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화 〉 404. 예정된 주인공과 만들어진 주인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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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은 어째서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냐는 차한성의 질문에, 그의 어머니는 웃으며 답해주었다.
“대륙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어져 온 피라는 뜻이란다.”
한번 이 세상이 멸망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피와 문화를 계승한 사람들.
그것이 바로 고대인의 후손이다.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의 마을에서 자급자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차한성의 부모와 가정은 마을 안에서 유일한 고대인의 가정이었다.
차한성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이들과 조금 남달랐다.
무언가를 가르치면 그것들을 모조리 배울 수 있었고 남들보다 숙달되는 속도도 빨랐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아, 또래의 아이들보다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빨랐고,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사냥꾼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사냥 기술들을 익혔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차한성이 살았던 마을은 마수들의 습격을 받아 괴멸되었다.
“저는 그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어떠한 인과관계에서인지, 괴멸된 마을을 찾아온 어떤 모험가들이 주민들의 시체 사이에서 상처투성이의 차한성을 발견하였고,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차한성은 과거의 지구에서 있었던 자신의 전생 기억을 떠올린다.
마수에 의해 부모를 잃게 된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전신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물리적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강해져야 한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차한성은 자신을 구했던 모험가의 밑에서 기초적인 육체 능력과 사냥 기술을 기반으로 모험가로서 생활하기 위한 수련을 하게 되었다.
체술이나 검술, 마력의 운용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기술을 보고 배우는 것은 빠른 편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그는 페르닌에서 신참의 딱지를 떼고 동위계의 모험가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유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설의 기초 설정과 비슷해.’
마을에서 가족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모험가들에 의해 구조된 소년기의 차한성이 점차 성장하여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소설의 초반 도입부와 똑같이 일치한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내용과 현재 차한성의 상황이 크게 차이가 나고 있는 이유는 그 도입부부터 무언가가 틀어졌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이후 저는 페르닌에서 모험가 활동을 하면서, 아르티아 기사단에 입단 시험을 봤습니다. 하지만…결과는 불합격이었지요.”
“그랬군요.”
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도입부의 차한성은 실력은 그렇게 크게 받쳐주지는 못하지만, 의욕은 넘치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전도유망한 전형적인 주인공의 클리셰의 정석을 따르는 등장인물이다.
결국에는 입단 시험에 떨어지면서 계속해서 모험가 활동을 하면서 차근차근 경험과 실력을 쌓아, 자신을 성장시켜나간다.
“타국으로 주거지를 옮겼습니다.”
“…네?”
“예? 왜 그러시죠?”
“…아니에요. 계속해주세요.”
“네.”
차한성은 모험가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파티원의 권유에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렌디르 왕국으로 주거지를 옮겨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거구나.’
유리아는 눈을 빛내며 소설 속의 내용과 현재 차한성의 상황이 크게 틀어져 버린 부분을 찾아냈다.
본래라면 차한성의 파티는 에린이라는 소녀가 서큐버스 악마에게 홀려 속아 넘어가면서 구미호의 힘을 강제로 각성시키고, 페르닌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대량의 학살극을 벌인다.
이 사건에 주인공인 차한성과 파티원이 휘말리면서, 폭주하기 시작한 신수의 분노를 억지로 잠재우고, 그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막대한 포상을 받게 되는 게 차한성에게 벌어지는 이후의 이야기.
하지만 이 사건은 애초부터 은현의 개입으로 인해 크게 틀어져 버렸고, 페르니아스 왕국과 차한성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 크다.
결국, 차한성은 파티원들과 함께 렌디르 왕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그들이 겪게 될 미래의 사건들은 모조리 틀어져 버렸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그 남자는 정말 생각할수록 대단해.’
일개의 개인이 미래를 이렇게까지 비틀어버리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하고, 몇 번이고 생각하게 되는 놀라움이다.
처음에는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것들이 그 남자는 가능했다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고 질투와 부러움을 가졌던 적도 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유리아는 계속해서 차한성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저는 렌디르 왕국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뱀파이어. 흡혈귀라고 불리는 종족들입니다.”
“흐음.”
짧게 숨을 내쉬며 반응한 것은 알렉스다.
자연스레 아르티아의 단장이 도움을 요청해온 지방 영지민들의 실종사건과 연관지어 생각하고는, 어째서 차한성이 뱀파이어라는 종족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는 이야기였다.
“…흡혈귀?”
하지만 현재 아르티아 기사단 쪽에서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유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왕녀님이 알고 계신 미래에는 뱀파이어에 대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저라고 모든 미래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단편적인 사건들의 몇 가지일 뿐이지. 현재의 시점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유리아는 겉보기로 좋게 포장된 자신의 미래 예지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민망함을 애써 숨기고 있었다.
이미 은현의 개입으로 많은 사건이 틀어져 버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사건의 순서는 이미 아예 사라져버린 지 오래고, 심지어 유리아는 차한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후반부에 뱀파이어에 대한 사건이 등장했을지도 모르지만, 차한성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는 지금 그것을 설명하기도 매우 모호했다.
본인이 소설 속 등장인물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듣는다면 그의 기분은 어떠할까.
그 기분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리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 예지의 정체를 정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군요.”
차한성은 무언가 석연치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전, 알렉스님은 저에게 현재 왕국의 지방 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실종사건이 어떻게 뱀파이어들의 짓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그 근거를 물으셨죠.”
“그랬지.”
“제가 렌디르 왕국에서 비슷한 사건을 접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차한성은 렌디르 왕국에서 동료들과 함께 모험가 활동을 하던 중, 어떠한 지방 영지에서 몇몇 영지민들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실종된 사건을 접하게 되었고, 주민들이 모험가 길드에 제출한 의뢰서를 통해서 사건의 조사를 하게 되었다.
“저희는 모두 동위계에서 시작했던 신생 파티였지만, 차근차근 실적을 쌓으면서 승급도 하며 은위계의 등급도 달성했을 정도로 그렇게 약한 파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손을 떼어 주먹을 꽉 쥔 차한성의 손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저 그때를 회상한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저희 파티는 저를 제외한 파티원 모두가 몰살당했습니다. 뱀파이어들에게.”
차한성은 직접 목격했다.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소중한 동료들이 뱀파이어들의 이빨에 물려 피를 빨리고, 살과 가죽, 뼈만이 남은 육체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광경을.
“그 뱀파이어들은 일부러 저를 살려뒀습니다.”
저건 살려두면 나중에 더 맛있어질 놈이야.
뱀파이어들은 하나같이 차한성을 보고 그렇게 평가했다.
강자들에게는 모습을 숨기고, 철저하게 약자를 노려 인간의 피를 포식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강자와 약자를 구별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당연히 차한성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성장을 한다면 더욱 강한 마력을 품은 피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살려두었다.
아무리 차한성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뱀파이어들은 반드시 차한성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안일했고, 무력했으며, 약했습니다.”
자신의 빠른 성장 속도와 더불어 날이 갈수록 상승세를 치솟는 차한성과 파티원들은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차한성이 그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동료들을 모두 잃어버린 뒤였다.
파티원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원수나 다름없는 뱀파이어들에게 품은 증오심을 불태우며 자신은 독기라는 것을 품게 되었다.
지금까지 성장해왔던 것보다 더욱 가파르고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오면서, 현재는 아르티아 기사단에 입단했다.
“이게 제가 이번 사건이 뱀파이어들이 벌인 짓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모두 밤 시간대에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나, 옷만을 남겨두고 사람의 몸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것 등.
지금 왕국의 지방 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매우 유사한 점들이 다수 존재했다.
현재 차한성이 느끼고 있는 강렬한 기시감은 절대로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다.
그때는 괜찮을 것이라 여기며 얼버무렸던, 가슴을 술렁이게 만드는 불안감까지도 그때와 똑같다.
“…그렇군.”
“그렇군요.”
차한성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알렉스와 유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쪽에서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에이라에게는 지원 병력의 편성은 수락하겠다고 전해라.”
“정말인가요?”
“그래.”
“저도…감사합니다.”
차한성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고 아르티아 기사단의 병력 지원 요청에 수락해준 알렉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후우….”
대화를 마친 차한성이 방에서 퇴장하자 유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떠십니까?”
“…예상대로에요. 원인은 찾았어요. 제식대로 설명하자면…. 역시 ‘주인공’이 바뀌어버린 것 같네요.”
본래 유리아가 알고 있던 미래는 ‘차한성’이라는 주인공을 메인으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고 혼란에 빠진 대륙을 평화로 이끌어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 교체된 것이라고 확신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가며 점차 성장해나가는 영웅이라….”
유리아의 설명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던 알렉스는 자신의 주위 사람 중 현재 그런 상황에 딱 맞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녀님. 저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명이 있는데요.”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았고, 신수의 힘을 이어받은 것과 동시에 스승이자 애인이 된 남자의 가르침을 받아 단 2년 만에 금위계의 모험가 등급을 거머쥔 여성.
유리아가 말한 ‘주인공’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닌가.
유리아는 알렉스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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