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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441화 (424/730)

〈 441화 〉 441. 신의 초대(1)

* * *

연회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은현과 엘레노아는 외진 곳의 발코니에서 숨어 사랑을 나누고는, 밤이 되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은현과 엘레노아가 밤을 보내게 된 곳은 아직 페르닌에 남아있는 일리아나의 주택이었다.

“으….”

강렬한 사랑을 나눈 이후이기 때문인지, 엘레노아는 아직도 허리가 욱신거렸다.

그 후유증으로 피로에 젖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엘레노아를 업고, 은현은 이제는 비어있는 일리아나의 집으로 왔다.

이미 오랫동안 집을 비워 귀중품도 하나 없는 집이었지만, 정기적으로 업체를 불러 간단한 청소를 시킨 티가 났는지 나름 깔끔했다.

곧바로 드레스를 풀어헤치며 욕실로 들어가 엘레노아의 몸을 씻겼다.

알몸의 상태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더한 것도 했는데, 엘레노아가 이제와 이런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당히 힘을 실어 정성스레 자신의 몸을 씻겨주는 은현의 배려가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허리가 욱신거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엘레노아의 전신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주고 머리를 말려준 뒤, 그녀의 몸을 안아 올려 침대 위에 눕혔다.

“고마워요.”

극진한 배려를 받는 것에 기쁨을 느낀 엘레노아가 웃으며 감사를 전했다.

“잘 자.”

그녀의 몸에 이불을 덮어준 은현은 웃으며 엘레노아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에린이 좋아하는 유치한 애정 표현에 불과했지만, 피로에 절어 노곤한 마음을 포근하게 녹여주는 그 입맞춤이 엘레노아는 그리 썩 나쁘지 않았다.

“당신은요?”

“난 조금 할 일이 있어서. 마치고 곧바로 자러 올게.”

“네.”

엘레노아는 은현의 말에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을 가질만한 정신적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스르륵 눈이 감긴다.

곧바로 잠에 빠져드는 엘레노아가 있는 방을 나와 문을 닫아주었다.

“…….”

혼자가 되자마자, 은현은 곧바로 인상을 굳혔다.

망설임 없이 주방을 살펴본 것을 시작으로, 비어있는 방과 과거 일리아나가 사용했던 연구실, 그녀와 자신이 사용했던 침실까지,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행동하는 은현의 움직임은 매우 신속했다.

[아이야?]

때마침 하계로 내려온 베르단디가 은현의 행동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하지만 은현은 베르단디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못 들은 것이 아니다.

영혼으로 연결되어 은현의 의식에 직접 소통을 해오는 베르단디의 물음은 명백히 은현의 의식에 전달이 되지 않았다.

일부러 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베르단디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은현은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해서 베르단디의 물음에 답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이상하구나.’

베르단디는 은현의 표정과 행동에 품었던 의문을 점점 키웠다.

그가 마음속으로도 베르단디의 물음에 답해주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직접 하계에 내려와 은현과 소통을 하게 된 것은 400년이라는 긴 시간 중 아주 최근의 2년 조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은현의 현재 표정은 이상했다.

[아이야.]

“…….”

[아이야!]

베르단디가 은현의 등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은현이 자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은 베르단디의 존재를 그제야 의식했다.

“베르단디님?”

[무엇을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

은현은 다시 표정을 굳히며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가득 채워진 이 혼란을 정리하고 말로 설명하기 위해 생각에 잠긴 것이다.

이윽고 은현이 입을 열었다.

“이 집에 누군가가 침입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 집에? 하지만 이 집은….]

“네. 일리아나의 집이죠.”

은현은 베르단디의 품에 안겨 있는 채로 집 안의 거실을 둘러보았다.

중요한 마법 서적이나 짐들은 이사하면서 모조리 챙겨갔기 때문에 이 집에 남아있는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가구들이나 침구류들, 간단한 식기류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이 집에서 은현은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매사에 귀찮음이 가득하여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집의 기본적인 청소나 관리들은 모두 은현이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그 미묘한 위화감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식기류들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거나, 미묘하게 틀어진 가구들의 위치 등.

이상한 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은현은 얼굴을 굳힌 것이다.

“지금 이 집은 빈집이긴 하지만, 일리아나가 설치한 반영구적인 결계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요.”

정기적으로 집 청소를 하러 와주는 업체도 이 결계를 통과하기 위해 일리아나가 제작해준 특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어야 집 안으로 출입을 할 수가 있다.

그런 결계가 설치된 이 집에 침입해온 자가 평범한 도둑일 리가 없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베르단디는 이 일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은현의 표정을 꿰뚫어 보았다.

짧지만, 절대 적지 않은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해온 여신의 지적에 은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이 흔적들에서 느껴지는 침입자의 의도입니다.”

[의도라고?]

“귀중품을 훔치러 오거나 무언가 함정을 파두기 위해 침입해온 게 아니에요.”

은현이 집안의 곳곳을 샅샅이 뒤지며 받은 느낌은 좀 남달랐다.

일리아나의 이 집에 침입해온 침입자가 남긴 흔적들에서는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낸 생활감이 존재했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어요.”

[…….]

바닥에는 오랫동안 쓰레기가 쌓여있다가 치워진 흔적이 존재했다.

그것은 이 집에 숨어들어온 침입자가, 일리아나의 결계를 들키지 않고 침입할 수 있는 어떠한 실력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누구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일리아나와 비슷한 고위 자릿수의 마법사라는 것.

순간적으로 현재 페르니아스 왕국 소속의 메이거스 궁정 마법사단을 이끄는 사이먼을 떠올렸지만, 이것은 너무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집도 멀쩡히 존재하는 노인이 뭐가 아쉬워서 이 집에 몰래 숨어 생활한단 말인가.

이런 점에서 다른 고위 자릿수의 마법사들도 용의자라고 특정을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그들 모두가 타국이나, 마법사의 탑, 모험가로서 이름을 날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굳이 일리아나의 이 집에 숨어 어떠한 계략을 꾸민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이내 은현은 부족한 정보를 종합하여 용의자에 대한 단서를 특정했다.

‘일리아나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췄으면서,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마법사라…. 심지어 남의 집에 숨어 생활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면서?’

이상하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현실적이지 않은 가정이었지만, 부족한 정보로 더 많은 사실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네? 뭐가요?”

[그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냐? 어째서 사제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 생각을 한 것이냐?]

“이 집에는 흔적만이 남아있었을 뿐 어떤 수작도 해두지 않았다는 건 확인했으니까요. 적어도 위험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엘레노아가 잠들자마자, 감지를 통해서 이 집을 샅샅이 뒤져 조사했고, 어떠한 물리적, 마법적 함정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확인했다.

은현은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 마음이 들지 않아 인상을 찡그렸다.

“…….”

정말로 이 장소에 침입해서는, 먹고 자는 생활을 보냈을 뿐, 그 어떠한 이유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은현은 엘레노아가 잠들어 있는 침실 쪽을 흘끗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엘레노아가 조금 피곤해 보였거든요.”

[…그럴 만도 하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베르단디의 반응에, 은현이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몸을 꽉 끌어안고 있는 베르단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다 보셨나요?”

[봤지.]

“…….”

순간 은현은 할 말을 잃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철없는 장난을 치다가 걸린 아들과도 같은 얼굴을 하는 은현을 흘겨보던 베르단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정말 저질이 따로 없더구나. 어떻게 그렇게 사제 아이를 몰아붙일 수가 있던 것이냐?]

갑작스레 시작된 여신의 잔소리에 은현은 반박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엘레노아와 관계를 맺으면서 마음속의 욕구가 부풀어 올라 점점 제어하기 어려워졌다는 건 은현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그 욕정을 모두 기쁘게 받아들여 주던 사제 아이의 얼굴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그랬군요.”

서로의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서로의 몸을 뒤섞었던 은현과 엘레노아의 모습은 정말로 죽이 잘 맞는 부부이기도 했다.

[나의 몸을 탐할 때도 그랬지만…. 도대체 400년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던 것이냐?]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마음속 깊이 억눌러 참아올 수 있었는지, 베르단디는 기가 찬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오히려 참고 억눌러왔기 때문에 더 강하게 터져버린 게 아닐까 싶어요.”

400년 동안 특별한 여성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보석 증폭술을 가르친 일리아나의 조상인 엘리시아나, 엘프의 숲에서 동거했었던 실비아, 죽기 전에는 자신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던 일리아나까지.

은현은 특정의 어떤 여성과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꺼렸었다.

그것은 언젠가 자신의 약점이 될지도 모르며, 걸림돌이 되리라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생활을 허락해주고, 영혼의 제약을 풀어준 베르단디와 다른 두 자매 여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자신에게 특별한 마음을 전해준 네 명의 아내를 끌어안고, 많은 사람을 이끌며 앞으로 가자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베르단디의 허락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면목이 없구나.]

베르단디는 또다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현의 상체를 꽉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베르단디님. 저 지금은 굉장히 충실하니까.”

[…그래.]

“그리고…. 베르단디님의 말씀대로 저도 이렇게 절제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시작은 그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으로 아내인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의 요망에 충실히 보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두 아내와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수위와 강도는 점점 세지고, 아내들은 거기에 호응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은현과 몸을 섞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 들여주며 적극적으로 들어오니까, 그것을 주체할 수가 없다.

“마치 결승점이라는 곳이 존재하지 않아서 끊임없이 달리는 경주마 같아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지금의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 들인 베르단디는 은현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아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이윽고 베르단디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하계로 내려온 건 아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다.]

“저에게 부탁인가요?”

[아니…. 부탁이라기보다는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을 기다린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것은 이야기를 듣고 베르단디가 해오는 어떠한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권한을 은현에게 주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싫다면 거절해도 된다.]

“…일단은 들어보겠습니다.”

베르단디는 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용무를 설명했다.

[신계에서 아이를 한번 보고 싶다고 의사를 밝혀온 신이 있다.]

“…저를?”

뜬금없는 이야기에 은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일리아나의 집에 침입해온 침입자에 관한 생각으로 복잡했던 은현의 머릿속이 베르단디가 전해온 소식으로 가득해질 정도였다.

[만나 보겠느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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