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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368화 (368/730)

〈 368화 〉 368. 어른의 계단

* * *

“으…으응….”

에린은 몸을 뒤척이며 신음을 내뱉었다.

“아….”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향긋한 향신료와 고기, 숯불의 냄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에린의 두 눈이 번쩍 떠지며 천장을 응시했다.

꼬르륵

맛있는 냄새를 맡자, 공복인 에린의 뱃속이 신호를 보내왔다.

“아, 배고파….”

몸을 일으키려던 에린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으으….”

뱃속이 얼얼하고, 뼈가 쑤신다.

그만큼 어젯밤의 은현과 보냈던 시간이 격렬했다는 의미다.

“진짜로….”

어젯밤의 경험이 꿈이나 허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에린은 미소지었다.

“히히….”

양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어젯밤에 느꼈던 격렬한 기억을 되새겼다.

침대에 계속 누운 채로 주위를 둘러보며 캐러밴 안에 없는 은현의 모습을 찾았다.

“어디 갔지?”

치이익

불판 위에서 고기를 굽는 소리가 더욱 적나라하게 들리자, 에린은 아직 얼얼한 몸을 질질 끌어 창문 쪽으로 이동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하고, 보이지 않았던 은현의 모습을 발견했다.

바비큐 그릴 위에서 아르미타스령에서 산 고기들을 굽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에린의 식욕을 자극한다.

시선을 느낀 은현이 창문 쪽을 돌아보더니 캐러밴 안에서 물끄러미 자신와 고기를 응시하고 있는 에린의 모습을 발견했다.

“일어났구나?”

“응….”

“어서 나와서 먹어. 든든하게 먹고 들어가야지.”

“몸이…안 움직여….”

은현의 말에 따라, 에린도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자신의 몸 상태에 에린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작게 피식 웃어 보인 은현은 불타고 있는 숯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캐러밴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서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널브러져 있는 에린은 어젯밤의 영향으로 알몸의 상태.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20살의 젊은 여성의 나신은 굉장히 순수하고 청순하다.

에린은 알몸의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에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안아줘.”

양팔을 들어 올려 은현에게 뻗고는 또다시 응석을 부려오는 에린의 행동에 은현은 순순히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키스해줘.”

애정이 담긴 작은 입맞춤을 하고, 에린은 은현의 가슴에 안겨 그의 상체를 꽉 끌어안았다.

“옷 입어야지.”

자연스레 가슴을 밀착시키며 얼굴을 비비는 에린을 다독였지만, 에린은 은현의 말을 듣지 않았다.

“히히. 조금만 더.”

“고기 다 탈지도 몰라.”

“아! 그, 그건 안 되지!”

에린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떨어졌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히고, 옷을 입히는 것이 마치 딸아이를 돌보는 기분을 느꼈다.

연인이 되자마자, 보인 에린은 마치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을 모두 표현하듯 일방적인 애정 공세를 보내왔다.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는 쓴웃음이 나온다.

옷을 입힌 에린의 몸을 안아 들고는 캐러밴을 나와 설치된 테이블 앞의 벤치에 에린이 몸을 앉혔다.

그릴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고기의 상태는 그럭저럭 무난했다.

함께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접시 위에 담아 에린의 앞에 놓아주었다.

“먹여주면 안 돼?”

“그래.”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하여 고기를 자르고는 채소와 함께 고기를 찍어 에린의 입속에 직접 먹여주었다.

어떤 귀족의 영애처럼 극진히 모셔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에린은 웃음꽃이 피었다.

아기 새처럼 은현이 떠먹여 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며 씹으면서, 은현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뉴비들의 교육은 어땠어?”

“아….”

순식간에 에린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져 갔다.

그 얼굴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모양.

은현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에린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모두 씹은 에린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에린은 자신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강해질 수 있는지를 물어온 어떤 뉴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뉴비의 교육 자체는 잘 모르겠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긴 했지만, 내가 걔들한테 무언가 모범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나 자체만으로는 굉장히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가르쳐주고 도움을 준 많은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

겸손의 정도가 아니라, 에린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아주 낮았다.

“그렇지 않아.”

은현은 에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반론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뉴비들의 교육 임무로 갔던 고블린 소굴의 유적. 거기에 이번 뉴비 파티 말고도 다른 파티가 있었어. 싸늘한 시체로.”

“그랬구나.”

이야기를 듣는 은현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비정하고 무감정한 태도이기도 했지만, 막 모험가 일을 시작한 뉴비가 가장 낮은 난이도의 고블린 토벌 임무에서 전멸하게 되는 경우는 그렇게 드문 경우가 아니다.

에린의 기분이 저조한 원인이 다른 부분에 있다는 것을 짐작했기에 조용히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거기에…. 걔들이 있었어.”

“걔들?”

“아이테르에 있었을 때,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었던 애들.”

“…….”

그 말을 들은 은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집안이 몰락하고 생계를 이어나갈 수단으로 모험가를 선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경우도 아니다.

게다가 그들의 집안을 몰락시켜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인 모험가를 고르도록 내몬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은현이다.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벌인 행동의 여파로 그들이 그러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만약 나는 현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걔들처럼, 아니 걔들보다 못한 인생을 살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저 상황과 타이밍이 좋게,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을 뿐이다.

그런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타인을 교육할 수가 있을까.

“에린.”

“응?”

빡!

“아야!”

은현이 에린의 정수리에 손날로 촙을 내려찍었다.

심각한 고민을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던 에린이 울상을 짓는다.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는 에린의 눈가에는 작은 눈망울이 맺혔다.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야.”

“히잉….”

아무리 울상을 지으며 전신으로 아픔을 표현해도, 은현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에린.”

“응?”

“네가 부과한 과제들을 모두 해결하고, 지금까지 따라온 네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리가 없잖아.”

그 힘든 훈련들을 모두 소화해내고 훌륭하게 성장해낸 그녀의 노력과 시간이 절대로 별 볼 일 없을 리가 없다.

에린은 정말로 은현에게 있어 대견한 제자다.

“…….”

“자신을 가져.”

고기가 꽂혀있는 포크를 다시 집어 들어, 강제적으로 에린의 입속에 고기를 넣었다.

“우븝!?”

깜짝 놀라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에린은 갑작스레 자신의 입안에 넣어진 고기를 씹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물끄러미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은현의 눈치를 살폈다.

은현은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훌륭한 내 제자야. 그리고 이제…우리는 연인이잖아.”

“으, 응.”

“만약 내가 나 아무런 재능도 없이 일리아나의 힘과 명성에만 기대어 사는 기둥서방 같다고 나 자신을 비하한다면, 너는 좋아?”

“당연히 싫지. 현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은현이 제시한 만약의 가정은, 약 1년 전,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의 귀족들이 바라보고 있는 은현의 외적인 평가였다.

자신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은현에게 붙여진 ‘수은의 뱀’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은 에린에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에린, 네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비하하면 정말 싫어.”

“…그렇네.”

에린은 순순히 은현의 이야기에 인정했다.

은현이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에린이 싫어하듯이, 은현 또한 에린이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싫어한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야.”

“응.”

에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에린의 이야기를 들은 은현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해?”

“그냥. 슬슬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다 싶어서.”

“약속?”

“응.”

◆ ◆ ◆

던전 주택으로 복귀하자마자, 은현과 에린은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며 마법 서적을 읽고 있는 일리아나와 마주쳤다.

발소리를 들은 일리아나가 독서 할 때만 착용하는 안경을 으쓱이며 현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일리아나는 은현의 한쪽 팔을 꽉 끌어안아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가. 왔니?”

“네. 일리아나님! 다녀왔어요!”

“흐응.”

관찰하는 시선으로 해맑게 웃으며 대꾸하는 에린의 몸을 위아래로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옷은 똑같았지만, 그녀의 다리는 한껏 꾸미고 나갈 때 착용했던 하얀색 스타킹이 아닌 맨다리다.

‘했네.’

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내 은현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은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일리아나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할 말 있어?”

“뭐 없지는 않지. 그래도 일단은…. 아가랑 먼저 이야기해야겠는데?”

“알았어.”

흥미가 가득한 표정을 지은 일리아나의 얼굴을 보고, 은현은 재빨리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에린.”

“응?”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저녁 먹고 다시 나갈 거야.”

“응. 알았어.”

에린은 그 예정을 자세히 묻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에는 일리아나와 에린, 둘만이 남게 되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다름 아닌 일리아나 쪽이다.

“아가, 앉을래?”

“네, 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몸을 떨었다.

은현과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괜히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일리아나는 그렇게 작게 떨고 있는 에린의 모습을 보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도 없어. 아가. 아, 이제는 아가라고 부를 수도 없을까?”

“…….”

그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더는 미성년자도 아니고, 성숙해진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남성과 관계를 맺으며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이랑 했지?”

“네, 네….”

“좋았니?”

“네, 엄청…요. 처음엔 아주 아팠는데, 두 번째는…기분 좋았어요.”

에린은 솔직하게 자신이 느꼈던 감각을 털어놓았다.

어쭙잖은 거짓말이나 말을 얼버무리는 행동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 두 번이나 했구나?”

일리아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에린에게 손짓하여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시늉을 하자, 에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리아나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일리아나가 가까워진 에린의 손을 끌어당기며 에린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아….”

그 행동에 에린은 당황했지만, 상냥하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리아나의 손길을 느끼며 작게 몸을 떨었다.

2년 전, 처음 은현을 따라와 함께 지내면서 오랜 시간을 동거해왔기 때문에, 에린의 지금, 이 순간은 일리아나에게도 매우 많은 의미가 있었다.

은현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오며 훌륭하게 성장한 그녀가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은현뿐만이 아니다.

일리아나나, 엘레노아, 릴리도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직접 은현과 에린의 인연을 엮도록 유도했던 베르단디도 그러하다.

각자의 사정으로 이 자리에 없는 그들을 대신해서, 에린을 맞이한 일리아나는 에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른이 된 걸 축하해.”

풍만한 가슴 속에 얼굴을 묻자, 어째서인지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적,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일까, 머리를 쓰다듬어 줄수록 그리움은 더욱 강하게 다가와 증폭시킨다.

“…감사해요.”

에린은 일리아나의 품에 안겨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또 한 번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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