년 전의 은현은 저렇지 않았다.
[어라?]
하지만 그 불안과 달리, 브류나크는 은현의 손에서 자신의 창대를 향해 흘러들어오는 신성의 기운을 느끼고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건….]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강한 기운이 창대의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는 감각에 신비로운 기분을 느꼈다.
평범한 인간의 기운이 아니다.
부활하면서 고대 마수를 향해 투창을 던졌을 때, 자신의 몸을 감쌌던 그 기운은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냐? 이 힘?]
“신력.”
[…신력?]
“넌 알잖아. 내가 누구를 모시며 어떤 사명으로 활동하고 있었는지.”
[…미X 놈.]
브류나크는 은현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그가 지구에서 해왔던 많은 노력과 활동들은 모두 여신의 사도와 부여받은 사명으로 해왔던 일들이다.
그런 은현이 스스로 신력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은 신의 사도가 아닌 신으로서 격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그가 받는 현재의 이 상황, 시련의 의미 또한 이해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신까지 되려는 거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어쩌다 보니 될 수가 있는 거냐? 진짜 어이가 없네.]
“음, 진짜로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데.”
비아냥거리는 브류나크의 발언에 은현은 쓴웃음을 대꾸하며 마땅히 돌려줄 말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이 우연하게도 반신의 격을 갖추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불카누스와 미네르바가 하사해준 신의 무구가 정말 큰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제일 많은 노력을 해주었던 건 다름 아닌 베르단디다.
“이번에 꼭 보답하고 싶은 분이 계시거든.”
자신을 되살리기 위해 일곱 여신을 설득하고 지금까지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베르단디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시련은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럼 시작한다.”
[…그래라.]
마음의 준비를 마친 브류나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은현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하체에 힘을 실어 뒤흔들리는 대지 위를 밟고 있는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신력의 힘을 꾹꾹 눌러 담은 브류나크를 하늘 위에서 날뛰고 있는 레드 드래곤을 향해 조준한다.
[하하하하!]
제공권을 완전히 휘어잡고 지면을 완전히 쓸어버리고 있는 저 미친 악마를 붙잡기 위해서는, 먼저 땅에 떨어트릴 필요가 있다.
[크…으!]
한계의 한계까지 주입되어 짓누르는 압박감에 브류나크는 신음하며 창대를 부르르 떨었다.
‘뭐 얼마나 강해진 거야…! 이 자식!’
이 밀도와 신성은 정말로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경악을 하면서도 순전히 자존심이라는 유치한 감정 때문에 은현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이 소멸한 사이에, 은현이 성장한 결과 그 자체다.
이 정도도 버틸 수 없다면, 자신은 그의 파트너이자, 무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신창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자존심에 굉장히 상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흥! 이것쯤 버텨주지!’
브류나크는 무기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고,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브류나크는 자신의 본질이 무기라는 것을 잘 자각하고 있었다.
무기는 자신을 사용하는 주인의 요망에 따라, 주인의 적을 섬멸하는 것.
설령 자신의 몸이 으스러지며 무기로서 역할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더라도, 그렇게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사용되는 것이 자신이다.
그렇기에 아스타로스를 죽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격통을 참아내며 기꺼이 소멸하는 것을 선택했다.
말투가 거칠고 천박한 표현을 일삼는 브류나크지만, 이 창은 과거에서나 지금이나 언제나 은현의 파트너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윽고 은현이 마침내 조준을 마친 레드 드래곤을 향해 브류나크를 던졌다.
[브류나크 창술]
[껍질 꿰뚫기]
막대한 신력을 품어 폭발할 것만 같은 위력을 지닌 은색으로 뒤덮인 신창(??)이 은현의 손을 떠나 직선상으로 하늘을 날았다.
맹렬히 하늘을 가르며 레드 드래곤을 향해 정확히 날아가고 있는 그 광경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에 반대되는 듯한 한줄기의 유성과도 같다.
[음!?]
크륵!?
하늘에서 날뛰고 있던 아스타로스와 레드 드래곤이 아래의 이변을 눈치챈 것은 같은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공기를 찢어발기며 아래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콰아앙!
이미 레드 드래곤과 충돌한 은색의 창은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비늘을 뚫고 용의 살갗을 찢어버리며 비집고 들어갔다.
크아아악!
정확히 자신의 복부를 관통해오는 창날에 레드 드래곤이 거칠게 포효하며 하늘 위에서 날뛰었다.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던 은색의 창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관통력을 선보이며 레드 드래곤의 복부를 뚫고 위로 튀어 올라, 아스타로스의 얼굴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크윽!?]
조금만 고개가 앞에 있었다면 그대로 직격을 했을지도 모르는 위협적인 공격.
최상위의 악마 서열에 위치하는 자신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몸을 뒤로 빼도록, 만들었던 그 위협적인 공격이 아스타로스를 분노케 했다.
이 지구에서 자신에게 대적할 자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던 아스타로스는 자신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버린 공격을 선보인 자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떤 놈이냐!]
아스타로스가 투창을 선보인 존재를 찾아 노호성을 내질렀고, 공격을 날아온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올곧은 시선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백은발의 한 인간을 발견했다.
자신을 위축시켰던 공격을 선보인 존재가 고작 인간이라는 것에 아스타로스는 더욱 큰 불쾌감을 느꼈다.
마계에서 지구로 넘어오면서 많은 힘을 소모하여, 본래 힘의 반절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자신이 손 한 번 쓸어버리는 것으로 저항 한번을 해보지 못하고 수만의 숫자가 불태워졌던, 그런 미개한 종족인 인간에게 위협을 느꼈다는 것은 최상위의 악마로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감히…! 인간 주제에!]
복부를 관통당하여 숨통이 끊어진 레드 드래곤은 더 이상 날갯짓을 하지 못했고 아래로 추락했다.
이미 복부를 꿰뚫려 절명해버린 레드 드래곤의 등에 계속 타고 있던 아스타로스는 자신의 자존심을 긁어댄 은현을 응시하며 타오르는 전신의 불꽃을 분노로 거세게 태웠다.
[건방진 네놈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한 줌도 남김없이 불태워주마!]
[아스타로스 고유능력]
[소멸의 겁화]
앞을 향해 내뻗은 아스타로스의 손에 불꽃으로 만들어진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창의 형상을 하였을 뿐,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 창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새빨간 불꽃이다.
그저 닿은 것만으로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녹이고, 소멸시켜버리는 아스타로스의 ‘소멸의 겁화’가 집약된 불꽃 그 자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다름 아닌 브류나크를 소멸시켜버렸던 그 불꽃이다.
[죽어라!]
아래로 추락하는 레드 드래곤의 시체 위에서 뛰어내린 아스타로스가 그대로 은현에게 돌진했다.
자신에게 분수에 맞지 않게 ‘위협’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준 은현에 대한 아스타로스의 분노와 적개심은 매우 커다랬다.
아스타로스는 자신의 자만심에 빠져 자각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이름도, 존재 자체도 모를 백은발의 남자에 대한 위험을 직감한 것이다.
그것을 ‘위협’이라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한낱 인간의 ‘건방진 행위’라고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은 최상위의 악마이며, 눈앞의 존재는 자신이 불꽃을 휘두르기만 해도 먼지가 되어 쓸려버릴 미개한 인간이라는 절대적인 차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은현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은현의 몸을 먼지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창의 형상을 한 ‘소멸의 겁화’를 휘두르려는 순간.
“진짜, 이 녀석을 다시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굉장히 여유로운 태도로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은현의 목소리를, 아스타로스는 똑똑히 들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소멸의 겁화를 직면하고도, 눈앞의 인간은 공포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은현이 뒤늦게 아까 전 자신에게 던졌던 은색의 창을 다시 소환하여 아스타로스의 소멸의 겁화에 대적했다.
[하! 창과 함께 먼지가 되어라!]
고작 창 한 자루를 가지고 자신의 소멸의 겁화를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인간의 생각이 너무나도 미개하여 아스타로스는 은현을 비웃었다.
까앙!
[뭐?]
하지만 상황은 아스타로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겁화에 닿은 은현의 창은 소멸은커녕 불태워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간단하게 아스타로스의 불꽃을 막아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아스타로스는 뒤늦게 은현과 그가 쥐고 있는 은색의 창을 감싸고 있는 신성한 기운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어떻게…! 어떻게 네 놈이 신의 힘을…!]
자신의 권능인 소멸의 겁화에 대항하여,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꽃으로부터 보호하는 신력은 이 하계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힘이다.
경악이 어린 아스타로스의 물음에, 은현은 답하지 않았다.
“상태 어떠냐.”
은현이 말을 건 대상은 아스타로스가 아닌, 그의 파트너다.
[X나 좋네? 진짜로 하나도 안 아파. 너 진짜 출세했구나?]
“그래 봐야. 아직 중간 관리자지.”
경이롭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무기와 실없는 농담으로 대꾸하는 주인의 대화는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아스타로스에겐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건방진…!]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은현의 행동에 분개한 아스타로스가 다시 한번 창을 휘둘러 은현을 위협했다.
[브류나크 창술]
[뱀의 이빨]
은현은 자신의 머리를 분쇄하기 위해 휘두르는 아스타로스의 소멸의 겁화를 튕겨내고, 몸을 회전시켰다.
이윽고 회전력이 가미된 몸놀림을 이용하여 아스타로스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창을 내질렀다.
일직선의 올곧은 창대가 마치 구불거리는 뱀의 형상처럼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부터 아스타로스의 몸을 관통했다.
[크아악!]
전신이 불타오르던 악마의 육체 속에 창날을 박아넣고, 창에 담겨있던 막대한 신력을 해방하자, 신성의 기운이 악마의 육체 속에 파고들어 그 내부를 헤집어 놓았다.
은현은 비명에 가까운 포효 소리를 내지르며 날뛰는 아스타로스에게서 브류나크를 회수했다.
이윽고 멀찍이 뒤로 점프하여 거리를 벌리고는 파트너의 상태를 살폈다.
“어때? 이제 좀 믿음이 가냐?”
[뭐래. 이 미X놈이.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
“구라치고 앉았네.”
은현은 불신으로 가득했던 아까 전 브류나크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헛웃음을 지었다.
[인간! 인간! 인간! 인가아아안!]
아스타로스가 자신의 몸을 신력으로 헤집어 놓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격통을 느끼게 만든 원흉인 은현을 응시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은현은 이성을 잃기 일보 직전인 듯 더욱 전신의 불꽃을 거세게 불태우는 아스타로스를 응시하며 브류나크에게 말했다.
“가자. 이제 리벤지 매치 시작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