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74화 (374/730)

〈 374화 〉 374. 가족의 얼굴(2)

* * *

은현은 지하 공방의 방 하나를 개조하여 만들어낸 수술실 위에 누운 앨리스의 상태를 살폈다.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앨리스의 입가가 살짝 떨리고 있는 것이, 누가 보아도 긴장을 하는 상태라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수술이 시작될 동안은 잠이 들 거야. 마취약으로 아픔도 느끼지 않겠지만…. 역시 긴장하지 말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

“은현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어떻게 수술이 진행되는지 과정을 듣고 나니까, 조금…무서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은현이 제시한 방법은 새롭게 제작한 아티팩트인 ‘의안’을 앨리스의 눈 속에 집어넣고 정착시키며 시신경을 연결하는 것이다.

자신의 눈 속에 직접 칼을 대거나 쇠집게를 넣는 등의 행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쪽이 더 이상하리라.

차라리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지만 그 무서움보다도 지금 앨리스의 마음속에 우선시 되는 것은 자신의 두 눈으로 남편과 딸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이 들어 계신 동안에, 모두 끝나 있을 거에요.”

엘레노아는 그렇게 앨리스를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흘끗 뒤를 돌아보며 자신보다 더욱 대단하고, 앨리스의 동료였던 사제를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

“그렇죠. 아니에스님?”

“흥. 당연하지.”

아니에스는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가 시력을 잃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오염된 마나로 안구를 상처 입었기 때문이다.

눈을 시작으로 전신으로 오염된 마나가 퍼지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급하게 아니에스가 응급처치로 두 눈을 뽑아버리면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로 오염된 마나를 정화시켰음에도, 손상되어버린 시신경은 복구시킬 수 없었다.

신체의 결손 부위조차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막대한 신성의 축복을 받은 아니에스조차도 치료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바로 오염된 마나로 변질되어버린 인간의 육체다.

앨리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서 시력을 빼앗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니에스는 앨리스에게 평생의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너 절대로 잘못되게 안 둘 거니까.”

언젠가 앨리스의 두 눈을 치료할 순간이 오게 되면, 자신을 꼭 불러 달라는 아니에스의 부탁을 받아들인 은현은 오늘, 앨리스의 수술을 앞둬 그녀를 불렀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아니에스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앨리스는 아니에스의 목소리에서 잔뜩 긴장해있는 그녀의 분위기를 읽었다.

시력을 잃은 만큼, 청각이나 다른 감각에 예민해진만큼 아니에스의 생각을 읽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굳어계시면 덩달아 저도 불안하게 되잖아요.”

앨리스가 피식 웃으며 아니에스에게 농담이 섞인 말을 던졌다.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이 수술을 해야할 사람을 격려시켜주다니, 전혀 반대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역설적인 상황.

아니에스도 피식 웃어보이며 앨리스의 이마를 가볍게 툭 쳤다.

“잠이나 자고 있어.”

“네. 부탁드릴게요.”

“그럼 시작할게.”

아니에스와 앨리스의 대화가 끝나자, 은현은 곧바로 앨리스의 마취를 시작했다.

마취약이 들기 시작하면서 잠에 빠진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곧바로 조심스레 앨리스의 두 눈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의 안대를 벗겨냈다.

“…….”

두 안구는 아니에스의 신성력으로 복구된 기적.

하지만 신경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안구는 이미 빛을 잃어 외부의 빛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먼저 안구를 적출할게.”

“…그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앨리스의 안구를 적출해야한다는 경험은 아니에스의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도하는 이유는 그녀의 시력을 낫게 하기 위함이다.

아니에스는 조심스레 수술대 위에서 마취로 의식을 잃은 앨리스의 안구를 다시 한번 적출했다.

“두 사람 다, 결계 유지 잘하고.”

“알아.”

“네. 알고 있어요.”

엘레노아와 아니에스의 역할은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이 수술실의 환경에 성역화의 결계를 치는 것이다.

신성의 축복이 가득한 내부의 수술실은 외부와는 모든 것이 차단된 완벽한 밀폐된 공간.

내부의 공기를 포함한 모든 요소들을 깨끗이 정화하며 눈을 통해서 병균이 감염될 요소를 사전에 차단시킨다.

동시에 신체의 상태를 계속 최적화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효과는 수술을 받는 환자의 부담을 덜어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구에서의 의료환경보다 더욱 쾌적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의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최고의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은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 부분은 잘 조절해야 해. 적출하자마자, 그 부위가 아물어버린다면 의안을 신체에 정착시킬 수가 없어. 그 부위를 곧바로 봉합해야 하니까.”

“알았어. 네 말대로 따를게.”

솔직히 매우 귀찮은 부분이었지만, 아니에스는 은현의 말을 따랐다.

그저 대량의 신성력을 때려넣어, 회복시키는 상위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의학’이라는 부분은 자신에게 있어 전혀 문외한의 분야였다.

아르케나 대륙의 의학 수준은 간단한 외상을 치유하거나 자잘한 병 같은 분야를 치료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뿐, 그렇게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신체의 상처는 신전에 소속된 사제들의 기도를 통해 상처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지구처럼 의학이 발달 할 필요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나도 처음 시도하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앨리스에게 다시 한번 남편과 딸을 볼 수 있는 시력을 고치기 위해서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또 해보았다.

이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

“…후우.”

작게 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하고는, 은현은 자신이 제작해낸 의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비로스 공작령에서 브로디아 마피아가 운영하던 블랙마켓에서 구입한 재료들.

앨리스와 데르킨이 딸과 함께 엘프의 숨을 나오면서 따로 챙겨온 세계수의 나뭇가지와 이파리들.

그리고 부활한 구미호가 사당의 내부에서 자신의 요력을 먹이며 약 1개월간 급하게 재배해낸 선과(??).

이것을 조합하여 제작해낸 하나의 의안은 정령친화력이 굉장히 높은 앨리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의안이다.

무게와 질량은 앨리스의 안구와 똑같이 제작했지만, 정령의 힘을 빌려서 지형지물을 파악하여 생활하던 앨리스의 방식에서 얻어 제작하였다.

일반적인 안구보다 튼튼하면서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내구성을 특별히 신경 쓴 결과, 탄생한 단 하나뿐인 아티팩트.

앨리스의 수술의 핵심은 이 의안을 눈 속에 존재하는 수십 수백 개의 시신경과 연결시키고, 정착을 통해서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

“긴장되시나요?”

“그야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괜찮아요. 수십 번도 연습하고 생각했잖아요. 꼭 성공할거예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응원해주는 엘레노아의 말에 은현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니네끼리 짝짜꿍하는 건 좋은데, 때와 장소는 좀 가려서 하지?”

“그래. 미안.”

“네. 죄송합니다.”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지금 집중해야할 것은 앨리스라고 말하는 아니에스의 핀잔에 은현과 엘레노아는 순순히 사과했다.

이윽고 은현은 앨리스의 두 눈가에 손을 가져다대며 마력을 집중시켰다.

미세한 실처럼 가느다란 마력의 실들이 그녀의 눈 속으로 퍼져나갔다.

[은현 고유능력]

[사고 가속]

하나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고를 가속시킨 은현은 그 마력의 실들을 조심스레 움직여 작업을 개시했다.

그 작업은 20년 전의 전쟁 속에서 오염된 마나로 손상되었던 앨리스의 시신경 끄트머리를 모조리 잘라내는 것.

그리고 의안과 그 절단된 시신경을 봉합시킨다.

구미호가 재배해낸 선과(??)는 그것을 먹은 것만으로도, 세포의 활성화를 돕고 정착시킨다.

신성력이 깃든 상위의 기도는 몸안의 결손부위를 원래대로 복구시킨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선과는 마치 새로 태어난 갓난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허약했던 뼈가 성장하고 튼튼하게 굳어가듯이 오랜 시간을 들여 신체의 회복을 돕는다.

다 죽어가는 70세의 노인이 이 선과를 먹으면서 온몸의 활기를 되찾고 젊은 시절의 육체를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영약 중 하나.

은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두 여성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체력 싸움이야. 결계 절대로 풀지마.”

“알았어.”

“네.”

◆ ◆ ◆

수술은 10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격리된 공간의 너머에서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아내의 상황을 생각하며, 데르킨은 의자에 앉아 양손을 모았다.

그대로 이마에 가져다대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세계수시여….”

엘프들을 품고 보듬어 살피는 신목의 이름을 간절한 음성으로 입에 담은 데르킨의 모습은 매우 초조했다.

이미 은현에게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미리 설명을 들었다지만, 그 상황을 직접 맛보고 있기 때문인지, 가슴 속은 답답함으로 타들어만 갔다.

혹시라도 잘못되는 것을 아닐까, 은현이 맡아주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술의 시간은 몇 시간이고 지속이 되면서 결과는 나오지가 않으니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몇 백년을 넘게 산 엘프는 지금 이 짧은 순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굉장히 긴 시간을 체험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 괜찮아요?”

그렇게 불안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에리스의 아담한 손이, 세계수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데르킨의 양손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그래. 아빠는 괜찮아.”

“엄마는 괜찮을 거예요.”

“응?”

“그 아저씨가 꼭 구해줄 거니까요.”

“…….”

반쯤 확신이 서려 있는 에리스의 말투는 순간 데르킨의 머릿속에 의문이 차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이렇게 장담을 할 수 있는걸까?

“왜요. 아빠?”

에리스는 데르킨이 기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자,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데르킨은 아까까지 품고 있던 고민을 곧바로 잊어버리고 미소지었다.

자신의 딸도 이렇게 의연하게 있는데, 오히려 딸에게 격려를 받는 아버지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니. 우리 딸이 너무 의젓해서.”

딸의 이런 부분은 엄마를 닮은 걸까.

어떤 때는 자신의 10분의 1도 살지 않은 인간 여성인 앨리스가 자신보다도 더욱 현명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적도 적지 않았다.

자신은 그런 앨리스의 모습에 반하여 인간 여성을 반려로 맞이했다.

데르킨은 맞잡은 양손을 풀고, 에리스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엄마는 괜찮겠지.”

“…아빠. 숨막혀요.”

“하하. 미안. 미안.”

이상하게도 딸과 대화를 하고나니까 지금까지 초조했던 마음이 싹 사라져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괜찮을 겁니다. 그 녀석이니까요.”

이윽고 함께 수술의 끝을 기다리고 있던 엘빈이 격려의 한마디를 거들었다.

“…알고 있다. 그분은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알았어.”

딸로 초조해진 마음을 달래자마자, 데르킨은 엘빈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굳히며 답했다.

“…실언이었습니다.”

데르킨이 엘빈에게 까칠한 태도를 유지했던 것은 늘상 있는 일.

엘빈은 곧장 고개를 숙이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함께 모험가의 일을 하고, 보육원의 원장이라는 직위를 맡은 아내를 함께 도우며 꽤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어째서인지 엘빈에게 만큼은 마음을 가깝게 터놓고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에리스 때문이다.

“아빠.”

“응?”

“아빠는 왜 엘빈 오빠를 싫어해요?”

“…….”

순수한 딸의 질문에 데르킨은 대답하지 못했다.

당황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데르킨을 응시하며 에리스는 말을 이었다.

“엘빈 오빠, 괴롭히면 안 돼요.”

그렇게 데르킨의 품에서 벗어난 에리스는 곧장 엘빈에게 뛰어들어 그의 품에 안겼다.

“…….”

최근, 엄마인 앨리스 다음으로 우선순위는 자신이었던 에리스의 마음속 비중은 어느 새부터인가, 자신을 뛰어넘고 엘빈으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생각했던 불안한 예감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

데르킨이 새롭게 두 번째 우선순위로 자리잡은 대상인 엘빈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엘빈은 살짝 어깨를 떨었다.

데르킨은 생각했다.

‘역시 난 이래서 이 녀석이 싫어.’

딸의 애정을 독차지해버린 엘빈과 친교를 다지는 일은 멀고도 험난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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