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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424화 (407/730)

〈 424화 〉 424. 영웅과 영웅(1)

* * *

하늘 위로 치솟은 거대한 푸른 빛의 기둥.

그 기둥은 구름을 가르고 얼어붙은 대기를 찢어발기는 압도적인 폭력의 그 자체다.

이 기술은 그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년을, 2년을, 4년을, 8년을, 16년의 세월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단련하여 만들어진 노력과 집착이 쌓이면서 탄생한 기술.

바닥을 밟고 지탱하고 있는 다리부터, 허리를 타고 상체와 팔에까지 고스란히 힘이 전달되는 동작의 완성은 완벽한 검술의 이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검은 리오드의 극의다.

콰아아앙!

혹한의 대지로 만들어버린 린데발트령의 하늘이 양분시켜버리는 거대한 리오드의 검기가 얼어붙어 둔화 상태에 걸린 노스페라드의 몸에 직격한다.

키, 이이이이익!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을 머금은 검기가 노스페라드의 몸에 닿는 순간.

얼어붙은 피부를 찢어발기고, 살을 파고들어 뼈를 절단시켰다.

그 고통에 노스페라드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이미 직격한 리오드의 검기는 점점 노스페라드의 몸을 두 동강을 냈다.

쩌저적

마침내 노스페라드의 몸이 갈라지며, 고대 마수인 거대 박쥐는 최후를 맞이했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쉬고 오래간만에 자신의 전력을 내보인 리오드는 자신이 반으로 갈라버린 노스페라드의 얼어붙은 시체를 응시했다.

“죽인 건가?”

“네.”

몸 상태를 호전시킨 사이먼이 뒤늦게 따라와 리오드가 만든 거대 박쥐 마수의 시체를 올려다보았다.

“…대단하군.”

왕국 최고의 기사라는 칭호를 거머쥔 영웅에 걸맞은, 그런 위용을 가지기에 충분한 무력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 건가?”

적군의 최상위에 있는 우두머리를 처치했다.

노스페라드의 죽음은 그들에게 힘을 부여받은 권속 흡혈귀들의 몰락을 의미한다.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여 사기가 꺾이는 그들은 더는 적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리오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노스페라드의 시체를 응시했다.

남은 흡혈귀의 잔당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욱 성가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사제들에게 부탁해서 이 마수의 시체에 존재하는 역병의 기운을 모조리 정화해야 합니다.”

고대 마수인 노스페라드는 다른 마수들보다 더욱 까다로운 점이 존재한다고 은현은 설명했다.

­전투도 문제지만, 시체의 처리도 성가시지. 노스페라드는 사망하는 순간 체내에 보유하고 있던 역병의 기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거야. 그게 대기중을 타고 사람들에게 퍼진다면, 죽는 건 순식간이지.

그렇기에 제대로 노스페라드의 시체를 정화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전투보다, 그 전투 이후의 상황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욱 힘들고 성가시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 은현이 엘레노아와 다수의 사제를 보내준 것이었으니, 그에 대한 대비도 확실하다.

다행히도 현재 노스페라드의 시체는 메이거스의 마법사단의 마법사들과 사이먼의 마법으로 동결 상태에 들어가, 당장 역병의 기운이 밖으로 퍼지는 것은 면했다.

‘엘레노아에게 정화까지 부탁하고 싶긴 하지만….’

이미 강신을 유지하면서 막대한 신성을 소모한 엘레노아에게 더 이상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무리다.

이 동결 상태를 유지하면서, 현재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사제들을 소집하여 천천히 정화를 시킬 수밖에 없다.

“리오드니임!”

점점 가까워지는 앳된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름다운 남청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여성이다.

“에린?”

때마침 타이밍이 좋게 엘레노아 쪽의 사람과 곧바로 접선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

“마침 잘 됐군. 곧바로 엘레노아에게 부탁해서 사제들에게….”

“리오드님! 잠시만요! 더 급한 문제가 있어요!”

“…더 급한 문제?”

얼마나 급히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는 에린의 얼굴과 행동에는 여유가 없어 보였다.

소탕 작전의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위험한 고비는 모두 넘겼다고 생각했으나, 에린의 얼굴을 본 리오드는 불안한 기분을 품으며 표정을 굳혔다.

“…무슨 일이지?”

“제라드님이…!”

◆ ◆ ◆

카아앙!

“…쯧!”

레이넌의 허리를 스쳐 지나가는 제라드의 날카로운 단검에도 레이넌의 몸은 아무런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살점이 아니라, 마치 강철과 부딪친 것만 단단함은 자연스레 제라드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카운터로 날린 자신의 주먹을 피하고, 자신에게서 거리를 벌리는 제라드를 응시하며 레이넌은 말했다.

“그러니까 말했을 텐데. 너로는 나를 이기지 못해.”

“…….”

“너와 나는 상정이 맞지 않는다는 걸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제라드를 바라보는 레이넌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자신과의 격차를 보며 제라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레이넌은 대륙의 인간들을 모조리 몰살시켜버리겠다는 증오심을 품고 있었지만, 상대의 무(?)에 대한 경외와 존경심을 존중할 줄 아는 모순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인간이었다.

제라드가 쌓아 올린 업적과 노력해온 시간은 절대로 무시해도 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가벼운 것은 실없는 농담과 여자에 대해 한없이 가벼워지는 태도뿐이었다.

그렇기에 레이넌은 절대로 제라드를 무시하지 않았다.

레이넌이 말하고 있는 것은 순수한 상성의 차이다.

제라드의 장점은 압도적인 스피드와 기교를 이용한 일격필살의 암살능력.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극강의 무력을 보여주며 진심을 다한다면 그 리오드조차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기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단전은 그 공격력을 상회하는 압도적인 방어력을 보유한 대상이라면 그 기술이 무용지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 극강의 일격필살마저도 대상에게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제라드의 기술은 인간 한정으로 무서운 위협이 될 뿐, 강한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마수, 인외의 존재들을 상대하는 데는 치명적으로 약해진다.

기본적인 능력의 스펙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제라드는 여섯 명의 영웅 중에서 장점과 단점이 가장 명확한 영웅이었다.

“포기해라.”

20년 전에도 단 한 번도 뒤집지 못했던 두 영웅의 상성은 지금에 와서도 이어졌다.

제라드와 레이넌의 전투는 치열했다.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정한다면, 겉보기에는 제라드가 레이넌에게 쉴 새 없는 맹공을 퍼부으며 그를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은현에게서 배운 이형환위를 이용한 고속의 이동 기술을 이용하여 전후좌우와 위아래로 쉴새 없이 움직여 레이넌의 눈을 교란했다.

종아리, 허벅지, 팔, 어깨, 목 등 레이넌의 많은 부위를 공격하였으나, 단단한 방어력을 구사하고 있는 레이넌의 신체 강화를 뚫고 데미지를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제라드의 그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모조리 받아들이면서, 제라드가 틈을 보일 때마다 날아오는 레이넌의 카운터 펀치는 제라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자신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치명타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제라드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이 X끼, 진짜로 날 죽일 생각이네.’

그런 명확한 살의가 담겨있는 그의 주먹에 복잡한 심리를 품었다.

진심 다하고 있냐는 부분에서는 제라드 또한 레이넌에게 살의를 품으며 진심으로 상대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필사적으로 해야 그를 반죽음으로 만들 수 있는 자신과 망설임 없이 전 동료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한 강력한 주먹을 날리는 레이넌과는 상황부터가 다르다.

제라드는 확고하게 자기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조금이라도 레이넌에게 과거의 정을 품고 있었던 자신의 안일함 때문이다.

눈앞의 레이넌은 확실히 흡혈귀들과 한편을 맺어 인간들을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꾸미는 악인이다.

그것을 재차 자각했다.

살짝 떨렸던 손에 다시 힘을 실어 자신의 단검을 꽉 쥐고는 자신의 마력을 방출시켰다.

[제라드 속성 비기]

[뇌광(雪光)의 이빨]

파직! 파지직!

금색의 스파크를 튀기며 제라드의 단검이 금색의 뇌광(雪光)으로 덮어 씌워졌다.

사람을 대상으로는 일격필살의 기술을 구사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는 마수들이나 인외의 존재들에게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자신의 단점.

부족한 공격력.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은현과 제라드가 고심과 노력 끝에 만들어 낸 제라드만의 비기.

“포기하라고?”

제라드는 뇌광으로 뒤덮인 금색의 송곳니와 같은 단검을 레이넌에게 겨누고 말을 이었다.

“너나 포기해. 이 X끼야.”

“…하.”

당당하게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해오는 제라드를 보며, 레이넌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지금 누구에게 항복을 권유했던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제라드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은 어째서 그에게 항복을 권유했을까.

스스로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밀어두고, 레이넌은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진심이군.’

레이넌은 비기를 꺼내는 제라드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품으며 그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드디어 그가 제대로 마음을 먹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공격해올 터.

자신이 가진 동체 시력으로는 제라드의 움직임을 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상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저 뇌광의 이빨은 금색의 뇌전에 닿는 모든 것을 찢어버리고 불태워버리는 극강의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무지막지한 마력의 소모를 자랑한다.

사용할 수 있는 횟수도 그리 많지 않은 저 기술로 자신에게 공격해온다면 어디를 공격해올까.

‘급소겠지.’

정확히는 심장이 박혀있는 자신의 왼쪽 가슴.

판단을 내린 순간, 제라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형환위를 이용하여 레이넌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제라드는 단검을 내리찍었다.

허리를 숙여 레이넌의 주먹을 피하고는, 용수철을 튕기듯 그의 몸이 위로 튀어 올라 레이넌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제라드의 검로는 레이넌이 예측했던,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

그가 노리고 있던 목표는 에린이 레이피어를 찔러넣으면서 계속 불타오르고 있는 그의 어깨다.

파지직!

마력을 이용한 신체 강화로도 보호하지 못한, 에린이 만들어낸 레이넌의 유일한 균열.

급하게 자신의 권갑으로 어깨를 보호하려 했지만.

“늦었어.”

금색 뇌광을 발하고 있는 제라드의 단검이 에린의 여우불로 흐트러진 신체 강화의 마력을 간단히 찢어발기고 레이넌의 어깨에 박혔다.

“흐읍!”

자신의 모든 근력을 실어 단검을 있는 힘껏 내려찍었고, 금색의 뇌광을 발하는 단검은 신체 강화가 풀린 레이넌의 어깨 부위를 불태웠고 너무나도 간단히 절단시켰다.

제라드는 어깨로부터 팔이 잘려나가 순간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보인 레이넌의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져버린 레이넌의 몸 위에 올라타 마운트 자세를 취한 제라드는 단검을 쥐지 않은 반대쪽 주먹으로 레이넌의 얼굴을 거칠게 후려갈겼다.

퍽! 퍽! 퍽!

총 세 대의 주먹을 맞은 레이넌의 고개가 세차게 옆으로 돌아가며 입술이 터져나가자, 제라드는 레이넌을 보며 물었다.

“정신차려. 이 X끼야.”

하지만 혼신의 일격을 맞고 팔 한쪽을 잃어버린 레이넌은 자신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제라드의 얼굴을 보고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훌륭하다.”

옛 동료에 대한 감탄과 찬사가 담긴 작은 중얼거림에 이어, 제라드의 옆구리에 강렬한 충격이 강타했다.

“크윽!?”

제라드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옆구리를 강타당함과 동시에 옆으로 밀려난 제라드는 강렬한 충격에 바닥을 나뒹굴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우읍…!”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내장이 뒤틀리는 것만 같은 후유증을 느낀 제라드는 급하게 고개를 들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악했다.

“어째서…?”

상대적으로 옆구리의 경계를 풀었던 이유는 제라드가 레이넌의 한쪽 팔을 절단시켜 옆쪽의 공격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뭐야.”

제라드는 무엇이 자신의 옆구리를 때렸는지를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

레이넌의 어깨 부근의 잘려나간 절단면으로부터 검붉은 마력이 일렁이고 있다.

이어서 자신이 불태워버린 그의 한쪽 팔이 연결되어 허공에 떠 있는 광경은 제라드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라드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레이넌이, 자신들의 동료가 20년 전에 죽인 제국의 황제와 비슷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이 광경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이 연출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의 예전 동료였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제라드는 자신이 쥐고 있던 단검을 꽉 쥐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는 분노에 휩싸여 레이넌을 보며 외쳤다.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냐! 이 개자식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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