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화 〉 370. 신수 부활(2)
* * *
[…말도 안 되는 소리.]
은현의 말을 들은 구미호는 곧바로 부정했다.
구미호의 힘의 근원이었던 여우 구슬은 자신이 오랜 시간을 들여 상위의 기운으로 승화시킨 신수의 마력을 저장하기 위해서, 구미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물건.
그것을 그저 평범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발언을 한 은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스스로 말도 안 된다며 부정을 하면서도, ‘어쩌면 이 남자라면?’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반신반의하는 생각은 이내 기대로 바뀌어 간다.
“…미호가 말도 안 된다는 데?”
“그야 평범한 방식으로는 도저히 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만들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몇 시간 안에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식의 기준에서 통하는 이야기.
“지금 일리아나가 준비를 마친 제단 위의 구슬은 내가 마련한 특별한 구슬이야.”
그것은 과거의 시간대에 존재했었던 구미호의 실제 구슬이다.
자신의 권능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역사를 재현하는 권능을 통해서 과거의 시간대에 존재했던 구미호의 여우 구슬을 법칙을 거슬러 무시하고 이 장소로 소환시킨 것.
[이럴 수가….]
에린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의 법칙을 무시하고 간섭하여 과거에 존재했던 물건을 그대로 복제해 가져온다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인지, 구미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것도 아직은 불완전해.”
제단 위의 여우 구슬은 어디까지나 은현의 권능으로 재현시킨 물건일 뿐이다.
은현의 신력으로 현재 실체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신력의 공급이 끊긴다면 다시 실체를 잃고 사라져버린다.
저 여우 구슬을 은현의 신력의 공급 없이도 이곳에 존재를 유지하게 하는 것, 그것이 다음의 과제.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에린의 도움을 받는 거야.”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이 사당 안에서 에린이 가지고 있는 마력 전부를 방출시키면 돼.”
이전 엘프들의 마을에서 일리아나가 세계수를 복원시켰을 때 사용했던 방법과 비슷하다.
에린의 마력 속에는 신수의 힘과 함께 구미호의 사념이 함께 섞여 있다.
현재 사당의 내부는 잔존하는 마력들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봉인을 시켜둔 상태.
사당 전체에 퍼지는 신수의 마력을 한곳으로 모아 새롭게 준비한 여우 구슬 속에 주입해, 구미호의 사념을 정착시키는 것이 이번 작업의 핵심이다.
“응. 알았어. 해볼게.”
그저 자신의 몸속에 있는 모든 마력을 밖으로 꺼내어 방출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에린. 명심해.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방출을 멈춰서는 안 돼. 몸속의 모든 마력을 쥐어 짜내어 바깥으로 방출시키는 게 에린의 역할이야.”
“아, 알았어.”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에린은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은현의 말에 작게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설명을 마친 은현은 에린을 데리고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나무계단의 위, 제단 위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일리아나는 물끄러미 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을 알린다면 언제라도 시작을 할 수 있도록, 그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일리아나의 시선을 받은 은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 시작해.”
“응.”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 에린이 마력의 방출을 시작했다.
두 눈을 감으며 몸속의 기운을 뿜어내며 시작을 알리자, 덩달아 은현과 일리아나의 작업도 시작되었다.
“할 수 있겠어?”
“흥, 날 뭘로 보고. 나 일리아나야.”
일리아나는 피식 웃으며 쥐고 있는 스태프를 허공을 향해 높이 들어 올렸다.
한 번은 세계수의 부활이라는 과제도 달성시켰던 전적이 있었던 만큼,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 위업을 달성하면서, 사도의 권속으로 인정을 받아 언제까지나 은현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도 포함이 되어 있는 자부심.
“연산, 힘들 것 같으면 말해. 도와줄 테니까.”
“너나 잘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기만 해봐. 그러면 침대 위에서 각오해.”
서로 장난이 섞인 격려를 교환하고는 각자의 맡은 바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일리아나의 역할은 결계로 갇혀 이 사당의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을 여우 구슬로 집약시키는 것.
은현의 역할은 이 사당의 결계 유지와 함께 부족한 마력의 양를 보충하는 것이다.
에린이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으로는 여우 구슬을 완전히 각성시킬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천 년의 시간 동안 모아온 방대한 마력을 채우는 것이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에린에게는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를 쥐어짜 내라고는 했지만, 부족한 양은 자신의 신력으로 대체할 생각이었다.
이미 에린의 몸속에는 두 번의 관계를 통해서 은현의 신력이 깃들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
에린이 가지고 있는 신수의 힘과 은현의 신력은 다행히도 상성이 매우 잘 맞았다.
‘아, 이거 생각보다 조금 힘드네.’
에린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마력을 방출하고 약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어째서 은현이 두 번이나 강조하였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을 외부로 방출하는 것 자체는 모험가가 되기 전, 모험가가 익혀야 할 기초적인 분야의 하나지만, 그것을 장시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
뒤늦게 자신이 너무 가볍게 보았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
‘좋아. 까짓거 해보지 뭐!’
다름 아닌 구미호를 위한 일이며, 은현에게 하겠다고 말을 한 이상, 에린은 한번 죽어라 버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으….”
작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이를 꽉 물고 버티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현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결계의 유지와 함께 에린처럼 마력을 방출하던 은현은 흘끗 일리아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컨디션을 살폈다.
방대한 힘을 조작하여 한 점에 집중시키고 있는 그녀의 연산 능력에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몇백 명의 엘프들이 방출시킨 마력을 연산하여 세계수에 집약시키고, 세계수를 부활시켰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터.
게다가 사도의 권속 계약을 통해서 일리아나는 사고의 한계가 확장되어 고위 자릿수의 주문들도 다중캐스팅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성장을 이루어 냈다.
정말로 표정 그대로 여유를 보이는 일리아나를 보고, 에린에게 말을 걸었다.
“에린. 더 할 수 있겠어?”
“할…수 있어!”
오기가 생긴 것일까.
이를 꽉 깨물며 버티고 있는 에린의 말에 은현은 작게 웃었다.
지속적인 마력의 방출로 사당의 내부가 신수의 기운과 신력으로 가득 채워나갔고, 그 기운들은 모조리 새로운 여우 구슬 속에 집약되어 갔다.
그렇게 시간은 30분이 흐르고, 1시간이 넘게 흘러갔을 때.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는 에린이 서서히 한계를 맞이해나가고 있었다.
‘더 할 수…있을까?’
스스로도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아니. 해야만 해.’
이것은 다름 아닌 은현의 부탁이자, 구미호를 위한 일이다.
그동안 많은 도움과 조언을 받아왔던 구미호에게 제대로 된 보답 하나를 해주지 못했던 것이 내심 아쉬웠던 에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으…그으….”
얼마나 이빨을 강하게 깨물었는지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와중인 한창에도, 옆에 있는 은현에게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혀 있던 땀들이 뺨을 타고, 목 언저리 아래로 떨어져 옷을 적셨다.
필사적으로 몸속의 마력을 모두 쥐어짜 내면 짜낼수록, 머릿속에 가해지는 정신적인 부담은 점점 에린의 머릿속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극심하게 누적되는 전신의 피로는 1시간을 가까이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피로와는 전혀 다른 종류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데도 쓰러질 수 없는 이유는 은현과 일리아나 때문이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멀쩡한 거야?’
에린은 자신처럼 1시간을 가까이 서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둘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꼈다.
힘들어하기는커녕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속 방대한 양의 마력 방출과 마력 조작의 연산작업을 감당하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은현, 일리아나 사이의 커다란 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세 명 중에서, 자신만이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함을 느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은 지금 죽을 만큼 힘들고 모든 것을 쥐어 짜내고 있는데, 은현과 일리아나는 서로를 살피며 페이스를 조절해나가면서 합을 맞춰나가는 광경 경이롭다.
‘이게 영웅….’
많은 마력과 강한 힘,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는 것이 아니다.
둘이 보여주고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야말로 영웅의 면모가 아닐까.
이윽고 서서히 주입한 대량의 기운이 정착하기 시작한 여우 구슬이 응축된 기운을 품고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정말로 이것이….]
구미호는 여우 구슬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이 정말 반신(半?)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더라도, 인간이 개인으로 하루도 아닌 1시간 만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업적인가?
“아….”
두 손에 품어도 부족할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여우 구슬은 이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됐나? 성공했나? 끝났나?’
살짝 기대하는 표정으로 은현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은현은 아직 굳은 표정을 풀지 않으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마력보다 더욱 정갈하고 깨끗한 기운에 순간 넋을 놓을 뻔했지만, 에린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아, 빨리 끝났다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더는 자신의 정신력이 버티지 못한다.
결국, 점점 무거워져 가는 눈꺼풀은 에린의 한계를 의미했다.
“아, 현아…. 나, 더는….”
정말로 한계의 한계를 맞이하여 결국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에린을 은현이 끌어안았다.
“수고했어.”
중간에 포기할 법도 한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든 정신력을 소모하면서까지 버텼다는 것이 대견하다.
에린이 그렇게 정신을 잃음과 동시에, 대량의 기운을 품게 된 여우 구슬은 마침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떠오른 여우 구슬 속에는 에린이 가지고 있던 신수의 힘과 구미호의 사념이 주입된 상태.
주입된 구미호의 사념과 신수의 기운이 제대로 여우 구슬 속에 정착이 되기만 한다면, 완전히 마무리된다.
이내 여우 구슬은 내부에 응집된 대량의 기운을 방출하여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나갔다.
그 형체는 하나의 수인 여성으로 변해갔고, 점점 모습이 선명해져 갔다.
주위를 뒤덮는 마력에 호응하여 허공을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백발.
머리 위에 생겨난 여우 귀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주위의 소리를 감지하는 듯 쫑긋거리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제단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커다랗고 풍성한 하얀색의 아홉 꼬리는 에린의 꼬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풍성하다.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신수를 응시하며, 은현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고는 격식을 차린 인사를 건넸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신수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