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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387화 (724/730)

〈 387화 〉 387. 고대 마수(2)

* * *

소환한 창, 브류나크의 창대를 꽉 쥐고, 은현은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쿵! 쿵!

대지가 뒤흔들리며 거대한 체구로 숲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마수의 위용에도, 은현의 자세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바닥에 뿌리를 내리듯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 하체.

허리를 옆으로 비틀어 브류나크를 쥐고 있는 팔을 뒤로 쭉 뻗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포탄을 쏘아 올리는 대포를 연상시켰다.

[…엉?]

뒤늦게 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어리둥절한 목소리.

목소리 자체는 굉장히 어린 소년의 음성이었다.

팽팽한 고무줄처럼 모든 탄력과 힘을 한쪽 팔에 집중시키고 있는 은현의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팔과 손을 통해서 브류나크에 응집되기 시작한 푸른색의 마력들.

공격의 태세를 갖춰가는 은현은 눈앞의 엘프들과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재앙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그런데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시간이 없네. 눈앞에 저것들 보이지?”

[뭐…?]

브류나크는 이윽고 뒤늦게 주위를 인식하고 경악했다.

[저, 저건 히드라에…고르곤?!]

게다가 중앙의 키클롭스까지, 상황의 파악이 되지 않아 당황스러운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아니. 대체 뭔일이야!? 나는 왜 소멸하지 않고 이곳에 있는 거고!?]

“시간이 없다니까. 바로 던진다.”

[자, 잠깐…!]

다급한 브류나크의 외침에도, 은현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단단하게 지반을 밟고 있는 하체를 시작으로, 비틀었던 허리를 반대로 비틀고, 전신의 근육을 집중시켜 모든 힘을 완전히 담아낸 완벽한 동작.

친구이자, 스승이며, 파트너였던 브류나크가 은현에게 수백 수천을 반복시켜 가르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투창이다.

[브류나크 창술]

[나선 던지기]

수백 년 만에 다시 재회한 친구와 회포를 풀 여유도 없이, 브류나크는 은현의 투창에 의해, 직선상으로 하늘을 날아 맹렬히 고대 마수를 향해 뻗어 나갔다.

파앙!

[이런 개자식아아아!]

공기가 찢겨나가고, 터져나가며 허공에 그어지는 작은 일섬 속에서, 브류나크의 처절한 절규가 메아리처럼 남아 울려 퍼진다.

거구의 몸집을 가지고 있는 마수들, 그리고 은현과 엘프들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숲의 입구 사이 거리는 아무리 족히 잡아도 약 2km.

하지만 그 2km를 단숨에 관통하며 히드라의 아홉 개의 머리 중 하나를 관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브류나크가 ‘신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하계에서 탄생 된 무기임에도, 하계의 섭리를 비트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 번 정한 타겟을 정확히 명중시킨다는 결과를 확정 지을 수가 있는 능력.

브류나크의 투창에는 ‘거리의 제약’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창에 담겨 있는 마력을 비롯한 힘, 속도 등의 모든 물리력은 그대로 보존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겟을 정확히 꿰뚫어버린다는 ‘결과를 확정’ 짓는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퍼어엉!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풍선이 터지듯 공기의 폭음이 퍼져나갔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반신(半?)으로서의 위용을 선보이는 은현의 모습을 뒤로하고, 일리아나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은현이 소환한 창 때문이었다.

“…창이 말을 하네.”

인간처럼 자유의사를 가지며 말을 걸어오는 무기라니.

일리아나는 듣도보도 못한 현상이었다.

검이나 창 같은 물리적인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 마법사지만, 브류나크라는 창이 자유의사를 가지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히 마법적인 현상.

마법사로서 흥미를 품었다기보다, 어이가 없다는 감상이 옳다.

“세상에는 참 별개 많아.”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일리아나는 그 어이없는 감정을 집어 넣어두고 전방을 주시했다.

히드라의 머릿속에 있었던 마수의 체액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보라색의 연기가 바람을 타고 주위로 퍼져나간다.

사람과 대지는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썩게 만드는, 하나 같이 독성이 강한 마수의 체액들이 보라색의 연기를 일으키며 빠르게 평원을 뒤덮기 시작했다.

연기가 확산하면서 숲을 오염시키는 것은 시간문제.

하지만 자폭이나 다름없는 이 방법을 은현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용했을 리가 없다.

“일리아나! 시작해!”

“알았어!”

은현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일리아나는 메모라이징으로 미리 준비해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다섯자릿수 상위 마법]

[어드밴스드 프로텍션]

선보이는 마법의 수준은 상위 자릿수의 상위 마법사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장벽이지만.

일리아나가 발동시킨 장벽은 일반적인 수준을 초월한다.

우우웅

숲 전체를 둘러싼 전방의 마법 장벽은 히드라의 머리가 터져버리면서 흩뿌려진 체액과 독기가 숲으로 침범해오는 것을 일제히 차단했다.

그 장벽의 성능 또한 놀라운 것이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전방의 숲 전체를 뒤덮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여덟 자릿수라는 고위 마법사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반신(半?)의 권속이 되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연산 능력을 얻게 된 일리아나이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는 경지.

“이런 단단한 장벽을 이렇게 광활한 범위로….”

마수들이 뿜어내는 기운과 크기에 압도되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엘프들이 또 한 번 경악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악!

머리 하나가 터져나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격통을 느낀 히드라의 포효가 평원의 대지를 진동시켰다.

공기를 타고 장벽을 때리는 소리라는 폭력의 여파에 의해, 일리아나가 친 장벽이 부르르 떨렸다.

소리만으로도 오싹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처음이었는지, 젊은 엘프들의 어깨들이 들썩였다.

“이것이….”

“고대 마수….”

자신들의 윗세대들은 약 300년 전에 어떻게 이 고대 마수를 죽일 수가 있었을까.

젊은 엘프들은 자신들을 뒤로하고, 앞장을 서서 각자의 무기를 쥐고 대기하고 있는 윗세대의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엘프들은 하나 같이 은현을 바라보며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수를 복원시키고 모든 엘프를 구한 은인들인 인간 부부다.

이윽고 은현은 많은 엘프의 시선을 받으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아까 전 히드라의 머리를 터뜨렸던 창이 모습을 드러내며 은현의 손에 쥐어졌다.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마수의 머리를 터뜨려버린 은현의 능력을 본 엘프들의 마음속에는 감탄과 존경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며 그 마음을 표현하려 했을 때.

[야! 설명해!]

은현의 손에서 좌우로 들썩이며 노성을 터뜨리고 있는 창의 모습은 매우 기이한 광경이었다.

말을 하는 창이라니.

지금이 매우 매우 급한 상황임에도 사고가 정지되고 머릿속을 강하게 두들겨 맞은듯한 충격적인 광경.

“설명할 시간 없다고 했잖아. 나중에 설명해줄게.”

“신기한 창이네. 너랑도 친해 보이고.”

[뭐야. 이 여자는?]

자연스레 은현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리아나의 말에 브류나크의 음성은 시큰둥한 듯 날이 서 있었다.

“내 아내야.”

[뭐? 이 젖통만 큰 여자가?]

“…뭐?”

신랄한 브류나크의 성희롱에 일리아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리아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대단했다.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거론하면 불같이 화를 내기는 하지만, 여덟 자릿수의 고위 마법사라는 칭호와 자신의 마법적인 능력, 게다가 외모나 몸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브류나크의 막말은 일리아나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네 취향이 이런 여자였었냐? 나였으면 좀 더 아담하고 귀엽게 애교를 부릴 줄 아는 여자가….]

“…이거 부러뜨려도 돼?”

[…….]

일리아나는 밀도 높은 막대한 마력의 방출과 함께 씨익 미소를 지으며 은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당장 그 창을 반으로 쪼개어 버릴 테니 내놓으라는 뜻.

근력이 하나도 없는 일리아나가 물리적으로 브류나크를 부러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여덟 자릿수 대마법사의 섬뜩한 미소는 진심이다.

“브류나크.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지?”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를 모르고 등신 같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저를 용서해주신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평생을 바쳐 갚도록 이 녀석을 설득시켜서….]

“아, 닥쳐.”

[넵.]

재잘재잘 말을 늘어놓는 브류나크의 사죄에도 일리아나는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생각 좀 하고 말하라니까.”

피식 웃으며 창대를 손날로 툭툭 건드리는 은현의 행동에 브류나크는 말했다.

[너 조금은 변했다?]

“변했다고?”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웃지 않았잖아.]

“그런가?”

스스로의 변화를 자각하지 못한 은현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면상에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네.]

자신이 소멸하기 전, 이전의 은현은 이런 식으로 살짝 풀어진 기분으로 가벼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자신이 소멸하고 은현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며 주위를 인식했다.

광활한 평원과 숲.

그리고 은현과 일리아나의 뒤에 있는 수천 명의 숲의 종족들.

브류나크는 그제야 현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장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 지구가 아니잖아?]

“지구는 멸망했어.”

[…그러냐. 그러면 아스타로트는?]

“소멸시켰지.”

브류나크는 이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소멸시켰던 최상급 악마의 최후를 들으며 담담히 답했다.

[그러면 됐어.]

자신은 무기이며, 주인의 손에 의해 적을 없애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을 브류나크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무기는 언젠가는 쓰임새를 다하면 부서지기 마련이며, 무기로서 자신의 소멸에도 크게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부활하여 무기의 역할을 다시 수행하게 된 것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며, 현재 상황은 브류나크에게 있어 몹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너도 참 어지간히 미X짓을 여러 번 벌이면서 살아온 것 같네.]

브류나크는 기가 질린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은현의 몸에서 느껴지는 투기에는 마력뿐만이 아니라, 한층 더 상위 차원의 정갈하고 밀도 높은 신력의 기운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에게는 소멸한 이후 부활하게 된 시점이기 때문에 매우 짧은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은현에게는 매우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소멸한 자신을 다시 부활시킨 것부터가 정상적인 수단을 썼을 리가 없다고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 네 말대로 일단은 저것들의 처리에 집중하자.]

갑작스레 부활하면서 혼란으로 가득했던 브류나크는 조금씩 냉정함을 되찾으며 주변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고마워.”

우선순위를 납득하고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준 파트너의 언행에 은현은 순순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윽고 은현은 일리아나와 함께 전방을 주시했다.

머리 하나가 터져버린 히드라와 키클롭스, 고르곤이 일제히 숲을 향해 전진해오면서 엘프 방어선과 고대 마수들 사이의 거리는 어느새 1.5km까지 좁혀졌다.

“에밀리아.”

“네.”

엘프들을 이끌고 숲을 나와 방어선을 구축했을 당시.

은현은 일리아나에게 텔레포트로 집에 귀환하여 에밀리아를 데려올 것을 부탁했다.

그 결과, 이 방어선에서 일리아나와 함께 옆에 있던 에밀리아는 은현의 호령에 담담히 답했다.

“제작한 골렘들의 성과를 체크해볼 좋은 기회야. 미션을 줄게. 오른쪽의 저 머리가 여럿 달린 뱀.”

숲을 향해 접근해오는 거대한 개체의 고대 마수 셋 중 오른쪽에 있는 히드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3분을 막아.”

“계산상, 10분도 가능합니다.”

자신있게 스스로 허들을 높여오는 인형 소녀의 발언에 은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하고싶은 대로 해봐.”

“명령을 수락합니다.”

마스터의 명령을 수용한 에밀리아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도미너스 부대.”

에밀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마법진은 이내 바닥에 거대한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검은색의 구멍들을 생성해냈고.

바닥의 검은 구멍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수십 개체의 인형들.

에밀리아의 휘하에 있는 도미너스 인형 부대들이다.

이윽고 수십 개의 검은색 구멍들이 모여들어 응집되면서 소수의 거대한 구멍들이 생겨났다.

“소환. 옵티머스. 범블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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