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33화 (416/730)

〈 433화 〉 433. 렌디르 왕국의 멸망(1)

* * *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저택으로 복귀한 리오드는 언제나처럼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이 아내인 테레지아가 아니라, 메이드장이라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택으로 들어오자마자, 소식을 접한 테레지아가 남편인 리오드를 맞이하러 저택의 중앙홀로 나오는 것은 언제나 일상이었지만, 저택을 방문한 귀한 손님이 있으면 그러지 못한다는 경우를 떠올렸다.

“손님이 왔나?”

“네.”

“그렇군.”

메이드장의 간결한 대답에 리오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왔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상의하고 싶었던 문제가 있었던 차에 저쪽에서 자신을 찾아와준 것이다.

망설임 없이 테레지아가 손님과 함께 있을 응접실 쪽으로 도착하고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음.”

리오드는 자신을 반겨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테레지아에게 급히 달려가 아내의 행동을 제지했다.

“괜찮아. 일어나지 마.”

임산부가 된 아내의 몸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무리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부풀어 오른 아내의 배를 어루만지고는 배 속에 있는 셋째에 대한 생각에 잠시나마 침묵했다.

“고마워요.”

남편의 배려가 기분이 좋았는지, 테레지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 아주 극성이네?”

“후후.”

일리아나는 그런 친구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면서 놀렸다.

엘레노아도 리오드와 테레지아 부부의 모습에 눈웃음을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 녀석은 이렇게 해주지 않는 건가?”

“…해주지. 너보다도 더.”

일리아나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녀가 부러운 것은 뱃속에 새 생명을 품고 있는 테레지아 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아.”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꼬려던 일리아나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다리를 꼬지 않고 양다리를 가지런히 내려 다소곳하게 앉기 위해 자세를 고쳤다.

“후후.”

“흐음?”

작게 웃으며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일리아나의 얼굴을 보고, 리오드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모를 뱃속의 새 생명에게 악영향이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려하여 자세를 고쳐잡는 일리아나의 행동을 이해한 것은 같은 임산부이자 여성인 테레지아와 엘레노아 뿐이었다.

“엘레노아.”

“네.”

“현이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내가 직접 알려줄 테니까.”

“알겠어요.”

엘레노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이 기쁜 소식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전하고 싶은 그 마음을 어떻게 모를까.

“…설마, 너도?”

리오드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해하는 일리아나의 얼굴을 보고, 무슨 경사가 생긴 것인지 파악했다.

“응.”

“…그렇군. 축하한다.”

일리아나의 회임 소식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던 그녀가 결혼했을 때 만큼이나 축하할만한 경사스러운 소식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은현은 아직도 모르는 상황일 터.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일리아나의 강압적인 시선에 리오드는 무뚝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정작 그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거지?”

“제라드의 몸 상태를 보고 있어. 곧 올 거야.”

◆ ◆ ◆

찰싹!

“크윽!?”

맨살을 드러낸 자신의 등을 사정없이 때린 매서운 손맛에 제라드는 신음했다.

“혀, 형님! 아픕니다! 살살 좀 해주세요.”

“뭐가 이쁘다고.”

나이를 마흔이나 가까이 먹은 아저씨가 겨우 등 짝을 맞은 것에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는 꼴이라니, 어떤 면으로 보면 조금 한심하고 우스웠다.

노스페라드와 레이넌과의 교전이 끝나고, 제라드는 이후에도 1개월의 시간 동안 남은 흡혈귀 잔당 소탕의 전선에 합류하지 못했다.

신수의 마력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몸을 앓아누운 그는 현재는 리오드의 후작 저택에서 요양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리오드가 중요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은현을 불렀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라드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형님. 화나셨습니까?”

“솔직히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

“…….”

외견상으로는 20대 초반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은현과 30대 후반의 외모를 가진 제라드의 모습은 굉장히 기묘했다.

은현은 마치 철없는 아버지의 등에 파스를 붙여주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그 기분과는 달리 제라드의 몸 상태를 유심히 점검했다.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몸을 진찰하는 이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미묘해서, 제라드는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많이 안 좋습니까? 말씀이 없으시니까 좀 무서운데요?”

겉보기에는 제라드의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그의 내부 몸 상태는 그리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치명적으로 위험한 수준도 아니다.

“좋은 건 아니지만 괜찮아. 제대로 요양만 하면 더 나을 수 있어. 내가 잠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건….”

제라드의 신체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다.

“성장했구나.”

“어? 정말입니까?”

“그래. 몸 안에 존재하는 마력량이 비약적으로 커졌어. 네가 지금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

갑작스레 비약적으로 성장한 마력량에 비해, 그 마력이 담겨있던 그릇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다.

미처 다 수용하지 못하고 그릇에서 흘러나온 마력들이 주체하지 못하고 신체 내부를 돌아다니며 몸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한 1개월 치 약을 만들어 줄 테니, 밥 먹고 꾸준히 복용해. 당분간 운동은 삼가고.”

“…그 정도로 심각한 게 아닌가요? 전신이 욱신거리고 저려서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든데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몸이 놀란 거라고 보면 돼. 예전에 처음 나한테 훈련을 받았을 때 기억나? 양팔과 다리에 쇠고랑을 차고 몇 달 동안 행군을 했던 때.”

“…당연히 기억하죠.”

제라드는 과거의 그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의 그 경험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시작점이나 다름이 없다.

어떻게 그때의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때랑 비슷한 경우야. 무리한 운동으로 몸속 내부의 근육이 상처를 입고, 찢어져서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지.”

특히나 지금 제라드의 몸속을 활개 치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평범한 제라드의 마력이 아니다.

무리하게 융화된, 뇌전의 기운을 띄우고 있는 기린의 마력이 몸을 헤집고 있는데,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지금의 이 상황은 마치 기린의 마력이 제라드의 몸을 좀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면으로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말하자면 더욱 강해지기 위한 거름의 초석과도 같은 거니까.”

찢어진 근육이 회복되면서 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이 단계를 넘기고 몸을 회복시킨다면, 제라드는 이전과는 다른 더욱 큰 그릇으로 성장하여 다량의 마력을 보유할 수가 있게 된다.

그것도 평범한 힘이 아닌, 신수의 마력을.

이것은 지금껏 인간이 아닌 인외의 존재들을 상대로는 부족한 공격력으로 인해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제라드의 치명적인 단점이 극복될 여지가 존재했다.

“…그렇군요.”

은현의 이야기를 들은 제라드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형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네요.”

“고마우면 다음번엔 무리하지 말고 몸을 사려봐. 솔직히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거. 너도 알고 있지?”

“…당연하죠.”

제라드는 은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의미를 이해했다.

그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제된 신수의 내단을 먹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을 수 있으며 이렇게 강함의 발판이 마련된 것은 천운이 따랐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끝났어. 일어나.”

은현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하여 제라드의 몸속을 활개 치는 기린의 마력을 강제로 억눌렀다.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제라드가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할 터.

은현이 진찰이 끝났음을 알리자마자, 제라드는 몸을 일으키고는 주섬주섬 자신의 옷을 입었다.

“크….”

아직도 전신이 욱신거리려 손발이 저리는 후유증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아까처럼 아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상의를 모두 착용한 제라드는 은현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이따가 리오드 형님과 일리아나 누님과 함께 있을 때,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

은현은 심상치 않은 화제를 꺼내리라는 것을 이미 제라드의 얼굴을 통해서 읽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에린에게서 어렴풋이 린데발트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은 은현은 제라드가 꺼내려는 화제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이야기일 것이라, 은현은 생각했다.

◆ ◆ ◆

응접실에서 리오드와 은현, 일리아나, 그리고 테레지아와 엘레노아가 있는 자리에서 제라드는 린데발트령에서 누구와 만났고, 목숨을 건 싸움을 했는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레이넌의 존재, 그리고 그의 몸속에 일어났던 변화, 악마화가 진행된 레이넌의 몸을 장악한 어떤 악마의 존재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응접실의 분위기는 고요했고 침중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은현이나,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일리아나나 엘레노아도, 마찬가지로 리오드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 테레지아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바깥에서 에린과 에이라, 차한성의 목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그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리오드다.

“…그래. 역시 그 녀석이었구나.”

“리오드 형님? 알고 계셨습니까?”

생각보다 덤덤한 표정을 짓는 리오드의 반응에 도리어 놀란 것은 제라드다.

“확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린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은 레이넌, 그 녀석이었다.”

“…에린 양이?”

에린은 리오드에게 자신을 압도했던 남자가 은현과 제라드를 알고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말했다.

두 사람과 공통된 지인이라고 한다면, 같은 영웅인 레이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군요.”

이윽고 리오드는 시선을 옮겨 계속해서 침묵에 잠겨 있는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은현, 너는 알고 있었나?”

“…아니. 몰랐어.”

하지만 은현은 이 충격적인 사실보다도 제일 앞서 무언가가 걸리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걸리는 게 있나?”

“최근에 이곳으로 오기 전에, 흑랑단으로부터 들어온 정보가 떠올랐거든. 렌디르 왕국이 망했다는 정보.”

페르니아스 왕국만큼이나 나름대로 강대국이었던 렌디르 왕국은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꽤 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도 흑랑단의 인원을 심어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정기적으로 렌디르 왕국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렌디르 왕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동시에 흡혈귀의 사건이 터진 것에 은현은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었다.

제라드를 리오드가 이끄는 흡혈귀 소탕 작전에 참여시키도록 부탁한 것도, 그 뭔지 모를 불안감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결과적으로 레이넌을 막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아주 최근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경으로 렌디르 왕국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어.”

은현이 그 누구보다 렌디르 왕국의 멸망 소식을 먼저 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통신용 수정구슬을 통해서 흑랑단을 이용하여 남다른 정보수집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멸망한 이유가 더 복잡해.”

“…뭐지?”

은현의 표정을 읽은 리오드는 더욱 성가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우리가 그때 놓쳤던 그 사령술사가. 레이넌 측에 붙어 있었어.”

“……!”

“아!”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의 언급에 리오드와 엘레노아가 몸을 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령술사?”

사정을 잘 모르는 제라드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과거에 사령술사와 싸웠던 전적이 있었던 리오드와 엘레노아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것은 일리아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미친년을 신처럼 떠받들던 미친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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