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3화 〉 443. 신의 초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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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이 반신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틀림없이 베르단디지만, 우연히 은현의 영혼에 신력을 품을 수 있도록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여신 쥬노에게서 하사받은 불카누스 망치와 아이기스다.
신의 무구를 영혼에 각인시킴으로써 자연스레 영혼에 신력을 품을 수 있게 된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은현은 성장하여 반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정말로 큰 신세를 졌습니다.”
그 ‘불카누스의 망치’의 주인이었던 불카누스는 은현에게 있어 정말로 큰 도움을 준 은인이었다.
[아닐세. 나야말로 나의 힘이 자네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뿌듯하군.]
고개를 숙여 표하는 은현의 정중한 감사를 불카누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받아들였다.
[얘. 오랜만이네?]
불카누스에 이어서, 한 여신이 은현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베스타 님.”
[후후. 그러게 오랜만에 봤는데, 정말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구나.]
베스타는 은현의 몸속에 품고 있는 신력의 기운을 알아보았다.
“엘레노아의 일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 아니겠니. 덕분에 너도 많이 아껴주고 있는 것 같고. 정말 당돌하기도 하지, 베르단디를 통해서 나에게 그런 말을 전달하다니. 아이도 정말로 겁이 없구나?]
다른 신이었다면 그 건방진 태도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죄송합니다.”
[후후, 아니야.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던 그 마음을 느끼고 나도 훈훈해졌거든.]
하지만 베스타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용서했다.
오히려 베르단디를 통해서 은현의 전언을 매우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노력 해주렴?]
“…배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평범한 인간이 신력을 품게 되고 반신으로 거듭나다니.]
불카누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은현의 몸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여신의 사도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말 그대로 반신으로 거듭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태생부터 신의 힘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된 결과라는 것이 더욱 놀랍다.
[그러게 말이야. 그 ‘헤라클레스’조차도 태생부터 절반은 신의 힘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반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불카누스의 이야기를 들은 베스타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은현이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하지만 그 대단함이 은현 자신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은현은 항상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패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역량에 맞는 결과를 끌어냈을 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부여된 은혜가 좋았던 거지, 자신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어진 패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만들어낸 이 경지는 다른 누군가가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했다면 자신보다 더 빠르고 강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흐음?]
은현의 표정을 확인한 불카누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그 표정의 의미를 깨닫고 쓴웃음을 짓는다.
[자네는 아무래도 자네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군.]
“…예?”
은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 자네와 같이 인간의 몸으로 신의 힘을 품고, 반신이 된 인간은 본 적이 없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을 성공시킨 존재는 극히 드물다.
반신이 될 수 있었던 자는 모두 그 재목을 타고났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다.
태생부터 신의 힘을 이어받아 규격에 맞지 않는 힘을 보유하여 특별한 과업을 쌓으며 반신의 존재로 인정받았던 것이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은현은 다르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여신에게 선택을 받았던 순간부터 무언가가 달랐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신의 주목을 받는 특별한 존재 취급을 받고 있다.
[자네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아낄 필요가 있다고 보네. 스스로가 대단치 않다고 계속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존재들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 아닌가?]
그것은 자신의 무기를 전해준 불카누스에게도 실례가 되는 생각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불카누스의 조언을 달게 받아들였다.
불카누스의 조언은 언젠가 일리아나나 다른 동료들에게서는 물론, 베르단디에게서도 잔소리처럼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 생각이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던 만큼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쓴웃음을 짓게 했다.
그야 400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사고방식과 습관들이 단 2년 사이에 고쳐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음.]
은현이 순순히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불카누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카누스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어째서…저에게 선뜻 불카누스님의 망치를 주실 생각을 하셨던 겁니까?”
[자네에게 기대를 걸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지.]
불카누스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신들의 회랑에서, 현재 하계에 강하게 간섭할 수 있는 일곱 여신에게 베르단디를 포함한 세 여신이 자네를 살려보는 것이 어떻냐고 강하게 주장을 했을 때였다.]
“…….”
은현은 불카누스의 회상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되살아나게 된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의 이야기였다.
[일곱 여신을 제외한 다른 신은 모두 간접적으로 그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지. 그녀는 회랑에서 자네의 ‘시간’을 ‘재현’시켰다.]
불카누스가 본 은현의 모습은 마지막 죽음의 장면이었다.
오염된 마나로 인해 변이되어 버린 수만의 마수들을 혼자서 막아냈던, 은현이 죽음을 각오하고 목숨을 불태우며 홀로 싸웠던 그때의 그 장면.
[나는 그때 빛을 보았네.]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촛불도, 처음보다 끝에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 마련이다.
권능으로 만들어낸 검은 몇 번이고 부러지고, 점점 피로가 누적된 몸이 팔다리를 물어 뜯기면서도 적들을 몰살해나갔던 그 모습.
신인 자신이 보기에도 그 영혼은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나는 그때 아쉬움을 느꼈지. 만약 자네의 손에 자네를 감당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면. 자네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도 않았을 테지.]
불카누스가 가진 아쉬움은 훌륭한 검사에게 훌륭한 검이 쥐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대장장이로서의 아쉬움이었다.
[자네의 여신은 그 싸움을 보여주면서 정해져 있었던 미래를 비틀어 하계의 멸망을 막아낸 자네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
미래는 비틀어져 위험을 넘겼지만, 마계에 있는 악마들은 하계로 넘어오기 위해 계속해서 수작질을 해오고 있었다.
그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하계의 영웅을 처음부터 다시 키워내는 것은 불안요소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많은 힘을 소모하더라도, 이미 몇 번이나 결과를 만들어냈던 확실한 실적을 가지고 있는 은현 쪽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더 낫다고, 베르단디는 일곱 여신을 설득했다.
은현을 되살리기 위해서 많은 설득 요소들을 준비해뒀고, 그런 베르단디의 노력으로 은현은 되살아날 수 있었다.
“베르단디님이….”
은현은 베르단디에게 어떤 식으로 자신이 되살아나게 되었는지는 대강 들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준 자신의 여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되살아난 자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해본 결과, 자네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무기를 자네 스스로가 제작할 수 있도록, 나의 불카누스 망치를 전해준 걸세.]
“하지만…. 그 망치는 불카누스님에게 중요한 무구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내어주셔도 괜찮은지….”
[이것 말인가?]
어느새 손에 쥐어져 있는 망치를 까딱이며 불카누스는 웃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면,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자네에게 주었을 리가 없지.]
“…….”
[신의 무구라는 것은 신의 영혼에 각인된 자신만의 권능을 형상화한 것일세. 즉, 나는 자네에게 나의 힘 일부를 전해준 것이지.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나의 망치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네.]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는 표정을 짓는 은현을 보고, 불카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자네도 반신으로서 자신만의 권능을 창조해낸 것 같군? 그리고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자네의 영혼 그 자체라니. 성공했으니 다행이지, 실패했다면 어쩔 뻔했나?]
“불카누스님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흐음.]
쓴웃음을 짓던 은현은 유심히 자신을 관찰하는 불카누스에게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저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음? 뭐지?]
혹시라도 다른 신이었다면 ‘감히 인간 따위가 나에게 말을 걸어!?’라고 노발대발을 한다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불카누스는 은현에게 호의를 보이는 신이다.
“저를 보고 싶다고 베르단디님께 부탁을 했던 신은…. 불카누스님이십니까?”
[음? 아아, 나는 아닐세. 자네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영역에 자네가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를 내리는 것은 나의 권한 밖이네.]
“그러면 어떤 신께서…?”
[때마침 오셨군.]
불카누스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방향으로 은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강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그곳에는 두 신이 존재했다.
[오랜만이군.]
가장 안쪽의 높은 곳에 존재하는 의자.
그것은 왕좌나 다름이 없었다.
이 신전에서 오직 두 신만이 의자에 앉아 은현과 다른 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쌍의 왕좌에 앉아 있는 두 남녀 중 여신 쪽은 은현도 아는 얼굴이다.
이전 ‘창세 회의’에서 자신에게 직접 ‘불카누스의 망치’를 하사했던 여신, 쥬노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은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쥬노에게 인사를 하면서, 은현은 생각했다.
쥬노의 옆에서, 의자의 팔걸이에 기대어 턱을 괴고는, 무심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던 그 시선을 떠올렸다.
[다들 물러가라.]
근엄함이 가득한 짧고도 굵은 한마디.
그 한마디에 신들은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 나도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니 반가웠네.]
“저도 저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어. 매우 기뻤습니다.”
[후후, 언젠가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네?]
옆에서 은현과 불카누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베스타도 눈웃음을 지으며 은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이윽고 모든 신이 사라지고 쥬노와 그 신만이 남았을 때, 주위의 모든 신을 물린 그 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곳. ‘도데카테온’의 왕. 유피테르라고 한다.]
“운명의 세 여신의 사도인 인간이자 반신. 은현이라고 합니다.”
은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던 눈앞의 유피테르라는 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 네가 세 여신 중 차녀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지?]
“…그렇습니다.”
은현은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으나,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베르단디와 자신이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 이상 다른 자매 여신이나 다른 신들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
게다가 다른 계통의 신인 유피테르가 무언가 간섭을 해올 명분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서였다.
‘뭔가 트집을 잡으려는 건가?’
은현은 경계했다.
혹시라도 베르단디에게 누가 끼칠만한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 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유피테르는 계속해서 은현에게 물었다.
[맛있던가?]
“네. 맛있…. 예?”
[운명의 세 여신 중 차녀. 베르단디의 속살은 맛있었는지 물었다.]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되물었던 것이 아니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되물은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들었음에도, 은현은 또 한 번 물어봐야만 했다.
“…뭐요?”
자신을 만나보고 싶다는 신이 가장 처음 꺼낸 말은 은현의 머리를 세게 강타하는 것만 같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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