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화 〉 431. 소탕 작전의 마무리(1)
* * *
어두운 밤하늘을 달리고 있는 두 사람 중, 앞장을 서서 달리고 있는 에린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빨리…. 빨리 가야 해요!”
“알고 있다. 그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하지만….”
급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리오드의 목소리에도, 에린은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불안을 쉽게 억누르지 못했다.
“제라드님이 그렇게 화내시는 것은 보지 못했는데….”
언제나 경박하고 가벼운 태도를 보이며 익살스러운 행동과 말투를 보여주었던 제라드가 분노를 품고 있는 얼굴은 에린에게 있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제라드가 쉽게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싸웠던 그 남자는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욱 에린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남자와 제라드는 서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름 아닌 은현과도 아는 사이라는 것이, 어째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제라드님과도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고…. 현이도 알고 있었어요.”
“…은현을?”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앞장을 서 달리고 있던 에린의 중얼거림을 들은 리오드도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문했다.
제라드는 많은 나라를 이동하면서 홀로 방랑하는 생활이 길었던 탓인지 그를 알고 있는 지인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런 제라드보다 더욱 인간관계가 협소한 사람이 은현이다.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나 일리아나, 아니에스, 제라드, 앨리스가 전부인 편.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지인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제라드와 은현, 양쪽과 연관이 있는 공통의 인물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사실 리오드도 머릿속에 딱 한 사람을 떠올렸지만, 그 가능성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었기에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설마…?”
마음속에 일렁이기 시작한 의심의 물결은 점점 거세지고 리오드의 마음을 흔들었다.
“…레이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다고,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넌이 왜? 어째서?
흡혈귀와 협력하여 인간들을 사냥하는 짓거리를 하는 것일까.
은현과 제라드에게서 레이넌의 소식이 끊겨 종적을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지만.
본인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생을 살고 있던 리오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리오드님도 아세요? 아, 그러고 보니 현이와 제라드님의 전 동료였다고 했는데…. 아!”
에린은 끝에 자신이 중얼거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은현과 제라드의 사이에서 공통된 지인이라면, 자연스레 리오드와도 알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던 에린은 자신을 뒤따라오고 있는 리오드의 굳은 표정을 확인했다.
에린의 추측은 정답이었다.
“저, 리오드님….”
에린이 리오드의 눈치를 보며 무언가를 물어보려던 순간.
콰아앙!
“히익!?”
번쩍이며 어두운 밤하늘을 가득 채운 금색의 빛이 발하는 굉음에 에린이 어깨를 들썩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던 발걸음을 무심코 멈추고 바라보게 할 정도로, 공기를 찢어버리는 듯한 강한 굉음이다.
“…번개?”
하늘에서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려 앞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너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뇌광이 응집되어 강한 마력의 밀도가 느껴지는 그 장소에서는 도대체 어떠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저 힘은….”
게다가 평범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뇌광이 아니다.
에린 자신도 많은 것을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어본 에린의 경험상 저렇게 하늘을 금색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강력한 뇌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의 마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자신이 사용하는 구미호의 마력과 비슷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제라드와 적대하고 있던 그 남자 중, 도대체 어느 쪽이 저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에린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의문을 해결해준 것은 리오드였다.
“제라드다.”
“어…? 제라드님의 마력이…. 저렇게 강했었나요?”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른다. 저런 위력을 선보였던 적도 단 한 번도 없었고. 하지만…자신의 마력을 뇌전으로 바꾸어 공격하는 건 그 녀석의 특기야.”
어두운 밤하늘을 장식하는 뇌광을 보고도, 에린의 질문에 답하는 리오드의 표정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움직이지.”
“네, 네.”
이동을 멈추고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 두 사람 중 먼저 발을 움직여 앞장을 서기 시작한 것은 리오드였다.
약 2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뇌광이 점점 사그라져 본래의 어두운 밤하늘로 돌아온 것을 보고, 리오드와 에린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뇌광이 발했던 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주위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건물들은 무너지고, 여기저기의 바닥은 갈라져 있는 참상은 이 장소에서 어떤 싸움이 벌어졌는지조차 제대로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
에린은 모래 먼지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이 장소에서, ‘감지’를 펼쳐 어딘가에 있을 제라드의 위치를 탐색했다.
다행히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라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라드님!”
제라드의 위치를 특정하여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에린은 황급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라드의 몸 상태를 살폈다.
곧바로 경동맥 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맥을 짚은 에린은 미약하게나마 맥박이 뛰고 호흡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겉보기에는 딱히 눈에 띄는 외상은 보이지 않았으며, 제라드는 체력과 마력을 모두 소진하여 탈진한 것으로 보였다.
정확한 진찰은 엘레노아에게 데려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이윽고 에린은 리오드를 보며 말했다.
“탈진하신 것 같아요. 외상은 딱히 없어 보이고요. 정말…다행이에요.”
“…….”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시름을 놓은 에린의 말을 들으며, 리오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서 제라드와 혈투를 벌였을 터인 상대방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지?’
이곳에서 벌어진 싸움의 여파는 절대로 인간과 인간의 싸움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수준의 그것이 아니다.
제라드가 어떠한 수단을 이용하여 인간을 초월한 강력한 힘을 사용하여 방대한 뇌광을 다루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제라드의 힘은 추측해볼 수 있었지만.
그런 제라드와 대적했을 존재의 정체는 도저히 짐작되지 않았다.
리오드의 마음 속에 술렁였던 의심은 점점 켜졌다.
‘레이넌. 정말로 너냐?’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생사고락을 경험했던 옛 동료에 대한 얼굴을 떠올린 리오드는 이내 제라드의 상태를 살폈던 에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바로 구호소로 이동하도록 하지.”
“네.”
혹시라도 좋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치료를 받도록 구호소로 옮기자는 판단은 제라드에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어보기 위해서라도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조치였다.
정신을 잃어 기절해있는 제라드를 등에 업은 리오드는 에린과 함께 구호소로 복귀했다.
“마력 고갈과 탈진입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보이네요.”
“하아아….”
구호소에서 제라드의 진찰 결과를 엘레노아의 입으로부터 확실하게 듣게 되자, 에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간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로 깨어나는 건 힘들 것 같나?”
“…네. 그거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아무리 외상이 없다고는 해도, 몸 안에 누적된 피로가 너무 심해요.”
몸 안에 남아 있는 마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짜내어 사용한 결과, 극심한 탈진 현상을 겪고 있는 제라드의 몸 상태는 결코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의 몸에 외상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발동시켰던 ‘치천사의 날개’가 그가 입었던 상처들을 모조리 회복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엘레노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외상을 회복시키고 몸의 컨디션을 극상으로 끌어 올려주었다고 하더라도, 체내의 마력량과 정신적인 피로를 해소해주지는 못한다는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엘레노아 자신 또한 막대한 신성과 정신력의 소모로 하는 ‘치천사의 날개’를 언제까지고 반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엘레노아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리오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정도로…제라드님을 몰아붙이셨다니…. 도대체 누구인가요?”
대륙의 여섯 영웅 중 한 사람인 제라드를 몰아붙일 수 있는 존재가 적 중에 있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무거운 사실이었다.
“…….”
하지만 리오드는 얼굴을 굳힐 뿐, 엘레노아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자신 또한 그저 심증에 불과할 뿐,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신뿐만이 아니라, 믿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사적인 감정도 포함이 되고 있었지만, 리오드는 그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엘레노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그 녀석에게 상담하고 싶은데. 연락을 넣어 줄 수 있겠나?”
“그 사람은 지금…. 알겠어요.”
리오드가 말한 ‘그 녀석’이 은현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들은 엘레노아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드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은현과 상담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리오드의 태도로부터,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엘레노아는 짐작했다.
“고맙군.”
리오드는 짧게나마 감사를 표했다.
“후후, 아니에요.”
평소 무뚝뚝한 인상인 그가 표하는 그 감사의 인사에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엘레노아님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노스페라드가 추락하여 리오드의 손에 죽자마자, 엘레노아는 곧바로 치천사의 날개를 해제시켰다.
노스페라드의 시체는 동결된 상태로 병원균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고 있는 상태.
대량의 신성력과 정신력을 소모한 엘레노아는 노스페라드의 시체를 정화하지는 못했다.
“괜찮아. 조금 쉬면 나아질 거야.”
현재 엘레노아는 구호소의 야전 막사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사이먼이 이끄는 메이거스 궁정 마법사단 소속의 마법사들과 사제들의 협업 아래 노스페라드의 시체 속의 병원균을 조금씩 정화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엘레노아는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노스페라드의 시체 정화 작업에 참여할 생각이다.
“에린이야말로 안 쉬어도 괜찮아?”
“저야 괜찮죠. 헤헤.”
“그럼 나도 이만 가보도록 하지. 제라드를 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리오드님.”
제일 위험한 존재였던 고대 마수 노스페라드도 처리했고, 제라드의 상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린데발트령에 남아 있는 모든 흡혈귀의 잔당을 소탕하는 이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오드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소탕 작전을 완전히 마무리 짓기 위해, 구호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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