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화 〉 390. 고대 마수(5)
* * *
키리릭!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송곳을 향해, 고르곤은 세 번째의 석화 광선을 쏘았다.
투박하게 조형된 반투명한 얼음 송곳과 검붉은 색의 석화 광선이 충돌하여, 허공에서 큰 폭풍이 휘몰아친다.
아래쪽 끝자락부터 천천히 석화가 진행되어가는 얼음 송곳은 맹렬히 회전하여 고르곤의 머리를 짓뭉개기 위해 낙하했다.
키아아아악!
허공에서 낙하하는 거대한 얼음 송곳을 상쇄시키기 위해, 연속으로 발동한 세 번째 마안.
남아있는 마력을 모조리 쥐어 짜내는 고르곤의 처절한 비명이 평원에 울려 퍼졌다.
석화 광선으로 회전과 낙하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머리카락과 꼬리, 양손을 이용하여 얼음 송곳을 붙잡아 물리력을 상쇄시킨다.
키리릭!
머리카락과 꼬리, 양손 등 나선으로 회전하는 얼음 송곳에 접하는 고르곤의 모든 살점들이 갈려 나가고 피 분수가 쏟아져 사방으로 튀고 있음에도, 고르곤은 자신의 몸을 거두어들이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수의 특성상, 시간만 주어진다면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재생을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얼음 송곳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목숨은 끝이라고 마수의 본능이 경고를 해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뱀 머리카락과 꼬리, 양손으로 막을 수 있는 자신의 모든 신체 부위를 모조리 동원하여 희생을 시켜서라도 필사적으로 막는 것이다.
마침내 일리아나가 만들어낸 거대한 얼음 송곳의 회전과 낙하가 멈추면서, 힘없이 바닥에 쳐박히며 고르곤의 머리를 짓뭉개는 것은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미 고르곤의 전신은 만신창이.
피부의 비늘이 벗겨지고, 처음처럼 일렁거리던 수천 마리의 뱀 머리카락들은 어느새 다 절단되고, 갈려 나가, 양손마저도 뒤틀려 있는 광경은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빈사의 상태다.
“…이걸 막았네.”
일리아나는 고르곤을 빈사의 상태로 몰아넣었다지만, 결국 끝장내지 못했다는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전보다 마력량도 상승되고, 반신(半?)의 권속이 되면서 갖추게 된 고도의 연산능력을 기반으로 밀도가 높은 질량의 얼음 송곳을 조형했다.
이 마법으로 아예 숨통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스스로에 대한 마법적 재능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향상된 자신의 수준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쯧.”
아쉬움으로 물들어 작게 혀를 찬 일리아나는 이내 고개를 위로 들어올려 위를 응시했다.
자신보다 더 높은, 구름으로 가려진 하늘 위에 있을 은현을 생각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네 차례야.”
◆ ◆ ◆
아래에서 조형된 거대한 얼음 송곳의 낙하를 지켜본 브류나크는 마치 인외의 존재를 보는듯한 침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미X.]
실시간으로 두 종류의 마법을 유지시키면서, 저렇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상위 자릿수의 마법을 발동시키는 삼중창.
도저히 인간의 사고력으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브류나크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야, 니 아내라는 저 여자. 사람이냐?]
“사람이지. 그럼. 넌 내 아내를 뭘로 보는 거야. 너 진짜로 죽고 싶어서 그래?”
일리아나가 들었으면, 기껏 부활시킨 자신의 무기를 진심으로 부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뜻으로 물은 게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저런 인간 지구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고. 애초에 저런 여자가 존재했으면, 우리가 그렇게 악마들에게 개쳐발리면서 싸우지도 않았잖아.]
“그건 좀 슬픈 얘기다.”
[…뭐 그렇네.]
인류가, 자신들이 약했기 때문에, 브류나크는 아스타로트를 소멸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게다가 악마의 존재 전부를 소멸시키기는커녕 공허의 저편인 마계로 다시 몰아내고 통로를 닫아버리는 것이 한계였다.
그때의 은현은 지금처럼 반신(半?)이라는 초월자도 아니었다.
브류나크는 은현의 지적에 납득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가자. 일리아나가 마무리하지 못했으니 우리 차례야.”
[그래.]
현재 은현과 브류나크의 위치는 지표면에서 고도 10km 이상은 떨어져 있는 하늘.
일리아나가 조형한 거대한 얼음 송곳을 낙하시키자마자, 은현은 고르곤의 온 신경이 얼음 송곳에 쏠려 있는 틈을 타, 일리아나의 도움으로 고도가 높은 대기권의 끝자락까지 날아왔다.
하늘 위로의 상승이 멈추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의 아주 작은 체류 시간.
10km의 거리에서 본 고르곤의 모습은 작은 점처럼 보였지만, 은현은 그 작은 점을 정확히 포착했다.
브류나크의 창끝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힘든 거리에서 정확히 고르곤을 향해 겨누었다.
창날과 창대를 결합하고 있는 소켓부분에 발을 걸쳐 단단히 고정하고 창대를 잡은 몸을 회전시켰다.
허공에 떠 있는 브류나크는 은현의 체중이 실려 점점 나선으로 회전하기 시작하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다.
공격 자체는 일리아나가 방금 전 선보였던 프로즌 스파이럴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더 높은 고도에서 맹렬히 회전하는 신창(??)은 명백히 마법으로 만들어진 얼음 송곳과는 다르다.
게다가 지금의 브류나크에는 프로즌 스파이럴의 영창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걸어준 마법이 상시로 유지되고 있었다.
[여섯자릿수 상위 마법]
[어그레시브 그래비티]
특정의 장소나 사물을 본래 중량의 배로 증가시켜주는 마법.
본래라면 광역 범위로 장소를 지정하여 범위 내의 모든 생물체의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마법이다.
하지만 은현은 이 마법의 대상을 브류나크로 한정시켜줄 것을 일리아나에게 부탁했다.
이어서 브류나크의 창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크…으!]
베르단디와 코르누코피아로부터 지원받는 막대한 양의 신력이 자신의 몸속을 가득 채우는 것에 브류나크는 신음을 흘렸다.
자칫 잘못하면 몸 자체가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용의 한계의 한계까지 꾹꾹 눌러 담는 신력의 양에, 브류나크는 창대를 부르르 떨었다.
“힘들어?”
[하…. 누가? 나한테 하는…소리냐?]
“좀 버거워 보이는데?”
[뭔 소리야. 나 신창(??)이라고! 이까짓 것쯤…!]
브류나크는 태연한 척 연기를 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경악한다.
‘미친…이 기운은 뭐야. 도대체?’
그저 400년 전에 쥐꼬리만한 마력을 담아 던졌던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스타로스의 분노의 불길을 정면으로 맞서면서 창날의 끝이, 창대가 불타올라 소멸했을 때와도 다르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온몸이 깎이는 고통과는 다른, 따뜻하면서도 상냥한 기운이 온몸을 가득 채우는 고통.
수용의 한계는 진즉에 넘어섰다.
하지만 계속해서 밀고 들어와 자신의 창대를 터뜨려버릴 기세로 압축되는 거대한 기운은 정말로 폭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멈출까?”
[하…. 이게 또 내 자존심을 건드리네. 좋아…! 해보자고!]
브류나크는 은현이 보내오는 모든 신력의 기운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끝을 모르고 주입되는 신력의 양에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불안감이 엄습함에도, 거부하지 않는다.
거부할 수가 없다.
[나는 무기야.]
무기란, 적을 물리치는데 사용되는 기구.
자신의 파트너였던 은현은 여기가 한계가 아니라는 듯,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기운을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무기란, 파트너의 요망을 들어주는 도구.
자신의 파트너인 은현의 요망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파트너도 아니며, 무기와 주인의 관계가 아니다.
[여기서 그만두라고? 그렇게는 못하지.]
“…….”
[니가 하면! 나도 하는 거야!]
“그래. 고마워.”
은현은 브류나크의 의지를 확실히 느끼고 기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배려하며 주입시키고 있었던 신력의 양이 약과였다는 듯 더욱 거칠고 막대한 양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끄으으…으!]
브류나크는 속으로 경악했다.
‘X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자식?’
과거, 자신에게 창술을 배웠던 햇병아리와는 다른, 막대한 양의 기운을 끝도 없이 방출하는 은현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비됐다.
은현과 브류나크가 허공에 체류하고 있던 시간은 불과 약 5초 정도.
은현은 신력의 주입을 모두 마치고 브류나크를 겨냥하고 있던 고르곤을 향해 내던졌다.
시계방향으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하던 브류나크가 아래로 낙하한다.
[브류나크 창술]
[유성 분쇄]
일리아나의 중력 마법의 영향으로 질량의 배가 되는 힘과 나선의 회전 속도가 더해진 투창은 일반적으로 은현이 선보이던 위력의 배.
10km 이상의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브류나크와 은현이 정확히 빈사상태가 된 고르곤의 위로 낙하하고 있는 이유는 브류나크가 가진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반드시 명중한다.’라는 ‘결과를 확정짓는’ 신창(??)의 능력에 의해, 브류나크의 투창은 항상 사기적인 성능을 보여왔다.
마침내 낙하한 브류나크가 만신창이 상태였던 고르곤과 맞부딪쳤다.
키아아악!
자신을 향해 무섭게 날아오는 유성같은 존재를 직감하여 고르곤은 포효했다.
그 포효는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한 생존을 울부짖는 울음소리다.
세 번을 연달아 사용했던 석화의 마안은 마침내 마력이 동나면서 곧바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뱀 머리카락과 꼬리, 양손은 이미 절단되고, 갈려버려 사용할 수도 없는 상태다.
퍼어엉!
압축하고 또 압축한 신력이 해방되면서, 중력이 가중된 질량과 회전으로 형성된 물리력과 어우러진 기운의 폭발은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을 찢어발겨 놓았다.
낙하하면서 만들어지는 공기가 찢어지는 살벌한 소리.
고르곤의 포효마저도 묻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폭력이 고르곤의 머리를 강타했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만신창이 상태의 고르곤의 전신을 찢어놓는다.
단 몇초만에 고르곤의 머리와 전신을 터뜨려버린 브류나크의 창끝이 바닥에 충돌하자.
콰아앙!
대지를 뒤흔드는 강렬한 폭발음과 모래먼지의 돌풍이 일어났다.
하늘 위에 있었던 일리아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공기의 떨림과 돌풍에, 일리아나는 자신의 마녀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한 손으로 붙잡아 고정했다.
이윽고 하늘 위에서 브류나크를 던지고 낙하하는 은현이 요령있게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일리아나의 스태프 끝자락을 붙잡으며 매달렸다.
“내려가자.”
“응.”
일리아나는 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유하고 있는 스태프를 조작하여 지면으로 향했다.
모래 먼지의 바람을 걷어내자, 확인한 지면의 상황은 가관이었다.
사방에 튄 검붉은 고르곤의 피들.
수 천 마리 뱀들의 사체.
그 중심에 비늘이 벗겨지고 여기저기가 찢겨져나간 고르곤의 사체.
그리고 가장 가관이었던 것은 그 고르곤을 관통한 브류나크가 바닥에 충돌하면서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다.
“…….”
크레이터 속의 중심에 널브러져 있는 고르곤의 사체를 확인한 일리아나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짜증나….”
“…어?”
“그 건방진 창이 할 수 있는 걸, 나는 못했다는 게 짜증나.”
“…….”
일리아나의 짜증의 원인을 알게된 은현은 할 말을 잃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브류나크에 신력을 부여하고, 극한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은현의 역량이었지만, 건방진 말을 늘어놓았던 브류나크가 자신이 마무리하지 못했던 고르곤을 끝장을 냈다는 사실이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죄, 죄송….]
브류나크는 부활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자신의 창생이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서 일리아나에게 빌어, 목숨을 구걸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