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84화 (721/730)

〈 384화 〉 384. 세계수의 위협(1)

* * *

“무슨 일이야?”

[…세계수가 위험을 감지했어요.]

“세계수가?”

엘프의 숲과 엘프라는 종족에 위대한 번영과 축복을 내려주는 세계수의 존재를 언급하자, 은현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 세계수가 직접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위험’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느 수준인 걸까.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현재로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은현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두 아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엘레노아.”

“네.”

“미안하지만, 휴가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어쩔 수 없죠.”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현을 따라 신혼여행차, 한번 엘프의 숲을 방문했었던 전적이 있는 엘레노아는 엘프의 여왕인 레지나가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이해했다.

자신의 휴일과 은현과의 시간은 중요했지만, 무작정 고집을 피울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본래라면 선생님도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계셨을 텐데….]

은현의 말을 들은 수정 구슬 너머의 레지나는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괜찮아. 네가 엘프들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굳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진행하기에는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는 이 식당은 그렇게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내가 다시 연락할게. 30분만 기다려 줄 수 있겠어?”

[물론이죠.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사정을 모두 듣지도 않고 도움을 승낙한 은현의 부탁은 너무 죄송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공존했다.

레지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차후의 연락을 기대한다는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은현이 테이블에서 일어서자, 두 아내들도 이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어…. 혹시 입에 맞지는 않으셨는지…?”

세 사람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식당을 나가려는 행보를 보이자, 급하게 점원이 달려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 영지 안에서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여식인 엘레노아의 얼굴은 꽤 유명인사다.

모르는 사람은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특히나 이 영지 안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영지의 주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엘레노아와 그녀의 남편인 은현이 식사를 모두 마치지 않고 일제히 식당을 나가려고 하는데, 식당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혹시라도 밉보인 부분이 있었던 걸까.

많은 생각이 오갔던 식당 점원의 불안한 얼굴을 보고, 엘레노아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하게 중요한 일이 생겼거든요. 음식은 매우 맛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식당을 운영해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졸지에 식사를 모두 마치지 못하여, 본의 아니게 음식을 남기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사죄와 응원의 말을 남기고, 세 사람은 식당을 나왔다.

곧장 던전 주택으로 들어오자마자, 거실 소파에서 마법 서적을 읽고 있던 일리아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세 사람을 맞이했다.

“꽤 일찍 왔네? 저녁 시간에 맞춰서 온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사정이 생겼거든.”

“…흐응.”

살짝 굳어 있는 은현의 표정을 확인한 일리아나는 눈썹을 치켜뜨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또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엘레노아.”

“네.”

“사당에 가서 미호님께 양해를 구하고 에린을 데려와줘.”

“알겠어요.”

곧바로 사당으로 향하는 엘레노아를 뒤로 하고, 은현은 소파에 앉았다.

“후우….”

“또 무슨 일인데?”

“나도 아직은 잘 몰라.”

아직 레지나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은현도 일리아나에게는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할게.”

고개를 끄덕인 은현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레지나에게서 도움을 요청하는 통신이 들어왔어.”

“엘프 여왕?”

“맞아.”

“흐응…. 또 뭔 일이래? 그 여왕이 너한테 직접 통신을 걸어올 정도면?”

걸어온 엘프가 평범한 엘프도 아닌, 엘프들의 여왕인 만큼, 그녀가 부탁할 일의 성가심 또한 결코 평범치 않으리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받아들일 거지?”

“…그럴 생각이야.”

본래에는 남의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것은 은현의 성격이 아니다.

최근에는 공작 가문이나 리오드의 아르티아 기사단과 함께 이런저런 일들을 암약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오긴 했지만, 은현은 기본적으로 앞에 나서서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신경을 쏟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레지나를 비롯한 엘프들의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은현과 엘프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서, 정치적인 이유나 사람 간의 갈등이 아닌, 정말로 종족의 위협과 관계된 일인 만큼, 레지나의 부탁은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뭐, 그럴 줄 알았어.”

일리아나는 피식 웃으며 은현의 대답을 받아들였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그가 걸어가는 길을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은 일리아나 본인이 원했던 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스스로 망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일리아나는 얼마든지 은현의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 가득했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응. 고마워.”

릴리는 차가 든 주전자와 찻잔을 가져와, 은현과 일리아나의 앞에 찻잔을 세팅했다.

정성을 다하여 우려낸 맑은 빛깔을 띠는 주홍빛의 액체가 찻잔을 가득 채웠다.

일리아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엘레노아와 에린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저희 왔어요.”

약 10분의 시간이 지나자,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엘레노아와 에린에 이어서 릴리까지 자리에 앉자 은현은 입을 열었다.

“가족회의. 시작하자.”

품에서 수정 구슬을 꺼내어 통신을 연결했다.

일자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의 중앙에 배치시킨 수정 구슬의 빛이 위로 뜨기 시작하고, 반투명한 입자 상태의 거대한 구체가 형성되어 구체의 내부에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홀로그램의 기술을 마법으로 재현시킨 수정 구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성은 입을 열었다.

[기다렸습니다.]

뾰족하고 기다란 귀를 가지고 금발의 눈부신 외모를 가진 엘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와아….”

엘프 여왕, 레지나의 모습을 처음 본 에린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순수한 감탄을 표시했다.

그것은 에린과 마찬가지로 릴리 또한 마찬가지.

레지나는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릴리와 에린의 모습을 인식하고 미소지으며 말을 걸었다.

[두 분은 처음 뵙는군요.]

“아, 네, 네. 저, 저는…에린이라고 합니다!”

에린은 어째서인지 마음 속은 긴장이 가득해서 말이 떨리는 것은 물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수정 구슬을 통해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임에도, 떨리는 것은 어째서 일까.

‘굉장히 예쁜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라고 칭해도 될까?’

수정 구슬 너머의 여성은 일리아나나 엘레노아에게 말로만 들었던 엘프라는 한 종족의 여왕.

게다가 더욱 신경이 쓰였던 점은.

‘현이의 제자라고 했었지?’

자신보다도 훨씬 더 이전에 은현의 가르침을 받았던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제자로서, 여성으로서 그것이 매우 신경쓰였던 점이 컸다.

게다가 레지나는 별 볼 일 없는 자신과는 달리, 엘프들의 여왕.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의식하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릴리라고 합니다. 부족한 몸으로 주인님의 시종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릴리는 최대한의 정중함을 담아 고개를 꾸벅 숙임으로써 레지나에게 격식을 차린 깔끔한 인사를 전했다.

[그렇군요.]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마치자 은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레지나.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자. 나에게 요청하고 싶은 도움이 뭐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자, 레지나도 릴리와 에린과 자기소개를 하면서 지었던 미소를 지우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선생님…. 예전…. ‘고대 마수’를 기억하시나요?]

“…알지. 그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강 알겠어.”

은현은 곧장 인상을 찡그렸다.

과거의 안좋은 추억을 떠올린 은현은 레지나가 말한 ‘세계수가 감지한 위험’이 어떤 종류의 위험인지를 짐작해냈다.

“그것들이 다시 넘어오기 시작한 건가.”

[…맞아요.]

은현의 짐작어린 중얼거림을 들은 레지나는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마수? 그게 뭐야? 특별한 마수야?”

대화를 듣던 에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 고대에 존재했던 마수야. 지금 대륙의 던전에서 출몰하는 마수들과는 다르지. 에린의 말대로 특별한 마수라는 표현이 올바를지도 모르겠네.”

“얼마나 강한데?”

“적어도 지금 출몰하는 마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

은현은 에린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던 것을 끝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내들은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그 생각들을 정리하며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일리아나.”

“응.”

“준비하자.”

“그래.”

자세한 설명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짧은 한마디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진 신뢰 관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은현은 이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엘레노아와 릴리는 아르미타스령에 남아.”

“저와 릴리는…따라가면 안 되나요?”

엘레노아가 살짝 아쉬운 마음을 토로해왔지만, 은현은 쓴웃음을 지을 뿐 생각을 굽히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데르킨도 함께 데려갈 생각이니까.”

“아….”

아직 나이가 어린 하프엘프 소녀인 딸과 인간 여성인 아내인 에리스와 앨리스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엘프들의 문제에 데르킨을 데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두 눈을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앨리스의 간호에 최고급 인력인 아니에스가 붙어있다고는 하지만, 엘빈을 대신해서 보육원의 운영과 다양한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엘레노아의 수완이 필요하다.

엘레노아는 은현의 그 의도를 곧바로 파악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마찬가지로 릴리는 엘레노아를 도와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에린.”

“으, 응….”

드디어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자각한 에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은현의 말을 기다렸다.

“미호님에게 배우고 있는 요술. 아직 미숙하지?”

“…응.”

에린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당에서 언제나 혼나며 배우고 있는 에린은 자신의 수준이 아직도 미숙하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언제나 도움이 되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만이 앞서며 열심히 수행하고 있지만, 구미호의 요술은 구미호가 천년의 세월 동안 축적시킨 기술의 집합체.

그것을 따라잡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너무 조급해 하지마. 언젠가는 꼭 도달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스스로 마음 속에 생겨나는 답답한 기분은 어떻게 해소되지 않았다.

“다음에는 꼭…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게.”

“그래. 기억해둘게.”

은현은 웃으며 에린의 결의에 화답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