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38화 (421/730)

〈 438화 〉 438. 왕궁 연회(2)

* * *

“이번에 저희 쪽에서 제안을 드리고 싶은 사업이….”

“저희 쪽에서도 부디….”

연회장에 참석하자마자, 은현과 엘레노아는 자신들을 둘러싼 많은 귀족과 대부호 상인들의 대응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현재 아르미타스령은 페르닌보다 더한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고 있어, 조금만 셈이 빠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르미타스령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것을 이미 눈치를 채고 접근해오고 있었다.

모험가들이나 영민들이 대거 유입되어 인구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는 만큼, 아르미타스령에서 생기는 다양한 상품들의 수요는 끊이지를 않고 있었다.

식료품부터 시작해서, 모험가들의 장비, 건축자재, 의식주에 필요한 생필품들, 제공하기만 하면 팔리는 상품들이 수두룩했으며 귀족들부터 상인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아르미타스령의 관계자인 은현과 엘레노아에게 줄을 대기 바빴다.

본래부터 총명한 엘레노아나 능글맞은 사업수완을 가지고 있던 은현은 자신들에게 접근해오는 이들의 속내를 파악하고 이해득실을 철저히 따지며 사람들을 구분했다.

연줄을 만들어두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과 그저 눈앞의 이득을 좇아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검은 속내를 가진 이들을 구분하여 머릿속으로 정리해나갔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왕비마마와 왕자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디아네 왕비와 데미안 왕자의 입장으로 인해 우아한 음악 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의 음성들이 단번에 묻혔다.

웅장한 악기의 소리가 이번 연회의 주최 목적인 행사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일제히 고개를 올려 2층 홀의 단상을 응시했다.

연회에 참석한 모든 인원의 주목을 받은 디아네 왕비는 입을 열었다.

“모두 이 연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시작은 간단한 인사로 디아네 왕비의 연설이 시작됐다.

“이 자리는 우리 왕국의 백성을 흡혈귀라는 인외의 종족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 기사분들과 마법사분들. 그리고 베스타 신전의 사제분들의 무훈을 칭송하는 자리입니다.”

담담하게 이번 연회가 주최된 목적을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먼저 이번 작전에서 마수들과 흡혈귀를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 장소 안에 가둬 효과적인 소탕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메이거스 궁정 마법사단의 단원분들. 그리고 그분들을 대표해서 단장이신 마기우스 백작. 제 앞으로 올라와 주세요.”

“예. 왕비마마.”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디아네 왕비와 데미안 왕자가 앉아 있는 중앙홀 2층의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갔다.

“마기우스 백작을 후작의 작위로 승작하고 메이거스 궁정 마법사단에 백금화 20닢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왕국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해주길 바라고 있겠습니다.”

“왕비마마의 명을 받듭니다.”

백금화 20닢도 만만치 않은 액수.

하지만 누구도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디아네 왕비는 이어서 리오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르티아 기사단의 단원들과 기사단의 단장인 올리비온 후작.”

“예.”

“제게로 올라와 주세요.”

“명을 받듭니다.”

리오드는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먼과 교대를 하듯이, 디아네 왕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앞에 도달하자, 리오드가 한쪽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표했다.

“흡혈귀들의 소탕을 위해 최전선에서 싸워줬으며, 왕국의 백성들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박쥐 마수를 처치한 올리비온 후작의 무용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공훈입니다. 정말로….”

디아네 왕비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별 볼 일 없었던 약소 귀족 가문의 자제였던 리오드의 20년 전 모습을 떠올렸다.

전쟁을 끝내고 영웅이 되어 돌아온, 무뚝뚝하면서도 늠름했던 20대의 젊은 남자.

착용한 갑옷은 성한 데가 없고 만신창이의 모습이었던 그때의 리오드는 무언가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에 빠져있었다.

실의에 빠졌던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던 디아네는 그를 돕고 싶었지만, 디아네의 집안에서는 디아네가 리오드와 맺어지려는 것을 반대했다.

리오드는 확실히 영웅에 걸맞은 업적을 세웠지만, 지지기반이 하나도 없는 약소 귀족의 장자와 혼인을 맺는 아무런 메리트도 없는 짓을 허락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때 당시에는 디아네 왕비와 차기 국왕인 안드레아 왕세자와 혼담이 오가고 있었던 차라 더욱더 왕가의 일원이 되는 것에 비해 약소 귀족 가문의 젊은 영웅인 리오드와의 결혼은 너무 볼품이 없어 보였다.

집안 간의 귀족 위계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디아네는 리오드가 자신을 받아 들여주기만 한다면, 집안을 설득시킬 자신도 있었다.

더욱 디아네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리오드가 디아네의 호의를 거절했던 것이다.

리오드는 끝까지 디아네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테레지아와 혼인을 맺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디아네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안 되었던 걸까.’

디아네 왕비는 그때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 자신의 신세를 자조했다.

테레지아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했더라도, 그녀가 리오드를 지지해주었던 것만큼, 아니 그녀보다도 자신이 리오드를 더욱 받쳐줄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골랐다면 지금의 지위보다 더 높은 것을 안겨줄 자신이 있었는데, 어째서 리오드는 자신을 고르지 않았던 걸까.

리오드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배신감을 발판으로 삼아, 디아네 왕비는 리오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고르지 않았던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그래서 왕가와 자신의 집안 사이에 오가는 혼담을 받아들였고, 디아네 왕비는 왕비의 예법 교육을 철저히 받으며 이 나라의 1왕비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애초부터 국왕인 안드레아와 디아네 왕비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정치적인 이득만을 철저히 따지며 의무감으로 아이를 가졌고, 국왕과 왕비 사이의 관계는 사업적인 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인 국왕의 아내로서, 자신을 차버리고 테레지아를 선택한 리오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찬 여자는 지금 이 나라의 왕비가 되었다.’

‘그러니 평생을 아쉬워하며 살면서 내가 낳은 아들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기사로서 평생을 바쳐라.’

하지만 지금의 리오드는 어떠한가.

이전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오며 중립을 유지해온 리오드는 어느새인가 다른 어떤 귀족 파벌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강대한 세력이 되었다.

기를 쓰고 자신의 파벌과 자신이 견제하여 위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 했음에도, 리오드는 절대로 굴하지 않고 차근차근 위로 올라왔다.

디아네 왕비는 최근에서야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추한 속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던 거야.’

질투와 배신감으로 얼룩진 디아네 왕비는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날이 갈수록 추해지고 왕가의 위엄을 더럽히는 것은 디아네 왕비 자신이었다.

회상과 복잡한 생각을 마친 디아네 왕비는 마침내 지그시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자신의 앞에서 형식적인 예를 차리며 무릎 한쪽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리오드에게 말했다.

“아르티아 기사단에 백금화 30닢을 수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 디아네 왕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올리비온 후작 가문을 두 번째 공작 가문의 위계로 승작시키겠습니다.”

“……!”

디아네 왕비의 선언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단번에 소란스러워져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놀란 것은 디아네 왕비의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던 당사자, 리오드 본인이다.

“왕비 마마, 그것은….”

공훈에 대한 포상으로 백금화의 수여는 당연히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한 가문을 공작 위계로 승작시키는 것은 순전히 막대한 금전적인 포상보다도 더 큰 문제다.

아마 많은 귀족의 반발이 있겠지만, 그것 또한 디아네 왕비도 모를 리가 없다.

“왕국의 백성들을 흡혈귀라는 위협적인 존재들로부터 지켜낸 공적을 쌓았습니다. 이 정도로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

디아네 왕비의 지적에 리오드를 포함한 모든 귀족이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다.

소탕 작전에 참여한 병력의 손실을 제로로 무사 생환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엘레노아의 역할도 매우 컸지만, 그 작전에서 노스페라드라는 위협적인 존재를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리오드의 공적이다.

이 공적으로도 귀족의 작위 승작이라는 포상을 내리기에 적절치 않다면, 다른 귀족들은 도대체 어떠한 공훈을 쌓아야 자신의 귀족 가문의 위계를 승작시킬 수가 있을까.

디아네 왕비는 그 부분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이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들의 앞으로의 귀족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귀족들은 신중을 기하며 발언을 아꼈다.

“그만 내려 가보세요.”

“…알겠습니다.”

리오드는 결국 디아네 왕비의 승작이라는 포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왕비에게 예를 다하고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디아네 왕비가 이어서 마지막 이름을 입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소탕 작전에 참여했던 인원들을 돌보며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시키지 않고 무사히 병력을 페르닌으로 보내는데 일조했던 엘레노아 아르미타스. 올라와 주세요.”

“네.”

마지막으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엘레노아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으…!”

살짝 허리를 떨며 휘청이던 엘레노아의 몸을 은현이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왕비마마. 제 아내가 몸 상태가 조금 좋지 못해서요. 부디 제가 부축하여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

“…….”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신의 남편인 은현을 흘겨보는 엘레노아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숨도 거친 모습이 정말로 몸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어째서 자신의 남편을 못된 장난을 치고 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듯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러세요.”

능청스럽게 웃으며 부탁을 해오는 은현의 말에 디아네 왕비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의 부탁 자체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 보여주는 태도가 가식적이고,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현은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공유하며, 엘레노아는 은현의 정성스러운 에스코트를 받으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왔다.

“하아….”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떨리는 몸이나 흘리는 숨소리는 이상하게 요염함을 자아냈다.

마침내 디아네 왕비의 앞에 도달하여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 은현과 엘레노아 부부를 응시하며 디아네 왕비는 입을 열었다.

“아르티아 기사단, 메이거스 마법사단과 함께,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지원과 사제의 능력을 아낌없이 선보여 소탕 작전의 참가 인원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귀환시킨 당신의 능력은 올리비온 공작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커다란 공훈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어떤 보상을 내려줄지 고민한 결과, 백금화 20닢의 수여와 아르미타스령의 세율을 2년간 조정하여 감면을 약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권한 밖이긴 하지만, 페르닌 지부의 베스타 신전에, 아르미타스령에 완공된 신전에 인력이 충원될 수 있도록, 제 쪽에서도 건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과분한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모두 남은 연회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탕 작전의 핵심 공훈자들을 모두 치하한 디아네 왕비는 곧바로 데미안 왕자와 함께 왕궁의 중앙홀 연회장을 떠났다.

“후…우. 꺗!?”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은현이 엘레노아의 몸을 안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에요!?”

“왜?”

“사, 사람들이 보잖아요!”

엘레노아는 은현의 과감한 행동과 자신의 비명으로 단숨에 자신 쪽으로 이목이 집중이 되자, 얼굴을 붉혔다.

자신을 안아 든 은현의 가슴을 두들기며 저항했지만, 그런 미약한 저항은 은현에게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엘레노아의 저항을 무시한 은현은 엘레노아를 안은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속하게 발을 놀려 이형환위를 사용하여 사라지자, 누구도 은현과 엘레노아의 모습을 쫓지 못했다.

그나마 리오드가 엘레노아를 안아 들고 사라지는 은현의 뒷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신경을 썼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으며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의 발코니에 도착한 은현은 엘레노아를 내려주고는 벽으로 몰아세웠다.

쿵!

강하게 내리친 벽의 울림이 바로 옆에 있던 엘레노아에게 전해져 엘레노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다, 당신….”

이윽고 엘레노아는 자신을 몰아세워 내려다보고 있는 은현의 눈빛을 보았다.

평소의 상냥함이 가득한 모습이 아닌, 자신을 정복시키고 싶어하는 수컷의 눈빛.

침대 위에서 보여주는 그 눈빛은 자신의 마음을 농락하는, 엘레노아가 좋아하는 야성의 눈빛이다.

엘레노아의 가슴이 점점 두근거리며 거칠게 뛰었다.

“우리 마차 안에서 하던 거, 마저 할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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