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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417화 (400/730)

〈 417화 〉 417. 하프 엘프 소녀(2)

* * *

목이 잘려나간 흡혈귀들의 시체, 그리고 양팔과 다리가 잘려나가고 머리가 분쇄된 시체에서 튄 피로 얼룩진 엘빈은 바닥을 응시했다.

살점이 난무하고 피로 더럽혀진 폐창고의 내부 환경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섬뜩한 광경.

“…내가 한 건가.”

엘빈은 자조했다.

여동생을 위해서 자신이 어디까지 비장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사람 하나를 도저히 두 눈을 뜨고 봐줄 수 없을 수준의 처참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린 것에 아무런 감상도 품지 않게 된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사람을 죽여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의 첫 번째 악행은 살인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여동생을 핍박하던 아버지.

그때의 그 행동에, 빌라드를 팔다리를 자르고 머리를 분쇄해 처참하게 죽여버린 지금의 이 행동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게 된 자신은 정상인가?

엘빈은 혼란에 빠졌다.

“오빠.”

“……!”

자신을 부르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 엘빈은 놀라 몸을 뒤로 돌렸다.

“당신은!? 그리고 이, 이 시체들은 대체…!”

엘빈이 발견한 것은 폐창고 안으로 들어온 어린 소녀와 두 명의 기사다.

기사들은 엘빈이 모험가 길드에서 불리고 있는 명칭을 입에 담았다.

그리곤 폐창고 안의 세 구의 시체들을 발견하고는,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창고에서 일어난 정황을 추궁해오자, 엘빈은 곧바로 기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은 이 영지 안에 잠입해온 흡혈귀들과 인간 협력자입니다.”

“…흡혈귀들!?”

기사들은 곧바로 시체 쪽으로 다가가 시체를 살폈다.

입가에 양쪽 끝에 위아래로 튀어나와 있는 네 개의 송곳니는 알렉스로부터 사전에 전달받은 흡혈귀들의 특징과 일치한다.

이것으로 이 영지 내부에 흡혈귀들이 숨어들어왔다는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확인을 마친 기사들은 엘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신은 이제부터 어쩌실 겁니까?”

기사들은 엘빈이 에린의 오빠로, 은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리스가 은현 쪽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공작 가문의 종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래에는 성공적으로 흡혈귀들을 처리한 뒤, 계속해서 영지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흡혈귀들을 찾아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을 가지고, 에리스의 등장으로 더욱 혼란을 겪고 있는 엘빈은 곧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투구를 착용하고 있는 엘빈이 현재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기사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엘빈 오빠는 저랑 가야 할 곳이 있어요.”

에리스는 망설이고 있는 엘빈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있는 엘빈의 손은 인간의 모습일 때보다도 1.5배는 더 컸다.

“…….”

엘빈은 갑주로 둘러싸인 자신의 손가락을 움켜쥐는 소녀의 작은 손가락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에리스의 손가락을 뿌리쳤다.

“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자신과 거리를 벌려 멀찍이 떨어지는 엘빈을 보고, 에리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엘빈을 빤히 쳐다보았다.

“…….”

엘빈은 아예 전방을 주시하며 노골적으로 옆에 있는 에리스와 시선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그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굳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곧바로 확인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기사들은 에리스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곳으로 저희를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고생하세요. 기사님들!”

다행히도 엘빈과 만나는 것을 목표로 잡았던 에리스는 그에게 맡겨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기사들은 곧장 흡혈귀들과 인간 협력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공작 저택으로 향했다.

기사들이 자리를 떠나자, 둘만이 남게 된 에리스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엘빈의 투구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어서 보육원으로 가요. 릴리 언니를 도와줘야 해요.”

“…릴리를?”

릴리의 이야기나 나오자 의아함을 느낀 엘빈이 뒤늦게 고개를 돌리며 에리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 그렇군. 마무리는 짓지 못하고 있는 건가.”

은현에게서 흡혈귀와 서큐버스의 상성 관계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전투 능력 자체가 아예 없는 릴리에게는 흡혈귀들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아르미타스의 기사들에게 부탁하니, 악마인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 곤란하고, 그 마무리를 지어줄 존재는 엘빈이 최적이었다.

“네. 그러니까 어서….”

“알았다. 그리고…가까이 오면 안 된다.”

“네?”

“피 묻는다. 네 손이 더러워져.”

에리스는 흡혈귀들과 사람의 피로 얼룩져 더러워진 엘빈의 그림자 갑옷을 응시했다.

“아.”

에리스는 엘빈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하려던 이유를 알았다.

그는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적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를 비참하게 살해하고 자신의 갑옷을 피로 적신 자신의 모습을, 바닥에 고깃덩이로 찢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에리스에게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오빠.”

에리스는 엘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엘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진 에리스는 차가운 엘빈의 손가락을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왜 울고 있어요?”

“울어? 내가?”

엘빈은 에리스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공정령으로 다시 태어났고, 호문쿨루스라는 가짜 육체에는 눈물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은 눈물을 흘릴 수가 없다.

에리스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자신이 울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일까.

“두려워요?”

“…….”

“에린 언니가 오빠를 무서워할까 봐요? 아니면 제가?”

엘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가슴을 파고들어 마음속의 정곡을 찔러오는 질문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대답할 수 없었다.

여동생을 위해서, 소중한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은 어디까지나 잔인해질 수 있었지만, 지금 엘빈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동생인 에린을 포함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럴 리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도 지금과도 같은 잔인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품고, 부정하게 된다면.

자신은 과연 버틸 수가 있을까?

엘빈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엘빈 오빠.”

에리스는 엘빈의 앞에 마주 서며 갑옷으로 무장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빠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

엘빈은 에리스의 부탁에 따라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그림자를 해제시켰다.

동요로 가득하여 흔들리고 있는 엘빈의 눈동자를 보고, 에리스가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오빠.”

무장을 해제하고 사람의 모습이 된 엘빈의 모습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

에리스는 엘빈의 손을 포개어 맞잡고 폐창고를 나와 어두운 길거리를 함께 걸었다.

계속해서 앞장을 서며 엘빈을 이끌고 길거리의 벤치 위에 엘빈을 앉혔다.

“에리스? 뭘….”

벤치를 밟고 위로 올라온 에리스의 높이가 앉아있는 엘빈보다 높아지자, 에리스는 엘빈의 머리를 끌어당겨 꽉 끌어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엘빈 오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던 에리스의 말이 다시 한번 엘빈의 가슴속을 간질인다.

끌어 안아주고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은 나이가 한참 어린 작은 몸집의 소녀였지만, 그 손길과 상냥한 위로의 말은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달래주는 것만 같은 상냥함이다.

엘빈은 숨을 삼키며 작게 몸을 떨었다.

“오빠는 그 사람을 죽인 걸 후회하고 있나요?”

“…아니.”

엘빈은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에리스의 질문에 답했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었고,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여동생에게 끝까지 질투심과 열등감을 품으며 집착을 하고 어떻게든 괴롭히려고 수작을 부렸을 그런 인간이었다.

“그러면 괜찮지 않을까요?”

“…모르겠어.”

어째서 인간의 나이로도 자신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소녀에게 이런 고민을 서슴없이 늘어놓게 되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에리스의 상냥한 손길을 느끼며 마음이 가는 대로, 엘빈은 자신의 고민을 흘렸다.

“엘빈 오빠. 에린 언니도, 현이 아저씨도, 다른 사람들도, 누구도 오빠를 싫어하게 되지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에리스는 계속해서 불안정한 멘탈로 흔들리고 있는 엘빈을 계속해서 다독였다.

“저도 약속할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오빠의 편을 들어줄게요.”

“…그래.”

엘빈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여동생에게도 보일 수 없어 꾹 참아왔던 나약한 면이, 마치 감정의 둑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어린아이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웠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이 위로를 계속 받고 싶다고 엘빈은 생각했다.

◆ ◆ ◆

흡혈귀들에게 계속 악몽을 보여주면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릴리는 천천히 보육원으로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왔어?”

“그래.”

“…….”

릴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둘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에리스가 엘빈을 잘 따라서, 엘빈의 손을 맞잡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은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가 무언가 변했음을 릴리는 눈치챈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

하지만 그것을 깊이 캐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기에 릴리는 신경을 쓰지 말기로 했다.

쑥스러워하는 듯한 엘빈의 태도는 확실히 무언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에리스에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가 더 컸다.

“에리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네에.”

에리스는 마치 자신의 역할을 모두 완수했다는 양 군말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들 좀 처리해 줄 수 있어? 제압하는 건 쉬웠지만, 역시 마무리를 짓는 건 내 힘만으로는 부족했거든.”

“그래.”

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칼날의 형태를 한 그림자들을 수십 개 꺼내 들었다.

악몽을 꾸고 있는 흡혈귀들의 육체는 현실에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전신을 난도질당하고 목을 베어져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새벽이 끝나고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 조금씩 빛을 비추기 시작하자, 흡혈귀들의 시체와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들이 가루가 되고 증발하여 소멸했다.

“에리스랑 무슨 일이 있었어?”

“조금 위로를 받았지. 내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대해서.”

“…….”

다른 사람이 말하고 들었다면 무슨 열다섯 살짜리 애냐고 핀잔을 주었겠지만, 릴리와 엘빈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와도 같았다.

악마로 변이되어버린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서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의 큰 노력이 필요했던 릴리는 엘빈의 심정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아?”

“부끄럽지만 이제는 괜찮아.”

엘빈은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을 여동생의 얼굴이다.

‘잘하고 있겠지.’

자신이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사이에, 이미 성장하여 어른이 된 에린은 이제 아이가 아니었다.

엘빈은 자신이 죽인 빌라드의 존재를 에린에게 말을 해야 할지 잠깐이나마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의 존재를 여동생의 기억 속에서 떠올리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엘레노아님과 에린.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 동감이다.”

작은 소망이 담긴 릴리의 말을 엘빈은 긍정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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