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10화 (393/730)

〈 410화 〉 410. 영웅과 영웅의 제자(1)

* * *

퍼어엉!

하늘에서 터지는 화약가루를 응시하며, 리오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작하시죠.”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메이거스 궁정 마법 사단을 이끌고 있는 일곱 자릿수의 고위 마법사.

사이먼 마기우스이다.

뱀파이어의 사냥에서 염두해 둬야하는 것은 마력을 이용한 특수 능력과의 교전이다.

그 부분에서 은현이 아르미타스 공작령 이외에 리오드가 도움을 요청하도록 권유한 곳이 바 로 메이거스이다.

일리아나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수준 높은 몇 백의 엘리트 마법사들을 통솔하는 사이먼은 왕국에서 리오드만큼이나 든든한 전력.

왕국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박멸하기 위해, 사이먼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리오드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을 포함한 마법사들의 지원을 보내주었다.

우우웅

폭약은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에린과 에이라 쪽이 제대로 흡혈귀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공에 전개되는 마법의 장벽은 메이거스의 마법사들이 린데발트령 외곽의 네 포인트에서 각자가 결계 마법을 활성화하여 만들어낸 초거대형 결계.

그 효과는 영지 외부와 내부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즉, 현재 이 린데발트령 내부에 둥지를 트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흡혈귀들은 메이거스의 초거대형 차단 결계를 해제하지 않는 한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몰아넣을 거면 제대로 몰아넣어야지.

그러면서 은현이 제시해준 전략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리오드는 흘끗 시선을 옮겨 아르미타스 령에서 아르티아 기사단을 지원해주기 위해 찾아온 금발의 차기 성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은 건가?”

“네?”

“엘레노아 양은 그렇다쳐도, 그 아이는 아직 어릴 텐데.”

“아. 후후.”

엘레노아는 리오드의 말의 의미를 깨닫게 작게 웃었다.

리오드는 지금 자신과 함께 아르티아 기사단을 지원하러온 에린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회복과 버프의 기도를 담당하고 있는 엘레노아와 그녀의 소집으로 이루어진 사제집단은 인외의 존재들과의 교전에서는 필수적인 요소와도 같다.

그렇기에 엘레노아의 도움까지는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에린에 대한 것은 조금 미묘했다.

“괜찮아요. 그 사람이나 저희는 에린을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거든요.”

“…….”

자신의 딸인 에이라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어린,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성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리오드에게는 조금 복잡했다.

기사로서의 자존심이나 그러한 것보다, 딸보다 어린 여성에 대해 걱정하게 되는 연장자로서의 마음과 비슷하다.

아무리 2년 전의 어린 시절부터, 왕국 내부에서 많은 공적을 쌓고 착실하게 성장을 하였다 하더라도, 리오드가 품고 있는 에린에 대한 감상은 딸인 에이라를 계속 걱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믿어주세요. 이래뵈도 에린도 금위계의 모험가니까요.”

“…그래. 실력을 한번 보도록 하지.”

그런데도 구태여 사양하지 않았던 이유는 은현이 보낸 전력이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문으로만 들어서는 모험가를 시작한지 2년 만에 금위계의 등급을 달성했을 정도이니, 에린의 실력이 궁금했던 것도 어느 정도 이유에 포함되었다.

이미 에린과 몇 번인가 대련을 해보았던 아르티아의 기사들은 이미 에린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녀가 이번 작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약간이나마 사기가 증진되고 있었다.

리오드가 개인적으로 에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기사단장이자 지휘관으로서 에린의 작전 참가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도 연인이 되었다고 했지.’

막상 생각해보면, 은현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무력도 그렇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져있는 그의 주변 사람들도 만만치가 않다.

자신과 동료였던 마녀 일리아나는 그렇다 치고, 공작 가문의 여식이자 아니에스 다음 대의 차기 성녀로 내정되어 있는 엘레노아나, 비밀리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서큐버스 릴리, 게다가 신수라는 신비한 존재의 힘을 이어받은 에린이라는 여성까지.

이미 은현이라는 개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만으로도 강대한 세력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작하지.”

“네.”

새삼 자각하게 되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리오드는 은현이 준비해둔 카드패들을 활용하여, 흡혈귀 섬멸 작전을 진행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카아앙!

거칠게 부딪치는 쇠의 소리.

그 쇠와 부딪친 것은 흡혈귀의 힘으로 강화된 날카로운 손톱이다.

에이라는 자신의 검을 튕겨낸 강철과도 맞먹는 단단한 경도를 자랑하는 손톱의 궤도를 의식하며 재빠르게 흡혈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키아아!”

미처 대응하지 못한 흡혈귀의 복부를 관통시키고 힘을 실어 복부를 아예 양단으로 끊어내자 흡혈귀의 비명이 하늘에 울려퍼졌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절단되어 두 동강이 났음에도, 꿈틀거리며 아직도 살아 있는 흡혈귀의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다.

“…….”

에이라는 그런 이종족의 모습을 보며 징그럽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상대해보니 그렇게 강한 건 아니야. 할 수 있어.’

평균적인 흡혈귀들의 수준이 이 어느 정도인지는 에이라도 막상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자신과 대적했던 흡혈귀는 생각만큼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이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죽지 않는 생명력이나 기본적으로 우월한 경이로운 신체능력.

“크, 으윽!”

확실히 대단한 것은 맞지만, 이 정도는 마수들 중에서도 상대하기 쉬운 축에 속한다.

아마도 흡혈귀들중에서 가장 약한 개체가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아르티아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착실하게 역할을 수행해나가고 있다는 자각은 에이라에게 기쁨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에이라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검을 꽉 쥐며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흡혈귀의 목을 베었다.

“한성이는….”

현재 린데발트령의 주위에는 외부로 나갈 수 없는 차단 결계가 세워진 상태다.

흡혈귀들이 이 영지를 나가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

결계를 장시간 유지하기 위해 다수의 메이거스의 마법사들을 데려왔으니, 이 작전은 메이거스의 결계가 풀어지기 전에 모든 흡혈귀를 정리하느냐 마느냐의 시간 싸움이다.

에이라는 숨어있는 상태에서 기습을 해오던 흡혈귀를 차례차례 정리해나가며 자신의 후배인 신입 기사의 모습을 눈으로 찾았다.

“하아!”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흡혈귀들을 휩쓸고 있는 차한성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에이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쟤가 정말.”

사나워진 눈은 전방만을 바라보고 있어 시야가 좁아져 있고, 거칠어진 호흡을 내뱉고 있는 그는 이미 페이스를 잃은 상태이다.

어떠한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흡혈귀들을 상대로 증오심을 품고 있는 차한성은 그저 흡혈귀들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 날뛰고 있었다.

저 상태는 좋지 못하다고 판단을 느낀 에이라는 급하게 차한성을 향해 달려갔다.

“한…!”

콰앙!

건물 안에 있던 한 기사가 벽면을 부수고 하늘을 날았다.

“크악!”

거친 비명과 함께 달빛을 가리며 아래에 그림자를 드리게 만드는 기사의 모습을 보고, 에이라와 차한성이 몸을 움찔 떨며 허공을 응시했다.

카앙!

“크윽!”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던 기사가 바닥에 추락하고, 갑옷과 바닥이 충돌하면서 생긴 굉음을 들은 것은 그 이후였다.

다급하게 차한성을 불러세우려 했던 에이라나, 무아지경으로 흡혈귀들을 살해하고 있었던 차한성이나,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기사를 바라보았다.

“…….”

“…….”

이윽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기사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크으…. 괜찮…. 으윽!?”

에이라의 질문에 기사는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했다.

찌그러져 걸레짝이 되어 있는 복부의 기사 갑옷을 본 에이라는 얼굴을 굳히며 그의 갑옷을 해제시켰다.

곧바로 그의 상태를 가늠해보기 위함.

부상의 상태를 확인한 에이라는 부상을 입은 기사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늑골이 나간 것 같은데요?”

“큭…더럽게 세네.”

“…흡혈귀의 짓인가요?”

“…아니.”

“네?”

당연히 강한 흡혈귀의 짓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에이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사람이었어.”

“…사람?”

뜻밖의 대답에 놀란 것은 차한성 또한 마찬가지.

‘…도대체 누가?’

라는 의문은 머지않아 해결 되었다.

쿠웅!

부서진 고층의 건물 벽면에서 뛰어내린 한 사람의 그림자가 거대한 굉음을 발생시키며 바닥에 착지했다.

바닥에 착지하는 것만으로도 대지가 떨리고, 바닥이 파이는 강력한 충격파를 형성한 한 남자의 등장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바닥에 착지했던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든 모습은 큰 체구의 인간 남성이다.

“저, 저 사람은….”

에이라는 무의식적으로 경계의 태세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 녀석은 없는 건가?”

무심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남자는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위험해.”

저 남자는 위험하다.

남자 자신의 몸 주위에 두르고 있는 무시무시한 마력과 투기는 평범한 인간의 수준이 아니다.

‘나보다 위? 아니, 어쩌면 아버지와….’

동급일지도 모른다.

그런 확신이 드는 순간, 에이라가 차한성에게 무언가를 지시내릴 틈도 없이 남자는 행동을 개시했다.

[발트펠트식 무투술]

[암석 분쇄]

거대한 절벽을 분쇄시켰던 전적이 존재했던 영웅의 철권이 에이라의 가슴에 직격하려는 아주 짧은 찰나.

“언니이이이이!”

에이라와 남자 사이에 파고든 에린의 레이피어가 철권을 내지른 남자의 팔을 튕겨냈다.

카앙!

“어…?”

에린은 순간 당황했다.

남자의 팔을 잘라낼 기세로 휘두른 참격이었는데, 마치 철벽을 직면한 것처럼,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에린의 레이피어와 부딪친 남자의 철권은 에이라의 왼쪽 가슴을 노리고 있던 본래의 공격 궤도에서 벗어나 에이라의 왼쪽 허공을 날렸다.

퍼어엉!

“…읏!?”

공기를 찢어발기다 못해 터져나가는 폭발음이 발생하자, 가장 가까이에서 공기의 떨림을 경험했던 에이라의 몸이 떨렸다.

귓가를 때리는 폭발음과 공기의 떨림은 만약 저 주먹이 자신의 심장 부분에 직격 했다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안색이 창백해져 간다.

“이게 무슨….”

에린은 경악했다.

참격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남자의 신체 강화다.

자신의 레이피어 또한 마력을 두르며 강화하면서 일반적인 마수의 살점은 간단하게 절단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절삭력을 가지고 있을 진데, 눈앞의 남자는 그저 신체 강화만으로 자신의 참격을 막아냈다.

‘도대체 얼마나 밀도가 높은 마력을…두르고 있기에…?’

단 한 번도 이렇게 막혀본 적이 없었던 것에서 강한 충격을 느끼며 에린이 주춤한 시간은 약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훌륭하다.”

“…어?”

이어진 남자의 칭찬에 에린은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심하면서도 올곧은 남자의 눈에는 적에게 보내는 눈부신 경의의 눈빛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목숨을 깎아내기 위한 살육전이 아닌, 서로의 무(?)를 겨루는 대련을 하는 상대에게 보내는 상찬.

그것을 다름 아닌 적에게서 받았다는 것이 에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기습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공격을 비틀어 낸 건, 은현과 리오드 이후로는 처음이군.”

“어, 어?”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던 에린의 마음은 다시 놀라움으로 뒤바뀌어 갔다.

지금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를 재차 자각하기도 전에, 에린의 머릿속은 이미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현이나 리오드님을 알아?’

“아깝군. 이만 죽어라.”

에린의 그 의문을 해소해줄 여유도 없이, 영웅 레이넌의 두 번째 주먹이 에린을 향해 날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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