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44화 (427/730)

〈 444화 〉 444. 신의 초대(4)

* * *

“…….”

[…….]

은현과 유피테르의 사이에 미묘한 흐름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들었던 유피테르의 질문은 명백히 선을 넘었다.

베르단디의 속살이 어떠했는지를 물어보는 그 질문에 은현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여는 것을 망설였다.

이윽고 미묘한 흐름이 감도는 둘 사이에서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유피테르다.

[그녀는 좋은 여신이지.]

“…….”

[외모는 물론 하계를 생각하여 부지런히 일하는 그 신성 또한 매우 곱고 훌륭하다.]

베르단디에 대해 후한 평가를 늘어놓는 유피테르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특히나 그 커다란 가슴에는 무심코 얼굴을 들이밀어 파묻히고 싶은 욕구를 강제로 일으키는 그런….]

우우웅

은현은 더는 유피테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던 신력을 더욱 방출시켜, 이 신전 내부에 흩뿌렸다.

말이 끊어진 유피테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신과 서로의 시선을 마주했다.

“제 여신을 상찬해주시는 그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제 여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말씀은 더는 듣지 않겠습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이야기를 했지만, 은현이 한 말의 속뜻은 경고에 가까웠다.

‘베르단디에 대한 저급한 표현을 당장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신인 당신이라도, 적대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

유피테르는 이 장소, 도데카테온에 속한 신들의 정점에 서 있는 왕과도 같은 존재다.

물론 그의 아내인 쥬노 또한 여왕과도 비슷한 지위를 가지며 많은 여신을 이끄는 구심점인 것은 마찬가지.

그런 쥬노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남편이자 왕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선전포고를 해오는 한 인간의 패기는 무척이나 당돌하면서도 강직하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들을 유피테르가 아니다.

[…호오.]

자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신의 여신을 위해서 다른 신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그 의기에 유피테르는 씩 웃으며 흥미를 보였다.

[…에휴.]

정면으로 도발을 당했음에도, 도리어 흥미를 보이고 재미있다는 듯 미소짓는 남편의 태도에, 쥬노는 한심함을 느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한심한 연극에 어울려주고 있는 자신도 처지가 굉장히 미묘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베르단디님이 우려했던 게 이거였을까.’

은현은 머릿속으로 베르단디의 충고를 떠올렸다.

­명심해라. 아이야. 절대로 무례나 실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가지는 못해도 아이를 부를 수는 있지. 혹시라도 그 자리가 불편해지거나 벗어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를 불러라.

어쩌면 베르단디는 유피테르의 이러한 질 나쁜 면을 알고 은현에게 시험해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원한다면 언제라도 자신 쪽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베르단디 나름대로 준비를 해 두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하지만 은현은 이 자리를 물러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

이대로 베르단디를 저급한 표현으로 조롱당한 상태로 물러난다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모시고 있는 운명의 세 여신과 베르단디를 욕보이는 짓이다.

그렇다고 이성을 잃고 유피테르에게 칼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시험이다.

여신을 모시는 신의 사도로서, 다른 신들과 대면했을 때 어떠한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가.

은현은 지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끼며 조용히 유피테르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자신의 적대 의사를 들은 유피테르의 반응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무례함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무례한 화제로 대화의 시작을 던진 것은 틀림없이 유피테르 쪽이지만, 유피테르와 은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했다.

그 무례함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무례함을 처벌당할 수 있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위치의 차이는 아주 크다.

[부인.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고 싶소만. 허락해주시겠소?]

[적당히 선은 지키시죠.]

[흐흐. 미안하오.]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흘겨보는 쥬노의 시선을 받아들인 유피테르는 끌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쥬노는 은현을 한 번 흘끗 응시하고는 말했다.

[훌륭하다.]

“…….”

아마도 은현이 보인 반응과 대처를 칭찬한 것일 터.

많은 의도가 담겨 있던 그 말을 끝으로, 쥬노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더니 완전히 그 형체를 잃었다.

쥬노가 자리를 떠나자, 이 거대한 신전 안에 남게 된 것은 은현과 유피테르 단둘뿐이었다.

이윽고 유피테르가 은현을 보고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튕겼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은현은 자신의 시야가 뒤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엇!”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어느샌가 자신의 몸은 왕좌에 앉아 있는 유피테르의 앞으로 이동이 되어 있었다.

은현은 이것만으로 이미 유피테르와 자신 사이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유피테르의 말에 은현은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꼈다.

그런 은현의 그 적대적인 태도에도, 유피테르는 전혀 개의치 않아 보이는 듯했다.

은현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하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의 자신의 행동에 유피테르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솔직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정답이었구나.’

하지만 유피테르의 태도를 보고 은현은 확신했다.

자신은 시험을 받았다.

명백하게 자신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화제를 던져주고, 자신의 반응을 보기 위한 시험.

그 시작으로 트집을 잡을 수 있는 은현과 베르단디의 관계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먼저 사과하지. 너와 너의 여신을 욕한 것에 대해서.]

“……!”

은현은 곧바로 나오는 유피테르의 정직한 사과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얼 그리 놀라지?]

“어, 그게…. 조금 실례되는 생각입니다만….”

[괜찮다. 말해라.]

“이렇게 정직하게 저에게 사과를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현재 신계의 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신이 정중하게 자신에게 사과해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흥. 품위라는 것은 스스로 행동한 결과의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누가 나를 따라오겠나.]

“…….”

이야기만 듣는다면 굉장히 멋진 말이었지만, 처음부터 그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유피테르의 눈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일단…. 사과는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야지!]

“…….”

사과했고, 사과를 받았으니 이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다는 몸짓을 취하는 그 태도에 은현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뭐지? 이 신은?’

맨 처음 유피테르를 대면했을 때 느꼈던, 막대한 신력을 방출하며 보여주었던 근엄함은 사라져버렸다.

지금 유피테르는 도저히 신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이 가득하다.

은현은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유피테르의 모습이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신들은 자신의 여신들이나 일곱 여신, 그리고 불카누스가 전부였지만, 그 어떤 신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딱!

유피테르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은현의 뒤에 나무 의자가 하나 나타났다.

[앉아라.]

“…감사합니다.”

은현이 권유대로 의자에 앉자마자, 유피테르는 곧바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볼까.]

“확인차 묻겠습니다만,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던 신이 유피테르님이 맞습니까?”

[그렇다.]

“어째서입니까?”

[너에게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지.]

“저에게…흥미를?”

은현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무엇에 흥미를 느껴서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야 했던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군.]

“…솔직히 그렇습니다.”

[여신의 사도였다지만, 인간에 불과한 네가 이룩한 것들이 다른 인간들에게도 가능했을 것이라 보는 건가?]

“…….”

은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까 불카노스가 해주었던 조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자네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아낄 필요가 있다고 보네. 스스로가 대단치 않다고 계속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존재들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 아닌가?

[운명의 세 여신 중 너에게 부여된 가장 특별한 것은 미래를 관장하는 ‘운명개척’이다.]

그것은 본래 정해진 미래를 비틀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초석이다.

하지만 은현은 여신의 사도가 되기 이전부터, 악마에게 붙잡혀 가족들과 함께 비참하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정해져 있던 미래를 비틀었던 전적이 존재했다.

그 시작은 여신의 권능을 부여받아 더욱 강해졌으며, 지금의 은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내가 흥미를 보인 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가능성이다.]

“…….”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그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베르단디에게서도 들은 바가 있었다.

이것 때문에 자신은 베르단디의 눈에 들게 되었으며, 자신을 사도로 선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여신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정작 은현 본인은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한 운명의 흐름을 일개의 개인에 불과한 은현이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제안…입니까?”

[그래. 제안이다. 운명의 세 여신의 사도를 포기하고, 내가 부과한 시련을 통과하여 완전한 ‘신격’을 갖춰라.]

“……!”

[인간의 태생이었다고는 하지만, 너는 이미 신의 힘을 품은 ‘반신(半?)’. 나의 시련과 더불어 도데카테온의 지원이 있다면 너는 충분히 신이 될 수 있다.]

은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대답하지 못했다.

유피테르의 제안은 하계에 묶여 있는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신계로 올라와 신이 되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은현은 고민의 기색도 없이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흐음. 어째서지?]

정말로 영예로운, 인간으로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걷어 차버리는 은현에게 유피테르는 물었다.

“아래에는…. 제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일리아나와 엘레노아, 릴리와 에린이다.

두 번 다시 자신을 잃지 않으리라 맹세하며 자신의 권속이 된 일리아나나, 맹목적인 믿음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다른 아내들.

그리고 엘빈을 비롯해서 리오드와 아니에스, 앨리스와 제라드,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 등.

자신이 책임지고 끌어안고 가기로 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은현은 이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저는 계속 베르단디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자신이 완전한 신으로 거듭난다면, 그것은 베르단디와의 연결도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하!]

그 확고한 의지를 들은 유피테르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그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여신이 모욕을 당했을 때, 선을 넘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적대의 의사를 내비친 녀석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

“……?”

유피테르의 반응이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라는 것에 은현은 또 한 번 의문을 가지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일단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유피테르의 말을 기다렸다.

[너에게 도데카테온으로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도록 하겠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너에게 관심을 보이고, 기대하는 신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건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카누스의 망치나 아이기스, 코르누코피아를 선물해준 불카누스, 미네르바, 프로세르피나를 비롯해서, 은현의 곁에 있는 사제를 직접 성녀로 지목한 베스타처럼 은현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신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다이애나처럼 은현의 존재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는 신들도 확실히 존재할 터였다.

그런 신들이 있는 곳에 자신이 발을 들이게 된 것이 순전히 좋은 일만이 기다릴 리가 없다.

이런 와중에, 이 영역의 최고 권위자인 유피테르가 직접 출입 허가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은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의도를 모르겠다.

‘스카웃 제의를 받는 사원 같은 기분이네.’

좋은 실적을 낸 자신에게 계속 성과급을 지급하다가, 다른 부서에서 자신을 주목하여 자신들의 팀으로 오라고 유혹을 받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까지 유피테르가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유피테르님까지 저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겁니까?”

[너와 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과 내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던 은현은 재차 물었다.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나도 말이지. 아내를 한 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본성을 타고났거든.]

“…….”

[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 또한 아내를 여럿 두고 있다고 들었다. 인간뿐 만이 아니라,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신수, 게다가 더욱 놀라웠던 건 악마까지 네 종으로 만들었다는 거다. 정말로 대단하더군.]

심지어 거기에 인간에 불과했던 존재가 여신에게까지 손을 댔다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은현은 유피테르의 시선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위엄이 가득했던 신의 눈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동류’에 대한 존경과 감탄이 가득한 호의적인 시선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넌 나보다 한술 더 뜨는 것 같은데?’

라는 의미가 내포된 시선을 받은 은현은 치욕스러운 모욕을 받은 것만 같아 짜증을 느꼈다.

[정말로 궁금해서 다시 한번 묻지만. 베르단디의 속살은 어떤 맛이었나?]

다시 한번 물어오는 무례한 질문에 은현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눈앞의 유피테르라는 신에 대한 존경심은 싹 사라지고, 은현의 두 눈에 비친 존재는 그저 색골이 가득한 에로 영감이었다.

‘…그냥 베르단디님한테로 도망칠 걸.’

이미 자신을 호색한의 바람둥이 동료로 취급하고 있는 유피테르의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뒤늦게 후회했다.

이 한심한 신의 무례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너무나도 한심하다고 생각된 은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머릿속의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모유가 맛있었습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거치지 않고, 포기한 무의식의 흐름대로 입밖에 내뱉은 은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적나라하게 솔직한 은현의 감상을 들은 유피테르는 경악했다.

[이럴 수가! 모유가 나왔다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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