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 382. 작위 계승(1)
* * *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쉴 새 없이 깃펜을 놀리며 서류작업을 이행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선배, 조금은 쉬시는 게 어때요?”
“…….”
“벌써 9시간째에요. 조금은 휴식을….”
“이것만 마무리하고.”
그 이야기만을 벌써 3번째 들은 아이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최근부터 급격하게 많아진 업무량으로 인해 아르미타스령의 영주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알렉스는 하루하루를 바쁜 시간으로 보내고 있었다.
“후우….”
끝에는 아이샤의 설득이 먹혀들었는지 알렉스는 마무리하던 서류의 사인을 마치자 깃펜을 내려놓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피로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알렉스는 찡그린 자신의 미간을 억지로 피며 숨을 골랐다.
“식사를 준비할까요?”
“그래. 부탁할게.”
저녁을 먹기엔 매우 늦은 시간이었지만, 최근에는 업무의 일 때문에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지 못했던 날도 허다했다.
취침의 시간도 미루면서 영지의 운영에 몰두하고 있는 알렉스의 열의를 아이샤는 말리지 못했다.
정말로 아이샤의 말을 들으면서 쉬는 시간을 조절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나마 균형이 맞는 생활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네.”
곧바로 물어오는 아이샤의 질문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아이샤는 집무실을 나가 소지하고 있던 종을 울려 하인을 불렀다.
알렉스의 식사 준비를 지시하고 곧바로 집무실로 돌아왔다.
“30분 정도 뒤에 내려가시면 돼요.”
“그래.”
의자에 기대어 두 눈을 감으며 약간이라도 피로를 풀고 있던 알렉스는 슬며시 눈을 뜨며 아이샤에게 물었다.
“이번 달 영민들의 유입은 어떻지?”
“이번 달도 지난달보다 5% 늘었어요.”
“…그렇군.”
알렉스는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달 비슷한 비율로 아르미타스령으로 이주해오는 영민들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영지는 한정되어있고, 내부에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숫자 또한 정해져 있다.
알렉스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원인은 대량으로 유입된 그 영민들 때문이다.
마수 범람 사태 때, 은현이 제공한 자금의 지원 아래 등급별로 다양한 모험가들을 스카우트 해와 영지에 체류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 시작이었다.
다수의 모험가가 아르미타스령에 체류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신규 모험가인 뉴비들을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복지와 시설들.
그리고 그런 모험가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장비들을 판매하기 위한 상인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실력 있는 모험가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모험가들과 아르미타스 령의 주인인 영주와의 관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일반적이라면 모험가 길드와 모험가의 힘이 강해진다면, 그들만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이권을 추구하는 등,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정 세력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번은 철호단이라는 거대 세력을 형성한 길드가 뉴비들을 속여서 질 나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착취하고 있었던 사건도 존재했다.
아르미타스의 영주가 자신들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함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철호단은 철저하게 응징을 당하면서 아르미타스령 내부의 치안도 꽉 잡아 확립시켰다.
여기에서는 단독으로 움직이며 경계가 허술했던 틈을 타 철호단의 내부를 흔들었던 헤르샤 남매의 공헌도 매우 컸다.
“영지…진짜로 엄청나게 발전했네요.”
“…그렇지.”
다양한 요인으로 영민들의 숫자가 불어남과 동시에, 현재 아르미타스령은 역사상 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맛보고 있었다.
그 호황은 직접 비교해본 적은 없었지만, 틀림없이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인 페르닌의 경기를 가볍게 뛰어넘었다고 알렉스와 아이샤는 공통된 생각을 품었다.
약 2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이러한 영지의 발전을 이뤄낸 업적은 순전히 알렉스와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이 분발했다고 이뤄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었다.
위기를 이겨낸 아르미타스령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녀석이 덕분이지.”
알렉스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은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의 여동생, 엘레노아와 결혼하여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사위가 된 남자.
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나이는 400살 이상의 불로장생의 길을 걷고 있으며 여신에게서 사명을 부여받아 행동하는 남자다.
공작 가문 자체가, 은현에 대한 정보가 과하게 노출되는 것을 자제하고, 정치를 비롯한 대외적인 분야에서 그의 방패막이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하나의 말이다.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까지도 그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은현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그로 인한 결과는 영지의 발전과 왕국 내부에서의 정치적인 입지 등, 다양한 이익을 얻었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은현과 엘레노아의 결혼은 가문에 도움이 되는, 정치적인 이점을 기반으로 맺어지는 정략결혼 같은 귀족의 의무로 맺어진 결혼이 아니다.
순수한 애정을 통해서 맺어진 여동생의 결혼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저…솔직히 그 사람 조금 무서워요.”
아이샤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품에 안고 있는 서류들을 꽉 끌어안았다.
“그 사람…. 아르미타스령이 이렇게 성장할 줄 알고, 왕가 측과 거래를 제안했던 거겠죠?”
“…그렇겠지.”
아이샤가 언급한 거래는 유리아 왕녀의 중개로 은현과 디아네 왕비가 가졌던 거래를 뜻했다.
마수 대범람의 사태로 전선에서 대량의 마수들을 막아낸 여파로 심각한 인명을 비롯한 다양한 피해를 입은 모그라프령에 보내는 지원물자의 절반 이상을 아르미타스령에서 부담하는 대신, 아르미타스령에서 왕가에 보내는 세금의 비율을 깎아주는 거래의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영지가 발전된 지금, 그만큼 막대한 액수의 세금을 왕가에 보내고는 있었지만, 더 큰 비율로 터무니없는 액수를 왕가에 보내게 될 예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은현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진짜 엘레노아랑 맺어져서 다행이에요. 만약 적이었다면 전 진짜로 상상도 하기 싫어요.”
은현에 대해서 여신과 얽힌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샤라도, 은현이라는 존재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왜냐하면, 아이샤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국의 내부,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비리를 저지르면서 부당한 이익을 착취하고 있었던 비리 귀족들을 모조리 청소시켜버린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 다름 아닌 은현이라는 것을.
그리고 청소된 비리 귀족 중에, 자신의 지인이나 자신의 가족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다.
어찌 되었건, 아이샤 또한 과거에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에 입단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아가씨였다.
비리 귀족들이 모조리 청소되었을 당시, 아이샤와 아이샤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청렴결백하게 살아왔다는 것에 크게 안도하며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건 나도 그래.”
알렉스는 피식 웃으며 아이샤의 의견에 동의했다.
현재 아르미타스령의 발전은 순전히 은현의 의견과 자금의 제공이 있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업적이다.
그것도 그냥 순전히 자금을 제공하고 끝이 아니라, 그 자금이 영지 내부에서 순환하며, 나중에는 제대로 이익을 내면서 영지와 은현 자신에게 더 큰 이익이 나오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환원된 이익을, 은현은 내부의 보육원이나, 그의 수하가 되어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중인 흑랑단의 운영자금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여러모로 사업의 수완이 매우 뛰어난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재능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내려가지.”
“네.”
식사의 준비 시간을 가늠하며, 알렉스는 9시간 만에 책상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왔다.
그간 샌드위치나 빵 정도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던 차, 겨우 제대로 챙기게 된 식사 시간이다.
아이샤를 뒤에 데리고,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식당에 도착하자,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알렉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늦은 시간인데, 아직 계셨군요.”
작게 고개를 숙이며 알렉스가 인사를 한 상대는 그의 부모, 아브로스와 루네스였다.
“음….”
“이이가 드물게 와인을 조금 마시고 있었거든. 거기에 하인에게서 네가 늦은 저녁 식사를 준비해달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다리고 있었단다.”
루네스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반겼다.
“그렇습니까.”
“앉아라.”
“네.”
작게 미소를 지은 알렉스는 자리를 눈짓하는 아브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착석했다.
천천히 자신의 앞에 요리들이 모두 차려지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에게 현재 영지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래서…현재 영민들의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음.”
아브로스는 알렉스의 말을 들었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음미하는 것인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알렉스는 조용히 아버지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제는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괜찮다.”
“…예?”
“조만간, 정식으로 너에게 가문을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으니.”
“……!”
그것은 알렉스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다.
알렉스는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브로스의 이야기를 부정했다.
“아버지, 그건 안 됩니다. 저는…아직 부족합니다. 언젠가 다시 아버지가 이 자리를 맡아주세요. 저는 좀 더 영주로서 배움을 쌓고….”
“너는 이미 영지를 훌륭하게 경영하고 있다. 이미 그 녀석이 너를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지.”
“그건….”
알렉스는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의 아르미타스령은 그 녀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네가 결정권을 가지고, 네가 판단하여, 네가 발전시킨 영지다. 그것을 다시 나에게 넘기려는 것이냐?”
“…….”
“이곳은 이미 나의 영지가 아니다. 알렉스.”
“…네.”
“검술 연습을 빼먹지 않고 하면서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네가 영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기사로서, 공작 가문의 둘째로서 행동을 해왔던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영주로서의 삶은 매우 고단하고 피곤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개인을 단련하고 가문의 위상을 높이며 왕가를 수호하는 기사로서의 책무를 다하면 됐던 것과는 달리, 몇천, 몇만의 영민들이 풍족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영지를 경영하는 것은 막중한 책임을 요구하는 자리.
확실히 명백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이전과는 다르다.
“나는…실패했지.”
“아버지….”
잔에 들어있는 와인을 응시하는 아브로스의 두 눈에는 많은 회한이 담겨있었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감과 함께 자식의 죄를 덮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내리면서 가문과 나라, 가족들을 모두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과오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란 그런 것이지.”
한 번 내린 선택과 잘못은 죽을 때까지 평생을 자신의 뒤를 쫓아온다.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중진 중 하나였던 자신이, 자기 아들이었던 남자가 저지른 죄를 덮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나라의 공익보다, 자식을 감쌌다는 개인의 감정을 중시한 결과는 비참하고 참담했다.
아브로스는 그 과오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궁정귀족의 군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두 번 다시, 정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아브로스는 지금까지 아들이 이뤄낸 영지의 눈부신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결심을 굳혔다.
“다음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은 네가 이어받아라.”
아브로스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개인적인 자식의 정을 떼지 못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내린 자신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정치를 할 수가 있을까.
“…….”
알렉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젠가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있으니, 이제는 괜찮다.’라는 표정을 짓는 아브로스의 얼굴을 보고, 알렉스는 더는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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