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화 〉 406. 흡혈귀 추적 회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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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방문한 아르티아 기사단의 본부의 회의실은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지방 영지 영민의 실종 사건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가장 상석으로 중앙의 거대한 원탁 테이블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고 화려한 자리에 앉아있는 리오드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원탁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지도 위에는, 작은 동그라미들로 수십, 수백 개가 특정 지방 영지 세 곳을 중심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표시가 의미하는 것은 모두 실종되었던 지방 영지민들이다.
회의의 안건은 ‘어떻게, 어디로 적들의 근거지를 특정하느냐?’라는 것이다.
“실종 신고가 들어 왔던 지방 영지의 조사는 어떻게 됐지?”
“추가적인 단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은 혹시나 해서 실종된 사람들이 입었던 옷들은 모두 챙겨왔습니다.”
리오드의 질문에 신고가 들어온 지방 영지로 파견을 나갔던 기사들이 보고하는 식으로, 회의의 초반은 진행되었다.
“…이 정도로는 그 뱀파이어라는 놈들의 근거지를 특정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은현의 의견이 더해지면서, 반신반의했던 내용은 점차 확신으로 굳어져 갔으며 적을 특정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대담하게 일을 벌이고 있는 흡혈귀들의 근거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한 가지 제가 의견을 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갑갑한 와중,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의견의 의사를 피력한 것은 차한성이었다.
현재 아르티아의 내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입단한 차한성은 기사단 안에서 가장 아래 서열로 막내 취급을 받는 신입 기사였지만.
누구도 그가 일어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아니꼽게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의 핵심이 뱀파이어와 엮였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으며, 뱀파이어의 존재를 눈치챈 순간부터 그의 표정이 심히 좋지 못했다는 것을 짐작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라.”
“네.”
게슴츠레한 눈으로 차한성을 바라보긴 했지만, 그의 의견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리오드의 허가가 떨어지자, 차한성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펜을 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리오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단장인 카인에게 눈짓했다.
의미를 알아들은 카인이 부하를 시켜 차한성의 손에 펜을 전달했다.
“감사합니다.”
차한성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원탁의 테이블 중앙에 놓여있는 지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페르니아스 왕국 영토가 그려져 있는 지도 위에, 사람들이 실종되었던 지점이 표시된 장소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지도 위에 실종 사건이 벌어졌던 지방 영지 세 곳을 포함한 거대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거지?”
리오드의 질문에 차한성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보고된 사건 지점을 모두 포괄한 큰 원을 그려서, 놈들의 행동반경을 추측해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커다란 원 안에 포함된 장소 중 영지는 실종 사건이 벌어진 세 영지 외에도 네 곳이 존재합니다.”
기사단이 사건의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던 것은 놈들의 활동 반경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특정으로 인접한 영지 세 곳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왕국 영토 내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영지 세 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던 것.
차한성은 그렇게 아직 실종 신고가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원의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는 지방 영지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지목했다.
“뱀파이어의 목적은 살아있는 인간의 피입니다.”
당연히 인구가 많이 밀집된 다른 영지 또한 피해의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을 뿐, 피해자가 생겼을 것은 틀림이 없다.
추가로 수사를 하며 단서를 찾는다면, 이 영지들을 조사해야 한다.
“음…? 잠깐.”
손을 들어 올려 차한성의 말을 끊은 것은 아르티아의 부단장인 카인이다.
“린데발트령? 거기는 이미 망한 영지야.”
“망한 영지…인가요?”
차한성은 카인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에 이교도로 몰려서 영주의 일가족이 처형당하면서, 망해버린 영지지.”
과거 베스타 신전 페르닌 지부의 관리를 맡고 있던 대사제, 하르칸 주교의 주도 아래에 이교도의 사상에 감화된 분란 분자로 몰리면서, 린데발트령의 영주와 일가족은 처형당했다.
하르칸 주교와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왕 사이에 비밀리에 오갔던 더러운 거래와 암약으로 인해 희생당한 내막은 현재 은현과 디아네 왕비만이 알고 있는 사실.
그 린데발트령은 현재 슬럼화되어 노숙자들과 건달이 판치는 무법의 장소로 전락해버린 곳이다.
“…….”
카인의 이야기를 들은 차한성이 인상을 굳혔다.
“이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느닷없는 차한성의 말에 카인이 놀라며 반문했다.
“처음에는 이 네 영지를 추가로 조사를 해보는 것을 건의하려 했지만…. 어쩌면 놈들의 근거지는 이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차한성은 자신 있게 린데발트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확신하지?”
“이곳이 놈들에게 있어서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놈들의 주식은 살아있는 인간의 피입니다. 그래서 많은 수의 인간이 밀집된 장소에 둥지를 틀고, 약자들을 사냥하죠.”
담담하게 설명을 잇는 차한성의 말에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주장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 그 설명은 아까도 했었지. 하지만 네가 말한 뱀파이어의 습성을 돌아다닌다면 인구의 밀도가 높은 장소를 골라야 하지 않나?”
“무조건 인구의 밀도가 높다고 좋은 건 아닙니다.”
차한성은 카인의 지적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답했다.
“…흐음.”
흘끗 리오드의 표정을 살피며 그의 의중을 살폈고, 계속해서 차한성을 응시하고 있는 리오드의 얼굴을 확인한 카인은 다시 차한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계속 설명해.”
“뱀파이어에게 주식인 인간의 피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장소라면 다른 곳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실종 사건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기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습성만을 생각해본다면 현재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아르미타스 공작령이나, 페르닌이 습격을 받아야만 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놈들에게는 또 다른 습성이 존재합니다. 강자의 앞에서는 철저히 모습을 감추고, 오로지 약자들만을 짓밟는 약육강식의 습성입니다.”
그것은 마수들의 습성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까다롭고 악질적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뱀파이어쪽이 더욱 악질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본능적으로 약육강식의 습성을 행하는 마수들과는 달리, 뱀파이어들에게는 지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까다롭다.
그 지성을 활용하여 조직적으로, 전략적으로 활동을 하므로 지금까지도 그들은 암흑 속에서 인간들을 사냥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렇군.”
차한성이 말하는 바의 의미를 깨닫고, 리오드가 고개를 끄덕였군.
“강자가 없으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있기에 최적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준 리오드의 발언에 차한성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구의 밀도는 다른 영지들에 비해 높지 않을지언정 린데발트 령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연고가 없는 노숙자들이거나 건달들뿐.
대적자가 존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짓밟고 포식할 수 있는 약자들만 존재하는 장소는 뱀파이어들에게 최적의 장소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놈들이 둥지를 튼다면, 아마 이곳이겠죠.”
이곳에서 소수의 뱀파이어들을 각 지방 영지로 보내어 인간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이 차한성의 추측이었다.
“…….”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군.”
계속해서 표정을 풀지 않고 심각하게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차한성을 보며 리오드가 물었다.
“마치 유도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도라고?”
“마치 ‘나는 이곳에 있다.’라고 광고를 하는 느낌입니다.”
의미심장한 흔적을 남기고, 마치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르티아 기사단을 이곳으로 이끌기 위한 안내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차한성은 가슴 속에 술렁이는 이 불안한 기분을 어떻게 해소할 수가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
“그건 네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네?”
굳은 얼굴을 하는 차한성은 느닷없이 자신에게 말을 던진 리오드를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우려하는 부분은 정당하다. 함정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제시한 근거들로 완성된 추측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어디에도 부정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굳이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 가시는 건….”
“함정이 무섭나?”
리오드의 질문에 차한성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무섭냐, 무섭지 않냐를 따진다면 굉장히 미묘했다.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경계하며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기사단 전체를 이끄는 기사단장이라는 직책상 이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
“우리는 왕국을 지키는 기사다. 때로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곳이 왕국과 백성들을 위협하는 장소라면 가장 먼저 나서서 그 위험을 근절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지.”
차한성은 자신의 몸을 꿰뚫은 영웅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한없이 굳세고 강직한 그 얼굴은 누가 보아도 ‘기사’라고 단정할 수 있을 정도로 올곧다.
차한성을 시작으로 회의실에 있는 단원들 하나하나를 훑어보며 끝에는 카인과 자신의 딸 에이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기사란 그런 것이다.”
“……!”
짧은 그 한마디에 차한성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느꼈다.
자신을 보고 있는 리오드의 두 눈은 마치 ‘너는 기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리오드에게 기사란, 왕국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근절시키고, 백성들이 외부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존재다.
“하하.”
한 기사단원이 육성으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다른 기사단원들은 물론 에이라 또한 웃으며 리오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티아의 단원들은 누구보다도 기사다운 저 늠름한 모습에 매료되어 이곳에 입단한 기사들이다.
출신도, 신분도, 권력도 상관없이 오로지 왕국 최고의 기사를 동경하며 이곳에 입단하였으며 단원들 모두가 리오드를 우러러보고 있다.
설령 함정일지라도 그곳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누군가가 보기엔 한없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다.
“물론 나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겠다는 것도 아니긴 하지.”
그러므로 은현에게 조언을 듣고자 에이라를 보냈던 것이었으며,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은 리오드의 요청에 선뜻 자신의 지원병력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도움을 구한 사람은 은현과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 쪽뿐만이 아니다.
“그 말씀은…?”
“저 왔습니다! 형님!”
뒤늦게 아르티아 본부의 회의실을 찾아와 무거운 내부의 분위기를 단숨에 깨버리는 한 남자의 익살스러운 목소리.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과 아르미타스의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렸던 회의실의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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