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화 〉 414. 천적(2)
* * *
“…뭐?”
빌라드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에린의 오빠에 관한 이야기는 2년 전 당시에도 유명한 화젯거리였으며, 에린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데 쓰인 최고의 소재였다.
다름 아닌 모든 마법사와 왕국들이 공식적으로 배척하는 흑마법사였으니까.
“하하! 그 쓰레기 흑마법사가 사실은 아직도 살아있었다고!?”
이내 빌라드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짝! 짝!
손바닥을 두 번 손뼉을 치자, 검은색의 안개들이 응집되어 두 개의 인영이 만들어졌다.
입안의 양쪽 끝 위아래,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강조된 그 모습은 말로만 전해 들었던 흡혈귀들의 외형과 일치했다.
엘빈은 하마터면 곧바로 행동을 일으킬 뻔했다.
제일 먼저 정보를 캐내야 한다는 은현의 명령에 따라, 엘빈은 끓어오르는 살의를 애써 잠재웠다.
“너는…. 이들에게 이 영지를 팔아넘길 생각이었던 건가?”
“정답이야! 나는 이 장소의 모험가들과 기사들, 병사들의 밀집 구역과 순찰 루트에서 제외되어 민간인들이 밀집된 장소의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었지! 이것들은 민간인들에게서 신선한 피를 섭취하고, 나는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그 년에게 복수하고! 하하! 하지만 이 영지에 잠입하자마자 이런 행운이 들어오다니!”
빌라드는 기쁨에 겨워 환호했다.
엘빈은 그의 말 속에서 많은 정보를 캐치해 낼 수 있었다.
먼저 빌라드와 흡혈귀들이 영지 내부로 잠입을 해온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
당연히 영지 내부의 상황에 대한 조사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천만의 다행이다.
만약 빌라드가 정보 조사를 제대로 시작하여 현재 이 영지 안에서 에린의 오빠인 자신이 무엇으로 불리고 있는지를 사전에 알았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에게 모든 계획을 까발릴 수는 없다.
정말로 멍청하고 어리석다.
“오빠인 사지가 절단된 네놈의 몸뚱이를 그 년의 앞에서 선보인다면, 그 년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하겠지?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매일 매일 밤 시중이라도 들어줄 테니, 오빠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으하하하!”
“더는 못 들어주겠군.”
엘빈은 당장이라도 빌라드를 죽여버리기 일보 직전에 분노의 눈빛을 쏘아보았다.
우우웅
“크…윽!”
분노로 방출된 엘빈의 마력이 폐창고의 내부를 가득 채웠고, 밀도가 높은 마력은 빌라드와 흡혈귀들을 휩쓸었다.
무심코 호흡을 옥죄어 오는 감각에 빌라드는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살기가 짙은 엘빈의 시선을 직시하고도, 빌라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웃어?’
이내 엘빈은 빌라드가 지었던 그 웃음의 의미를 깨달았다.
“죽여선 안 됩니다! 인질로 써야 해요!”
“하하! 알았다고!”
상대적으로 엘빈의 마력에 저항하여 움직인 흡혈귀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엘빈에게 달려들었다.
빌라드는 처음부터 자신이 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보다 우수한, 인간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신체 능력을 타고난 밤의 주민들이 자신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 등을 저버리고, 인간들을 팔아넘기면서까지 빌라드가 원했던 것은 에린이라는 단 한 명의 여자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이런 밀도 높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피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군!”
엘빈이 방출한 마력에 저항하며 행동을 개시한 두 흡혈귀 중 하나가 침을 삼키며 엘빈의 정면에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흡혈귀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엘빈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가며 둔탁한 소음을 발생시켰지만, 엘빈의 시선은 고개가 돌아가는 와중에도 꿋꿋이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흡혈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엉?”
흡혈귀는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아 고개가 돌아갔음에도 꿋꿋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엘빈의 시선이나,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대로 목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데미지인데 타격이 들어간 엘빈의 몸은 이상해도 너무나도 이상했다.
이윽고 엘빈의 뒤를 점령한 흡혈귀가 엘빈이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양손으로 그의 몸을 결박했다.
“키힉!”
엘빈의 뒤를 점거하여 결박한 흡혈귀가 무방비 상태의 목덜미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목덜미에 자신의 이빨을 박아넣고 양질의 마력이 포함된 피를 섭취할 생각으로 기대감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흡혈귀가 엘빈의 목덜미를 깨물어 살을 뚫고 관통하려는 순간.
“어…?”
흡혈귀는 당황했다.
자신의 이빨이 무언가에 가로막혀 피부를 찢고, 살을 관통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강철처럼 단단한 무언가의 감촉을 느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 감촉의 정체를 찾았다.
엘빈의 목을 둘러싸고 있는 새카만 무언가를 발견한 흡혈귀는 중얼거렸다.
“…그림자? 커헉!”
그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엘빈의 등을 점거했던 흡혈귀는 자신의 복부를 관통해온 무언가의 역습에 숨을 토해냈다.
이내 복부를 관통한 무언가가 순식간에 정체를 감춰버리자, 흡혈귀는 엘빈의 몸을 결박하고 있던 팔을 풀며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너무 빨라서, 흡혈귀는 엘빈이 그림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복부에 구멍을 뚫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내, 내 몸이…. 으, 으아악!”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는 자신의 복부를 주섬주섬 만지고 있던 흡혈귀는 뒤늦게 격통을 느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흡혈귀의 비명에 멈칫거리고 동료 흡혈귀와 엘빈이 주춤거렸다.
너무 한순간에 벌어졌기 때문인지, 둘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 이 새끼가!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서걱.
엘빈은 망설임도 없이 그림자의 칼날을 만들어내어 흡혈귀의 목을 베어냈다.
은현에게서 들었던 흡혈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들과는 달리 압도적인 재생력으로 신체의 결손 부위를 빠르게 복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목숨이 붙어있을 때나 가능한 일.
급소를 일격에 공략하여 즉사에 이르게 한다면, 흡혈귀는 재생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엘빈이 해야 할 것은 놈들이 자신의 힘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 순간에 빠르게 급소를 노려 놈들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
짧은 순간에 목을 절단시켜 흡혈귀 하나를 처리한 엘빈은 곧바로 남은 흡혈귀와 빌라드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뭐, 뭐야! 저건…!”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검은색의 그림자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엘빈의 몸을 휘감으며 점차 형태를 갖춰나갔다.
형태 변화와 변신을 마치고 드러낸 엘빈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철컥! 철컥!
전신을 두른 풀 플레이트 메일에서는 검은색의 오오라가 일렁이며 불길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고, 투구의 안쪽에서부터 빛나는 적광의 눈동자는 흉흉한 살기를 띄우며 빌라드와 흡혈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게…. 저런 게 있다고는…듣지 못했어!”
흡혈귀는 경악하며 빌라드를 홱 돌아보고 따지듯이 외쳤다.
“어째서 저런 게 이 영지 안을 간단히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
사람의 형태를 한 그림자의 마법 그 자체.
은현과 일리아나가 정령이라는 형태를 빌려 창조해낸 인공 정령이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령의 개념을 빌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존재일 뿐, 엘빈의 본질은 정령이 아니다.
흑마법으로 창조된 ‘그림자’ 그 자체.
그 불길한 힘의 본질을 꿰뚫어 본 흡혈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동족의 목을 일격에 베어버린 암흑기사는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각한 뒤 흡혈귀의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고, 신속했다.
“난 도망치겠어!”
애초에 흡혈귀들은 강자의 앞에서는 철저히 모습을 숨기고, 약자들만을 사냥하며 짓밟는 약삭빠르고 비겁한 종족들이다.
엘빈의 앞에서 도망치는 것에 대해 수치도 자존심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던 흡혈귀는 재빨리 자신의 몸을 안개화시켜 이 장소에서 벗어나려 했다.
“안 놓쳐.”
팔다리가 사라져 검은색의 안개로 변해가던 도중, 가장 안개화의 마지막 단계를 남겨둔 흡혈귀의 몸통이 수십 개의 그림자 칼날에 꽂혔다.
“커헉!”
심장과 흉부를 관통한 그림자 칼날들은 이내 형태를 변화시켜 흡혈귀의 흉부를 헤집어 놓기 시작했고, 흉부가 갈기갈기 찢겨버리자 흡혈귀의 머리만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콰직!
거대한 그림자 망치가 흡혈귀의 머리를 분쇄하는 것도 모자라, 움푹 파인 바닥이 진동하여 공기가 떨렸다.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흡혈귀 둘을 처리한 엘빈은 마지막으로 남은 빌라드를 응시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빌라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것은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
자신보다 강력한, 밤의 주민이라고 일컬어지는 흡혈귀들이 너무나도 간단히 정리를 당해버린 현재 상황은 빌라드의 멘탈을 일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아르미타스 령이 잠입하자마자 정보 수집을 하기도 전에 엘빈과 만나게 된 것은 정말로 크나큰 변수였다.
“오지 말라고!”
뒷걸음질을 치던 빌라드는 자신의 다리에 걸려 바닥에 넘어지면서도, 천천히 다가오는 엘빈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바닥을 기었다.
“…….”
무언을 고수하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투구 속 흉흉한 적광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방적인 살의는 빌라드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이내 빌라드는 그 공포 속에서 자신이 살아나갈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했다.
“나, 날 죽이면 네 여동생이 후원하고 있는 그 보육원도 무사하지 못해!”
“…뭐?”
아무런 대꾸도 없이 흉포한 살의를 내뿜고 있던 엘빈의 행동이 빌라드의 외침에 우뚝 멈췄다.
“이 영지에, 에린, 그 년이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보살피는 보육원이 있지?”
“…….”
엘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굳게 다문 침묵은 긍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은현의 명령으로 그 보육원을 원장인 앨리스 대신 대리로 운영하는 것은 자신과 릴리다.
“이미 그 보육원에 흡혈귀들을 보내놨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보육원의 아이들은 모조리 흡혈귀들의 먹이가 되어버릴 거야!”
빌라드가 세웠던 복수 계획은 에린의 약점을 잡아 그녀를 농락하고, 약자나 다름없는 보육원의 고아들을 흡혈귀의 먹이로 던져주는 것.
에린이 보고 있는 눈앞에서 그녀가 소중히 여기고 있던 아이들이 흡혈귀에게 피가 빨리고 살점을 뜯어먹히는 광경을 연출하여, 에린의 마음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아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에린을 자신의 노예로 삼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멍청하군.”
서걱.
“크아아악!”
빌라드의 계획을 들은 엘빈은 망설임 없이 빌라드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어, 어째서…! 여동생이 소중히 아끼는 고아들이 어떻게 되어버려도 좋다는 거냐!?”
“정말로 멍청해.”
서걱
“크아아악!”
다음은 왼팔을 잘라버리자, 빌라드는 양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에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팔의 절단면에서 느껴지는 격통보다도 더욱 빌라드를 몰아세우는 공포의 원인은 제대로 붙어있어야 할 손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이다.
“정보의 수집을 허술하게 했으니까. 너는 실패하는 거다.”
오로지 에린만을 노리고 에린에 관한 정보만을 수집했기 때문에, 고려하지 못한 다른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므로 이렇게 허무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서걱
엘빈은 이어서 그림자 검을 만들어 빌라드의 양다리를 잘랐다.
“크아아아아!”
양손과 양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분수는 바닥을 적시고 엘빈의 그림자 갑옷에도 튀었다.
엘빈은 몸통만이 남은 빌라드를 가만히 응시했다.
자신의 여동생을 강간하려 했던 양손을 절단시켰다.
이놈이 두 발을 뻗고 걸어 다니는 꼴을 볼 수 없어서 양다리를 잘라버렸다.
이윽고 엘빈은 그림자 갑옷으로 무장한 자신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빌라드의 가랑이 사이를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콰직!
마지막으로 여동생의 몸을 더럽힐 뻔했던, 남자로서 중요한 빌라드의 그것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분쇄했다.
“크아아아악!”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지상에 올라온 생선처럼 펄떡거리면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몸통만 남은 빌라드를 무심하게 응시하며, 엘빈은 말했다.
“네가 말한 협박이 어째서 통하지 않는지 알려줄까?”
“크, 크으윽! 살려, 살려줘!”
이미 과다 출혈로 죽어가고 있는 빌라드는 엘빈의 질문에 대답할 여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추악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빌라드의 몸통을 짓밟은 엘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보육원에는 말이지. 이미 악마가 하나 살고 있거든. 그러니 너희의 계획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
“살려줘! 제발! 내 팔! 내 다리를! 제발 부탁이야!”
“잘 가라.”
콰직.
작별인사를 끝으로, 엘빈은 여동생의 악연인 빌라드의 머리를 그림자 둔기로 내리쳐 분쇄시켰다.
양손과 양다리가 잘리고, 고간 사이를 거세까지 당한 빌라드 오르바는 머리의 형태조차 남기지 못하고 분쇄되어 사망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