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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360화 (360/730)

〈 360화 〉 360. 마중(1)

* * *

아르미타스령으로 복귀하는 속도는 출발했을 때보다 더욱 속도가 더뎠다.

전투를 치른 이후의 피로가 남아있는 것도 모자라, 포션과 응급처치로 상처의 악화는 막았다지만 그 상처가 아물고, 잘려나간 피부 조직과 혈관이 다시 재생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은현이 좋은 약재와 기술들을 조합하여 뛰어난 포션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상처의 재생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

에린은 부상을 입은 검사 뉴비의 배낭까지 짊어지며 복귀하는 행군을 무리가 없는 선에서 이어나갔다.

행군을 이어나가던 도중, 에린은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어?”

“아…그게….”

살짝 뒤를 돌아보고 질문을 해온 에린의 물음에 부상을 입지 않았던 다른 검사 뉴비가 머뭇거렸다.

마음속으로 결심을 마친 검사 뉴비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지신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냥 노력했지.”

“…노력하면 저도 1년 차 안에 금위계의 등급을 달성할 수 있습니까?”

검사 뉴비의 질문을 들은 에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

순간 말은 마치 자신이 어떤 비겁한 수단을 사용하여 금위계의 등급을 손에 넣은 것처럼 들렸지만, 뉴비의 목소리 톤과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가 말하는 질문의 의미는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빠르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나요?

모험가 일을 시작한 지, 단 1년 만에 금위계의 등급을 거머쥔 최연소의 모험가.

달성하는데 걸린 시간도, 달성한 사람의 나이도, 신기록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이제 막 성인이 된 에린의 활약에 대한 소문은 날이 갈수록 아르미타스령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에린님의 소문을 안 믿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에린님을 무시할 의도도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지….”

강해지고 성장하고 싶다는 일념뿐이다.

뉴비들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고블린들과는 다른 덩치와 위용을 가진 상위 개체, 홉 고블린들을 간단하게 처리해버린 에린의 실력을 보고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녀의 실력은 뉴비들의 눈에는 당연히 눈이 부시게 보였던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검사 뉴비가 품었던 감정은 종류는 다르지만, 같은 검을 사용하는 검사로서 강한 열망과 동경이다.

“…….”

에린은 그런 검사 뉴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냐고 물어봐도…이런 걸 어떻게 대답해줘야 해?’

대꾸해줄 말을 찾지 못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경우에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자신의 어리광과 투정에도 혹독하게 가르쳐 주고, 항상 앞장서서 이끌어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고, 일리아나나 제라드 같은 좋은 조언자도 두었다.

신체 속에 타인들보다 방대한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의도치 않게 신수의 힘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저 은현이 부과한 훈련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기만 했으면 되었을 뿐, 그 과정에서 필요했던 모든 것은 은현이 준비해주었다.

‘하지만 얘들은 아니잖아.’

이끌어줄 누군가도 존재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뉴비가 된 그들은 1년이 지나 신참의 딱지를 떼고 동위계로 승급할 때까지 모험가 길드의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지원도 한계가 있기 마련.

막상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언하려고 하니,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이가 대단했던 거지, 내가 대단했던 게 아니니까.’

에린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올 수 있었는지를 자각하고 뉴비들에게 티가 나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미안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해줄 수 없을 거 같아. 나는…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던 거에 불과하니까.”

“…….”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노력을 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까지 온 건 아니야.”

그만큼 은현이 자신에게 부과했던 훈련은 죽을 만큼 힘들었고, 다시 하라고 한다면 죽어도 싫다고 할 정도로 치가 떨렸다.

하지만 그 훈련들을 통해서 점점 쌓여가는 경험과 변화해가는 신체의 성장은 뿌듯하고 즐거운 부분도 존재했다.

“너희에게도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주어질 날이 올 거야. 그 기회를 잡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자신은 은현이 내밀어준 손을 기회라 여겼고, 그 기회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때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자각한 에린은 미소지었다.

지금의 자신은 매우 행복하다.

“말씀 감사합니다.”

알맹이는 없는 애매모호 한 조언에 불과했지만, 검사 뉴비는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할게. 몸은 좀 어때?”

에린은 곧바로 부상자 뉴비에게 물었다.

“무리만 아니면 간단하게 움직이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불침번, 가능하겠어?”

“네.”

옆구리 부상을 입었던 뉴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

“오우, 아가씨! 꼴이 말이 아닌데!?”

영지 내부로 진입하는 성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검문을 받던 에린 일행을 보며 위병이 실실 웃었다.

에린과 네 명의 뉴비들은 근 닷새를 가까이 씻지도 못하고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고블린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튄 마수들의 피들로 더럽혀진 그들의 의복들은 모험가들에게는 웃지 못할 훈장이었다.

그런 모험가들의 꾀죄죄한 꼬락서니는 성공적으로 의뢰를 완수하고 영지로 복귀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뉴비들을 너무 혹독하게 굴린 거 아닌가?”

“굴리긴 누가 굴려요!”

에린은 짓궂은 위병 아저씨들의 농담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하하! 고생했어! 어서 들어가라고!”

다행히도 에린과 뉴비 파티의 검문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철저히 원칙을 준수한 검문이 기본적인 규칙이긴 하나, 이미 위병들에게도 인기가 만점인 에린의 진입은 거의 프리패스 수준이었다.

영지의 내부로 들어서고, 일렬로 늘어선 건물의 정중앙, 북적이는 사람들의 행렬을 본 뉴비들은 그제가 돼서야 자신들의 첫 의뢰가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사, 살았다아아….”

긴장이 탁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는 궁수 뉴비나, 한시름 놓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는 다른 뉴비들을 보며 에린은 작게 웃었다.

자신도 모험가 일을 시작하고 첫 의뢰를 끝내고 영지로 복귀했을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 그래도 아직 의뢰가 완수된 건 아니야. 이대로 모험가 길드까지 가서 보고를….”

맥이 탁 풀린 그들을 다독이며 모험가 길드로 가자고 말을 이으려던 그때.

“…응?”

느닷없이 코끝에 감지된 익숙한 향기를 맡은 에린이 본능적으로 영지 안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익숙한 향기가….”

“…향기?”

궁수 뉴비가 맡는 냄새라고는 오랫동안 씻지 못하고, 고블린의 피를 뒤집어쓴 자신들의 몸과 장비들에서 나는 악취뿐.

냄새가 아니라, ‘향기’라고 표현하는 말의 의미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에린은 무슨 냄새를 맡고 한쪽 방향 만을 주시하고 있는 것일까?

“아!”

에린이 누군가를 발견한 듯 크게 탄식하며 활짝 웃기 시작한 것을 보고, 궁수 뉴비도 에린이 주시하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무수히 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

궁수 뉴비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시야에 들어온 남성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백은발의 머리카락과 적안의 눈동자.

많은 사람의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필시 에린의 표정이 갑작스레 밝아진 이유는 저 백은발의 남성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돌아왔구나!”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외친 에린이 뉴비의 것을 포함해, 두 명분의 배낭을 짊어진 채로 은현을 향해 뛰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둘이나 메고 있음임에도, 뛰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뭐, 뭐야…?”

그 느닷없는 에린의 변화에 뉴비들은 당황했다.

“현…앗!”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에린을 발견한 은현도 피식 웃었다.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표정을 굳히고 달려오던 질주에 급제동을 걸어버린 에린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린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자신의 행색을 살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과 옷의 곳곳에 고블린의 피가 튀어있는 자신의 복장을 뒤늦게 자각한 것이다.

‘나…지금 엄청 냄새나지 않나…?’

하마터면 이 꼴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은현에게 뛰어들 뻔했다는 것을 가까스로 참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에린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던 은현이 웃으며 에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생했어.”

“으, 응….”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는 시선을 피하는 에린의 얼굴을 보며, 은현은 말을 이었다.

“에린이 뉴비 교육이라니. 이제는 에린도 다 컸네.”

“노, 놀리지 마아….”

“저, 저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부끄러워하는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뒤늦게 에린의 뒤를 따라온 뉴비들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희는?”

“저, 저희는 에린님이 교육을 맡아주신 모험가 파티입니댜!”

은현의 물음에 당황한 궁수 뉴비가 급하게 답하느라, 끝에 자신의 혀를 씹었다.

그 어리숙한 행동이 우스워 은현의 얼굴에 웃음이 피게 만들었다.

“호, 혹시…수은님이십니까?”

긴장이 가득하여 잔뜩 굳은 얼굴로 한 검사 뉴비가 은현의 이명인 ‘수은의 뱀’을 입에 담았다.

“맞아.”

“와….”

이곳 아르미타스령에서 영지의 주인인 공작 가문의 사람만큼 만나기 힘들며 그 실물이 자세히 공개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은현이다.

그 실물을 다른 사람도 아니라, 모험가 일을 갓 시작한 말단인 자신들이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은현은 다시 에린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말을 걸었다.

“의뢰는 잘 끝냈어?”

“응. 이제 보고만 하면 돼. 아예 돌아온 거야?”

“어. 어젯밤에 왔어.”

“릴리 언니는…괜찮아?”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앞에서 릴리의 개인사를 자세히 하고 싶지 않은 은현의 배려였다.

“많이 애쓰고 있으니까. 집에 가면 많이 신경 써줘.”

“응. 그런데 나 기다린 거야?”

“맞아.”

은현은 흘끗 에린의 뒤, 뉴비 파티원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사정이 있어서, 남은 일정이 보고만 남은 거라면, 내 제자를 데려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아, 네…. 네! 물론이죠!”

급하게 에린에서 동료 뉴비의 배낭을 받은 뉴비들은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현아, 무슨 일인데?”

“이번에 뉴비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던 길드 하나를 정리했다며? 엘레노아에게서 들었어.”

“아, 그거.”

엘빈과 함께 철호단 길드를 부숴버렸던 사건을 떠올린 에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일리아나랑 엘레노아가 이번에 에린한테 포상을 줘야 한다고 계속 강력하게 주장했거든. 밖에서 선물도 받고 밥도 먹고 재미있게 놀다가 들어오라고.”

“…진짜로?”

뜻밖의 희소식에 지금까지 몸에 쌓여있던 피로가 단번에 날아가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에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일단은….”

근 닷새를 가까이 씻지 못했던 몸을 씻어내고 고블린의 피로 더러워진 이 옷도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감사해요! 일리아나님! 엘레노아님!’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의 의도를 알아차린 에린의 기분이 굉장히 들뜨기 시작한다.

“배낭 이리 줘.”

“응. 일단 나 집에서 몸부터 씻을래!”

옷이야 근처의 매장에서 새로 사면 되지만,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최대한 빨리 씻어내어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좋아?”

“헤헤, 당연히 좋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은현의 손길을 느끼며 웃음꽃이 활짝 핀 에린의 모습을 본 뉴비들은, 지금까지 의뢰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에린의 모습에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거는 완전….”

두 사람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읽은 여성 궁수 뉴비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와 스승의 관계라기엔 너무 달고 핑크빛이 난무하는 기류다.

과하게 몰입한다면 연인의 관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더 적나라한 표현을 예시로 들자면.

“…주인님한테 애교를 부리는 애완견으로 까지 보이는데?”

두 눈을 비비며 자신이 잘못 보고 있나 착각을 했을 정도다.

은현의 뒤를 졸졸 쫓아가고 있는 에린의 모습은 다수의 홉 고블린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리던 위용을 선보인 금위계 모험가가 아닌,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모습이었다.

­꿈 깨.

­네가 접근해도 될 사람이 아니야.

여성 궁수 뉴비는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이 이상 넘어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던 에린의 말을 뒤늦게 떠올렸다.

“그게 이런 의미였구나….”

눈치 빠르게 발을 뺀 자신의 판단을 새삼 떠올리며 궁수 뉴비는 작게 안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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