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07화 (390/730)

〈 407화 〉 407. 흡혈귀 추적 회의(3)

* * *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러운 행동은 가벼움을 넘어서 경박하기까지 했지만, 아무도 그 행동을 나무라지 못했다.

그야 그는 자신들이 모시는 기사단장과 같이 영웅으로 불리는 남자였으니까.

“왔군.”

마지막으로 자신의 도움 요청에 응해준 동료의 등장에 리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죄송합니다. 아! 에린 양! 에린 양도 여기에 계셨군요!?”

“아, 네, 네….”

느닷없이 인사를 받은 에린은 당황하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지원을 온 아르미타스의 기사들처럼 묵묵히 회의에 참석만 하고 있었던 에린은 지금까지 엄숙함이 가득했던 회의실 내부의 분위기를 단숨에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제라드의 행동에 살짝 당황했다.

“제라드. 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예! 현이 형님께 대강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흡혈귀라는 놈들을 청소한다고요?”

“…….”

차한성은 자신의 원수 같은 종족을 길바닥에 놓인 쓰레기를 청소한다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는 제라드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어쩌면….’

자신의 원수나 다름없던 흡혈귀 놈들을 소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출발하지. 그리고…. 차한성.”

“예. 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기사단장의 목소리에, 차한성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크게 대답했다.

“너의 근거와 추론들은 훌륭하다. 덕분에 장소를 특정할 수 있었어.”

“아….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무 주제넘은 생각은 하지 마라.”

“예…?”

칭찬을 듣게 된 것에 복잡한 생각을 품자마자, 차한성은 이어지는 리오드의 혹평에 당황했다.

“네가 걱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 장소가 함정이라고 해서, 네 행동과 판단으로 그 함정에 휘말려 나와 나의 기사단 모두가 큰 피해를 볼 거라는 걱정은 주제넘은 생각이다.”

“…….”

“2시간 뒤, 내일 아침에 린데발트령으로 출정할 기사들의 편성을 공지하겠다. 전원 대기하고 있도록.”

“예!”

차한성에게 혹평을 내리자마자 카인과 기사단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리오드는 출정할 기사들의 편성을 위해서 기사단장실로 들어갔다.

“아버지도 참….”

“아, 선배님….”

“미안해. 아버지가 너무 말씀을 거칠게 하셨지? 나쁜 의미로 하신 말씀은 아니야. 그냥 말주변이 조금 없으셔서….”

회의가 끝났음에도 멍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실에 남아있던 차한성에게 에이라가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단장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리오드가 말한 주제넘었다는 말은 자신의 역할과 본문에 맞는 일을 하라는 뜻이었다.

차한성이 제시한 근거와 추론, 그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과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는 뜻.

기사단장이 짊어지어야 할 책임을 고작 신입 기사 주제에 짊어지지 말라는 것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단장님은.”

“그렇지? 내 우상이야.”

에이라는 존경심이 섞인 눈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는 차한성을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한동안 에이라와 차한성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에린은 두 사람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면 저도 나가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렇게 차한성이 회의실을 나가자, 에린은 곧바로 에이라에게 다가갔다.

“언니. 잠깐만요.”

“응?”

“언니 혹시….”

자기 생각이 맞을까, 확인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에린은 마침내 자신의 궁금증을 입에 담았다.

“저 사람 좋아해요?”

“……?”

순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한 에이라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에린을 쳐다보았고, 이내 에이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얘, 얘도 참…!”

“언니, 방금 저 차한성이라는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 분위기가 남달랐단 말이에요. 마치 엘레노아님이 현이랑 대화할 때 같았어요.”

에이라는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자신과 에린을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 아니야. 그런 거 그냥….”

“그냥?”

얼굴을 붉히면서 말끝을 흐리는 에이라의 얼굴을 본 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며 흥미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인자하고 여유롭던 모습을 보여주던 연상의 언니 같은 얼굴이 아닌, 본인도 자각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고 하는 그동안 에린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여자의 얼굴이다.

“언니. 자세히 얘기 좀 해주세요.”

남의 사랑 이야기에 큰 관심을 품게 된 에린은 급하게 에이라를 재촉했다.

“그냥…걱정이 돼서….”

“걱정이요?”

“응. 한성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뭔가…초조해하는 것 같거든.”

에이라나 에린은 뱀파이어와 엮인 차한성의 과거를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굉장히 뱀파이어들의 습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점이나,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표출하고 있는 분노는 진짜였다.

평소보다 더 과격하고 냉정함을 잃어 위태로운 모습이 걱정되어 자꾸만 눈이 가는 이유는 후배 기사에 대한 선배의 마음일까, 아니면 여자로서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탓일까.

에이라 자신도 자신의 마음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언니. 이거 저도 들은 건데요.”

에린은 얼굴을 붉히곤 복잡한 표정을 하는 에이라를 보며 말했다.

“남자는 잘 만나야 고생을 안 한대요.”

은현과 엮이게 된다면 큰 고생을 하게 된다는 구미호의 돌려 말하기식 경고였지만, 에린은 그 경고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에이라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고 쓰는 말이니?”

“으음….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뜻 아닐까요?”

사실 남자를 잘못 만나서 자신보다 많은 고생을 하는 것은 에린이 아닐까?

그렇다면 에린에게 은현은 좋은 남자인 걸까?

굉장히 모순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충고였지만, 에린은 아마 그 충고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자기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그분을 좋아하신다는 뜻일까.’

엄청난 순정파에 가까운 에린을 보며, 에이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 ◆ ◆

어두운 밤하늘 아래, 오랫동안 청소되지 않아 악취가 들끓는 린데발트령 슬럼의 중심은 고요하면서도 싸늘했다.

스르륵

그 슬럼의 골목을 걷고 있는 흑갈색 로브의 사람의 뒤를 따르는 것은 검은색의 안개다.

검은색의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형태를 갖춰나갔다.

점차 사람의 형태를 갖춘 그것은 어느샌가 드러난 양팔로 흑갈색 로브를 착용한 사람의 양팔을 옭아맸다.

이윽고 그것은 이빨로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를 벗겨냈다.

바깥으로 드러난 남청색의 고운 머리카락이 달빛에 비쳐 흩날렸지만, 그것은 로브를 착용하고 있던 존재가 누구인지 파악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킷!”

로브를 벗기자마자 적나라하게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는 무심코 그것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저 목덜미 안에 나의 송곳니를 박고 싶다.

송곳니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먹고 싶다.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맛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냄새.

이 피를 모조리 취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강력한 흡혈의 충동을 일으키는 흡혈귀는 자제심을 잃고 안개화한 자신의 몸을 실체화시켰다.

마침내 남청색 머리카락의 여성의 새하얀 목덜미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넣으려는 순간.

“어딜 마음대로 내 몸에 손을 대?”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아, 행동을 제지한 남청색 머리카락 여성의 싸늘한 목소리에 흡혈귀는 당황했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힘이…!?’

흡혈귀는 적잖게 당황했다.

아무리 머리를 꽉 붙잡혔다지만, 겨우 연약해 보이는 인간 여성의 힘에 자신의 머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떨어져!”

마력을 활성화해 발동시킨 신체 강화로, 근력이 향상된 에린이 자신의 몸을 옭아매고 목덜미에 들이민 흡혈귀의 머리를 들어 올려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커헉!”

바닥과 충돌한 흡혈귀의 몸에 거대한 충격이 강타하고 거친 숨을 토해냈지만, 평범한 인간보다 강인한 육체를 타고난 밤의 주민은 그만큼 회복도 빨랐다.

반격하기 위해 흡혈귀는 자신의 손톱을 날카롭고 기다랗게 성장시켜 강화했다.

곧바로 아래에서 손톱을 찔러넣어 에린의 복부를 그대로 관통하려 했지만, 그 행동조차도 에린이 좀 더 빨랐다.

콰직!

“크아악!”

흡혈귀를 바닥에 패대기를 친 손을 떼자마자, 에린은 있는 힘껏 발을 내려찍어 손톱을 강화한 흡혈귀의 한쪽 팔을 분쇄했다.

이윽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큼지막한 돌덩이를 가져와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지르던 흡혈귀의 입속에 쑤셔 넣었다.

“읍! 으읍!”

이빨들이 깨져나가고 억지로 벌어진 턱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흡혈귀의 비명은 돌덩이에 가로막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힘없는 바람 소리만이 새어 나오던 와중, 에린은 발목을 비틀어 짓밟고 있던 흡혈귀의 팔을 짓이겨버렸다.

“으으읍!”

팔이 뜯겨 나가자, 흡혈귀가 고통에 더욱 몸부림을 쳤다.

인간들과는 달리, 몸의 내구성은 물론 신체의 결손도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재생력이 뛰어나다는 특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무리 흡혈귀라도 팔이 뜯겨 나가는 고통에는 적응할 수 없었다.

“…….”

재생력이 뛰어난 흡혈귀라는 종족의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팔의 회복을 조금이라도 더디게 하려고 팔을 아예 짓이겨 뜯어버린다는 선택지는 어찌 보면 합리적인 조치가 맞았다.

“…저분은 원래 저런 분이셨나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광경이 조금 그로테스크한 광경임에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일말의 주저나 고민도 없이 처음 보는 종족일 터인 흡혈귀의 팔을 뜯어버리는 숙녀의 모습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차한성이 받은 충격은 숨어서 대기하던 이들보다 조금 더 했다.

딱 한 번 대련을 통해 검을 섞어보면서 그녀가 쌓아온 노력이나 기술의 정수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쌓였던 감탄과 존경심이 순식간에 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져 갔다.

“원래는 정말 착하고 순수한 아이인데….”

살짝 질린 표정으로 흡혈귀를 압도하고 있는 에린을 본 차한성의 질문에, 에이라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본래에는 친한 사람에게 응석을 잘 부리고 애교가 많아 순수하기 짝이 없는 숙녀였지만, 이상하게도 싸움에서만큼은 단순하고 무식하며 무대포가 따로 없다.

이 부분은 은현의 훈련과 에린의 야생 동물처럼 발달한 천부적인 감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에린은 다른 기사 단원들이 자신을 질린 시선으로 보고 있건 말건, 자신의 마력을 이용하여 손 위에 푸른색의 불꽃을 만들어냈다.

[호족 요술(?? ??)]

[여우불]

‘됐다!’

구미호의 상태로 변신하지 않고도, 신수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신수의 힘을 자유롭게 끌어내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몰차면서도 사정없이 밀어붙여 가르치던 구미호의 수련 성과가 전혀 의미가 없지 않았다는 것에 에린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자신은 틀림없이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으으읍!”

에린의 여우불에 뜯긴 오른팔이 휩싸인 흡혈귀는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몸부림을 쳤다.

평범한 불꽃이 아닌 신수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불꽃은 그저 닿은 것만으로도 흡혈귀의 재생력을 약화하고 더욱 강한 데미지를 주는 특별함이 존재했다.

“키이익!”

돌덩이로 입에 재갈을 물린 흡혈귀는 제대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며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언니! 끝났어요.”

“응.”

에이라는 에린의 말을 듣자마자 품에서 병 하나를 꺼내어 있는 힘껏 허공을 향해 투척했다.

쨍그랑!

[한 자릿수 하위 마법]

[파이어]

하늘 위에서 병이 깨져버리자 안에 있던 폭약 가루에 불꽃이 붙으면서 점화가 되자.

퍼어엉!

어두운 밤하늘을 장식하는 붉은 색의 폭약이 하늘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것은 린데발트 령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알리는 하나의 신호다.

아군인 자신들에게는 습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적군인 흡혈귀들에게는 적습의 신호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