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29화 (412/730)

〈 429화 〉 429. 뇌신(2)

* * *

벨페고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 사태에 경악했다.

현재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레이넌과 제라드의 몸이 쓰러져 있는 이 장소 뿐만이 아니다.

엘레노아의 강신(??), ‘치천사의 날개’의 효과 범위는 그녀가 있는 장소의 한정이 아니다.

효과의 범위를 줄인다면 더 오랜 시간을 유지하며 효율 좋은 사용을 할 수 있었겠지만, 엘레노아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가 바랬던 것은 이 소탕 작전에 참여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만들지 않고 무사히 작전을 마쳐 귀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엘레노아는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치천사의 날개’가 닿는 효과 범위를 현재 흡혈귀들의 소탕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린데발트령 전역을 커버했다.

­이 장소 전체에 신성이…!?

현재 린데발트령 내부를 가득 채운 양질의 신성은 도저히 상위 사제가 몇 명이 힘을 합치더라도 지금의 이 기적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이 린데발트령 전역에 퍼져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몸 상태를 회복시키고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이 신성의 양은 틀림없이 현재 최고의 사제라고 칭송받는 아니에스의 역량을 넘어섰다.

애초부터 개인의 싸움에 특화된 방식으로 자신의 신성력을 사용했던 아니에스와 많은 사람을 회복시키고 지키겠다는 방식으로 버프와 회복에 특화된 엘레노아의 방식은 비교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마치 정말로 신계의 여신이 직접 하계에 현현하여 신의 위엄을 선사하고 있는 것만 같은 강한 신성에 벨페고르는 치를 떨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곳에 여신의 잔재가 있을 수가 있단 말이냐!

하지만 오직 레이넌의 몸속에만 깃들어 있던 정신체에 불과한 악마의 물음에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여신의 간택을 받아 직접적으로 신성의 축복을 받은 사제가 존재할 터.

­정말이지. 아직까지 방해를…!

하계의 시간으로 약 400년 전에도 저지당한 악마들의 침공을 다시 개시하기 위해 갖은 수작을 펼쳐 지금까지 왔다지만.

400년의 시간이 지나서도 또 한 번 방해를 해오는 여신들의 힘에 짜증과 분노를 느낀다.

­젠장….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해.

다행히도 신성의 간섭을 붙이기 이전에 악마화를 성공시켜 레이넌의 목숨을 붙들어 놓기는 했지만.

하계에 흩뿌려진 저 순백의 깃털이 가지고 있는 여신의 신성은 악마에게는 천적인 치명적인 독이나 다름이 없다.

겨우 되살린 레이넌의 육신은 아직 악마와 인간의 중간단계에 있는 반인반마(半人半?)의 상태.

저 신성에 대한 저항력이 있을 리가 없다.

아직 본체가 아닌 정신체에 불과한 자신마저도 저항하는 것이 고작인 저 신성은 벨페고르마저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벨페고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레이넌의 육체에 간섭하여 강제로 제어권을 빼앗았다.

콰직!

간신이 이어붙인 레이넌의 등에서 한쌍의 검은색 악마 날개가 피부를 찢고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이마 위의 양쪽에 돋아나는 두 개의 뿔은 레이넌이 조금씩 인간의 형태를 버려가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날개를 펄럭이며 레이넌의 몸으로 하늘을 날아 이 장소를 벗어나려던 벨페고르를 제지시킨 것은 힘없는 한 인간의 목소리다.

“거기…서….”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땅처럼 쩍쩍 갈라지고 메마른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벨페고르는 멈칫거리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쿨럭!”

바닥에 쓰러져 다 죽어가는 몸이었던 제라드가 레이넌의 몸을 올려다보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쓰던 제라드가 또 한 번 피를 토한다.

“…정말 징글징글하군.”

벨페고르는 혀를 찼다.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신수의 힘을 약 2초간 제어하여 레이넌을 압살시켰던 것도 놀라웠지만, 벨페고르의 치를 떨게 만드는 것은 다 죽어가던 그의 육체를 살린 저 신성의 깃털들이 보여준 효과다.

불태워버린 혈액을 복구시키고, 안구를 복구시키고, 성대를 복구시켜 본래 인간의 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기적을 보고 아무런 감상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쿨럭! 도망…치는 거냐!”

하지만 전신의 몸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몸 안에는 미약하게나마 기린의 마력이 존재했다.

치천사의 날개가 흩뿌린 순백의 깃털들로 인해 제라드의 몸이 회복됨과 동시에, 기린의 마력이 날뛰어 그의 몸속을 뇌전으로 불태워 헤집어놓았다.

몸이 회복되면서 감각마저도 되살아나 통각을 느낄 수 있게된 제라드는 그 격통을 느끼면서도 꿋꿋히 악마화가 되어버린 레이넌의 몸을 노려보았다.

‘끝낼 수…있었는데…!’

전신이 불타고 숨통이 끊어진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한 번 죽은 레이넌의 몸을 되살린 것도 모자라, 악마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이 상황에 소리없는 통곡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쿨럭!”

몸이 회복되었음에도, 삼켜버린 신수의 마력이 소멸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괴롭히고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현재 자신의 상태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것은 무력한 자신에 대한 한탄이다.

“끄…으으!”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애써 움직이려고 발버둥을 치는 제라드를, 레이넌의 몸을 장악한 벨페고르는 질린듯한 시선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지금 죽여야 할까?’

악착같은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대항하려는 제라드의 모습을 보고 벨페고르는 고민했다.

기적적인 타이밍으로 그 극악의 몸 상태를 회복시켰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저 기린이라는 난폭한 신수의 마력을 품은 이상, 그의 목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몸상태를 계속 회복시키고 있는 ‘치천사의 날개’는 영구적인 지속 효과가 아니다.

사제가 여신의 힘을 간접적으로 발휘하는 강신을 해제한다면, 제라드의 전신은 다시 뇌전의 마력에 불태워져 끝에는 죽음을 맞이할 터.

가만히 내버려둬도 어차피 눈앞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어째서지?’

이 귀찮기 짝이 없는 인간은 어째서인지, 살려둬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이미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할진데,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올곧았다.

자신을 방해할 것 같은 귀찮은 존재이며, 무엇보다도 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짜증났다.

고민을 마친 벨페고르는 천천히 제라드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목을 뽑아버리면 되니까.

신성의 힘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는 완벽한 즉사.

“크…으!”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레이넌의 몸을 장악한 벨페고르를 올려다보며, 제라드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어쩌면. 지금, 지금이라면….’

제라드는 자신의 마력을 활성화시켰다.

◆ ◆ ◆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입니까?”

은현이 신수 기린의 내단을 정제해주겠다는 승낙의 의사를 밝히자마자 추가적으로 조건을 덧붙였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어. 이걸 먹겠다면…. 완벽하게 네 것으로 만들어.”

“…….”

은현의 말을 들은 제라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하는 말의 의미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목숨을 포기하지 말고, 기린의 마력을 완벽하게 제어하여 자신의 힘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는 굉장히 심플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다면, 제라드는 은현을 찾아와 이런 상담과 부탁을 하지도 않았다.

“형님. 하지만 그건….”

“알아. 힘들다는 거. 그만큼 많은 생각을 했고 고민 끝에 결심해서 나한테 부탁을 해왔다는 것도 아주 잘 알아. 이건 네 결의를 비웃는 것도 아니야.”

제라드를 응시하고 있는 은현은 한없이 진지했다.

이윽고 테이블 위 자신의 앞에 놓여만 있던 빈 잔에 제라드가 가져온 술을 따라 벌컥 들이마셨다.

“…작업중에는 못 마시는 거 아니셨습니까?”

“니가 가져왔잖아. 그리고 제조도 얼추 다 마무리가 되었고. 나머지는 에밀리아와 인형들에게 맡겨두면 돼.”

제라드와 마찬가지로, 결의를 굳힌 은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야.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 자살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미친 짓이야. 그래도….”

성공만한다면, 제라드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상태로 노리스크로 기린의 뇌전을 다룰 수가 있게 된다.

“해보겠어?”

“…형님.”

“왜.”

“저는 말이죠. 형님의 그 미친 훈련도 버텨낸 인간입니다.”

진짜로 ‘아 이거 죽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음에도 꿋꿋히 그 훈련을 버텨온 제라드는 지금 성장하여 여섯 명의 영웅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은현에게 훈련을 받지 않으리라는, 마치 지구의 군 전역자들과 똑같은 대사를 내뱉었던 제라드는 그래도 과거의 그때를 추억 삼아 회상하곤 했다.

“이번에도 반드시 살아남아 성공해보이겠습니다. 저 믿으시죠?”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장담하는 제라드의 경박한 태도에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감사합니다! 형님!”

제라드는 기쁨에 겨워 은현의 품에 파고들어 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남자의 스킨십 따위 은현이나 제라드나 절대로 사양이었지만 살짝 술이 들어간 것 때문인지, 은현은 쓴웃음을 지을 뿐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태도는 살짝 경박해도, 제국의 잔당들을 추적하거나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온 제라드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며 큰 결심을 했다는 것에 대견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제라드 또한 자신을 지금까지 성장시켜주고 이끌어준 남자가 자신의 결의에 보답하고 생각해주는 배려에 감격스러웠다.

“하아…. 형님이 여자였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부로 삼았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싫어. 임마.”

끼이익

이윽고 공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일리아나가 남자 둘이 부둥켜안고 있는 광경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둘이 뭐해. 지금?”

◆ ◆ ◆

“크…으윽!”

몸안의 마력을 활성화시켜 전신을 돌아다니게 만들어, 체내에 남아있던 미약한 기린의 마력을 덮어씌웠다.

그 과정에서 덮쳐오는 어마어마한 격통이 제라드의 정신을 강타했으나, 제라드는 이빨을 꽉 깨물고 버텼다.

‘괜찮아. 처음보다는 덜 해.’

처음 신수의 내단을 삼키자마자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왔던 강렬한 뇌전의 기운에 비하면, 모든 힘을 소실하여 그 일부만 남은 이 기운은 버텨볼만 하다고 제라드는 생각했다.

이것은 이미 죽음이라는 것을 문턱으로나마 경험해본 제라드였기에 생각해볼 수 있는 미친 도박에 가깝다.

엘레노아의 강신인 치천사의 날개로 인해, 제라드의 몸은 계속해서 뇌전에 불태워짐과 동시에 회복이 되고 있었다.

그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격통 속에서도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추구했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어. 이걸 먹겠다면…. 완벽하게 네 것으로 만들어.

제라드는 이미 은현의 그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랬던 자신이 지금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이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천재일우의 기회다.

‘남아있는 기린의 마력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제라드가 순간적으로 떠올린 사람은 두 사람이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 이 신수의 내단을 정제시켜 만들어준 은현의 충고.

두 번째는 이미 한차례 신수의 힘을 몸 속에 안정적으로 품고 훌륭하게 성장해낸 에린의 모습이다.

그녀와 자신의 현재 상황은 명백히 틀리지만, 제라드는 에린의 경우에서 힌트를 얻었다.

기린의 마력이 난폭하게 날뛰며 자신의 몸을 헤집어놓는 이유는 이미 자신의 몸에 자리 잡고 있는 마력과 상성이 맞지 않아 반발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마력과 신수의 마력을 융화시킨다.’

“크으윽!”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격통이 밀려왔지만, 제라드는 그것을 정신력과 근성으로 버텨내며 융화를 계속 시도했다.

다행히도 치천사의 날개로 인해 반발력의 부작용으로 계속 불태워지고 있는 제라드의 몸은 계속해서 자동적으로 치료가 되고 있었다.

이것은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제라드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이던 벨페고르가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부르르 떨기 시작하여 스파크가 튀어오르는 제라드의 목을 뽑아버리기 위해 손을 가까이 대자.

파지직!

지금까지 전혀 움직이지 못했던 제라드의 팔이 움직여, 손을 뻗은 레이넌의 한쪽 팔을 움켜쥐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