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415. 천적(3)
* * *
던전 주택 안에서 하루를 마치는 평소의 일상과는 달리, 릴리는 보육원 건물 안에서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응시했다.
엘레노아와 에린이 아르티아 기사단으로 지원을 나가고, 은현과 베르단디, 일리아나가 엘프의 숲으로 향하면서, 남은 것은 집안을 관리하는 메이드, 릴리 뿐이었다.
모두가 일로 집을 비우게 되면서, 릴리는 집안의 기본적인 청소와 관리들을 유지하고 오래간만에 보육원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
이내 불길한 마력의 흐름을 감지한 릴리는 두 눈을 번뜩이며 창문 밖을 응시했다.
신수의 후예인 에린만큼은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들보다 마력에 민감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므로, 보육원에 접근해오는 불쾌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님의 걱정이 맞았구나.’
은현이 우려했던 불안이 적중했음을 깨닫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부의 침입 경로를 모두 차단하기 위해, 이미 창문을 모조리 닫아 잠가두었던 것을 재차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긴 릴리는 보육원의 입구에 도달했다.
“손님이 왔네. 초대하지도 않은, 아주 불쾌한 손님들이.”
그 말을 끝으로, 보육원 앞의 허공을 잠식한 검은 안개들이 뭉쳐지기 시작하여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윽고 릴리의 앞에 나타난 것은 총 8개체의 흡혈귀들.
“뭐지? 저 여자는?”
“우리의 존재를 알아챘잖아?”
“이 보육원을 관리하는 건, 평범한 맹인 여자라고 들었는데.”
“훗.”
릴리는 흡혈귀들이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듣고 실소를 흘렸다.
“…뭐가 웃기지?”
한 흡혈귀가 웃음을 터뜨린 릴리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명백히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비웃음은 흡혈귀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가 없었다.
최신으로 갱신된 정보도 아닐뿐더러, 그 맹인 여성이 20년 전 대륙의 전쟁을 끝낸 영웅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부실한 정보력에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글쎄. 어째서일까.”
릴리는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건방진 게.”
자신들을 깔보고 있는 것이 명백한 릴리의 태도에 흡혈귀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를 갈았다.
아무리 자존심과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 강자들 앞에서 빌빌거리며 도망을 치는 수치스러운 습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고작 평범해 보이는 인간 여성에게까지 무시를 받는 것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흡혈귀들을 비웃고 있는 릴리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건방진 건 너희들이지.”
마치 공기마저도 얼려 버릴 것만 같은 싸늘한 릴리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것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과는 다른 분노가 담겨있었다.
“…뭐야?”
그녀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하는 싸늘한 밤바람조차도 심상치 않게 느껴질 정도로, 메이드 복을 입은 여성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급작스러웠고 심상치 않았다.
흡혈귀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생존본능으로 상대방의 강함과 약함을 판별할 수 있다.
눈앞의 인간이,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피가 자신의 먹잇감인지 아닌지.
자신이 포식자가 될 수 있는지, 역으로 피식자가 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눈.
하지만 눈앞의 메이드 여성은 그런 흡혈귀들의 눈으로도 쉽게 판별할 수가 없는 기묘함을 느꼈다.
뭐라고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묘한 위화감.
분명히 그저 평범한 인간 여성에 불과할진대, 그녀를 둘러싼 분위기는 정체를 알 수가 없어 기분이 나쁘다.
“못 들었을까? 건방진 건 너희들이라고 했는데.”
“저년이 미쳤나!”
분노한 한 흡혈귀가 발끈하여 강화한 손톱으로 릴리의 목을 꿰뚫으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릴리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돌풍에 흡혈귀들은 멈칫했다.
우우웅
사납게 휘몰아치는 돌풍은 점점 거세지며 릴리를 휘감기 시작한다.
점점 짙어지는 돌풍의 중심 속에서 릴리의 모습이 점차 변화해갔다.
청초한 메이드 복은 사라지고, 맨살의 피부를 드러내고 속옷만으로 중요 부위를 가리는 적나라한 복장.
이내 등 뒤로 돋아나는 한 쌍의 악마 날개를 본 흡혈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어, 어째서….”
“어째서 악마가 이곳에 있는 거야!”
흡혈귀들은 패닉에 빠졌다.
어째서, 왕국의 내부에서 현재 수도 페르닌을 제치고, 호황기를 맞아 번성하고 있는 아르미타스령에 버젓이 악마가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인간들의 틈에 섞여서, 보육원의 고아들을 돌보고 있는 악마라니.
“게다가 뭐야. 이 기운은!”
악마의 마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갈하고 깨끗한 기운은 도저히 악마의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신성한 기운을 품고도 소멸하기는커녕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악마란, 악마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들보다 긴 수명을 살아오면서 인간들의 편에 서서 인간들을 돕는, 그런 악마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혼란으로 가득한 흡혈귀들의 중심에서, 서큐버스의 모습으로 변신을 마친 릴리는 눈앞의 흡혈귀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해. 나를 만났으니까.”
흡혈귀들과, 아니 인간들과도 제대로 된 전투를 해본 적이 없는 릴리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 모르니 보육원의 아이들을 지켜주면서 영지의 내부 상황을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어. 만약 흡혈귀들이 접근해온다면 네가 처리해도 좋아.
제가…할 수 있을까요?
응. 할 수 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은현은 릴리의 질문에 긍정했다.
흡혈귀의 천적은 악마야. 그중에서도 서큐버스와는 상성이 최악이지.
서큐버스의 고유 능력인 ‘꿈의 세계’나 정신 조작을 놈들에게는 저항할 수 없는 방법이 전혀 없으니까. 싸움이나 전투의 경험, 수준의 차이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부터가 흡혈귀는 서큐버스를 이길 수 없어.
생각해보면 정말로 불합리한 종족이기도 했다.
인간들보다 상위종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오랜 시간을 거쳐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특정의 인간들에게는 비등하거나 밀리는 등, 종족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강점을 취할 수는 있지만.
흡혈귀들은 인간들을 상대로 ‘무조건’ 승리한다는 결과는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반면 흡혈귀와 더한 상위종인 악마들, 특히나 서큐버스와의 격차는 어떠한 가 하면, 그 ‘무조건’ 승리한다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격차가 존재한다.
은현이 이런 절대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는 릴리를 리오드가 지휘하는 흡혈귀 소탕 작전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사회적으로 릴리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다.
리오드야 은현과 릴리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으므로 이해 해줄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에서 릴리의 역할은 아르미타스령의 흡혈귀들을 발견하는 즉시 그들을 비밀리에 제거하는 것.
다행히도 큰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이, 어떠한 인과에서인가 흡혈귀들은 직접 자신의 앞에 다가와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나의 주인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계시는 이 영지를 혼란으로 물들이려 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죽어 마땅한 죄.
아니, 그냥 평범한 죽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생각한 릴리는 눈앞의 흡혈귀들에게 선고했다.
“100번 죽어서 사죄하도록 해.”
그 말을 끝으로, 릴리는 자신의 고유 권능을 발동시키기 위한 영창을 시작했다.
[나, 몽마가 이곳에 꿈의 세상의 일원으로서 숲의 현현을 요청하니.]
“……!”
릴리의 영창을 들은 흡혈귀들이 몸을 떨었다.
서큐버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기운이 한데 응집되어 무언가를 벌이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약한 미물들에게 달콤한 안식을 줄 기회를 주소서.]
“이런…! 도망…!”
[서큐버스 고유 결계]
[몽환의 숲]
흡혈귀들이 무언가 대응을 하기도 전에, 릴리의 영창은 끝을 마쳤고, 발동된 은색의 마력들이 흡혈귀들을 덮쳐 그들의 정신을 장악했다.
◆ ◆ ◆
“허억…!”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자, 흡혈귀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서큐버스의 비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정육면체의 벽면으로 구성된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흡혈귀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고유 능력에 당했다는 것에 절망했다.
이곳은 현실의 세계가 아니며, 서큐버스가 자신의 고유 능력으로 만들어낸 정신의 세계다.
서큐버스가 상성 상 흡혈귀들의 천적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꿈의 세계’라는 고유 능력 때문.
흡혈귀의 가장 강한 점은 혈액을 매개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당연히 현실의 혈액이 존재하지 않는, 정신체로 구성된 이곳 꿈의 세계는 흡혈귀들의 능력은 전혀 손 쓸 수 없는 제한된 장소.
이 장소에서 흡혈귀들은 그저 인간들보다 마력의 보유량이 우월한 종족에 불과하다.
하물며 꿈의 세계 속의 주인인 서큐버스는 이 장소를 한정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자랑한다.
“젠…장!”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
맞서 싸우는 것도 불가능.
도망을 다니며 시간을 버는 것도 불가능.
유일한 공략법은 서큐버스의 꿈에 잡아먹히기 전에 그녀를 제지하는 것이었지만, 눈앞의 릴리라는 악마가 너무나도 특이한 성향을 띄고 있어 동요하여 주춤거렸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이윽고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정육면체 공간의 허공에 릴리가 악마의 날개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
“무릎 꿇어.”
“크윽!?”
릴리를 보며 이빨을 드러낸 흡혈귀 하나가 싸늘한 릴리의 명령에 풀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럴…수가? 어째서…?”
너무나도 허망하게 무릎을 꿇어버린 자신의 몸을 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서큐버스의 정신 지배를 처음 당해보는 흡혈귀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사태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특정의 이 공간 안에서만 정신 지배를 통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서큐버스의 고유 능력은 면역 능력이 없는 흡혈귀들의 정신을 조작하여 명령을 강제했다.
“전원, 한 번 자결해.”
“크…으윽!”
팔을 들어 올려 날카롭게 강화한 손톱으로 자신의 목을 꿰뚫는 흡혈귀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들의 팔은 부들부들 떨릴 뿐, 강제된 릴리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푸욱
“커헉!”
결국, 릴리의 강제력이 깃든 정신 조작을 저항하지 못한 흡혈귀들은 일제히 자신의 강화한 손톱으로 목을 긋고 자결했다.
딱!
릴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흡혈귀의 목들이 마치 시간이 되감겨 과거로 돌아가듯이 다시 몸통에 붙어 흡혈귀들이 되살아났다.
“허억! 허억! 허억!”
한차례 죽음을 경험한 흡혈귀들이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하늘에 떠 있는 릴리를 바라보았다.
절대적인 권능의 격차를 깨달은 흡혈귀들의 눈빛에 조금씩 두려움이란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고, 릴리는 그런 흡혈귀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또 한 번 자결해.”
“……!”
스스로 목을 그어 목숨을 끊어버리는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 한번 경험해야 하는 흡혈귀들의 안색이 파래졌다.
“그…만!”
하지만 그 애원에도 불구하고 흡혈귀들의 두 번째 자결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딱
다시 한번 그들의 몸을 되돌려 부활을 시키고는, 릴리는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던 것 같은데. 너희는 100번을 죽어 사죄하라고.”
“안…!”
얼굴에 절망이 물들기 시작한 흡혈귀들이 거세게 저항하려 했지만, 릴리는 그들의 애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엘레노아나 에린만큼이나 이 영지를 좋아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책임감으로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릴리에게는 이곳을 노리고 침입해온 흡혈귀들을 용서한다는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결해.”
릴리는 진심으로 100번의 횟수를 채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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