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3화 〉 383. 작위 계승(2)
* * *
알렉스의 가문 승계 소식은 아이샤를 타고, 엘레노아를 통해 은현의 던전 주택 내부로 들어왔다.
“흐응….”
“축하드려야겠네요.”
“와아….”
알렉스의 소식을 접한 아내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아 적당한 추임새를 넣는 일리아나.
보육원의 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관계로 순수히 축하하는 릴리.
새로운 젊은 공작의 탄생과 함께 그것이 자신과 같은 은현의 아내인 엘레노아의 오빠라는 것을 실감하고 감탄하는 에린 등.
“알렉스님께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엘레노아님!”
“응. 고마워. 에린.”
엘레노아는 미소를 지으며 에린의 축하에 화답했지만, 그렇게 밝지만은 못한 애석함이 묻어나오는 미소였다.
“뭔가 고민 있으세요?”
“그냥…. 아버지가 생각나서.”
“공작님이요?”
에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굳이 에린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엘레노아에게 있어 오라비인 알렉스의 작위 승계는 확실히 기쁜 소식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인 아브로스의 마음이 자신감을 잃어 꺾인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선을 옮겨 은현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당신은…처음부터 오라버니에게 작위를 승계시킬 생각을 해두고 계셨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자금을 지원했을 뿐, 최소한의 조건을 정해두면서 정작 모든 선택은 오라버니에게 맡겨두었으니까요.”
은현이 알렉스에게 제공한 것은 사업의 자금과 아이디어뿐이다.
은현이 직접 개발하여 제작한 ‘게이트’와 자동 구동 강철 골렘 ‘옵티머스’의 도움을 받았던 사업도 존재했지만, 기본적으로 제시된 자원과 인재의 활용은 알렉스의 판단과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은현의 도움이 있었으며 비공식적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영주의 대리 업무를 수행하면서 아르미타스령을 짧은 시간 안에 발전시킨 알렉스의 수완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어느 쪽도 상관없었지만…. 적어도 아브로스님은 이미 정치에서 마음을 떠나신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렇기에 자연스레 알렉스가 영주 대행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영지 경영의 수완을 선보이고, 아브로스의 근심을 덜어줄 수 있도록, 알렉스를 적극적으로 밀어준 은현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브로스님이 대외적으로 다시 나서기 시작하고 궁정 귀족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하지만 이건 무엇보다 본인의 마음이 달린 문제니까.”
아브로스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역시 그랬군요….”
엘레노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오라버니를 믿어주셔서.”
“그래.”
엘레노아의 감사를 받아들인 은현은 알렉스가 공작 가문의 가주를 잇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공표할 승계식의 일정을 물었다.
“정식으로 승계식을 진행하는 건 언제야?”
“아마도…3개월 뒤가 될 것 같아요.”
정식으로 작위의 승계를 발표하고, 식의 일정을 비롯해 다양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등의 많은 절차와 준비가 필요한 행사다.
“지금 오라버니는…굉장히 바쁘시거든요.”
현재의 영지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알렉스와 공작 가문의 사람들은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큰 폭을 그리며 성장을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지만, 무작정 장점들로 가득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많아진 영민들의 인구수나, 혼잡해진 내부의 시설 정비, 관리해야하는 영민들의 증가로 혼란해진 치안 등.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매우 많이 존재했다.
엘레노아도 당연히 은현과 알렉스의 사이를 잇는 중요한 중개역, 영지 내부에 새로 건축되는 베스타 신전의 건설 등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철호단 사건의 처리로 치안의 확립과 신전의 완공으로 인해 엘레노아는 본인의 역할을 모두 마치고 일상의 업무로 돌아왔다.
“엘레노아도 고생했어. 그동안 신전의 공사나 여러 가지 일로 바빴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후후, 오라버니도 그 말씀을 하셨어요.”
바쁜 와중에도, 알렉스는 엘레노아가 맡아야 할 영역의 분야 이외에는 많은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은현과 연계된 사업적 업무들이나, 신전의 일들.
결혼 생활로 그럭저럭 즐거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배려였다.
◆ ◆ ◆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평화로운 어느 날의 오후.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양옆에 동행하고 있는 여성 중 왼쪽에 있는 엘레노아를 보고는 말했다.
“너도 참 특이하구나.”
“그런가요?”
“그렇지. 굳이 따라와서 상황을 보지 않아도 되는데, 그것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끽하는 휴일인데.”
“저에게는 당신이 곁에 있으니 휴식 중 하나에요. 게다가…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저도 신경이 쓰이고요.”
엘레노아가 미소지으며 언급한 ‘그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전에 린데르 왕국의 사비로스 공작령에서 블랙마켓에 잠입하여 구매했던 노예들을 말한 것이었다.
릴리의 부탁으로 구매된 당시의 노예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성인과 미성년자의 두 분류로 나뉘어졌다.
미성년자의 아이들은 영지 안에서 은현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보육원에 맡겨졌고, 성인의 남녀들은 모두 엘레노아의 알선 하에 적절한 노동이 필요한 장소에 배치되었다.
농사나 토목 공사, 상점가의 운영, 잡일 등에 다양한 장소에 적절한 노동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던 것.
성인 남녀의 노예들은 사유재산의 인정과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자신들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로 받은 급여의 3%를 은현에게 환원하는 형태의 계약을 맺었다.
휴일을 만끽하던 엘레노아는 성인 남녀 노예들의 이후 상황을 시찰하기 위한 은현의 옆을 따라온 것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엘레노아님.”
“아니야. 나도 이번 일을 하면서 굉장히 기분 좋았어.”
두 사람의 시중을 들면서, 동시에 구매했던 노예들을 책임지겠다고 맹세했던 릴리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엘레노아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릴리는 자신과 비슷한 경위로 브로디아 마피아에 팔려와서 노예의 신분이 되었던 이들의 모습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처지를 떠올려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있었다.
그들의 사정을 듣고 불쌍하게 여겨 그들을 돕고 싶었던 엘레노아의 조력은 릴리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지원.
릴리가 엘레노아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아내들의 대화를 들으며, 은현은 많은 가게가 들어선 상점가의 한 가게의 앞에 발을 멈췄다.
곧바로 문을 열고 상점 내부로 들어갔다
띠링
문 위에 설치된 종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손님의 방문을 알렸지만, 은현와 아내들을 맞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종소리에 반응하는 목소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사, 사장님! 손님 오신 것 같은데요!?”
“아오씨! 누구야! 한창 바빠죽겠는데!”
다급함이 묻어나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와 씩씩거리면서 짜증이 묻어나오는 남성의 목소리.
안쪽에서 카운터로 나와 가게를 방문한 세 사람을 맞이한 것은 남성 쪽이었다.
“어서옵…. 나, 나리!?”
바빠죽겠는데 손님은 받아야겠고, 마음 속에 조급함이 남아있던 남성은 마지못해 카운터로 나와 들어온 손님을 맞이했고,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오랜만이야.”
“아, 예. 예…!”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하는 반응을 본 남성은 급하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의 정체는 이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이자, 모험가를 겸하고 있는 지스다.
과거 은현에게 싸구려 포션을 질 좋은 최고급 자양강장제라고 속이며 사기를 치려던 전적이 있었지만.
도둑이 제 발을 저려 곧바로 은현을 찾아와 사죄를 했고, 그 사죄를 계기로 은현의 밑에서 이렇게 가게를 운영하면서 모험가 일을 하고 있다.
“바빴나 보네.”
“아…. 최, 최근에 대량으로 들어온 마수의 소재들이 있어서 그거에 대한 손질을 조금….”
이 상점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은현이 제조한 포션들을 비롯해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포션의 조제에 들어가는 소재들뿐만이 아니라, 대장간에 무기의 제작을 맡기기 위한 소재의 가공도 겸하고 있기 때문인지 지스는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 나리께서 이곳엔 어쩐 일로…?”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는 싹싹 비비며 애써 웃음을 만들어낸 지스의 긴장한 태도를 보고 있자니, 은현의 얼굴에 자연스레 웃음이 피식 나왔다.
“뭐, 딱히 용무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겸사겸사.”
“겸사겸사라굽쇼?”
엘레노아는 시선을 옮겨 긴장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지스의 뒤, 움찔 몸을 떨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자신을 구입했던 이들과 자신을 이곳에 알선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본 노예 여성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세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지내면서 불편한 건 없을까?”
“아, 아뇨!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엘레노아가 가볍게 물어본 것이었는데, 노예 여성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노예로서는 절대 생각해 볼 수 없는, 자유가 보장된 생활을 자신의 손에 쥐여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라는 것을 아주 잘 자각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사람이 무보수로 일을 시키거나, 부당한 일을 지시하는 등, 갑질을 해오면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청해.”
“제,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디에 도움을 청하라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도 있지 않았지만, 지스는 경기를 일으키며 반응했다.
가뜩이나 은현에 대한 눈치를 보면서, 밉보일 부분은 시작도 하지 않는 자신의 새가슴 속에 그런 배짱이 있을 리가 없다.
“뭐, 얘기가 그렇다고. 그것보다….”
엘레노아에 이어, 은현은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지스에게 건넸다.
“받아.”
“이건…?”
조심스레 끈을 풀어, 주머니 속에 든 수십 닢의 금화들을 확인한 지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나, 나리? 이건…?”
“이번에 엘레노아에게서 들었어. 영지 내부에서 뉴비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면서 부당한 이익을 취했던 이들에 대해 제보를 했다면서?”
“예, 예…. 그랬죠.”
지스는 순간적으로 흘끗 시선을 옆으로 옮겨 엘레노아를 바라보았다.
허위매물을 이용한 사기꾼에 대해 제보하면서, 어떻게든 은현에게 점수를 따고 싶어서 엘레노아에게 아부를 했던 것이 통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보너스야.”
“지, 진짜입니까?”
“그래.”
“하, 하하! 감사합니다! 나리!”
본래 돈을 굉장히 좋아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던 지스는 은현이 건넨 다량의 금화에 매우 솔직한 반응을 드러냈다.
본래 생각지도 않았던 성과급을 받자마자 기분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 치솟아오른다.
‘잠깐, 이 돈이라면….’
이 금액이라면 아껴만 써도 근 6개월 정도는 거뜬히 생활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지만, 지스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상으로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그럼 수고해.”
“수고하세요.”
“예! 살펴 가십쇼! 나리!”
손을 흔들며 세 사람이 가게를 나가자, 지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가게를 나온 은현은 엘레노아와 릴리를 데리고 직업을 알선된 노예들이 있는 곳을 곳곳이 둘러보며 노예들의 상태를 살폈다.
많은 곳을 둘러보고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중, 은현의 품속에 소지하고 있던 수정 구슬이 진동했다.
우우웅
“응?”
가슴의 진동을 느끼고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은현은 양손에 쥐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수정 구슬을 꺼냈다.
통신이 연결되어 수정 구슬 속에서 나타난 얼굴을 보고, 은현은 얼굴을 굳혔다.
“…레지나?”
엘프의 숲을 떠나면서 무슨 일이 있거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하라고 선물로 주었던 수정 구슬로, 연락을 취해온 엘프 여왕의 얼굴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래.”
이내 은현은 레지나가 직접 통신을 걸어왔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도대체 무엇일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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