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화 〉 401. 뒤늦은 후회(2)
* * *
이내 사이먼은 엘빈을 흘끗 바라보았다.
“정식으로…나의 제자가 되어 볼 생각은 없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사이먼의 이야기를 들은 엘빈은 적잖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제자로 말입니까?”
엘빈이 알고 있는 한, 사이먼은 70세를 넘는 연세의 노인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제자도 들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여섯 자릿수의 최상위 마법사의 문턱에서 일곱 자릿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노년에 들어서 생을 마감하는 마법사들도, 제자를 두어 자신의 성과나 명예 또는 업적 등의 자신이 살아왔던 흔적을 남기고 계승시키는 것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관례로 자리잡혀 있었다.
그 관례를 깨는 케이스로 일리아나 같은 사람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그런 관례를 지켜왔다.
애초에 일리아나도 은현의 권유로 유리아 왕녀에게 마법의 일부를 가르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일리아나의 입장에서는 마법을 가르쳤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단편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어째서 저에게 제자를 권유하려 하셨던 겁니까?”
일곱 자릿수의 고위 마법사인 사이먼이 보잘 것 없는 평민 출신의, 그것도 과거 흑마법을 익히면서 폭주했던 자신에게 그런 엄청난 권유를 하려고 했었던 것일까.
엘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최종면접에서 너를 나의 메이거스에 입단 허가를 내린 것은 나다.”
“뭐, 뭐라고요?”
가장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엘빈이 아닌 에린이었다.
오히려 당사자인 엘빈은 자신의 입단에 중요한 결정 요인이 사단장인 사이먼의 지령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엘빈이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는 것에 사이먼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알고 있었나?”
“확신은 없었습니다. 단지…일리아나님에게서 그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일리아나님이?”
“예전에 엘프의 숲에서 이곳으로 귀향하던 도중, 들었던 이야기야.”
엘빈은 그때 당시 일리아나가 입에 담았던 말을 떠올렸다.
아무리 뒷배나 스폰서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력만 있으면 뽑히는 게 당연하기는 하겠지.
얘의 실력만큼은 진짜야. 아무리 흑마법이라고는 하지만, 그걸 몇 년 만에 독학으로 익혔을 정도니까. 마법을 다루는 센스나 이쪽의 감각 자체는 뛰어난 편이지. 아마 실기 시험에서 이 녀석의 수준을 알아보고, 그 영감이 합격시킨 게 아닐까?
“…그녀는 알고 있었군.”
일리아나가 했던 말을 듣자, 사이먼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제자로 너를 받아들일 생각으로 너의 입단을 허가시켰다.”
“어째서 저였습니까?”
“너의 눈에서 독기를 보았기 때문이지.”
“……?”
“강해지고자 하는, 출세하고자 하는, 더 많은 마법을 탐구하고자 하는 많은 집념들을.”
엘빈의 두 눈에는 그런 강한 의지가 동반한 독기가 서려있었다.
평민의 신분으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마력을 연마하고 마법을 배우며 아이테르를 졸업한 초신성 같은 남자.
이제 막 아이테르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던 엘빈은 마법사의 길을 걸으면서 단 한 명의 제자도 들이지 않았던 사이먼이 우연찮게 발견했던 원석이었다.
제자가 들여서 가르친다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고, 노년에 들어선 자신의 업적과 명예를 계승시키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훌륭한 원석.
쿵!
“…웃기지…마요.”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테이블을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려친 것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린이었다.
주먹을 강하게 내려친 여파로 테이블 위의 차가 들어있는 컵들이 덜덜 떨렸다.
“오빠를…제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당신의 마법 사단에 입단시켰다고요?”
“…….”
“그럼 왜 그렇게 해주지 않았나요?”
원망과 분노가 섞인 에린의 추궁에 사이먼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가 그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으면서 일을 했는지 알기나 아세요?”
신분의 차이를 들먹이며 무시당하고 동기나 후배들보다 승진이 늦춰지며 몇 년을 가까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오면서 살아왔다.
자신의 오빠가 직장에서 그런 취급과 대우를 받으면서도 꾹 참으며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엘빈이 정령으로 되살아나면서다.
엘빈이 마법 사단에서 그 멸시와 모욕들을 모두 견뎌내며 꾹 참고 생활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에린 자신 때문이다.
그것에 죄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에린의 감정은 평소보다 더 사나웠다.
“제자로 삼을 거였으면 어째서 오빠가 그런 취급을 받도록 내버려뒀나요?”
“…….”
“마법사로서 재능이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면, 어째서 그렇게 해주지 않았어요?”
“…….”
“어째서 오빠가 악마한테 속아서 흑마법을 익히도록 내버려뒀어요?”
계속되는 에린의 추궁에도, 사이먼은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지긋이 두 눈을 감으며 세 배가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숙녀의 원망어린 목소리를 달게 받아들였다.
“스승이라는 건 그래선 안 되잖아요.”
적어도 에린이 생각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과 은현이 그러했으니까.
은현도 에린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에린의 주위 상황을 무엇하나 제대로 해결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음에도 자신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스스로가 많은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었으며 자신을 이끌어주었다.
적어도 에린이 생각하는 스승이라는 존재는, 직접 나서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고 이끌어주는 존재다.
에린이 동경했던 오빠 같은 사람이자, 스승이며, 동경했던 영웅을 넘어서 이제는 연인이 된 남자는 에린을 그렇게 키워냈다.
에린의 마음 속에 있는 스승이라는 사람은 은현 같은 사람이다.
“당신은…그런 말을 꺼낼 자격이 없…아야!”
살짝 눈물이 고여있는 원망스러운 눈동자로, 감정의 폭발을 일으키며 수많은 말을 쏟아내던 에린의 이마에 엘빈이 꿀밤을 쥐어박았다.
“왜 때려!”
“맞을 짓만 골라서 하고 있으니까. 좀 나가 있어.”
도저히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엘빈은 에린을 응접실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씨이….”
그런 오빠의 매정한 말에 에린은 서운함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고개를 홱 돌려 엘빈을 한번 쏘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편 들어줘도 나한테만 뭐라 그래! 오빠는 바보야!”
쿵!
방을 나가자마자 있는 힘껏 문을 닫아버리며 에린이 퇴장을 하고 얼마 뒤, 똑똑 노크를 하고는 릴리가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화중에 죄송합니다.”
사이먼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엘빈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에린한테 뭐라 말했어?”
“조금. 잘 달래줬으면 좋겠어. 부탁해도 될까?”
“그렇구나. 알았어. 그러면…새 걸로 갖다드릴게요. 대화 나누세요.”
릴리는 응접실을 퇴장하면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빈 잔을 회수해갔다.
다시 둘만이 남게 되자, 사이먼은 엘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모두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이지. 나는 네가 그 집념과 독기를 품고서 악착같이 버티며 내 마법 사단 안에서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를 기다려왔다.”
메이거스에 소속된 마법사들 중에서 사이먼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들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등에 업고 성과를 독식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었던 자들이라는 것을 사이먼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위를 보며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엘빈의 집념에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곧바로 그를 가르치고 제자로 삼고 싶었지만, 주위의 반발과 엘빈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 의도를 숨겼다.
자신이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엘빈이라면 충분히 혼자의 힘으로 성장하여 자신의 힘을 보이면서 많은 마법사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제자로 받아들인다면 그 타이밍을 노려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중하고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사이먼은 왕국에 소속된 마법사들 중 최고의 마법사였지만, 모든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엘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제때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못했던 것에 큰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고 있었다.
“찾아오신 용무는 잘 알았습니다. 지금 이 타이밍에 저를 찾아오신 이유도요. 다른 귀족들이나 마법사들의 반발을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왕국의 수도인 페르닌과 궁정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피해의 여파는 메이거스에도 당연히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엘빈은 눈치챘다.
귀족들이 숙청당한 사건의 계기는 에린과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의 단원들 사이에서 벌어진 불화로 인해, 크라시르의 단원들이 에린에게 모조리 깨지면서 기사로서의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부정 입단의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비슷한 엘리트 왕국 마법사들의 집단을 고스란히 덮쳤으며, 크라시르와 마찬가지로 비리를 저질렀던 귀족 집안들의 마법사들, 부정으로 입단한 마법사들이 모조리 퇴출 당했다.
이제와서 엘빈을 다시 입단시키고 정식으로 제자로서 선언을 한다고 한들, 못마땅해할 지언정 대놓고 불만을 가질 세력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지만…이 권유는 거절할 것 같군.”
“네.”
엘빈은 담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부터 테이블 위로 보이는 그의 상반신을, 그리고 그의 몸 전체를 두르고 있는 기운은 평범한 인간의 마력이 아닌, 다른 어떤 무언가다.
평범한 인간이 정령의 힘인 정령술을 구사할 수 없듯이, 정령이 인간의 마법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권유해보기도 전에, 자신의 권유는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이먼은 순순히 그 생각을 접었다.
“한 가지. 사이먼님께서 잘못 생각하셨던 것이 있습니다.”
“잘못 생각했다고?”
“저의 눈에서 집념을 보셨다고 하셨지요. 확실히…그때의 저는 어떤 집념이 섞인 독기로 움직이고 있었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던 건 아니었습니다.”
강해지고자 하는, 출세하고자 하는, 더 많은 마법을 탐구하고자 하는 많은 집념.
그것은 옳다.
하지만 그 다양한 집념들은 단 하나의 원초적인 목표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제 바랬던 것은 제 동생의 행복이었습니다.”
“…….”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버지의 막말과 행동으로 결국 병을 얻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아버지의 다음 타겟은 어머니의 젊었을 시절을 연상시키는 어린 소녀였던 에린이었다.
엘빈은 하루 종일 얻어맞는 것도 모자라, 불결한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는 그 천박한 시선에서 에린을 떼어놓기 위해서 메이거스 궁정 마법 사단에 입단하여 출세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여동생을 데리고 나와 마음이 갈가리 찢겨진 에린을 보살피며 사는 것이 엘빈의 목표였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마력을 연마했고, 마법을 연구했으며, 마법 사단에서도 평민이라는 신분의 차이에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버텨냈다.
‘조금만, 조금만 더.’라고 자신을 다독이고 모든 것은 에린을 위한 것이라며 에린이 아버지와 아이테르에서 실시간으로 받고 있던 고통을 외면했다.
그렇게 엘빈까지 이성이 망가지고 ‘흑마법’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조영술을 익히면서 공격성이 날이 갈수록 흉포해져 어머니를 때리고, 자신과 에린에게까지 몹쓸 짓을 저질렀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날이 갈수록 커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짓까지 저질렀다.
행동방식은 살인이었으며, 패륜에 가까운 절대로 옹호받지 못할 죄였지만, 엘빈의 행동원리는 모두 여동생인 에린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사이먼님. 저는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흑마법을 익히고, 아무리 증오스러웠다지만 피가 이어져 있던 아버지를 죽이는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질렀음에도,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엘빈은 웃었다.
여동생의 갈가리 찢겨진 마음은 한 남자를 만나면서 회복되었고, 이제는 연인이 되었다면서 하루하루를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그토록 바랬고 하늘에 빌고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저는 설령 인간이었다 할지라도, 사이먼님의 제안은 거절했을 겁니다.”
엘빈은 반드시 그랬을 것이라는 확신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는 앞으로도 저를 구원해주고, 여동생을 구원해준 은인을 평생 모시고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엘빈이 정식으로 은현과 정령과 주인으로서 계약을 맺으면서 스스로에게 강제했던 복종의 서약이다.
이 서약이 있는 한, 자신은 은현을 평생 따라야 한다.
자신과 에린을 구원해준 은현에 대해 충성을 바치기로 결정한 엘빈의 의지는 확고하고 견고했다.
엘빈은 천천히 사이먼에게 고개를 숙였다.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
엘빈의 정중한 인사를 받은 사이먼은 두 눈을 지긋이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을 등지며 사이먼은 페르닌으로 복귀하기 위해 아르미타스령으로 타고 왔던 마차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주위의 견제와 반발에도 강압적으로 엘빈을 제자를 받아들였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르겠군.”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가정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
단지 훌륭한 재목이었던 아까운 마법사 하나를 잃었다는 것에 아쉬워하며, 사이먼은 후회하며 페르닌으로 귀환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