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88화 (725/730)

〈 388화 〉 388. 고대 마수(3)

* * *

“저건….”

바닥에서 생성된 검은 구멍의 아공간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거구의 개체를, 엘프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올려다 보았다.

“…골렘?”

하지만 일반적인 자재로 제작된 골렘이 아닌, 철로 무장되고 마력을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강철의 골렘.

그 파란색 색상을 베이스로 디자인된 외관 또한 매우 특이했다.

그리고 파란색 골렘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노란색의 골렘과 두 골렘의 주위를 둘러싸고 진형을 갖추기 시작하는 수십 개체의 인형들은 엘프들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시작해.”

“명령을 수락합니다.”

일리아나가 설치한 장벽을 넘어서 평원으로 진입한 인형과 골렘들은 일제히 고대 마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키아아아악!

자신들에게 돌격해오는 인형의 존재를 발견한 마수들이 다시 한번 포효를 내지른다.

평원의 땅을 비롯해 주위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히드라의 체액과 독기가 가득한 전장임에도, 인형과 골렘은 주저 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인형들과 골렘의 소체는 모두 오리하르콘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강력한 산성을 가진 히드라의 독성에도 굳건히 버티는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개체의 인형들과 두 골렘의 조종을 실시간으로 조종하고 있던 에밀리아는 옵티머스가 장비하고 있던 무장을 꺼내도록 조작했다.

허리춤에 장착되어 있던 거대한 총을 꺼내들고 곧바로 히드라의 머리 하나를 겨누어 조준점을 맞췄다.

[오토매틱 골렘 무장]

[캐논 블래스터]

콰아앙!

단단하게 지반을 밟으며 하체를 지탱하였음에도 거대한 강철의 골렘의 몸체가 뒤로 살짝 밀려났을 정도의 엄청난 반동.

캐논 블래스터에서 발사된 거대한 탄환이 히드라의 또 다른 머리 하나에 직격하여 폭발했다.

키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몸이 뒤로 쓰러지기 시작하여, 히드라가 보인 아주 작은 빈틈을 에밀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두 번째 탄환을 장전하여 다음의 공격을 준비시키는 동안, 인형과 범블비는 은현과 옵티머스에 의해 머리가 두 구나 터져나가 주춤한 히드라에 근접했다.

히드라의 입에서 분출되는 강한 독성의 체액도 문제지만, 히드라의 가장 성가신 점은 데미지를 입히면 입힐수록 분출하는 독성의 강도가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히드라의 피는 지금처럼 그저 지면에 닿기만 해도, 지면 자체를 녹여버릴 정도로 위협적이다.

인간이나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나 다름없지만, 신철(??)이라고 불리는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된 인형들과 골렘들은 히드라의 독성에도 저항할 수 있는 뛰어난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의 히드라들을 상대하는 것에는 최적의 상대.

고대의 마수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대등한 싸움까지 이끌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10분은커녕 아예 맡겨놓아도 될 것 같은데?”

히드라의 머리 하나를 또 터뜨리고 전신에 칼과 도끼, 창 등 각종 무기를 박아넣으며 히드라를 철저히 유린하고 있는 광경에 일리아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전 페르닌의 마약 사건 때, 사냥개와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에밀리아가 인형 부대의 전력 강화를 강하게 주장해온 이후로, 얼마나 많은 인형의 개량과 전술의 연구를 해왔는지 드러나는 광경.

어째서 에밀리아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스스로 허들을 높여왔는지 알 수 있을 만한 광경이다.

“그래도 저걸로는 부족해.”

히드라와 에밀리아의 오토매틱 부대는 언뜻 보기에는 에밀리아 쪽이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에밀리아 쪽에는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하다.

“저거 머리 아홉 개를 동시에 정리하지 못하면 못 죽이거든.”

히드라의 독성만큼 성가신 점이, 바로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능력이다.

아무리 굳건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인형과 골렘들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생채기를 만드는 정도의 데미지만으로는 히드라를 끝장낼 수 없다.

그렇기에 은현은 에밀리아에게 ‘히드라를 처리해라.’라는 명령이 아닌 ‘히드라를 상대로 일정 시간 이상을 버텨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자, 그럼….”

각자의 무장을 꺼내어 히드라와 교전을 벌이기 시작한 에밀리아의 부대에서 시선을 뗀 은현은 시선을 옆으로 옮겨 다른 마수의 모습을 살폈다.

그중 수천 수만마리의 뱀들이 머리카락처럼 꿈틀거리는 흉악한 얼굴을 가진 마수.

고르곤의 붉은 두 눈에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오염된 마나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일리아나.”

“…그래.”

­그 오염된 마나를 섭취한 고대 마수들은 일반적인 마수들과는 달리 각각의 특별한 고유 능력도 존재해.

덩치와 힘뿐만이 아니라, 그 능력에 대한 대응책도 생각을 해두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

­내가 아는 고대 마수의 종류는 모두 합해서 17종류야.

하지만 그 고대 마수들 중에서 어떤 마수가 현재 세계수를 향해서 접근을 해오는지는 은현도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은현이 모르는 새로운 종류의 마수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끔찍한 변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마수들에 대한 대응과 공략 방법을 모조리 마련해둘 거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대 마수의 특징과 생김새, 그리고 고유 능력까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상대하기 위한 방법을 전략적으로 짜내어 매뉴얼을 만들었다.

뱀 머리카락과 흉측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마수의 두 눈에서 오염된 마나가 응집되어, 붉은색의 눈 위에 마법진이 형성되는 것은, 은현이 설명해주었던 고르곤의 고유 능력이 발동되기 전의 전조.

키아아악!

[고르곤 고유능력]

[석화의 마안(??)]

포효와 함께 두 눈의 앞에 형성된 마법진에서 쏘아진 검붉은 색의 광선이 일리아나의 마법 장벽을 덮쳤다.

[여섯자릿수 상위 마법]

[리플렉트 배리어]

콰아앙!

마안의 광선과 배리어의 충돌로 대지가 뒤흔들리고 공기가 떨린다.

“…쯧!”

배리어를 분쇄시킬 기세로 달려드는 강렬한 충격에 자연스레 일리아나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깨지려고 금이 가기 시작하는 배리어에 마력을 불어넣어 수복하고, 악착같이 광선의 파괴력을 상쇄시킨다.

보통의 다른 마법사들이라면 이미 진즉에 강력한 마력의 광선에 배리어가 깨져버렸겠지만, 일리아나는 그것을 버텨냈다.

히드라의 체액과 독기를 원천에 차단하는 장벽을 포함해서, 전혀 다른 종류의 상위 자릿수 방어 마법을 두 개씩이나 유지시키는 더블캐스팅의 능력.

반신(半?)의 권속으로서 신력의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압도적인 마력의 상승량과 함께 크게 향상된 연산 능력을 보유하게 된 일리아나는 이미 대륙에서 10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장 강한 고위 자릿수의 마법사의 경지를 초월했다.

그것은 이미 은현과의 수명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월자의 반열을 넘볼 수 있을 정도.

콰앙!

마침내 일리아나의 배리어에 의해 튕겨나간, 석화 광선이 허공에서 분해되며 평원으로 흩뿌려졌다.

평원 바닥의 곳곳이 석화가 진행되는 광경을 본 엘프들은 얼굴을 굳혔다.

만약 일리아나가 석화 광선을 반사시켜주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물론 숲 전체가 거대한 돌덩이로 전락 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

한명의 개인이 고대 마수의 압도적인 힘을 막아낸 상황에 경악한 것은 비단 엘프들뿐만이 아니다.

[…미친.]

브류나크는 떨리는 음성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너 나중에 일리아나한테 사과해야 할 거다.”

[그렇…겠네.]

한 번만 더 까불면 당장에라도 브류나크의 몸을 반으로 쪼개버리겠다는 일리아나의 위협은 거짓이 아니었다.

마녀는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의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저 인간의 틀 속에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마법사라고 얕보았던 결과가 이거다.

은현의 중재가 없었다면 기껏 부활한 자신의 몸은 부활하자마자 다시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와 씨. 나한테 육체라는 게 있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어서 사죄했을 거야.]

그만큼 자신이 했던 비하 발언에 대해 일리아나가 보였던 태도는 진심으로 위협적이었다.

신창이라고 불렸던 자신이 오싹함을 느꼈을 정도로.

[다시는 깝치지 말아야지.]

“그래.”

은현은 뒤를 돌아 멍한 표정을 짓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그 엘프들을 대표해서 선봉에 서있는 레지나와 시선이 마주쳤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자, 레지나.”

“…네. 선생님.”

“중앙의 외눈박이 거인을 맡아.”

“선생님…께서는요?”

“양쪽의 뱀들을 처리할게.”

키클롭스는 은현에 알고 있는 고대 마수중에서 유일하게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특수한 개체다.

그 대신 압도적으로 강력한 근력과 단단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공격으로 키클롭스를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 있는 것은 물리적인 공격이 주인 인간들이 아니다.

정령술을 메인으로 세계수의 축복을 받는 숲의 종족들.

오히려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독성으로 주위를 오염시키고, 석화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등의 위협적인 광역 공격기를 가지고 있는 고르곤과 히드라가 키클롭스보다 더욱 상성이 좋지 않다.

“판은 만들어 줬어.”

석화와 독성으로 인해 숲이 훼손될 위험은 일리아나가 친 거대한 장벽으로 인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리고 엘프들의 목에 걸려 있는 팬던트들은 모두 에밀리아를 데려오면서 급하게 공수해온 정화의 기도가 담긴 신성의 아티팩트들.

아니에스와 엘레노아의 신성력이 깃들어 있으며 히드라의 독성을 일부 막아주는 효과가 존재한다.

‘아니에스나 엘레노아를 데려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만 해줘도 충분해.’

“너희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적어도 숲의 종족으로서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는 줄게.”

현재 엘프들이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자신들의 죽음에서도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다.

삶의 터전과 동족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불태워 싸웠음에도 끝에는 모든 것이 파멸한다면 자신의 희생은 그저 아무런 가치도 남지 않은 개죽음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그 길은 은현에 의해 조금씩 활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레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현의 말을 받아들이고는 결심을 굳힌 얼굴을 했다.

“…모든 엘프들은 들으세요.”

몸을 돌려 자신의 뒤에 있던 엘븐 가드의 엘프 전병력들이 자신들의 여왕인 레지나를 응시했다.

“우리의 은인께서는 우리가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저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를 쥔 손을 떠는 것밖에 하지 못하나요?”

“아닙니다!”

몇몇 엘프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크게 외쳤다.

“그렇다면 지금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숲을 위해! 엘프를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령 자연으로 돌아가는 결말이라고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했던 엘프들의 두 눈에는 점차 희망이 피어났다.

독기와 석화로 숲이 파멸하고 자신들에게 은혜를 내려주는 신목, 세계수를 빼앗기는 최악의 결말을 상상했지만, 그 절망 속에서 보이기 시작한 희망에 용기를 얻기 시작한다.

“모든 엘프들에게 명합니다! 숲을 지키기 위해, 종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적을 물리치세요!”

“여왕의 명을 받듭니다!”

레지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천의 엘프들이 일제히 자신의 역량에서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정령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하급 정령술]

[하위계 정령소환]

바람을 타고 불어와 미약한 선풍.

허공에 떠오른 수십개의 불씨들.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닥의 돌무더기와 진흙들.

수증기가 응집되어 허공에 떠 있는 물방울.

엘프들의 부름에 소환된 작은 정령들이다.

[중급 정령술]

[중위계 정령소환]

그리고 더 상위의 개체로 보이는 듯 네 가지 원소의 색깔로 형성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정령들까지.

수천의 정령들이 원을 그리며 허공을 날고 있는 장관 속에서 막대한 마력이 응집되어, 레지나 또한 자신의 정령술을 발동시켰다.

[엘븐가드 정령술]

[요정의 개화]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의 요정 수십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대량의 농밀한 마력이 흩뿌려지고 엘프들의 몸에 흡수가 되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마력을 축복의 형태로 흩뿌려 범위의 내부에 있는 모든 엘프들의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광역 버프.

엘프들에게 신체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축복을 걸어준 레지나는 이어서 자신과 계약을 한 정령을 소환했다.

[상급 정령술]

[상위계 정령소환]

세계수의 녹색 마력이 응집되면서 함께 모여드는 선풍은 이내 아름다운 여성의 형태를 갖춘 상위계의 정령으로 변했다.

“……?”

은현은 순간 행동을 멈추어, 레지나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정령의 외관이 너무나도 익숙한 외관이었기 때문이다.

3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한 여성 엘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외모.

“설마….”

이것만큼은 은현 또한 파악하지 못했고,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기에 드러나는 당황.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현은 조심스레 과거의 인연이 있었던 여성 엘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실비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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