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18화 (401/730)

〈 418화 〉 418. 영웅의 딸(1)

* * *

카아앙!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린데발트령의 현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흡혈귀들 손톱과 기사들의 검이 부딪치며 쇠의 굉음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메이거스 궁정 마법 사단의 마법사들이 사용한 마법의 여파로 돌풍이 휩쓸며 정신이 없는 상황.

그 소란의 중심에서 에이라와 차한성은 레이넌에게 공격을 당해 상처를 입은 기사를 부축하며 이동했다.

“…….”

에이라가 상처를 입은 기사의 한쪽 팔을 어깨에 걸쳐 부축한 상태로 계속 이동하면서, 차한성이 전방에서 다가오는 흡혈귀들의 위협을 차단하며 전진하던 도중.

차한성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래?”

그의 등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던 에이라의 질문에 차한성은 답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요.”

싸움의 여파로 건물이 무너지고, 살벌한 굉음이 난무하는 싸움의 한복판에서, 본래라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쳐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현재 린데발트령에는 단 한 명의 민간인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망한 영지라고는 들었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불량배들이나 노숙자들 등 슬럼의 주민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차한성의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상 하나가 떠올랐다.

“이미 다 흡혈귀들에게…?”

잡아먹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차한성의 그 의문은 부상자들을 케어하고 수시로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사제들이 있는 린데발트령의 중심부에 도착하기까지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중상자와 경상자들을 나누세요! 신체가 절단된 중상자들은 모두 제 앞으로, 이외의 경상자들의 케어는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상위 사제의 격을 보여주면서 공작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엘레노아의 지휘에 따라 사제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부상자인가요?”

이윽고 한 여사제가 에이라와 차한성, 상처를 입은 기사에게 다가왔다.

먼지를 뒤집어쓴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제는 16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듯 보이는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싸움터 속에서 굳은 얼굴로 식은땀을 흘려가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훌륭한 사제였다.

에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린 여사제의 물음에 답했다.

“왼쪽 늑골이 부러졌습니다. 이외의 결손 부위나 다른 상처들은 없고요. 상처의 치료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저희 쪽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님을 자리에 눕히고 상태를 살피고 싶은데 이동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상처를 입은 기사의 상처를 살피는 어린 여사제의 태도는 한없이 진지했다.

손끝에서 발현되는 미미한 신성의 기운은 그녀가 사제의 직위를 부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최하위의 신입 사제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람의 상처를 돌보는 여사제의 최선은 눈이 부시다.

무엇보다도 이 작전에 참여 해주어 공포에 떨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어린 여사제의 모습이 훌륭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저희는 다시 전선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두 분에게도 베스타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목에 건 펜던트를 손에 꽉 쥐며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어린 여사제의 말에 에이라는 기쁜 듯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도 모여있군.”

“…흡!?”

남성의 목소리에 숨을 삼킨 것은 에이라와 차한성뿐만이 아니었다.

부상자들의 신음과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제들의 발소리,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는 큰 목소리들로 가득한 와중에도, 갑작스럽게 등장한 목소리는 넓게 울려 퍼졌으며 사제들을 호위하고 있던 기사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너, 너는…!”

차한성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흡혈귀의 얼굴을 확인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인생 속에서 즐거웠고 행복했던 순간을 부숴버린 그 흡혈귀의 얼굴을 단 한시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응?”

이를 꽉 깨물며 자신을 평생의 원수처럼 노려보고 있는 차한성을 발견한 흡혈귀는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것만 같은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인간의 저 증오스러운 눈빛이 어딘가 익숙했다.

“아! 그때 그 모험가!”

흡혈귀는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인간들로만 구성된 모험가 파티.

그리고 그중에서 유독 강했으며, 앞으로도 성장의 전망이 한 인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때 그 인간이군!”

희미해졌던 기억은 수면 위로 떠 올라 점점 뚜렷해져 마침내 완전히 차한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하, 하하하! 그래! 더욱! 더욱 맛있어졌구나!”

흡혈귀는 먹잇감으로 보고 있는 인간의 전력을 판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신보다 강하면 도망을 치고, 약하다면 잡아먹기 위해 길러진 그 감각은 차한성의 수준을 제대로 꿰뚫어 보았다.

자신을 만났을 때보다, 차한성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 성장의 속도 또한 매우 가파른 폭.

차한성을 보며 입술을 핥고는 입맛을 다셨다.

“…개자식.”

차한성은 그런 원수 흡혈귀를 보며 이를 갈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냈다.

눈앞의 흡혈귀는 다른 흡혈귀들과는 조금 성향이 다르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고 한심했던 차한성을 일부러 살려주었던 이유는 강한 자가 품고 있는 마력을 먹을수록 더욱 강해지고, 극상의 미각을 느끼게 해주는 이 흡혈귀만의 뒤틀린 성향 때문.

그래서 그의 모험가 파티원들을 모조리 전멸시켰고, 자신에게 증오심을 품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언젠가 차한성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했다.

더욱 강해진 그의 피를 섭취하고 극상의 쾌락을 탐하기 위해.

흡혈귀는 맛있게 익은 열매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차한성을 쳐다보았다.

“하핫!”

전투의 시작에 대한 전조 따위는 없었다.

차한성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한 흡혈귀는 이미 자신의 손톱을 강화해 차한성의 목을 관통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큭!?”

카아앙!

차한성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흡혈귀의 손톱을 검으로 쳐내고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정신없이 거리를 벌리자마자, 자신을 뒤덮은 것은 검붉은 색의 피로 형상화를 시킨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다.

[흡혈귀 혈기술]

[피의 박쥐]

“이걸 잊은 거냐!”

“크…으!”

흡혈귀의 비아냥에 차한성은 이를 갈았다.

자신의 동료들은 흡혈귀의 혈액으로 만들어진 박쥐들에게 전신을 물어뜯기면서 큰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그동안 차한성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생각해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침착하자. 계속 생각해 왔잖아.’

인간들의 피를 탐하고, 그 혈액 속에 포함된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흡혈귀들의 주력 기술들은 피를 매개로 한 강력한 고유 능력을 구사한다.

그 특징을 파악한 차한성은 아르티아에 입단한 이후에도 자신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열중함과 동시에, 흡혈귀들을 제압할 공략법을 계속 생각해냈다.

“후우….”

작은 심호흡으로 흡혈귀에게 끓어오르는 증오를 품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쥐고 있던 검에 마력을 응축시켰다.

자신의 수준으로 한계의 한계까지 담아낸, 마력들을 일제히 해방하며 검을 휘두른다.

[올리비온 검술]

[하늘 베기]

응집되어 있던 마력이 해방되면서 전방으로 날아가는 검기가 휘몰아치며 차한성을 둘러싼 허공의 박쥐 떼들을 덮쳤다.

무력하게 찢겨나간 박쥐들이 형체를 잃어버리면서 그저 본래의 혈액으로 되돌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오?”

흡혈귀는 훌륭하게 자신의 기술을 파훼한 차한성에게 관심을 보였다.

“저건….”

차한성의 모습에 놀란 것은 에이라 또한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기술?”

“후우우….”

이것은 타인의 검술을 보고 그 대상이 쌓아온 노력과 시간의 무게를 따라 할 수 있는 차한성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아르티아의 단장인 리오드의 검을 한번 보고, 그의 경지를 따라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결과.

‘위력은 단장님의 십 분의 일도 안 되지만, 그래도 괜찮아.’

훌륭한 교본을 보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자신은 틀림없이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에 리오드의 검을 한번 보았다고 해서, 그의 검술을 완전히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축복을 받은 재능이다.

마력의 양도 부족, 단련시킨 몸의 완성도도 부족, 쌓아온 노력과 시간의 무게도 완전히 리오드에게 뒤처져 있지만, 밸런스와 공수 일체가 완벽한 검술을 구사하는 그 리오드를 보면서 차한성은 한 발자국씩 성장하고 있었다.

단 한 번 리오드의 검술을 펼친 것뿐인데, 팔이 벌벌 떨리고 몸속의 마력 일부가 빠져나가면서 적지 않은 피로감이 차한성을 덮쳤지만, 차한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좋아.”

팔이 떨리는 것은 피로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하게 자신의 원수인 흡혈귀에게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성장했다는 고양감 때문이다.

“좋아…. 좋다고! 정말로 아주 맛있어졌군!”

그런 차한성을 보며 고양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차한성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먹잇감이 더욱 거세게 저항하고 강할수록, 제압하고 식사를 즐겼을 때의 쾌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특수하게 뒤틀린 성향의 흡혈귀는 환호했다.

“미안하지만.”

“응?”

“우리는 너 하나에게 이렇게 붙들려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아.”

서걱

빠르게 자신의 뒤를 점거한 한 여성의 목소리에 반응하기도 전에, 환호하던 흡혈귀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순식간에 몸을 회전시켜 자신의 뒤에 있을 여기사의 옆구리에 자신의 반대쪽 강화 손톱을 관통시키려 했지만.

에이라는 자신의 검으로 손톱을 막아냈다.

힘으로 튕겨내는 것이 아니라, 검을 비스듬히 틀어 궤도를 비틀어내고, 흡혈귀의 힘을 흘려내는 유려한 검술의 움직임.

흡혈귀는 두 눈을 번뜩였다.

“오오.”

이 여자 또한 강하다.

강함의 수준을 따지자면 차한성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한 수준.

하지만 자신과 비교한다면 이 둘이 함께 덤벼도 흡혈귀는 충분히 이 두 남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순식간에 잘려나간 자신의 한쪽 팔을 재생시킨 흡혈귀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는 미소지었다.

“그래! 네가 저놈의 새로운 동료로군!”

“…….”

에이라는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흡혈귀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이 기분 좋은지, 흡혈귀는 그 싸늘한 시선을 받고도 시시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년의 피는 어떤 맛이 날까. 분명 극상의 진미겠지! 그것도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저놈의 앞에서 다시 한번 동료의 피를 먹는다면.”

그때 보았던 차한성의 절망 어린 표정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흡혈귀는 벌써 침이 고이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누가 그렇게 내버려 두겠다고!”

흡혈귀가 입에 담은 상상을 그대로 들은 차한성이 발끈하여 흡혈귀에게 검을 휘둘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자신에게 무력감을 선사하기 위해 흡혈귀는 저열한 표정으로 에이라의 목덜미를 응시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로 참을 수가 없어서, 차한성은 분노했다.

격정적으로 변하는 그의 감정에 동조하듯이, 차한성의 주위를 휘몰아치는 마력이 급증했고 흡혈귀에게로 달려 들으려 했다.

[올리비온 검술]

[백로 떨구기]

서걱

순식간에 다시 한번 흡혈귀의 팔이 잘려나가 바닥에 툭 떨어지자, 차한성은 분노에 못 이겨 돌진하려던 자신의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

당황한 것은 흡혈귀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에 잘려나간 것은 한쪽이 아니라 양쪽의 팔 전부였으니까.

이어서 뒤늦게 시야가 반전되가는 것을 자각하고, 흡혈귀는 자신의 목이 잘려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아까보다 더욱 빨라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위로 옮겨 허공을 바라본 흡혈귀는 무시무시한 투기를 뿜어내고 있는 여기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그렇게 얕보였나 봐?”

“…….”

흡혈귀는 급작스럽게 상승하는 에이라의 전력에 몸을 살짝 떨어야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에이라의 모습이 명백히 이상했기 때문이다.

검을 쥐고 있는 자세로부터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기백은 틀림없는 왕국 최강의 기사이자, 영웅의 딸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압도적인 위압감을 흘렸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흡혈귀는 자신의 재생력을 잘려나간 목 쪽에 집중시켜 가장 먼저 자신의 몸통과 머리를 이어붙였다.

“그 기세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한번 보고 싶네.”

에이라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크윽!?”

[올리비온 검술]

[벌새의 춤]

급하게 머리만을 복구시킨 흡혈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속검의 참격에 경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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