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3화 〉 423. 노스페라드(4)
* * *
키아아악!
영지 전체를 가득 채우는 신성한 기운을 느낀 노스페라드는 그 원흉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어째서? 어째서 저런 것이 이곳에 있는 거지?’
조금씩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과거 영웅이었지만, 현재는 악마와 계약하여 대륙을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인간 협력자의 도움으로 린데발트령에 잠입했고, 이 영지의 인간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거기에 다른 지방 영지로 자신의 권속들을 보내어 인간들을 습격하고, 조금씩 자신들의 정보를 흘렸다.
페르니아스라는 왕국의 최고전력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았던 것도 성공적.
자신의 본 모습으로 변이하여 이 영지 전체에 역병을 퍼뜨리기만 한다면, 아무리 강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라도 단시간에 몰살시킬 자신이 있었다.
‘저것은…! 저것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노스페라드는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떠올라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한 인간 여성을 바라보았다.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자신의 계획을 망쳤던 원흉이나 마찬가지.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이 무력화 당했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치욕감에 노스페라드는 자신의 날개를 떨었다.
‘이런 굴욕은 그 건방진 인간 이후로 처음이다.’
400년 전 인간을 본떠 처음 흡혈귀의 모습으로 변이하였을 때,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자신을 위협하던 백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적안의 남자.
무시무시한 기세로 갓 만들어낸 자신의 권속들을 베어 넘기고 자신의 급소에 칼을 꽂아 넣기 위해 돌진해오는 그 남자의 기백에 노스페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 위축되었다.
거대 박쥐의 형태였던 자신의 본래 모습일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심을 심어준 것은 그때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백은색 머리카락의 적안을 가진 남자다.
‘내가 본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었어도.’
인간 흡혈귀의 모습을 해왔던 노스페라드는 다시 본래의 거대 박쥐로 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간의 혈액과 마력이 필요로 했기에, 본모습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결국, 노스페라드는 그 백은색 머리카락의 남자에게 자신의 권속들을 방패막이로 던져두고 몸을 숨겨야만 했다.
인간들 중에서도 정말로 위험한 강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그때이다.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던 노스페라드는 그 굴욕과는 달리 이성은 냉철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에게 그 굴욕을 안겨준 인간들을 반드시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그냥 죽이는 것은 안 된다.
인간 중에서도 암컷과 수컷들의 개체 수를 유지하고 사육하여 자신에게 지속해서 피를 공급시키는 사육장을 만들어 죽을 때까지 평생을 비참한 인생을 살게 하여주는 것이 노스페라드의 목표가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힘을 키워야 했다.
그때부터 노스페라드는 인간들 사이에 숨어서 강자들의 앞에서는 철저히 정체와 힘을 숨기고, 약자들을 유린하여 피를 탐함과 동시에 흡혈귀로 만들어 자신의 권속으로 삼았다.
과정은 순조로웠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악마와 계약한 남자가 자신을 발견하여 접촉을 해왔고, 더욱 많은 인간과 강한 피를 가진 자들을 먹어치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곳에서 아르티아 기사단과 메이거스 마법사단을 모조리 쓰러뜨린다면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민들 전체를 유린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그렇게 되어야 했을 진데.’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순백의 날개를 가진 여성이 순조로웠던 지금의 계획을 망쳐버리기 시작한 시작점.
없애야 한다.
죽여야 한다.
저것이 존재하는 한, 자신은 이곳에서 인간들을 유린할 수 없다.
키아아아!
노스페라드는 거칠게 날갯짓을 하며 순백의 날개를 가진 천사에게 날아가려는 순간.
“영창! 준비!”
[한 자릿수 하위 마법]
[스팀 콘덴스]
대기 중의 수증기에 포함된 수분을 응집시켜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내는 마법.
이 마법은 이제 막 마력의 사용을 깨우친 마법사가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초심자 중의 마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세 자릿수, 네 자릿수의 엘리트 마법사들 50명이 동시에 발동을 시킨다면,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노스페라드의 더욱 위의 하늘에 형성된 거대한 구름은 이내 습기가 가득한 하늘을 만들어냈고, 점차 굵은 빗방울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노스페라드는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자신의 몸을 적시자 의문의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먹구름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형성된 것.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바람이 점점 거세져 하늘에서 날갯짓을 하는 노스페라드의 비행을 방해했다.
본능적으로 먼 거리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늘 위에 떠 있는 천사의 날개를 가진 인간 여성을 응시했다.
바람이 거세키는 하지만, 자신처럼 비바람을 맞지 않고 있는 그녀의 상황을 보고, 자신의 머리 위에 생겨난 비구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비구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키아아아!
건방지다는 듯 포효를 내지르며 노스페라드는 거센 기류 속에서 흔들리는 몸의 중심을 잡고 비행을 유지했다.
이윽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십 개의 마법.
[세 자릿수 하위 마법]
[윈드 커터]
[아이스 니들]
[록 스피어]
피부를 가르는 날카로운 바람이나, 거대한 암석의 창들, 수증기를 응집시켜 만든 얼음의 가시.
이외에도 다양한 마법들은 메이거스에 소속된 다른 50명의 상위 자릿수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마법들이다.
수많은 마법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 노스페라드을 향해 날아갔으나, 거센 기류 속에서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 박쥐 마수를 맞추기는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키아아악!
하지만 타격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50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폭격하듯이 쏘아댄 마법 중에는 정확히 명중한 공격도 존재했으며 큰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더라도 노스페라드의 짜증을 유발했다.
노스페라드는 고개를 크게 뒤로 젖히고는 자신에게 공격 마법을 퍼부어 대던 메이거스 마법사단의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향해 앞으로 세차게 젖혔다.
동시에 거대 박쥐 마수, 노스페라드의 입속에서 검은색의 입자가 가득한 돌풍들이 쏟아져 나와 메이거스 마법사들을 덮쳤다.
[노스페라드 고유능력]
[흑사병의 돌풍]
그것은 치사성이 높은 질병을 실은 강력한 바람.
“우웁!? 우웨액!”
“쿨럭!”
그 돌풍에 닿은 것만으로도 오한, 고통, 두통, 구토를 유발하며 권태, 현기증을 일으킨 끝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돌풍이다.
하지만 메이거스의 마법사들은 그 돌풍을 접하며 피를 토하고,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지려는 찰나.
엘레노아가 강신시킨 치천사의 날개가 발산하는 신성으로 순식간에 몸을 회복시키고는 기절을 면했다.
마법사들은 안색을 창백하게 굳혔다.
지금, 이 신성력이 없었다면, 자신들의 미래가 어떠했는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건방진…!’
노스페라드는 지금의 공격으로 사람들이 즉사하지 않고 회복되어 다시 자신에게 공격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는 것에 또 한 번 치욕과 짜증을 느껴야만 했다.
‘역시 저 인간이 문제다.’
자신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천사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인간 여성을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은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얻었다.
[노스페라드 고유 능력]
[흡혈박쥐 소환]
노스페라드의 얇은 장막 같은 날개로부터 수천 마리의 흡혈박쥐들이 소환되어 먼 거리에 있는 천사의 날개를 펄럭이는 인간 여성에게로 날아갔다.
하늘에서의 공중전은 틀림없이 노스페라드 자신에게 유리한 교전이라고 자신했다.
“어딜!”
[호족 요술(?? ??)]
[여우불]
하늘 위로 떠 오르는 푸른색의 불꽃이 넓게 퍼지며 장막을 형성하고 엘레노아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날아오는 수천의 박쥐들은 저항 한번을 해보지 못하고 전신이 불타 죽었다.
“흥! 엘레노아님은 절대 못 건드려!”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먼 거리의 노스페라드를 응시하고 있는 것은 은백색의 아홉 꼬리가 달린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인간 여자였다.
그녀의 말이 노스페라드에게 닿는 일은 없었지만.
그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 인간 여자의 얼굴은,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 없어 짜증이 나 있는 노스페라드를 더욱 분노케 했다.
계속되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 체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노스페라드는 거칠게 포효했다.
“시작하겠네.”
대기를 울리는 포효소리에 몸이 저릿하면서도 사이먼은 천천히 손에 쥔 스태프를 위로 들어 올렸다.
메이거스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비구름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함과 동시에, 공격 마법들을 퍼부으며 시간을 벌었던 것은 어떠한 마법을 발생시키기 위한 포석.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대기의 중심에 서 있는 사이먼이 마침내 준비를 마친 술식을 발동시켰다.
하늘을 향해 높게 들어 올린 스태프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 호응하여, 하늘 위로 떠 오른 거대한 마법진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가속한다.
[일곱 자릿수 고위 마법]
[블리자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들은 물론, 이미 거센 비바람으로 기온이 떨어진 대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비바람 속의 중심에 있던 노스페라드의 몸도 저항하지 못하고 천천히 얼어붙어 갔다.
키이이이익!
무수히 많은 공격 마법을 맞으면서 생겨났던 피부의 상처에 스며드는 냉기가 천천히 노스페라드의 피부와 살점들을 얼려 버렸다.
둔화한 날개는 더는 날갯짓을 하지 못하여 바닥으로 추락했고 반파된 영지의 건물들 위로 추락했다.
그저 일곱 자릿수의 마법뿐만이 아니라, 100명의 마법사가 힘을 합친 결과.
사이먼을 포함한 메이거스 마법사단은 고대 마수 노스페라드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것을 성공시켰다.
“…후우.”
사이먼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주 오랜만에 전력을 발휘한 그의 몸은 70살을 넘어서 육체의 한계가 찾아와 노쇠하기 시작한 허약한 몸.
하지만 이 지친 탈력감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사이먼은 어떠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한 결과, 자신은 자신의 본분에 맞는 역할을 완수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는 맡기겠네.”
◆ ◆ ◆
키이이익!
얼어버린 피부의 내부로 침투하기 시작한 냉기에 저항하며, 노스페라드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딴 것쯤…!’
쩌적! 쩌저적!
얼어붙은 몸을 강제로 움직이며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는 노스페라드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명의 기사다.
“드디어 떨어졌군.”
리오드는 담담하게 얼어붙은 노스페라드를 응시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씩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공기를 찢어버리는 것만 같은 강렬한 파열음을 만들어내는 기운의 덩어리가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그 기운의 덩어리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응축된 상태로 해방되기를 날뛰고 있는 리오드의 검이다.
키, 키이익!
그가 들고 있는 검을 발견하고 노스페라드는 얼어붙은 자신의 몸을 떨었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어 백은발의 붉은 눈을 가진 남자가 심어 놓았던 ‘공포’라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근 400년 만에 다시 느끼기 시작한 그 공포는 어쩌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감정을 느끼다니. 그것도 인간 따위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욕.
이 굴욕은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노스페라드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리오드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얼어붙은 자신의 몸은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끝내자.”
리오드는 폭풍을 담고 있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는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쥐고 위로 들어 올렸다.
한계의 한계까지 눌러 담은 검의 마력을 해방하자, 응축되어 있던 리오드의 마력이 미쳐 날뛰며 위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을 관통할 정도로 높게 뻗은 마력의 기둥은 마치 하늘을 갈라버릴 수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검이다.
이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더 높은 경지를 위해 단련하고 또 단련했던 리오드가 만들어낸 그만의 비기.
[올리비온 검술]
[흑점절명참(????)]
태양을 가른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리오드의 검이 아래로 내리쳐지며, 린데발트령의 밤하늘을 양단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