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화 〉 399. 남매 싸움(2)
* * *
저택의 엘레노아에게 마련된 개인 집무실.
테이블에 앉아 홍차를 마시고 있던 엘레노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무릎을 꿇고 반성하고 있는 두 남매를 쏘아보았다.
“왜 불려 왔는지, 알고 있지?”
“…네.”
“죄송합니다.”
침울한 표정과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는 두 남매는 에린과 엘빈이다.
“대련을 하는 건 좋았어. 그래도 정도껏 했어야지.”
“하지만 오빠가….”
“변명 하는 건 좋지 않아.”
“네…. 죄송해요….”
변명으로 입에 담으려 했던 것도 그저 오빠가 사용한 정령의 능력이 너무 짜증나서라는 감정적인 말.
에린 스스로도 이 변명이 얼마나 유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에린은 엘레노아의 꾸중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과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같으니까. 여기서 끝내는 게 어때?”
엘레노아와 함께 그녀의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알렉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간에 나서서 중재했다.
“애초에 훈련장 안에서 대련을 해주도록 두 사람에게 권유한 것은 나니까.”
훈련할 장소는 던전 주택의 지하 훈련장도 있었지만, 알렉스는 두 사람의 대련을 굳이 아르미타스의 기사들이 훈련하는 훈련장을 권유했다.
어떻게 보면 원인은 알렉스이기도 하다.
“새로운 신입들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겠지.”
그만큼 엘빈과 에린이 보여주었던 싸움은 화려했다.
곡예에 가까운 체술의 활용과 빠르고 정교한 검술을 섞어가며 상대를 몰아넣는 에린이나, 수 많은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우직하게 버텨내며 반격을 하는 엘빈이나.
많은 기사의 감탄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나 본보기로 보여야 할 부분은 에린 쪽이었다.
엘빈의 경우에는 그림자를 활용하는 싸움방식을 누군가에게 알려준다고 해서, 그것을 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특수한 부류의 힘이다.
애초에 정령의 힘을 인간이 재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에린은 다르다.
신수의 힘이라는 인외적인의 요소를 제쳐놓고서라도, 에린의 체술과 검술은 은현의 교육 아래에 순수히 에린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기술이다.
그런 에린을 키워낸 은현이 직접 키워낸 인재이며, 동시에 지금의 아르미타스 기사들의 기초 교육을 맡았던 남자다.
알렉스는 신입 기사들에게 그 부분을 자극시켜주고 싶었다.
사용하는 기술이나 성별, 조건들은 다를지라도 아르미타스 기사단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저 수준을 조금이라도 따라 갈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드는 비용이 훈련장의 벽이 파손된 것이라니.
조금 과격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인지 쓴웃음이 나왔다.
“후우, 그럴 생각이었어요.”
한숨을 내쉰 엘레노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용서는 용서고, 그 이후에 대한 책임은 져야한다.
이대로 그냥 용서를 해주면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에린이니까 인도적인 차원에서 봐줄 수도 있었지만, 엘레노아는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벌을 받고 반성을 할 수 있도록 에린을 꾸짖어주고 싶었다.
“그래도 벽의 수리비는 에린과 엘빈에게 내게 할거에요.”
“그, 그럼요! 당연히 내야죠! 저희 때문에 부서졌는데!”
“아니, 저는….”
“오빠는 가만히 있어!”
엘빈은 에린의 공격을 맞고 뒤로 튕겨져 나간 죄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살짝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에린의 강압적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
“좋아. 그러면 용서해줄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엘레노아님! 앗!”
엘레노아의 용서가 떨어지자, 곧장 안색이 밝아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던 에린이 주춤하며 다시 바닥으로 쓰러질 뻔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더니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왔기 때문이다.
에린의 무릎이 다시 바닥에 부딪치려는 찰나, 엘빈이 에린의 옷깃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엘빈에 이어서, 에린이 뒤늦게 고개를 숙여왔다.
“에린. 곧바로 집에 갈 예정이니?”
“네? 아뇨? 오빠랑 보육원에 들러서 일 좀 도와주고 가려구요.”
“그렇구나. 그러면 릴리와 함께 오겠네. 오랜만에 저녁 같이 먹지 않을래?”
은현과 일리아나가 엘프의 숲으로 가게 된 시점부터 던전 주택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은 엘레노아였다.
동시에 은현의 부재로 그의 일들의 일부였던 흑랑단의 정보수집을 비롯해 많은 일을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인지, 엘레노아는 최근 릴리나 에린과 함께 저녁을 먹었던 적이 없었다.
“헤헤. 좋죠! 릴리 언니한테도 말해둘게요!”
엘레노아의 권유는 에린에게도 반가운 이야기였기에 곧장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릴리에게도 들려줄 반가운 소식이 생겼다는 생각에 에린은 잔뜩 기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저녁에 봐. 훈련장의 수리 대금은 나중에 받을게.”
“네, 네! 알겠습니다!”
수리 대금의 이야기가 나오자, 에린은 살짝 안색을 굳히며 억지 미소를 만들었다.
이윽고 엘빈의 팔을 붙잡고 공작 저택을 나왔다.
“왜 그래?”
“…….”
급하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저택을 나온 이유를 물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에린이 이윽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빠.”
“왜.”
“돈 좀 있어?”
“…….”
직설적인 여동생의 질문에 엘빈은 무슨 사정인지를 곧바로 파악 할 수 있었고, 얼굴을 굳혔다.
“너 돈 많잖아.”
이전부터 딱히 과하게 소비하는 편도 아니었고, 더불어 금위계 모험가로 승급하면서 몸값이 크게 상승한 탓에 자신보다 가지고 있는 돈도 많을 터.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여동생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그게….”
말문을 트는 것을 잔뜩 꺼려하고 있는 에린의 태도가 계속 유지되자 엘빈도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에린을 노려보고 추궁했다.
“그 돈들. 어디에 썼어?”
“오, 옷하고 장신구들을 조금….”
“…얼마나 모자른데?”
“절반 정도….”
아르미타스 훈련장의 넓이는 매우 큰 편이다.
그 벽면을 부숴버렸으니 거기에서 부담해야 하는 수리비도 막대한 액수일 수밖에 없다.
에린 정도야 그 수리비를 부담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엘레노아도 책임을 묻는 것으로 수리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에린은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이 모든 수리비를 부담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엘빈에게 솔직히 밝혔다.
“…….”
엘빈은 어째서 에린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옷이나 장신구를 사는데 그 많은 돈을 썼다고?”
“나,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뭐! 현이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엘레노아님처럼 비싼 옷이나 보석들로 꾸며보고 싶었는데!”
같은 여성이 봐도 귀티가 나고 우아한 엘레노아에 대해 동경의 마음을 품고 어리숙하게 그녀를 흉내 내보고 싶었던 열망이 지금에 이르러서 아주 변수로 작용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유예의 기간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철없는 여동생은 엘레노아에게 더 꾸중을 듣는 것을 두려워해 솔직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다.
“흐음….”
엘빈은 속으로 부족한 금액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을 비교하며 생각에 잠겼다.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이런 한심한 이유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철없는 여동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좋아. 빌려줄게.”
“정말로? 고마워! 오빠!”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엘빈이 조건을 언급하자 에린의 두 눈이 동그래지며 되물었다.
“나랑 같이 모험가 일 하나만 맡아.”
현재 엘빈은 데르킨의 부재로 에린처럼 솔로로 모험가 일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은위계 모험가들에게 배당되는 의뢰를 수행하는데, 금위계 모험가인 에린의 조력을 받는 것은 정말로 든든한 지원이다.
의뢰 대금을 반으로 남매가 나눠가진다고 하더라도, 엘빈보다 고급인력이나 다름없는 에린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헐값에 노동을 하는 것으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나 몸값 꽤 비싼데?”
“싫으면 알아서 돈 벌어 가지고 갚던가.”
가차없이 고개를 돌리며 보육원을 향해 걸어가려던 엘빈의 어깨를 에린이 황급히 붙잡았다.
“알았어! 해줄게! 의뢰같이 해줄게!”
당장 현금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에린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엘빈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빴어! 그냥 빌려 줄 수도 있잖아!”
“이런 말 못 들어 봤냐. 돈 문제는 가족 관계에서도 철저히 해야한다고.”
“쪼잔해!”
“넌 머리가 텅 비었으니까 그런 무지성의 과소비를 하게 되는 거야.”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무리 비난의 말을 쏟아부어도, 엘빈은 끄떡도 하지 않으며 반격했다.
오히려 매몰찬 오빠의 평가에 상처를 받는 것은 언제나 여동생 쪽이다.
“히잉….”
“…어휴.”
성인이 되고 남자까지 생겼으면서 철이 좀 드나 싶었지만, 아직도 엘빈의 눈에 에린은 철없는 여동생이었다.
“내일 아침에 모험가 길드에서 대기해. 의뢰는 길드에서 직접 보고 정할 테니까.”
“…알았어.”
에린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의 이야기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긴 두 남매는 보육원에 도착했다.
보육원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두 남매를 발견한 이들은 마당에서 놀고 있던 어린 아이들이다.
“아! 에린 언니다!”
“어? 정말? 에린 누나가 왔어!”
에린을 발견하자마자,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운 표정으로 몰려들어 에린의 주위를 둘러쌌다.
“응. 얘들아. 나 왔어.”
에린이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한명 한명 다 쓰다듬어 주며 보육원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건물 안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릴리가 나와 두 남매를 맞이했다.
“어서 와.”
“언니. 엘레노아님이 오늘 저녁 같이 먹자고 하셔!”
에린은 릴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엘레노아의 전언을 전달했다.
“그래? 그러면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야겠네.”
릴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엘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엘빈. 손님이 와계셔.”
“손님? 나한테?”
엘빈은 손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응.”
자신이 아르미타스령의 모험가 길드에서 에린의 오빠인 점이나, 흑기사라는 압도적인 비주얼로 조금씩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인지, 자신이 이 보육원에 체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조사를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가끔 모험가 길드 측에서 개인의 지명 의뢰를 위해서 모험가의 체류 장소를 직접 찾아 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에린처럼 금위계의 모험가들에게 적용되는 특혜와 비슷하다.
아직 은위계 모험가인 자신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사항이다.
“누군데?”
“음…이름은 말씀은 하지 않으셨고, 굉장히 연세가 있으신 노인분이셔.”
“…노인?”
“응. 아마…. 일리아나님의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 강한 마력을 보유하신 마법사 같으신데?”
반마(半?)의 서큐버스로서 타인의 기운에 민감한 릴리는 손님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강한 마력을 보유한 노인 마법사….”
릴리가 설명한 손님의 외양을 다시 한번 곱씹었던 에린의 인상이 단번에 찡그려졌다.
이윽고 에린은 흘끗 옆을 바라보며 엘빈의 표정을 살폈다.
“…….”
굳어있는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엘빈은 이윽고 입을 열어 릴리가 말한 손님용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손님이 누구인데 엘빈의 얼굴이 저렇게 굳어져?”
혹시라도 에린은 알고 있는 걸까 싶은 표정으로 릴리가 에린에게 물었다.
응접실로 향한 엘빈과 마찬가지로 좋지 못한 표정을 하던 에린이 작게 한숨을 쉬며 릴리의 질문에 답했다.
“아마도…. 오빠의 옛 상사 같아.”
“…상사?”
“응. 그것도…. 상사들 중에서 제일 위에 있었던 사람.”
“…….”
엘빈과 에린의 옛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릴리도 단편적으로나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엘빈이 인간 시절 몸담았던 곳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엘리트 마법사들만 입단할 수 있다는 ‘메이거스 마법사단’이다.
그렇다면 그 메이거스 마법사단에서 가장 위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일리아나님과 같은 고위자릿수의 대마법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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