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화 〉 398. 남매 싸움(1)
* * *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에 종속된 기사들이 훈련하는 광활한 크기의 공식 훈련장에서, 대련을 펼치고 있는 둘의 검이 충돌하여 강렬한 소음이 발생해 훈련장 내부를 뒤흔들었다.
카앙!
어찌나 강하게 울려 퍼졌는지, 개별 훈련을 이어가고 있던 이들까지 어깨를 움찔 떨고 양손으로 두 귀를 막을 정도다.
그런 와중, 모든 이의 주목을 받고 있던, 소음의 주 발생원이었던 두 존재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레이피어를 쥐고 상대방을 향해 겨누고 있는 금위계의 젊은 모험가 에린과 최근 ‘흑기사’라는 이명으로 모험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엘빈이다.
철컥! 철컥!
한 걸음 씩 발을 내딛을 때마다, 갑옷의 쇠들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전신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라 일렁이는 새까만 그림자들.
전신을 둘러싼 풀 플레이트 메일의 투구 사이로 상대방을 응시하고 있는 붉은 눈동자.
“와…. 저, 저 진짜로 오줌 지릴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입단하게 된 신입 기사가 엘빈의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신입을 보고 선배 기사들은 낄낄거리며 말했다.
“진짜로 지리진 마라. 개쪽팔리니까.”
에린이 검을 부딪치고 마주한 상대, 엘빈은 비주얼만 놓고 본다면 악의 세력에 중간보스로 등장하는 흑기사나 다름없다.
처음 선보였던 그 비주얼이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적나라해서, 처음 모험가 일을 시작하기 위해 모험가 길드를 찾았었던 때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던 것을 생각한다면, 눈앞의 신입 기사들의 표정은 약과에 불과하다.
그때도 일리아나, 엘레노아의 신원보증 때문에 통과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생활을 이어 올 수 있었지.
두 사람의 조력이 없었다면 신원 미상에 악인의 비주얼인 엘빈은 이 영지에서 정령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인간의 모습으로만 생활을 해야 했으리라.
올해 초에 입단한 신입은 그 흑기사의 외양과 위용에 잔뜩 위축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와 대치하고 있는 에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여성은 신입 기사와 나이의 차이가 별반 차이나지 않는 앳된 외모다.
하지만 그와 달리 에린은 틀림없는 금위계의 모험가로 이곳에서 쌓아온 실적이나 실력이나 신입 기사와는 다른 상위의 존재.
우우웅!
“하아!”
증폭시킨 마력을 단숨에 방출시켜 그에 대한 반발력을 얻은 에린이 기합을 내지르며 엘빈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레이피어에 마력을 불어넣어 위력을 더욱 강화시킨 검날이 엘빈의 어깨를 관통하기 위해 쇄도했지만.
까앙!
그림자로 만들어진 풀 플레이트 메일을 관통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아오!”
전혀 데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에린은 짜증을 냈다.
“진짜 사기야! 그 그림자!”
두 사람 사이의 전투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화려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많은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곡예에 가까운 기예를 보이며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대는 에린이나.
그 강력한 공격을 모조리 받아내면서도 끄떡도 하지 않으며 느리지만 강력한 일격을 해오는 엘빈이나.
두 남매는 어느 쪽이든 기사들에게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수준이다.
“굉장하다….”
“대단하네. 저 아가씨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금위계 모험가라는 칭호를 땄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두 남매의 싸움을 관전하며 감탄하고 있는 기사들은 대개 신입과 선배 기사의 두 부류로 갈렸다.
신입 기사들의 경우에는 아무리 강력하고 정교한 공격을 연속으로 퍼부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우직한 공격을 퍼붓는 엘빈의 위용에.
선배 기사들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을 노력하여 쌓아 올린 에린의 정교한 움직임에서 표현되는 기술의 정수에.
“그저 모의전일 뿐인데. 왜 열을 내.”
“그래도!”
은현에게서 혹독하게 배워온 체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계속해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신수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저 물리적인 방어력을 뚫어낼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에린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위협적인 공격이라도, 엘빈의 공격은 굉장히 단조롭고 파악하기 쉬웠다.
엘빈 또한 데르킨에게서 단검술과 궁술을 비롯해서 각종의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본래의 엘빈은 마법사였으며 육체적인 움직임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신수의 농밀한 마력을 꺼내어 레이피어에 담는다면 엘빈의 그림자 갑옷도 부술 수 있는 극한의 관통력을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미호의 힘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에린은 본의 아니게 전력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은현이 제작해준 레반테인 정도가 아니라면 신수의 마력을 버티지 못하고 레이피어가 부서져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장소에서, 일반적인 레이피어로 모의 대련을 하는 것에 신수의 힘은 여러모로 적합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극한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저 그림자 갑옷을 깨부수는 것은 에린 이외에 다른 기사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까아앙!
계속해서 쇄도해 오는 연속의 찌르기를 방어해내던 엘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엘빈의 현재 무기는 그림자로 만들어낸 뭉툭한 둔기와 날카로운 장검의 양손 무기.
다시 한번 어깨를 노리고 들어오는 레이피어를 검으로 막아내고, 빈틈을 보인 에린의 옆구리에 확정타를 주기 위해 그림자 둔기를 휘둘렀다.
“어딜!”
하지만 뻔히 보이는 그 노림수를 당해줄 정도로 에린의 경험은 적지 않았다.
용수철이 튕기듯 허공으로 점프한 에린의 몸이 가까스로 엘빈의 둔기를 피해냈다.
공중에 체류하면서 몸을 회전시키며 위력이 가중된 발차기가 엘빈의 오른쪽 목덜미에 정확히 명중했다.
까앙!
“…치.”
가벼운 체중과 민첩한 몸놀림이 특기인 에린이 펼칠 수 있는 화려한 곡예가 만들어낸 정확한 타격이 들어갔음에도, 엘빈은 미동도 하지 않는 것에 에린은 혀를 찼다.
발차기를 날렸던 다리를 회수하여 바닥에 착지한 틈을 타, 자신의 머리를 향해 그림자의 검이 날아왔다.
가슴을 옆으로 비틀고, 가느다란 레이피어를 비스듬히 들어올려 정면으로 내려 찍으려는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카앙!
“끄…으!”
무거운 질량에 가중된 힘으로 어마어마한 위력이 레이피어 너머로 느껴져 에린의 손과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레이피어를 두르고 있는 마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강한 충격에 에린은 이를 꽉 깨물고 그림자 검의 궤도를 비틀어냈다.
그림자 검이 애꿎은 바닥을 분쇄시키며 꽂혀버리는 순간,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엘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주현성 극원류]
[호접발경(????)]
손바닥의 정중앙 한점에 응축시킨 마력을 해방하면서 생기는 강력한 충격파로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주는 기술.
엘빈의 그림자 검이 엇갈리고 생긴 빈틈을 파고든 에린의 발경이 엘빈의 복부에 정확히 직격했다.
카아앙!
금속을 때리는 강렬한 소음이 발생함과 동시에, 엘빈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으며, 날아간 그의 몸은 훈련장의 벽에 처박혔다.
쿠우웅!
“아.”
커다란 소음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벽면을 응시한 에린의 안색이 굳어졌다.
‘어쩌지…? 나도 모르게 짜증나서 좀 진심으로 때렸는데…. 엘레노아님한테 혼나려나…?’
살짝 진심을 섞어 때린 오빠를 걱정하기보다, 오빠와 충돌하면서 부서진 벽을 걱정하고 있는 기이한 에린의 심리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무너진 훈련장의 돌무더기 사이에서 손을 뻗어 돌들을 치워버리고, 묵직한 플레이트 메일의 상체를 일으킨 엘빈의 붉은 눈동자가 에린을 응시했다.
“좀 너무 했던 것 같은데.”
“어…. 미안. 오빠. 아팠어?”
“아니. 나는 멀쩡해. 내가 말한 건 이 훈련장의 벽 얘기야.”
“…….”
담담하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 무너진 벽면을 가리키자 에린은 안색을 굳혔다.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지만, 에린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든 것은 정통으로 맞은 자신의 발경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본래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 공격을 복부에 정통으로 맞은 것만으로도 내장이 뒤흔들리고, 심하면 파열이 되기까지 하는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지만, 엘빈의 호문쿨루스 육체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재료로 은현과 일리아나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마법과 생체학이 결합된 기술의 정수 그 자체다.
갑옷도 갑옷이지만, 저 육체도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가 아닌 이상, 인간의 육체에 직접 타격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발경의 위력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쪽이 살짝 파인 것 같은데.’
엘빈은 안색을 굳힌 여동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얻어맞았던 복부의 상태를 살폈다.
그래도 타격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인지, 호문쿨루스의 육체가 살짝 움푹 파였다는 사실에 엘빈도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에린에게 밝히지는 않았다.
여동생에게 약한 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오빠로서의 고집과 허세였다.
‘정말 쓸데없는 감정이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엘빈의 본심은 그 유치함을 억지로 얼버무리며 숨겼다.
결국, 자존심이 상한 에린이 입을 삐죽 내밀며 자신의 오빠를 노려보았다.
“진짜 치사해! 그 그림자!”
에린은 레이피어를 꽉 쥐며 다시 한번 엘빈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시작한 두 남매의 대련을 지켜보던 신입 기사들은 경악과 긴장, 두려움 등의 다양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는 선배 기사들은 감탄과 질린 기색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선배 기사들 중 최고참인 메르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남매는 도대체 얼마나 날뛸 생각이지?”
점점 과격해지는 두 남매의 싸움은 이제는 대련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리고 싸움으로 과해지는 것은 두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일이 좀 더 커지고 있는데!?”
“난 아가씨가 이긴다에 금화 두 닢을 걸겠어!”
“그럼 난 저 흑기사 형씨가 이기는 쪽에 세 닢을 걸지!”
갑자기 싸움의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내기의 판이 관전을 하고 있던 아르미타스의 기사단원들에게도 열기를 전파시켰다.
“니 눈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당연히 아가씨 쪽이 이기겠지!”
“야! 저 갑옷 더럽게 단단한 거 못 봤냐!? 마법인지, 아니면 아티팩트인지 모르겠는데, 날쌔고 정밀한 아가씨의 공격도 저 갑옷에 타격도 못 주고 있다고!”
내기와 돈이 걸리자, 누가 이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과열되었다.
“그만해! 이 미X 놈들아!”
기사단의 훈련장이 단숨에 시끌벅적해지자, 메르딘이 기사들을 보며 외쳤지만, 그의 외침은 많은 기사의 아우성 속에 묻혀버렸다.
“선배님! 선배님은 어느 쪽에 거시겠습니까!? 신입들은 내기에서 제외됐고, 선배님 빼고는 모두 거셨어요!”
심지어 메르딘의 선택이 궁금하다는 듯 많은 동료 선배 기사의 시선이 메르딘에게 집중되었다.
“…흑기사 쪽에 금화 네 닢.”
“조오았어! 믿고 있었다고! 메르딘!”
‘엘빈이 이긴다.’에 자신의 한달 치 봉급을 모조리 걸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자, 엘빈 쪽에 내기를 걸었던 기사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흑기사를 응원했다.
“…….”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내기에 동참하게 된 메르딘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결심이 선 듯 남매의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는 한창인 훈련장을 빠져나와 저택으로 향했다.
저 남매의 싸움이 더 과열되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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