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6화 〉 426. 영웅을 동경했던 남자(1)
* * *
제라드는 렌디르 왕국의 수도에서 모험가 일을 하는 아주 평범한 청년이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갓난아기 시절 때 슬럼에 버려진 이후, 그 슬럼을 나온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제대로 된 옷도 아닌 밀가루 포대를 대충 엮어 중요 부위만을 가린 꾀죄죄한 소년을 고용해줄 수 있는 괴짜 같은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년 시절의 제라드는 사람들의 등을 처먹거나 강도 같은 짓을 할 수 있는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연히 모험가라는 직업의 소문을 들었다.
신분과 관계없이 사지만 멀쩡하고 제대로 된 사고방식만 박혀 있다면 누구든 모험가가 될 수 있다는 평등함을 내세운 그 직업이라면.
적어도 슬럼 출신에 제대로 된 옷 하나는 물론 가진 것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모험가의 일을 시작했고 기초 교육을 수료하고 기초 장비로 싸구려 경갑과 철검을 받았다.
하지만 그 수료를 한 이후,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수주하러 온 제라드는 또 한 번 현실을 깨달았다.
이 직업에서도, 공평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집안의 재력으로 신참 모험가부터 값비싼 장비들로 무장을 하여 시작을 했다.
누군가는 인맥으로 은위계, 금위계의 모험가가 소속된 파티에 편성되어 시작부터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같은 신참 모험가라도, 제라드와 다른 모험가들은 동등한 출발 선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어찌 이리도 불공평한가.”
자조하며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 누군가가 대답해줄 리도 없다.
하지만 천만의 다행히도, 제라드를 써주는 모험가 파티도 존재는 했다.
“흐음. 이런 애를 꼭 써야 하냐?”
제라드를 고용한 모험가 파티의 파티원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리더에게 의문을 표했다.
이 파티 안에서 고용된 제라드의 역할은 단순한 짐꾼의 역할.
각종 야영용 도구와 기타 장비들이 들어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장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만큼, 짐꾼들 사이에서도 근력과 체력이 중요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라드는 제대로 먹지 못해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고, 시원찮아 보이는 체구와 인상을 보아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너무 그러지 마. 그만큼 싼값에 고용했으니까. 게다가 이 녀석 혼자가 아니라 서너 명은 짐꾼으로 더 데려갈 생각이고.”
그렇게 짐꾼의 역할로 고용된 제라드는 자신을 고용한 모험가 파티와 함께 첫 출정을 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제라드에게 모험가의 참혹한 현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비참했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어어어!”
급작스럽게 등장한 고위등급 마수의 출현으로 제라드가 짐꾼으로 소속되어 있던 모험가 파티는 전멸했다.
자신의 인생은 이토록 비참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끝을 맞이한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던 차.
그를 구원한 것은 백은발에 적안을 가진 신비로운 외양을 가진 남자였다.
어디에서 꺼냈는지 양손에 두 자루의 검을 쥐고는 자신의 모험가 파티를 전멸시켰던 고위등급 마수를 10초도 걸리지 않아 썰어버렸다.
백은발의 남자는 이내 주위를 둘러보더니 제라드를 발견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살아남은 사람은 너 하나인 것 같네.”
은현과 제라드의 만남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흐응. 뭐야? 얘는?”
느닷없이 자신들의 야영 장소로 한 소년을 데려온 은현에게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요염한 인상의 마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굉장한 미녀다.’
슬럼에서 자라면서 봐온 여자들이나, 모험가 길드에서 만나보았던 다양한 모험가와는 다른 요염하고 색기가 넘치는 마녀의 모습.
제라드는 처음보는 어른 여성을 보고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목숨을 위협받았던 상황을 모면한 이후, 극적인 장소에서 만나게 된 것에 기묘한 이끌림을 느꼈고, 이것이 첫사랑이라는 것일까라는 실없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같은 야영지의 모닥불 앞에서 불을 쬐고 있는 다른 이들이 제라드의 모습을 관찰했다.
“기초 장비인 경갑과 철검이군. 모험가인가?”
“모험가? 그냥 봐도 초심자 같은데 혼자서 이런 데를 어슬렁거렸다고?”
제라드를 보고 관찰하던 이는 딱 보아서 ‘기사’라는 것을 연상시키는 갑옷과 검, 그리고 큰 체구를 가진 남자와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어, 어린애?”
당황이 섞인 제라드의 중얼거림을 들은 여사제, 아니에스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야. 나 이래 봬도 19살이야. 한 번만 더 나 어린애라고 하면 그때는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죄, 죄송합니다!”
제라드는 섬뜩한 경고를 해오는 아니에스의 말에 퍼뜩 무릎을 꿇고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알면 됐어.”
제라드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많은 오해를 샀던 아니에스는 코웃음을 치며 간단히 제라드를 용서했다.
야영지에 있는 모험가 파티의 구성원은 검사와 기사, 마법사와 사제로 구성된 네 명뿐.
착용하고 있는 장비나 모습들은 웬만한 모험가들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베테랑들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가득한 파티였다.
특히나 이 모험가 파티에 자신보다도 더욱 어려 보이는 사제 소녀가 속해 있었다는 것이 더욱 의문스러웠다.
“전멸한 모험가 파티의 짐꾼이었나 봐. 주변을 경계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발견했어. 나중에 상황을 봐서 모험가 길드에 보고하고 보내줘야지.”
“흐응. 그래.”
별 관심이 없다는 투로 대꾸하는 일리아나는 이윽고 제라드에게 신경을 껐다.
“일단 오늘은 쉬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일리아나. 결계 경보석은?”
“이미 설치해놨어.”
“좋아. 그러면 곧바로 자자. 내일 해가 뜨자마자 출발할 예정이니까.”
은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세 명은 이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의 남녀가 일제히 모닥불 앞에서 일어나 텐트를 향해 걸어갔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제라드에게 은현이 말을 걸었다.
“너도 이쪽으로 와. 좀 비좁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 참고.”
“예, 예….”
제라드는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위화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현을 따라 텐트 속으로 몸을 옮겼다.
내부는 꽤 쾌적한 편으로 속하여 2인용으로 쓰기에는 그럭저럭 편했다.
세 사람이 낑겨 누우면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못 잘 정도도 아니었다.
자신을 비롯한 서너 명의 짐꾼들을 이것보다 비좁은 텐트에 밀어 넣어 휴식을 취하게 했던, 이미 전멸해버린 이전 모험가 파티에 비하면 이 텐트는 굉장히 편했다.
애초에 짐꾼인 자신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동침을 허락한 은현과 리오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저어….”
“할 말 있어?”
“어째서 불침번을 서지 않는 건가요?”
“아, 그거. 우리는 불침번을 서지 않아. 지금 이 야영지 일대는 일리아나가 각인시켜 만든 돌인 경보 결계석으로 보호받고 있거든.”
은현은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보여주었다.
이 결계석은 펼쳐진 결계의 외부에서 침입해오는 무언가의 존재를 감지하고, 실제로 침입을 해온다면 곧바로 은현이 손에 쥐고 있는 구슬에 경계경보가 울리는 식의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런 게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모험 원정 중에, 야외에서 야영하게 되는 경우는 모험가들에게 있어 늘상 있는 일이다.
산적, 들짐승, 마수의 위협을 항상 경계해야 하면서도 파티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교대로 불침번을 사는 것이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라는 것을 기초 교육으로 배운 제라드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연하지. 나랑 내 동료 마법사가 만든 거니까. 이걸 외부에 공개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에게도 비밀로 해줬으면 하는데.”
이것 결계석이라는 물건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모험가들을 비롯하여 국가 전력에도 많은 도움이 될 터인데, 어째서인지 은현은 이것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아이템을 만들어서 파는 것만으로도 떼돈을 벌 수 있을 터인데, 이 남자는 어째서 이것을 공개하지 않고 사적으로만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제라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도움을 받는 자신의 입장과 주제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피곤한 몸은 비좁은 텐트 안에서도 너무나도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결계석이라는 것으로 불침번의 걱정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긴장으로 가득했던 몸이 탁 풀리면서 깊은 숙면을 취하고 깬 제라드의 아침은 너무나도 상쾌하고 개운했다.
해가 뜨기 시작한 아침 일찍부터, 은현은 거리낌 없이 여성 둘이 자는 텐트 안에 들어가 일리아나와 아니에스를 깨우고 밖으로 질질 끌며 데리고 나왔다.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두 여성을 밖에 방치해두고, 은현과 리오드는 능숙하게 야영지의 정리를 시작했다.
늘상 아침에 약한 두 여성진들을 대신해서, 그만큼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던 것은 은현과 리오드였다.
“저, 저도 돕겠습니다.”
식량을 제공 받고, 잠자리를 제공 받으며, 목숨의 은인을 눈앞에 보고도 제라드는 가만히 있을 정도로 양심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은현은 자신과 리오드를 돕겠다는 제라드의 의사를 거부하지 않았다.
야영지를 정리하게 되고 혼자가 된 제라드는 어쩌다 보니 은현의 모험가 파티에 동행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신세계를 맛보았다.
“앞에 좀비 다수. 그리고 레이스들.”
“알았다.”
갑작스레 행군을 멈추고, 입을 여는 은현의 행동에 제라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은현은 도대체 어디에서 적의 존재를 감지하고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어 어리벙벙했던 제라드와 달리, 리오드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어 앞을 경계했다.
“아니에스. 정화의 기도. 준비해둬.”
“오케이. 확인.”
이윽고 정말로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좀비들의 모습을 보고, 제라드는 몸을 움찔 떨었다.
거기에 하늘을 떠다니는 반투명한 유령들이 만들어내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조용한 풀숲을 더욱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시작해.”
하지만 그 스산하고 기분 나쁜 분위기는 단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리오드가 휘두른 검기에 땅과 풀숲이 휩쓸려 나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은현의 날카롭고 빠른 검에 좀비들이 무력하게 잘려나가는 광경은 제라드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성의 기운으로 말끔하게 정화되는 일대의 현상에 좀비들의 피로 오염된 숲의 깨끗함을 되찾았다.
‘진짜 모험가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대지가 휩쓸리고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쓸려나가는 좀비들의 시체를 보며 제라드는 감탄했다.
“다시 이동할게.”
작은 교전이 끝나자마자, 은현의 명령에 파티원인 세 사람은 절대로 토를 달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짐을 들쳐메고는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지금껏 보아온 다른 모험가들과는 달랐다.
네 명분의 짐은 모두 은현과 리오드가 절반씩 나눠서 들고 있었으며, 일리아나나 아니에스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가벼운 구호 물품이나 비상식량이 든 배낭을 착용하여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모험가 활동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동행하게 된 짐꾼인 제라드에게 호의를 베풀고 생색을 내며 그의 자존심을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일리아나와 아니에스의 여성진들만이 상대적으로 가볍고 규모가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있을 뿐이지, 전체적으로 짊어지는 짐 또한 짐꾼이나 다름없는 자신과 별 차이가 없다.
파티에 넣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길 줄 알라고 생색을 내고, 그 대신 많은 짐을 짊어지게 강요하고 제대로 된 식량도 나누어주지 않아 험하게 신참 모험가들을 부려먹은 다른 모험가 파티와는 명백히 다르다.
오히려 베풀어준 배려와 호의에 비해서 은현의 파티는 제라드에게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옳다.
그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맡은 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른 이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위선을 펼치지도 않았다.
은현의 모험가 파티는 제라드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실로 이상적인 모험가 파티였다.
‘눈부시다.’
제라드가 품게 된 것은 동경이다.
개성이 특출나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압도적인 강함은 물론,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배려가 기본으로 깔린 네 명의 강한 유대 관계.
제라드가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 유대 관계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동경의 마음을 품었다.
‘나도.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강해지고 싶고, 저런 굳건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을 가지고 싶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버려졌던 유년 시절부터, 슬럼가에서 배를 곪으며 고달픈 나날을 보냈던 소년 시절, 아무런 재능도 없어서 무시만 받았던 뉴비 모험가인 청년의 제라드는 처음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사람의 온기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래서 열망했다.
그 강렬한 열망을 품은 제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리곤 이 파티의 리더인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저에게…. 저에게 기술을 가르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