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34화 (417/730)

〈 434화 〉 434. 렌디르 왕국의 멸망(2)

* * *

“사령술사…입니까?”

“…그래.”

아직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라드의 의아한 질문에 대답해준 것은 리오드다.

말로만 들어선 죽은 자의 영혼을 다루는 술사라는 뜻처럼 들리는데, 그것은 즉 언데드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조종할 수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제라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자가 존재합니까?”

언데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상태도 아닌, 그런 존재를 뜻한다.

대부분 인간이 사망하면서, 시신의 몸속에 있는 마력이 오염되어 이미 사망하여 부패해버린 시신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륙에서는 사람이 죽게 된다면, 사람의 시신이 언데드화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첫 번째는 정식으로 신전의 사제를 고용하여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신성력을 통한 정화의 기도를 받는 것.

두 번째는 시체를 통째로 불태워버려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사제를 고용하여 제사를 지내야 하는 만큼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망한 사람의 관계자가 귀족인 경우, 그 연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반면 무연고자들이나 여유 자금이 없는 평민들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들어봅니다만.”

언데드라는 존재는 제라드에게도 익숙한 존재였지만, 그 언데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조종한다는 사령술사라는 존재는 생소했다.

그야 그럴 법도 하다.

흑마법중에서도 마이너한 취급을 받으면서, 사령술이라는 흑마법 자체가 사라져 버린 이유는 과거 약 300년 전 은현이 메디아와의 사투를 끝내고 사령술이라는 흑마법의 흔적을 대륙에서 모조리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세상에 사령술이라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어 인간들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젠장.”

“…….”

하지만 그때의 그 노력마저도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이 세상에 사령술사가 또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 은현은 짜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주 먼 곳에서, 이 상황을 즐기며 웃고 있을 메디아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은현의 귓가에 맴돌았다.

아무리 죽여도, 시간이 지나고, 부정하려고 해도, 그 망자의 여왕이라는 여자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형님이 그렇게 짜증을 내시는 경우는…굉장히 드문데요.”

진심으로 메디아와 사령술을 혐오하고 있는 은현의 표정을 본 제라드는 얼굴을 굳혔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사정을 모르는 제라드뿐만이 아니라, 직접 그 사령술을 겪어본 리오드나 일리아나, 엘레노아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마수와 싸우게 됐을 때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공략법을 제시하며 돌파구를 마련해주어 여유를 보였던 은현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아주 성가시지.”

언데드에는 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에 다다른 인간의 육신에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령술로 만들어진 언데드들은 전혀 다른 문제다.

“놈들에게는 영혼이 존재하니까.”

사령술로 술사에게 종속되어 자유를 잃은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영혼들.

그렇게 만들어진 언데드들은 자연스레 사령술사에게 종속되어 죽어서도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비참함을 느껴야만 한다.

“영양을 보충해줄 필요도 없어. 수면으로 휴식을 취할 필요도 없어. 팔과 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잘려도, 사령술사의 사령술로 만들어진 언데드들은 술사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해.”

그만해달라고, 소멸시켜달라고 애원하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언데드들을 없애야 하는 그 기분은 정말로 최악 그 자체다.

사령술사와 싸운다는 것은 소규모부터 대규모까지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과도 같다.

“아, 죄송합니다.”

설명을 이어나가던 은현은 뒤늦게 테레지아의 존재를 깨닫고 급히 말을 멈추며 사과했다.

어쩔 수 없이 설명하고는 있었다지만, 임산부의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에 얼굴을 굳혔던 테레지아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창백해진 안색을 풀지 못했다.

리오드는 곧바로 은현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일리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일리아나. 테레지아를 밖으로 부축해줬으면 좋겠는데.”

“…좋아.”

테레지아와 마찬가지로 심기가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일리아나는 흘끗 은현을 바라보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한다는 은현의 눈짓을 받은 일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입장에서도 그리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일리아나의 회임 소식을 접한 리오드가 아직 그 소식을 듣지 못한 은현에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아내와 함께 이 방을 나갈 수 있도록 해준 배려에 가까웠다.

“저도 도울게요.”

일리아나와 함께 테레지아를 부축하기 위해 엘레노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성진의 세 사람이 일제히 나가고, 응접실 안은 남성진의 세 사람만이 남았다.

“다시 얘기를 진행하지. 은현, 너는 지금 그럼 레이넌과 그때 그 사령술사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렌디르 왕국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맞아. 흑랑단을 통해서 접한 정보로는 사령술사의 정보는 확실해.”

페르니아스 왕국 국경을 넘어온 렌디르 왕국 난민들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똑같았다.

‘외부에서 언데드들이 일제히 나타나 영지를 습격했고 끝에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영지 한 곳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다수의 영지로부터 도망쳐온 피난민들의 증언이 모두 공통되어 있다.

복수의 영지들이 같은 시기에 언데드의 습격을 받은 것이 절대로 우연일 수가 없다.

누군가가 뒤에서 언데드를 조종하여 일을 꾸미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고, 이 대륙에서 사령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이전에 은현과 리오드,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조우했던 마리우스라는 남자뿐이다.

“…네 말대로 정말로 성가시군. 레이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이해가 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레이넌이 누구와 손을 잡았냐는 것이다.

“그런데…. 단둘이서 국가를 전복시키는 게 정말로 가능한 겁니까?”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보장도 없어. 게다가…단둘이라는 가정도 전혀 의미가 없고.”

렌디르 왕국의 반란은 다수의 영지와 수도에서 일제히 동시에 일어났다.

그것은 레이넌이 곳곳에 첩자를 심어두었고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돕고 있는 무리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령술사와 협력을 맺고 있는 것도 모자라, 흡혈귀와도 손을 잡았는데, 다른 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어.”

“…그렇죠.”

제라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납득했다.

“도대체 그 자식은 왕국을 무너뜨려서 뭘 하려고…. 설마 왕이 되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은현은 문득 제라드가 떠올린 그 가능성을 곧바로 배제했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국을 차지할 생각이었다면, 사령술사나 흡혈귀와 손을 잡지도 않았겠지.”

인간의 피를 식량으로 삼는 흡혈귀나, 인간의 육체를 이용하여 죽음의 군대를 만들어내는 사령술사나.

공통으로 연결되는 것은 인간의 죽음이다.

백성들을 모조리 몰살한 끝에 차지하는 왕의 자리 따위는 부질없다.

왕이란 그 왕으로 추대된 남자를 떠받들어주는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왕으로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모조리 몰살당하고 흡혈귀들의 식량 취급을 받으며 먹다 남은 시체들은 언데드로 변화하는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왕 노릇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건 그냥…. 화풀이에 불과해. 아마도 레이넌은…. 그냥 인간들을 몰살시키려는 생각이겠지.”

인간들을 그저 흡혈귀들의 먹이로 던져주고, 언데드화를 시키는 레이넌은 인간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고 있지 않다.

“아….”

제라드는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는 듯 작게 탄식했다.

레이넌을 만났을 때, 그의 눈빛 속에 깃들어있는 인간을 향한, 이 세상을 향한 뒤틀린 증오심은 진짜였다.

그는 정말로,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희망을 보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부술 결심을 한 것이다.

“넌 어떻게 할 작정이지?”

“…….”

리오드는 앞으로의 은현의 계획을 물었다.

은현은 생각에 잠겼다.

“준비해야겠지.”

“준비?”

“전쟁의 준비.”

이것은 레이넌과의 싸움이 아니다.

아마도, 사령술사와 흡혈귀와 같은 인외종의 존재들, 그 사이에 레이넌이 끼어있을 뿐이다.

“…그렇군.”

은현의 말을 이해한 리오드는 작게 끄덕였다.

그 또한 각오를 다짐해야만 했다.

◆ ◆ ◆

“정말 괜찮으신 거에요?”

마차의 안에서, 새하얀 레이스가 달린 연회용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는 엘레노아는 말끔한 복장의 턱시도 예복을 착용하고 자신과 동행한 은현을 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너를 혼자 보낼 거로 생각했어?”

“그야 당신이 따라와 주신다면, 저야 기쁘지만….”

엘레노아는 렌디르 왕국을 무너뜨렸다는, 타락한 과거의 옛 동료의 소식에 은현이 복잡한 심경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일리아나는 시끄러운 연회 같은 것을 원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자신의 회임을 은현에게 숨기고 있기 때문인지, 은현과 동행해오지 않았다.

함께 소탕 작전에 참여했던 에린도 일리아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연회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회에 참석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번 흡혈귀 소탕 임무의 참여자들에 대한 공훈을 치하하는 연회에 혼자 참여하려 했었지만.

“솔직히 메디아나, 레이넌의 이야기는 매우 골치 아픈 문제이긴 하지만, 제대로 준비도 할 거야.”

그 문제에 대한 대응은 이미 생각해두었으며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은현은 지금 당장 나선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보다, 엘레노아의 연회에 대한 에스코트를 우선순위로 잡았다.

“어떻게 너를 혼자 보내. 나는 네 남편이야.”

일반적으로 이런 연회의 자리에 귀족 가문의 여식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에스코트하는 인물이 동행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결혼한 여성이 남편을 두고 이런 연회에 참여하는 것은 여러모로 모양새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복잡한 심경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은현에게 연회에 함께 참석해달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엘레노아의 동행을 은현은 흔쾌히 따라왔다.

이번에 자신을 대신해서 매우 큰 역할을 해주었던 엘레노아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보답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낀 엘레노아가 기쁘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엘레노아는 오래간만에 은현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은현의 품에 안겨 머리를 기댔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아래로 내려온 아름다운 금발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은현이 말했다.

“이번 일은 정말 고생 많았어. 처음 해 보는 강신이었을 텐데, 날 믿고 시도해줘서 정말 고마워.”

“당신의 부탁이었으니까요. 게다가…당신이 할 수 있다고 말해줬으니까 저는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어요.”

엘레노아는 옆에 앉은 은현의 가슴 속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려, 은현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당신에게 포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엘레노아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은현은 곧바로 아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물론이지.”

은현은 한쪽 손으로 엘레노아의 뺨을 어루만지고는 턱을 들어 올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엘레노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천천히 얼굴을 가져다 대자, 기대에 찬 눈으로 은현을 올려다보던 엘레노아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겹치며 정을 교환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